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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그리고 숫자가 된 사람들

숫자가 된 사람들, 그리고 위드 코로나.

BY김현유2021.11.02
 
108번 시신, 여성이고요. 160cm 키에 회색 후드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하의는 검은색 트레이닝복입니다.
2014년 4월 말 진도 팽목항. 비상대책본부(정부) 공무원이 항구 한쪽에 마련된 천막 안의 화이트 보드에 검은 매직으로 비뚤배뚤 쓴 뒤 외쳤다. 회색 후드 티에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그런데도 유가족들은 일제히 “우리 딸인가 보다” 하면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4월의 팽목항은 유독 추웠다. 샛노란 개나리꽃은 보지 못했으나, 유족들의 눈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소금꽃은 기억이 난다. 검은 잠수복을 입은 잠수사들이 검은 바닷물에서 주검을 인양하면 하얀 24인용 천막 안에서 검시관과 부검의가 먼저 시신을 확인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단 세 가지다. ‘치아’, ‘지문’ 그리고 ‘DNA’. 현장에 파견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와 법의학자들은 최종 확인이 있기 전까지는 신원을 확신할 수 없다며 난감해 했지만, 가족들은 모두 내 자식 같다고 했다. 차가운 바닷물에 불어버린 주검은 모두가 내 자식 같기도 하고, 모두가 내 자식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 풍경을 목도하는 기자들은 감히 노트를 꺼내 쓸 생각도 못 하고, 녹음기를 들고 서 있기만 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절망에 압도됐다.

 
숫자는 차갑다. 2006년께 대학입시 논술시험에선 수(數)와 권력,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질문을 받아들고 갸우뚱했었다. 15년이 훌쩍 흘러 그 당시 문제와 내가 쓴 답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숫자는 정부나 권력이 피지배계층에 부여하는 일종의 질서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현상(이데아)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담담하게 쓴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차 사회부 기자가 돼서야 숫자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팽목항에서 한 달 정도 유가족들과 엉켜 지냈던 나는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숫자의 주인공들을 꿈에서 마주했다.
 
다시는 그 숫자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소망했지만, 꼭 1년 만에 나는 다시 숫자 앞에 섰다. 2015년 5월 20일. 날짜도 까먹지 않는 것은 청와대 정례 국무회의가 있는 수요일이었기 때문이다. 레바논에서 입국한 한 사업가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아 ‘1번 환자’가 됐다. 그해 여름 환자 번호는 186번까지 올라갔고, 그중 39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춘수 시인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감염되기 전까지 저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렸던 환자들은 정부와 언론이 번호로 불러주었을 때 ‘바이러스’ 그 자체가 됐다. 동선이 까발려지고 온갖 사회적 낙인과 혐오로 고통받았다. 이후 정부가 메르스 밀접접촉자의 기준을 ‘2m 이내 공간에 1시간 이상 함께 머문 사람’이라고 잘못 설정하면서 감염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까지 감염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혐오와 두려움은 오롯하게 감염된 ‘숫자’들의 몫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렸겠지만, 그해엔 환자와 동선이 겹친 1만8000명이 격리(자가·시설)를 경험했다.
 
당시 나는 이 차가운 숫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몰라 황망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기에, 무작정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학업 기회를 얻었다. 대학원에선 주로 보건과 관련된 사회문제들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보건학적 인과관계는 무엇인지 등을 공부(하는 척)했다.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보건’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우리는 코로나19처럼 거대한 재난 규모의 팬데믹 상황에서만 보건을 떠올리나 실은 최근에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많은 문제가 보건의 영역과 교집합이 있었다. 미세먼지, 기후변화와 폭염, 가습기 살균제,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희귀질환,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학대 아동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건강’이나 ‘생명’과 관련된 문제는 언제나 보건 영역에 포함됐다.
 
그 모든 문제의 현장에서 끙끙대면서 하나씩 헤집고 들어가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다. 숫자가 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되고 차별받는 특정 인구 집단은 어김없이 숫자가 되고, 그 숫자의 영역은 조금씩 넓어진다는 것. 지난해 1월 시작돼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유행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틀림없었다. 코로나 초기 청도의 한 폐쇄 병동에서 나온 110여 명의 확진자와 7명의 사망자는 다 같은 하나의 숫자로 몰아 가늠하기엔 각자가 너무도 다르게 무거운 무게를 가진다. 그런 다양한 무게의 숫자들이 모여 33만5742, 2605라는 숫자를 이뤘다.(10월 13일 기준 확진자와 사망자 수.)
 
가까이서 보건을 취재하다 보니, 그렇게 나름의 무게를 잃고 숫자가 되는 사람들은 숫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집요하게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코로나19 유행 중 정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어디로 갔을까? 전 세계 정부들이 풀어댄 막대한 돈들은 정말 약자들의 생존을 위해 쓰였을까?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자영업자들이 쓰러져가는 시기에 전례 없이 아파트 가격은 상승했고, 주식과 비트코인 시장은 대호황을 누렸다. 그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과 없이 벌어진 별개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숫자의 인과를 밝히는 일은 아마 앞으로도 오랜 시간과 수고가 걸릴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숫자는 간교하다. 지난해 5월 연휴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가 확산했던 때를 기억한다. 첫 확진자를 비롯해 277명이 감염됐는데 언론에 반응한 여론은 마치 성소수자 자체가 바이러스인 것처럼 낙인을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발 감염(1173명)이나 송파구 교정시설발 감염(1232명)과 견줘도 확진자가 절대 많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그건 소수자들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구별 짓기 편해서였을 것이다. 지금의 ‘위드 코로나’ 요구가 다르게 들리는 이유다. 성소수자의 탐닉은 마치 질병 그 자체인 것처럼 혐오하더니, 당신의, 우리의, 다수의 편의와 유흥은 회복해야 할 일상이고 경제라고 외친다. 감염병의 명제는 ‘내가 아무리 건강해도 옆 사람이 아프면 같이 아파질 수 있다’이다. ‘평등한 건강권’의 중요성이 또렷해질수록 나는 코로나와 함께 가자는 ‘위드 코로나’의 주체가 당신인지 나인지 그들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또 당신과 나와 그들이 ‘우리’로 묶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행정학에서 사회정책 변화를 설명할 때 많이 인용하는 것이 킹던(Kingdon)의 정책 흐름 모형이다. 간단하게는 ‘사회문제-정책-정치’의 세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인데,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준비가 돼 있으면 정치적 합의를 통해 비로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사회적 문제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정치적 합의를 통해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변화의 시기다. 우리가 2년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코로나19 유행은 비단 바이러스에 감염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루 확진자 수가 ‘0’이 된다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위드 코로나와 관련한 논의의 끝에는 사실 ‘위드 유(U)’의 결심이 있기를 바라는 이유다. 차가운 숫자 뒤에 그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것에서 코로나19의 답을 찾아야 한다. 세계적인 의학 저널 〈란셋〉의 최고 편집위원장 리차드 호튼의 말을 적는다.
 
(감염되어) 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요약되면 안 된다. 그들은 단지 (감염 통계) 표에 등장하는 그래프가 되어서도 안 되며, 국가별 차이를 비교하는 통계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죽음은 동등하다. 우리가 팬데믹의 충격을 설명하는 방식은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일대기를 지우고 있다.
 

 
Who's the writer?
이재호는 사회의 일기를 쓰는 사람이다. 가장 빨리 보도하기보단 가장 오래 보도하는 걸 목표로 한다. 〈한겨레21〉과 〈한겨레신문〉에서 일했고, 〈낯선 이웃〉과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픕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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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이재호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