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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친자만 90명인 '정자 기증왕'의 이야기 part.1

미국 전역의 정자 은행이 역대급 정자 부족을 겪고 있는 가운데, 페이스북 그룹을 이용한 새로운 정자 기증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일레인 버드는 처음에는 모더레이터로, 나중에는 정자 수령자로 이 그룹에 참여했다. 그녀는 이를 통해 아리 네이글을 만났고, 100명 가까운 생물학적 친자를 두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스퍼미네이터(sperminator)’라는 칭호를 얻은 그의 삶은 어땠을까?

BYESQUIRE2021.12.04
 
일레인 버드는 둘째를 갖고 싶었다. 2015년, 두 살이 안 된 아기 셋을 키우며 정신없는 한 해를 보내고 난 뒤에는 더욱 그랬다. 하나는 일레인의 아기 엠버였고, 나머지 둘은 친척의 쌍둥이 아기였다. 다행히 유치원 교사였던 일레인은 아기를 키우는 데 관련 지식도 있었고, 아이들을 좋아했다. 이전에도 아이들을 위탁 양육한 경험이 있는 그녀였다. 처음부터 일레인이 아이들을 혼자 키운 건 아니었다. 엠버의 아버지가 있었으나, 그가 주는 도움은 미미했다. 결국 일레인은 몇 달 뒤 그와 갈라섰다. 아이들을 돌보는 건 그녀 혼자 하는 게 훨씬 나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는 차를 몰고 교회 앞을 지나다가, 낙태된 태아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잔뜩 꽂힌 걸 보게 됐다. 일레인은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에는 낙태될 뻔한 아기들이 둘이나 있어요. 지금 걔들은 집에 있는데, 전 일을 하러 가야 하죠.” 다음 날 교회에서 한 여성이 아기들을 돌봐주러 찾아왔다. 이후 그 여성은 매일 일레인의 집을 찾아 아이들을 함께 돌봤다.
 
쌍둥이는 몇 달 후 곧 엄마 품으로 돌아갔고, 일레인은 둘째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미 남자 없이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임신을 위해서는 남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녀는 1년 반 정도 누군가를 만나보려 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엠버의 아버지에게도 정자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양육권과 양육비에 대해 꼬치꼬치 물을 뿐이었다. 정자 은행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레인이 보기엔 인간미도 없는 데다 쓸데없이 비쌌다. 마흔 번째 생일이 다가오자 일레인은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을 하던 중, 엠버가 참여한 ‘예쁜 아이 대회’에서 만난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아이들 역시 아버지가 없었다. 일레인은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연락했고, 그들을 함께 만났다. “딸을 어떻게 낳은 건가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았을 것 같아서요.” 그들은 적극적으로 일레인에게 현실적이고 생생한 정보를 전해줬다.
 
21세기 들어 일어난 많은 변화와 마찬가지로, 정자 기증 시스템 역시 인터넷의 등장 이후 많이 달라졌다. 시장에는 수요가 있는데, 정자 은행의 공급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40여 년 이상 평균 정자 수가 꾸준히 줄어들었기도 하고(아마 환경적 요인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정자 은행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남성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인이 아닌 기증자들의 수가 적은 것도 문제였다.
 
그 대안으로 소셜미디어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페이스북에는 이와 관련된 수많은 그룹이 형성돼 있다. ‘USA 정자 기증(USA Sperm Donation)’ ‘진짜 정자 기증자(Real Sperm Donators)’ ‘미러클 베이비(Miracle Baby)’ 등. 이런 그룹은 잠재적인 기증자들을 비롯해 임신하고 싶지만 당장 정자를 구하기 힘든 여성들, 불임 커플, 퀴어 커플, 트랜스 남성 등이 멤버로 구성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키 183cm, 호리호리한 체격, 녹갈색 눈, 정자 수가 아주 많고 성병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아 온 크리스티안이나 키 188cm에 완벽한 학업 성적, 명문대 졸업, 뛰어난 운동 실력을 갖춘 알렉스 같은 기증자의 정자를 찾는다. 정자 은행이 기증자의 정보를 숨기는 것에 반해, 페이스북 그룹의 기증자들은 훨씬 더 개방적이다. 기증자는 수령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거나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보내 말이 잘 통하는지 알아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정자 하나의 가격이 1000달러에 달하기도 하는 정자 은행과는 달리 페이스북 그룹의 기증자들은 일반적으로 여비 정도의 비용을 제외하면 무료로 정자를 제공한다.
 
일레인은 잘 알려진 기증자를 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엠버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진 않았지만,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일레인은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다. 자신의 아이와 느슨하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이어갈 기증자가 있다면 이상적일 터였다. 2018년, 일레인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페이스북 그룹을 돌며 괜찮은 기증자를 찾았다. 그룹 내 은어를 익혔고, ‘예쁜 아이 대회’에서 만난 어머니들이 정보를 주며 ‘경고’했던 것들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인공수정(artificial insemination)은 ‘AI’로 통용됐으며, 자연 수정(natural insemination, 즉 성관계)은 ‘NI’라 불렸다. 보통 AI를 선호하는 케이스가 많았지만, 공기에 노출되면 정자 일부가 죽는다는 이유로 NI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증자들이 종종 있었다.
 
모든 그룹의 멤버를 합치면 수만 명에 달했지만, 기증자 자체는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일레인이 주로 활동한 ‘정자 기증 USA(위에서 언급한 ‘USA 정자 기증’과는 다른 그룹이다)’ 그룹 멤버 중 4분의 3은 일레인처럼 기증자를 찾는 이들이었다. 제한된 선택지 중에서 적합한 후보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정자 기증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친구나 가족들이 임신이 안 돼 고통받는 걸 보고 나서 이 그룹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반대로 NI만을 추구하는 기증자들처럼, 미심쩍은 동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나왔다. 연락을 갑자기 끊고 잠적하는 남성, 갑자기 소름 끼치는 행동을 한 남성, 성병 검사를 거부한 남성, AI도 괜찮다고 말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NI가 아니면 안 하겠다고 우기는 남성 등.
 
이 가운데 한 백인 남성의 이름이 계속 등장했다. ‘아리 네이글’. 마흔여섯 살, 키가 큰 편이고 눈은 파랗다. 활짝 미소 짓는 얼굴, 살짝 희었지만 부드러운 편인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 최근 10년 동안 그는 정자 기증을 통해 50명이 넘는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됐다. 이 세계에서 그는 셀러브리티에 가까웠다. 그는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정자를 기증하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성들이 그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엄마들이 그를 ‘추천’했다. 그가 확실한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레인은 흑인이었지만, 아리가 백인이라는 점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엠버의 아버지 역시 백인이었다. 일레인은 다른 점보다도, 아리가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일레인은 소셜미디어에서 아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ID는 ‘CuteProfessor(귀여운교수)’였으며, 페이스북 ID는 ‘NicePerson(좋은사람)’이었다. 거의 모든 사진에는 그의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등장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해 12월, 일레인은 페이스북 DM으로 아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오지 않았지만, 일레인은 굴하지 않고 다시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잠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계속 메시지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에요. 몇 가지 여쭤보고 싶어요.” 그제서야 답이 왔다. “물론이죠. 뭐든 물어보세요.”
 
아리 네이글은 미국 뉴욕주 몬지에서 자랐다. 미국에서 가장 큰 정통파 유대교도 커뮤니티 중 하나가 위치한 지역이다. 그는 일곱 남매 중 다섯 째인데, 몬지에서는 이런 ‘다둥이 가정’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는 주위 어디에서나 긴밀히 엮인 대가족을 보며 자랐다. 그가 어릴 때 다닌 예시바(유대 종교학교)에서는 반 아이들 모두가 그와 똑같이 생긴 정통파 백인 아슈케나지(중부, 동부 유럽 유대인의 후손)였다. 그의 주위 사람들은 모두 가족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확신을 갖고 사는 듯했다.
 
아리는 성인이 된 후 뉴욕 퀸스에 위치한 세인트존대학에 진학했다. 신입생 시절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두둑한 합의금을 받았다. 그 돈으로 유럽, 아시아, 중동의 수십 개 나라를 여행했다. 드넓은 세상을 보고 나니 종교적 믿음을 유지하긴 어려워졌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학업을 마치고 강의를 시작했다. 낮에는 뉴욕시립대학교에서 수학과 컴퓨터를 가르쳤고, 밤에는 클럽에 가거나 오토바이를 탔다. 2003년에는 첫아이가 생겼다. 아들이었는데, 계획된 임신은 아니었다. 원나이트 스탠드로 시작해 잠깐 즐기는 사이가 되었는데 덜컥 임신이 된 것이다. 아이 어머니는 카리브해 출신 여성이었고, 아리는 그녀와 결혼했다. “예의 있는 행동이었죠.” 아리가 그 결혼 생활에 대해 한 말이다. 이들은 살림을 합치지 않고, 각자의 집에 계속 살며 아이를 키웠다. 아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이를 만났다. 전통적인 결혼 형태가 결코 아니었지만, 아리는 일부일처제에 맞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이가 걸음마를 뗄 무렵, 아리는 한 광고 사이트에서 레즈비언 커플이 정자 기증자를 찾고 있다는 게시물을 봤다. “‘안 될 게 뭐야?’라고 생각했죠.” 딸이 태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몇 주 뒤 그가 알고 지내던 싱글 여성이 정자 기증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아리는 선뜻 돕겠다고 나섰다. 그는 페이스북에 여러 정자 기증 그룹이 생기기 전에 존재했던, 온라인 기증자 목록 사이트인 ‘노운 도너 레지스트리(Known Donor Registry)’에 자신의 프로필을 올렸다. 그 후, 그는 몇 년간 매년 두 명의 여성에게 정자를 제공했다. 뉴저지, 코네티컷, 심지어 일리노이까지 가서 기증한 적도 있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의 답은 간단했다.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돕고 싶으니까. 상대와 잘 맞는 것 같으면 NI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증은 AI로 이뤄졌다. 더 간단하고, 빠르고, 안전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아내는 ‘왜 온갖 레즈비언들이 아이를 갖게 도와주면서 나와는 아이를 더 갖지 않느냐’고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를 두 명 더 낳았다. 둘 다 딸이었다. 2016년에 그는 이미 22명의 아이를 둔 생부가 되었다. 헷갈리지 않도록 그는 모든 아이의 이름과 생일을 기록한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었다.
 
그해 〈뉴욕 포스트〉가 그를 인터뷰하러 찾아왔다. 아리는 짧은 기사일 거라고 생각해 인터뷰에 응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뉴욕 포스트〉의 커버에 아리가 실린 것이다. 엄청나게 큰 헤드라인과 함께. ‘종마의 거대한 불알(Great balls of sire, 로큰롤 명곡 ‘Great balls of fire’의 패러디)!’ 〈뉴욕 포스트〉가 그를 지칭하며 쓴 표현인 ‘스퍼미네이터(sperminator, 정자와 터미네이터를 합친 말)’는 그대로 그의 별명이 되었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그 기사는 관음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줄곧 아리가 공중 화장실에서 기증한 적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고, 아이 엄마들 중 일부는 천박하기 그지없으며 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은 아리의 행보에 홀딱 반한 사람들과 경멸을 보내는 사람들의 의견이 나뉘어 폭발했다. 아리의 행보에 대해 알면서도 모른 척하던 그의 부모는 충격을 받았고, 아내 역시 깜짝 놀랐다. 아내는 아리가 다른 여성들에게 정자를 제공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몇이나 되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이제 아리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 알게 됐다. 하지만 아리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기사가 나온 후 아리는 몇 주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에서 쏟아진 수백 개의 메시지를 받았다. 모두 그의 도움을 받아 임신하고 싶은 여성들이 보낸 것이었다. ‘스퍼미네이터’는 이제 시작된 것이다.
 
일레인은 ‘정자 기증 USA’ 그룹을 통해 정자에 대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재생 가능한 자원인데도 정자를 구하는 건 놀랄 정도로 까다로운 일이었다. 미국에서 기증자를 찾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는 싱글맘이나 레즈비언에게 인공수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결혼한 이성 부부가 아닌 경우 정자 기증을 받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레인과 아리는 2019년 내내 가끔씩 DM을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레인은 아리가 세 번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첫 아내는 위에서 언급한 카리브해 출신의 여성이었다. 다음 상대는 결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종교적 믿음이 투철한 여성이었다. 세 번째는 AI에 대한 현지 법을 따라야 했던 여성으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 전부 ‘편의상의 결혼’이었던 셈이다. 그해 말 일레인은 아리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가질 준비를 마쳤다. 그들은 2020년 2월에 테네시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아리는 루이스빌에서 태어난 자신의 친자를 만난 다음, 일레인에게 정자를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정자 기증 후에는 내슈빌을 방문해 자신의 정자로 태어난 또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를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에머슨 리 네이글 버드, 2021년 8월 8일생.

에머슨 리 네이글 버드, 2021년 8월 8일생.

약속 당일, 일레인은 엠버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아리와 만나기로 한 호텔을 방문했다. 아리를 기다리는 동안, 일레인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쁜 아이 대회’에서 만난 어머니가 준비하라고 했던 수정 키트는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도넛처럼 생긴 컵과 주사기였는데, 모두 플라스틱 냄새가 나고 인간미라곤 없는 물건이었다.
 
아리는 마치 일레인과 몇 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아주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이후 아리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몇 분 뒤 컵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일레인이 화장실에 들어가 주사기를 사용해 샘플을 주입했다. 페이스북 그룹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에 따르면, 주사 직후 다리를 드는 게 정자가 퍼지는 데 도움이 된다. 일레인은 얼른 다리를 위로 들고 누웠다. 갑자기 이 모든 순간이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아리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는 낯선 상황을 정상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일레인이 다리를 들고 누워 있는 동안 아리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일레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다른 아이의 엄마를 만나러 이동하기에는 좀 지쳤다며, 그냥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겠다고 말했다. 호텔 조식이 무척 맛있을 것 같다는 너스레를 떨면서. “혼란스러웠죠. 마음이 핑핑 도는 것 같았어요.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싶었고요.” 일레인의 말이다.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섹스를 했다. 사실 일레인은 섹스를 하고 싶었다. 육체적인 욕망 때문이라기보다는, 임신 가능성을 높이고 싶어서였다.
 
일레인은 3월 정도에는 좋은 소식이 있길 바랐지만, 기대와는 다른 이유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코로나19에 걸렸던 것 같다는 게 일레인의 설명이다. 4월, 5월에 다시 아리를 만나려 해봤지만, 일레인이 폐렴을 앓는 동안 생리 주기가 바뀌어버려 날짜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 무렵 세상은 셧다운 상태였다. 하지만 아리는 열려 있었다. 대학 강의가 모두 비대면이 된 그때, 아리는 언제나 여성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2020년 말에는 그의 친자가 21명 더 늘어났고, 2021년에는 서른 명이 더 생겼다.
 
아리와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긴 했지만, 약속을 잡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아리는 언제나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배아 냉동을 하러 아르헨티나에 가거나, 러시아의 체외수정(IVF) 클리닉에 가거나, 올랜도에서 열리는 생일 파티에 가기 위해서였다. 일레인은 약속을 자주 잊어버리는 새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수정 과정의 복잡함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좋았다. 그는 생리 주기를 잘 기록하도록 도왔고, 어떤 앱을 깔아야 계산이 수월한지 알려줬다. 가끔은 일레인의 배란기를 아리가 더 잘 아는 것 같은 때도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 싱글 여성이 임신을 시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 밖으로 나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페이스북 그룹은 정보 공유의 장이 되었다. 일레인은 온라인에서 정보를 접하면 관련 논문을 찾아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자신이 확인한 내용을 다시 페이스북 그룹에 공유했다. 그러자 일레인에게 충고를 구하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일레인은 곧 활동 중이던 ‘정자 기증 USA'의 모더레이터가 됐다. 그녀는 다른 여성들에게 정자 기증 단계에 대해 코칭해주느라 하루에도 몇 시간을 썼다. 다른 모더레이터 대부분은 기증자들이었지만, 아리만큼 정자를 많이 기증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증자들은 공개 포스팅에서는 여성들을 돕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메시지를 통해서는 어찌나 마초 행세를 해대는지, 일레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들은 기증한 횟수를 두고 상대와 ‘기싸움'을 하려고 하거나, 자신이 ‘돕고’ 있는 ‘섹시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그야말로 ‘페니스 전쟁’이었죠.” 일레인의 말이다. 일레인에 따르면, 일부 남성들은 그 세계의 셀러브리티인 아리의 유명세와 생식력을 부러워했다. 어떤 모더레이터는 뜬금없이 일레인에게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며 “제가 아리보다 크죠?”라고 묻기도 했다. 아리는 몇 개의 페이스북 그룹에서 모더레이터로 활동 중이긴 했지만, 기증하느라 바빠 포스팅을 자주 올리진 않았다.
 
팬데믹이 닥친 첫해, 정자 기증 관련 페이스북 그룹들은 대체로 바쁜 여름을 보내야 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제공되는 정자 자체가 부족해졌고, 비대면이 늘며 페이스북 이용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모더레이터 중에서는 점점 커지는 관심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USA 정자 기증’ 그룹은 처음에는 일레인이 활동 중이던 ‘정자 기증 USA’ 그룹과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한 그룹의 기증자들이 다른 그룹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증자를 폄훼하고 끌어내리려 하며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한 기증자는 다른 기증자의 섹스 비디오를 그룹에 올렸다. 어떤 기증자는 다른 기증자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NI를 해왔다고 폭로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모더레이터들은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새로운 기증자를 구하려 했다. 모두 멤버가 많은 그룹에 들어가려 애쓰는 통에, 더 많은 사람을 가입시키는 데 경쟁이 붙었다. 퇴역 군인 출신의 한 모더레이터는 이 틈을 타 새로운 그룹을 몇 개 만들었다. ‘인증받은 정자 기증자 모임’ ‘내추럴 정자 기증자 모임’ 그리고 ‘LGBTQ 정자 기증자 모임’ 같은 이름이었다. 이 모든 게 일레인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었다. 확인되지 않은 낯선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보단, 신뢰할 수 있는 소수의 기증자들을 두는 게 더 낫지 않나? 모더레이터로서 일레인의 주된 역할은 이상한 놈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매일 수백 명의 남성들이 그룹에 참여하겠다고 외쳐대는 통에 일은 점점 힘들어졌다. 일레인은 한 명 한 명의 프로필을 살피며 그들이 좋은 사람인지 살펴보려 했다. 다른 아이가 있나? 징그러운 성적 취향이 있는 건 아닌가? 음침한 이유로 가입하려 하는 건 아닐까?
 
일레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리에게 연락을 취했다. 처음 메시지를 나눴을 때, 그는 나를 수정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아마 농담이었을 것이다. 지난여름의 어느 날 밤, 우리는 직접 만났다. 그는 라과디아 공항(뉴욕시 퀸스)에서 자정에 메시지를 남겼다. 댈러스에 있는 여성을 도운 뒤, 배란기를 맞이한 ‘에센스’라는 여성이 있는 미드타운으로 바로 날아가려던 참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따라와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에센스는 가임 가능성이 제일 높은 때를 노려야 해서, 까다롭게 굴지 않을 거예요.”
 
아리는 라일락색 폴로셔츠와 흰 크록스 차림으로 검은 SUV를 탄 채 나타났다. 나는 우리가 만나러 가는 ‘에센스’가 어떤 사람인지, 그와 만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지금이 처음일 수도 있고요.” 그가 피곤한 듯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뉴욕 억양이 묻어 있었고, 지쳐서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그는 여성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켜더니 그녀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얼굴이 둥근 흑인 여성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3층에서 긴 머리를 한 여성이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했다. 에센스의 아내 리앤드라였다. 아파트 안은 의자를 놓을 자리도 없을 만큼 좁았다. 아리가 에센스의 메시지에 답을 했을 때, 이들 부부는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목적의식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아리 씨가 우리 집에 있다니. 정말 오셨군요(Come에는 ‘사정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리앤드라가 소리를 질렀다. 아리는 “아직은 아니죠. 아직 전희라고 봐야 할 거예요”라고 받아쳤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줄곧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성적인 농담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에센스가 웃었다. “아리 씨를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요. 미스터 빈!” 그렇게 말하고 리앤드라가 웃었다. 아리는 잠시 상처받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곧 회복하고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었다. “포르노를 볼 건데 버퍼링이 걸리면 안 되잖아요. 구글에서 ‘흑인 레즈비언’을 검색해서 볼 거랍니다.” 그는 익살맞은 미소를 띠며 화장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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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RITER RACHEL MONROE
  • PHOTOGRAPHER ANDREW HETHERINGTON
  • TRANSLATOR 이원열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