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무용하지만 즐거운 일'이라는 또 다른 짐

데이트는 서로 호감이 있는 사람 둘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그 시간을 잘 보내는 것 이상의 ‘결과’란 대체 무엇이어야 할까?

BY김현유2022.01.08
 
종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소개팅이나 데이트에 돈과 시간을 들였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글을 보게 된다. 자기가 데이트 비용을 다 부담했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이다. 데이트는 서로 호감이 있는 사람 둘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그 시간을 잘 보내는 것 이상의 ‘결과’란 대체 무엇이어야 할까?
 
누군가를 물리적으로 만나는 일에 시간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어느 정도 비용이 들어가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 데이트가 즐거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내 마음이 잘 전달되어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서로 어긋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결과는 감정의 교류 문제이지 가격을 지불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교환하는 것과 같은 ‘거래’가 될 수는 없다. 물론 되어서도 안 된다.
 
사람마다 데이트에서 기대하는 결과가 각기 다르겠지만, 데이트 비용 분담의 문제는 결국 이 ‘결과’에 대한 리스크를 누가 감당하는지에서 시작된 것일 수 있다.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수익률)의 관점에서 데이트를 바라보면 비용을 더 낸 사람이 더 큰 리스크를 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셈법은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데이트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자기 고백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실 ‘리스크 관리’나 ‘투자수익률’ 같은 개념은 원래 비즈니스 용어이다. 삭막한 세상 탓에 설렘을 가지고 서로 알아가는 단계의 남녀 사이조차 건조한 비즈니스 관계처럼 되어버렸다고 한탄하기 이전에, 이런 생각의 틀이 언제부터 우리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 의심해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은연중에 이런 관점을 계속 주입받고 자랐을지도 모른다.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들을 중산층으로 만들어준 그 길을 이상적인 모델로 상정하고 자녀를 키웠다. 30세 이전까지 최대한 교육에 투자해 좋은 학교를 졸업시키고 30세 이후 좋은 직장에 취직해 안정적인 연봉을 지렛대로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사서 자산을 형성, 은퇴하는 60세까지 노년을 준비하는 거대한 생애주기 모델을 중산층으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교범으로 상정한 것이다. 그들에게 자녀 양육은 거대한 장기 프로젝트였다.
 
사교육 열풍이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준다. 물려줄 자산이 많지 않은 평범한 계층에겐 교육에 대한 투자를 통해 다음 세대로 부를 이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중산층 부모들은 더 나은 투자 기회와 자신들의 노후 준비를 포기해가면서도 자녀의 사교육에 지출하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양육 과정에서 들어가는 대부분의 비용은 계층의 유지 또는 편입이라는 분명한 투자 목적 아래 이루어졌다. 부모로부터 이런 투자를 받지 못하는 계층의 앞에는 더 난도 높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자녀 세대는 그 투자에 따르는 감시와 감독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감사해야 했고 이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좋은 학교와 좋은 회사에 들어감으로써 부모 세대에게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너한테 들어가는 학원비가 얼마인데 성적을 이것밖에 못 받아오냐?”라는 부모의 타박은 사실 훈육의 언어가 아니라 투자수익률을 점검하는 비즈니스맨의 언어인 것이다.
 
하지만 부모 세대가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부모 세대가 아이들을 위해 그린 전형적인 중산층의 인생은 저성장 시대에는 선택받은 일부에게만 허락되는 삶이다. 치열한 경쟁을 견뎌내고 어른이 되었지만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는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부동산 가격은 내가 받을 수 있는 임금에 비해 훨씬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결국 부모 세대보다 더 잘사는 일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유산이 아닌 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 상속을 받은 대다수의 현세대는 자기 자신이 부모가 물려준 유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갈아 넣어야만 그나마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은 일과 삶의 구분을 점점 더 어렵게 한다. 본업 이외에도 N잡(job)을 가지고, 일터가 아닌 카페나 호텔에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것이 노마드의 삶인 것처럼 ‘쿨’하게 포장된다.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일하면 된다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사실 뜯어보면 플랫폼 안에 갇혀 쉼 없이 계속 일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열정을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언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냥 좋아서 하는 일조차 취미의 영역에 두지 못하고 돈이 되는 무언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말하면 “어디에 쓰게?”라고 묻는다. 무언가를 잘 만들면 “팔아도 되겠다”라고 칭찬한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는 개인의 식사, 여행, 평범한 일상까지도 모두 콘텐츠로 만들어버렸다. 학교나 회사를 다닐 때는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일을 위해 바쁘게 살면서도 여가 시간에는 브이로그를 찍거나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채우기 위해 힙한 장소에 간다.
 
연인의 마음을 얻는 일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외국어를 배우는 일도 모두 일종의 ‘성취’가 되어야 하는 세상에서는 그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좌절감도 더 크다. 즉각적인 성취에는 언제나 중독성이 따라온다. 아무런 보상이 없는, 비어 있는 시간은 불안하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쉼 없이 ‘갓생’을 살다 보면 결국 타버려 재가 되는 건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지불한 비용만큼 충분한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일을 하고 났을 때 찾아오는 허무감이 두렵다. 이 두려움 때문에 모든 일에 꼼꼼하게 가성비를 따지고 이미 맛이 보장된 식당에 줄을 서고 남의 경험을 참고해 실패할 확률을 최소화하며 끊임없이 인생의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간다.
 
데이트에서 투자 대비 성과를 따지는 사람, 자녀 교육을 비즈니스 프로젝트처럼 여기는 부모를 비웃어 넘기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을 비웃는다고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이 피로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유를 가지고 일상의 작은 일들에서 기쁨을 찾고 무용하지만 즐거운 일들로 인생을 채워야 한다는 말은 아름다운 일반론이다. 수행해야 할 과업이 차고 넘치는데 인생의 여유까지 성취해야 한다면, 그 ‘인생의 여유’마저 또 다른 짐이 될 뿐이다. 끊임없이 우리를 옭아매는 저성장 자본주의 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열반의 경지인지도 모르겠다.
 

 
Who's the writer?
신현호는 뉴욕의 다국적기업 본사에서 전략 부문 업무를 한다. 스스로 “주 40시간은 회사에서 가격과 가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 주 80시간은 레스토랑을 다니고 요리를 한다”고 말할 만큼 미식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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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WRITER 신현호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