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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제평론가가 물가에 쫄지 않는이유, 쫄지 말라고 하는 이유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2%라는 통계청의 전망. 이 급격한 수치조차 너무 낮게 산정된 것 같다는 소비자들의 토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언론의 비관적 시선. 다만 경제평론가 박연미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수치만 보고 벌벌 떨어야 할 시대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BY오성윤2021.10.22
 
물가가 오른다고 난리들이다. 동의한다. 아니, 체감한다. 찬 바람 불면 떨어진다던 달걀 한 판 값은 여전히 8000원이 넘고, 8년간 동결됐던 전기요금마저 올랐다. 똑같이 8만원어치 기름을 채워도 내 차는 지난봄보다 훨씬 배고프다. 이 모든 우주의 기운이 모여 만든 결과는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2%’라는 전망이다.
 
매달 통계청이 집계하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물가상승은 추세적이다. 1년 전과 비교한 9월 물가는 2.5% 뛰었고, 분기별 상승폭은 점점 더 커진다. 1분기 1.1%에서 2분기는 2.5%로 앞자리가 바뀌더니 3분기는 2.6%로 보폭이 커졌다. 4분기 상승폭도 이보다 좁지는 않을 것 같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회에 불려나가 진땀을 흘린 이유다. 홍 부총리는 "연간 소비자물가 1.8% 상승을 목표로 했는데 어렵겠다"면서 "2% 유지를 위해 총체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즉 총체적 노력 없이는 '2% 너마저' 지키기 어렵다는 고백인 셈이다. 경기가 가라앉을 것 같다는데 물가 그래프는 진폭이 커지니,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가를 방어하는 한국은행은 가능성이 낮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위기 상황마다 등장했던 '검은 10월'설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더라도, 보다 정밀한 분석을 위해선 숫자 아래의 뿌리를 봐야한다. 인과관계다. 오늘의 몸무게가 비단 어제의 야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듯, 오늘의 고물가엔 적어도 열두 달의 벌크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나열한 우상향 물가 그래프를 기억하며 지난해 소비자 물가 지수를 되짚어보자. 아득히 먼 옛날 같지만, 국내에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건 2020년 1월 20일, 불과 1년 전이다. 2월 18일 대구 신천지 대규모 집단감염을 기점으로 경각심이 고조됐고, 한 달 뒤인 3월 22일에는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다. 우리 사회가 정상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점이다. 교문이 닫히고, 사무실이 비고, 카페 의자가 사라졌으며, 명절에 고향을 찾으면 불효자가 되는 낯선 세상이 열렸다. 사람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면 의미 있는 소비는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해 본인의 동선을 그려보면 이해가 빠르다. 라운지 웨어에 슬리퍼 차림으로 커버할 수 있는 일명 '슬세권'에서만 움직이면 외출복을 구매할 일이 없다. 단체 급식이 사라지니 농축수산물은 남아돌았다. 회사도 학교도 여행도 가지 않으니 휘발유 쓸 일이 줄었을 것이며, 때마침 통신비 지원 정책과 고교 무상교육 확대가 시작되며 생활비 부담도 덜었다. 이렇게 코로나 원년이었던 지난해에는 물가상승보다 하락 요인이 많았다. 작년 1월부터 3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1%대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그래서 2분기 이후 급격히 떨어진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직후 집계한 4월 물가상승률은 0.1%. 심지어 5월에는 마이너스 0.3%까지 떨어진다. 6월에는 0.0%로 보합세를 보이다 7월 들어서는 간신히 0.3%를 기록하지만, 8월(0.7%)까지도 물가상승폭은 1%를 밑돌았다.
 
상승 요인도 없지는 않았다. 이후 역대 최장 기간의 장마를 거치면서 푸성귀를 중심으로 식탁 물가가 올랐고, 9월 물가는 1.0%로 상승했다. 반 년 만의 1%대 진입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4분기에 접어들며 물가는 10월 0.1%, 11월 0.6%, 12월 0.5%로 다시 오름폭을 줄였다. 모두 더하고 나눠 셈을 해보면 지난해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다. 농산물과 석유류처럼 수급과 계절에 따라 진폭이 큰 품목을 뺀 근원물가도 연간 오름폭이 0.7%에 그친다. 물가상승에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은 잘 몰랐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활동 위축이 추세적 저물가를 불러 성장 엔진이 꺼진다고들 염려했던 게 불과 1년 전이다.
 
올해, 지금, 우리가 급등했다고 말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렇게 지하실까지 내려갔던 1년 전 같은 달 물가와 비교해 나온 숫자다. 기준점이 낮으니 코로나19 이전 수준만 회복해도 수치상 물가는 급등한 것처럼 나타난다. 여기에 이른바 장바구니 물가를 좌우하는 달걀이나 돼지고기, 시금치, 상추 같은 반찬류 가격이 급등하고, 임대차 3법 시행 뒤 전월세 가격까지 폭등하면서 아우성이 일었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빠르게 회귀하는 물가 통계는 소비자들에게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460개 품목에 가격과 사용 빈도 등을 가중평균 방식으로 꽤 세심하게 계산된다. 하지만 내가 자주 사는 물건, 내가 즐겨 먹는 반찬거리 값이 오르면 소비자는 '숫자가 실물 경기의 통증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푸념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고도 자기중심적인 반응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사람 사는 사정은 다 마찬가지다. 체급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경제 상황을 견줄 때 흔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참고하는데, 38개 회원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4.3% 올랐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헤비급에 속하는 20개 나라(G20) 평균치는 4.5%로 전체 평균보다 더 높다.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G20에 속하면서도 8월 물가가 2.6% 오른 한국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렇게 너나 할 것 없이 단기 물가 급등의 홍역을 치르고 있는 건, 수요 위축으로 하락하던 물가가 신속한 백신 접종과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서다. 특히 최근에는 '위드(with 함께) 코로나'로 전환하는 나라들이 속속 늘어나면서 전 세계 공장 가동률은 시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코로나19의 여파 역시 무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확진자 발생으로 항만이나 공장, 회사가 예고 없이 닫히는 것은 생산성을 낮추고 단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손꼽아 신차를 기다리지만, 반도체가 부족해서 오늘 주문한 차를 길게는 1년 뒤에나 인수하게 되는 게 2021년 가을의 현실이다. 골탕 먹이듯 찾아오는 기상이변도 골칫거리다. 세계 주요 곡창지대의 가뭄과 홍수로 콩과 옥수수처럼 사람과 동물이 함께 먹는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혼란 속에서, 국제곡물메이저(세계에 곡물을 수출입하는 초대규모 다국적기업)이 매점매석을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세계 각국이 경기 방어를 위해 푼 엄청난 돈과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친환경 정책도 물가의 살집을 키우고 있다. 중국 전력난에서 비롯된 글로벌 상품 물가 인상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내년 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일명 '올림픽 블루(올림픽 기간 중 먼지 없는 하늘을 유지하려는 중국의 정책)'를 보여주기 위해 혹독한 탄소 다이어트 중이다. 수력과 풍력 발전량이 충분치 않은데도 전체 발전량의 60%에 이르는 석탄 발전 규모를 수용 불가능한 속도로 줄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주도하는 급격한 탄소 다이어트는 대규모 전력난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주요 생산 기지가 멈추자 애플과 테슬라, 포스코의 공장에 불이 꺼졌고, 자연히 전 세계의 물건값도 뛰었다.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에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더해 '그린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물가 인상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이미 금리를 올렸거나 곧 올리겠다는 발표로 유동성 파티를 끝내겠다는 신호를 주었다. 유동성의 취기에서 깨어나니, 팍팍한 주머니 사정과 자산 시장의 두드러기 반응이 각성된다. 1500만 개미들의 증권 계좌는 상반기보다 훨씬 헐거워졌다. 어쩐지 작년보다 훨씬 불행해진 것 같다는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내년 이맘때쯤엔 또 상황이 완전히 뒤집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코로나19가 상수가 되면 한동안 이동과 소비가 급증하겠지만, 계속될 순 없는 일이다. 물가 인상은 소비 위축을 부르고 재고를 만든다. 일자리가 부족하면 수입은 늘지 않을 테니 구매력은 감소할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다시 물가가 떨어지면 경기 비관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갈비 세트와 다이어트 보조제를 잇따라 파는 홈쇼핑처럼, 경기 전망과 판단은 무정하고도 일관성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한국은행 같은 국내외 유명 기관들이 분기마다 경제 전망을 수정한다. 달리 말하면 그들도 불과 석 달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물가 걱정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일이 드물지 않다. 비열이 낮은 언론들은 지금도 물가상승에 나라 경제가 절단 날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불과 반 년 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수레 가득 실은 돈으로 빵 하나를 사던 전후 시대라면 몰라도, 오늘날 물가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이 아니며 그저 '경기의 온도계'일 뿐이다. 내가 지난 20여 년간 현장을 취재하며 지켜본 바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고열에 쓸 해열제와 저체온증에 듣는 수액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니 수급 상황이 해결해줄 물가 걱정은 그만두고, 대신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마의 구간’을 어떻게 지나갈지나 걱정하자. 대출 금리가 오르고 투자 수익은 줄어든 비포장 구간을 어떤 포트폴리오로 헤쳐나갈지를. 그토록 온 국민을 떨게 했던 마스크 대란도 지나고 보니 어찌나 작은 해프닝이었는지,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곱씹으면서 말이다.
 

 
Who's the writer?
박연미는 경제평론가다. 〈중앙일보〉와 〈아시아경제신문〉 정책팀장을 거쳐 YTN 경제 전문 기자로 근무했으며, 이후 MBC, SBS, KBS, KTV 등의 방송사에서 경제 전문 프로그램 진행자를 맡았다. 현재 TBS 〈경제발전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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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오성윤
  • WRITER 박연미
  • PHOTO 게티이미지코리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