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I로 재현한 고인의 모습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나, 예민한가요?

없던 윤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BY김현유2021.11.04
 
Q. 지난해, 어린 딸을 잃은 엄마가 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 기술 덕분에 VR 속에서 딸과 재회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화제였습니다. 가슴 뭉클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죠. 그 이후로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과 그룹 '거북이' 멤버 터틀맨 등을 AI 기술로 재현해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낸 딸의 모습과 작고한 가수들의 생전을 그대로 재현한 목소리에서 놀라움을 느꼈죠. 그러나 동시에 불편했어요. 정확하게 어떤 점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불편했습니다. 저작권 같은 법적 문제와는 별개로, ‘그들이 생전에 하지 않은 말과 부르지 않은 노래를 우리가 들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저도 그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평정심 유지 수련을 하고 있는 저이지만, 영상을 보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아이가 눈앞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말을 하니, 그 어머니의 속은 어땠을까요?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한 터틀맨의 AI 데뷔 무대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AI가 부르는 김광석의 노래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할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AI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실제 현실로 바꿔놓습니다. 우리는 가상인 줄 알지만, 영상을 보면서는 그것을 현실로 인식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가상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감동을 막지 못합니다. 눈물이 나는데 “저건 가상이야!”라고 말하는 건 어딘가 억지스럽습니다. 현대 기술이 가상을 현실로 만들어놓은 셈입니다.
 
감동을 받고 울고 웃었는데 어딘가 불편하다고요. 이 불편함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 불편함은 예민함에서 나오는 느낌이 아닙니다. 철학자들은 예전부터 이런 상황을 상상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연인과 함께 있다고 해봅시다. 나는 그(녀) 때문에 울고 웃고 화도 냅니다. 그(녀)가 내 앞에 있다는 건 너무나 확실합니다. 그런데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왔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야단을 쳤고, 당신은 한참을 쩔쩔매다가 겨우 잠에서 깨서야 꿈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데카르트가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현실에서 만나고 있는 연인이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을까?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가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듯, 지금 연인을 만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에 확실히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100%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실이 현실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가 또 묻습니다. ‘그럼 연인은 뭐고, 당신은 왜 그동안 그(녀) 때문에 울고 웃고 화를 내며 난리를 친 것일까?’
 
우리는 AI로 제작된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상인 줄 알면서도 현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실제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게 정말 현실일까?’ 현실은 우리 삶의 뿌리이자 근거가 됩니다. 가상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현실감은 역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의문은 삶의 뿌리인 현실감에 혼란을 안겨줄 겁니다. 그리고 이 혼란감은 불편함을 수반합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며 실제 세계는 별도로 존재한다는 설정입니다. 최첨단의 완벽한 AI가 제작한 매트릭스 안에서 오감에 주어지는 전기자극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겁니다. 실제 세계는 매트릭스 밖에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한 세계가 매트릭스라는 걸 알면 불편해집니다. 영화 속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눈 감은 안락함을 상징하는 파란 약 대신 혼돈과 고통을 상징하는 빨간 약을 먹고 구토와 함께 현실 세계로 들어섭니다. 구토는 소화의 역행이며, 삶의 질서를 뒤집어놓는 증상입니다.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인 로캉탱도 조약돌이 자신을 만진다는 느낌을 받으며 구토감을 느낍니다. 조약돌은 수동적 사물로서 내가 만지고 조작할 수 있는 대상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조약돌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조약돌이 살아서 나를 만진다는 낯선 느낌이 들자 구토감이 밀려온 것입니다. 내가 이제까지 느꼈던 것과 다른, 아주 낯선 세상이 다가올 때 우리는 구토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구토감을 사르트르는 ‘실존적 체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존주의자들에게 이 불편함은 때로 권태로 다가오기도 하고(사르트르), 때로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하며(하이데거), 무기력함으로 오기도 합니다(카프카).
 
익숙한 일상의 세계가 허물어지면 편안함은 깨집니다. 일상이 깨지고 등장하는 참된 존재의 세계는 구토와 같은 불안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현대인은 AI와 같은 현대 기술 덕분에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에 삽니다. 덕분에 우리는 익숙한 일상이 주는 안락함의 타성에서 벗어날 기회를 더 자주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불편함을 불편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편함은 우리가 안락함의 최면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징표일 수 있으니까요.
 

 
Who's the writer?
김귀룡은 충북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정년 후 산사(山寺)에서 삶의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고대와 현대의 철학적 대화〉 〈그리스 논리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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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양승희
  • WRITER 김귀룡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