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변화 중인 대만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8가지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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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변화 중인 대만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8가지

대만은 더 이상 모호하게 존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부드럽고 유연한 어투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의지는 단호하다. 재편되는 국제 질서 속, 운명을 가르는 기로 앞에 선 대만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문화·경제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양안관계의 재조정, 급성장 중인 경제, 아시아 최초 동성결혼 합법화까지, 우리가 몰랐던 대만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김현유 BY 김현유 2022.02.11
 
세계 지형에서 대만은 한국, 중국, 일본과 함께 극동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코로나19가 등장하기 전, 한국인에게 대만은 일본과 더불어 짧은 일정으로 쉽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 정도로 여겨졌다. 사실 여행지로서 대만의 장점은 그저 가까운 거리만은 아니다. 타이베이 도심에는 - 수시로 갱신되는 타이틀이긴 하나 -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불렸던 101 타워가 위용 있게 자리하고 있고, 야자수 같은 열대식물이 깔끔하게 조성된 풍성한 녹지는 이국적인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북회귀선이 지나는 따뜻한 기후 아래 골목골목 특색 가득한 야시장을 돌다 보면 한국과 비슷한 듯 다른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여행지로서 매력적인 곳, 우리가 대만에 대해 아는 건 그 정도에 그친다. 그럴 만도 하다. 대만은 지금껏 국제사회에서 모호한 위치에 있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조치 이후 많은 국가가 대만과의 공식적인 수교를 중단했다. 전 세계가 화합한다는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도 대만은 국기 대신 올림픽 깃발인 ‘매화오환기’를 쓰고, 대만 대신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이름으로 출전한다. 그야말로 ‘국가인 듯 국가 아닌 국가 같은’ 포지션이다.
 
그런 대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7 외교장관회의에서는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을 지지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경제성장률도 심상치 않다. 미중 무역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2019년부터 대만의 실질적인 경제성장률은 줄곧 한국을 넘어섰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한국과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대만의 경제 싱크탱크 대만경제연구원의 장젠이(張建一) 원장은 지난해 말, 2022년 대만의 1인당 GNI가 한국을 추월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모두가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진 급격한 변화다. 여행지 너머 우리가 몰랐던 대만은 어떤 나라이고, 어쩌다 이런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걸까.
 

① “대만은 국가입니까?”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가 1992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실시해온 아주 도발적인 조사가 하나 있다. 만 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체성 일치도’ 설문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스스로를 대만인으로 인식합니까? 아니면 중국인으로 인식합니까?'
 
설문이 의도하는 얄팍한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지 1992년 첫 조사 결과는 보합으로 시작했다. ‘둘 다’로 인식한다는 답변이 46.4%로 가장 높았고, ‘중국인으로 인식한다’가 25.5%, ‘대만인으로 인식한다’가 17.6%, 무응답이 10.5%로 나왔다.
 
그 뒤로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부르긴 살짝 껄끄러웠는지 ‘중국인으로 인식한다’는 답변은 해가 갈수록 하강 곡선을 그리며 곤두박질쳤다. 흥미로운 건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둘 다’로 인식한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수치는 약간의 변화를 보이나 45% 정도의 대만인들은 여전히 자신을 ‘대만인이면서 동시에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인식한다는 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중국’이란 단어를 ‘중화권’이라는 큰 문화적 영역으로 규정해 그 안에 속한다는 의미로 이해했을 수도 있다. 또는 역사적으로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을 겪으며 대만으로 건너온 상황을 그대로 계승한 상태, 그러니까 여전히 ‘휴전’ 상태로 인식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과는 다른 체제를 수호하는 대만은 자신들을 ‘Republic of China’, 즉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해왔다. 한국이나 미국과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그런 세계 질서 속에서 자신들을 정의하길 바라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만은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2021년 6월, 같은 조사 결과에서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이라고 인식하는 응답자는 63%에 달했다. 지난해 초, 새롭게 바뀐 대만 여권에는 ‘Republic of China’ 대신 ‘Taiwan’이라는 이름이 표기됐다. 더 이상 중국이 아니라, 대만만의 정체성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처럼 이전과는 다른 대만으로 거듭나겠다는 징조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② 대만의 정체성

2021년 8월, 대만의 공영방송 PTS에서 대하드라마 〈스카루(SEQALU)〉의 방영이 시작됐다. 의사이자 작가인 첸야오창의 소설 〈괴뢰화(傀儡花)〉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넷플릭스에 공개된 직후 대만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몇 주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9월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을 제외하면, 2021년 전체를 통틀어 대만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1867년 ‘로버호 사건’을 배경으로 대만 원주민과 미국인 선원의 싸움으로 시작된다. 1867년 3월 12일, 미국 상선 로버호는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랴오닝으로 향하던 중 조난을 당해 대만 남부의 헝춘 반도까지 표류하게 된다. 당시 그 지역을 통치하던 원주민 중 하나인 ‘스카루’ 부족은 로버호의 미국인들을 과거 자신들을 식민 통치했던 네덜란드인으로 오해해 죽이고 만다. 이 사건은 중국 샤먼에 주둔해 있던 미국 영사 샤를 르 장드르의 분노를 사게 되고, 3개월 후인 그해 6월 미국은 ‘포르모사 원정 작전’을 펼친다. 수차례의 전투와 와해를 거쳐 장드르 영사는 이후부터 무고하게 죽는 미국인이 없도록 스카루 부족의 족장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향후 미국 또는 다른 외국의 선박이 대만에 표류할 경우 붉은 깃발을 꽂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드라마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되었겠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대하드라마의 포맷은 그대로 가져왔다. 이전의 대만 드라마와는 스케일과 장르적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고, 제작 예산도 적잖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부분 외에도 〈스카루〉가 유독 사랑받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카루〉는 대만 땅에 살아온 토착 원주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드라마다. 우리가 아는 대만의 역사는 대개 중국에서 전란을 틈타 건너온 본토인의 등장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 드라마는 대만의 원주민이 모든 서사의 가운데 있다. 대만 원주민이 이 땅에서 투쟁과 화합의 논의를 일구어낸 최초의 존재였음을 보여주며, 그들의 존재를 통해 대만이라는 지역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대만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스카루〉는 주어진 현안을 해결하고 공존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대만이라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처지가 못 된다는 점을 은근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③ 〈스카루〉와 차이잉원

〈스카루〉에 대한 이런 해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2016년 당선되고 2020년 연임에 성공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스카루〉 시청을 공개적으로 적극 독려했기 때문이다. 차이 총통 역시 원주민의 혈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카루〉가 변화의 맹아로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역사적, 지리적 이유로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던 대만이기에, 원주민이 중심이 된 서술은 대만인에게조차 매우 생소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프레임과 역사적 가치를 수용하고 학습하는 일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인 대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차이 총통은 대만인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콘텐츠’라는 유연한 도구를 선택했다. 도처에 산재한 문화적 영향력 속에서 자국의 콘텐츠를 보호하는 동시에 피안에 있는 ‘누군가’와 분명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 같다. 이런 배경에서 차이 총통이 제정한 ‘OTT 관계법’은 콘텐츠와 관련한 중국의 대대적인 자본 공세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담고 있다. 대만 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민감할 수 있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자에 대해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인 '양안관계조례'를 개정하고, 제35조 2항에 중국 자본이 방송사업자로서 상업적 행위를 할 수 없음을 적시한 것이다. 이로 인해 2015년부터 대만에 법인을 설립해 운영해오던 중국계 OTT 기업인 ‘아이치이’가 퇴출됐다. 아이치이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대만 내에서 아이치이와 업계 1, 2위를 다투던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를 등에 업고 업계 최강자의 입지를 구축하게 됐다.
 
2021년 11월 2일, 총통궁에서 제 19차 APEC 대만 대표로 장종모우 TSMC 창업자를 지명하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

2021년 11월 2일, 총통궁에서 제 19차 APEC 대만 대표로 장종모우 TSMC 창업자를 지명하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

④ 모호함이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선언

2020년 1월, 대만의 제15대 총통 선거 투표율은 75%에 달했다. 이 선거에서 민주진보당, 일명 민진당의 차이 총통은 57.1%라는 높은 지지율로 연임에 성공했다. 2018년 직할시 의원과 현 시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당과 무소속에 각각 394석, 234석을 내어주며 뼈아픈 고배를 마신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원인은 밖에 있었다. 예상치 못한 글로벌 팬데믹과 중국에 편입된 홍콩 민주주의의 좌초, 그리고 연일 계속되는 중국의 위협이 차이 총통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2021년, 차이 총통이 연임 1년 차에 BBC와 한 인터뷰에서는 대만의 방향성에 대한 그녀의 다짐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는 처음부터 ‘돌직구’로 시작했다. “차이잉원 정부는 원칙적으로 대만의 독립을 주장합니까? 그것을 공식 선언해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지 않나요?” 이에 대한 차이 총통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실상은 이렇게 말해야 하죠. 우리는 독립된 국가를 대외적으로 선언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그러니까요. 우리는 스스로를 ‘중화민국’, 즉 대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제도를, 정부를, 군대를 보유하며 선거를 시행합니다.”
 
국가가 가져야 하는 모든 기능을 이미 수행하고 있으니 굳이 독립을 이야기하고 소리 높여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논지였다. BBC는 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전임 총통 마잉저우(국민당)는 대만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와 문화 관계 전반에서 중국과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치러야 했던 작은 대가라면 대만의 지위를 모호하게 유지했던 것이라 할 텐데요. 이런 방식에 반기를 들어야 했던 이유가 있나요?”
 
차이 총통은 이렇게 답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모호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죠. 전임 총통이 모호함을 통해 지키려 했던 ‘양안관계(兩岸關係,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지난 정부 당시 모호하게 유지했던 대만의 지위를 두고 대만과 중국의 정치적 입장이 방치되었으나 이렇게 타협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정리한 것이다.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과오를 문제 삼아 대립각을 세우는 것, 다시 말해 ‘돌려 까는’ 것은 현 정부가 취해야 하는 재치 있는 전략이자 민주주의 제도가 갖는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차이 총통이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중국이 가진 위세는 함부로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전제해야 한다. BBC는 차이 총통에게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예측하느냐고 물었다.
 
“대만 사람들은 선거 제도 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셈입니다. 대만인들은 계속적인 위협에 노출돼 있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억눌리는 느낌이니까요. 우리는 자부심 강한 사람들입니다.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어요. 민주주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수호하고, 경제 영역의 성적도 나쁘지 않죠. 중국은 우리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차이 총통이 자신의 결단은 ‘선거’를 통해 이뤄졌다고 말한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일원화된 명령으로 내려진 결정이 아닌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논의하는 방식이며, 그렇기에 그녀의 결단을 믿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중국의 계속적인 위협에 노출돼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은 평화적인 방식의 논의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을 뿐이다. 너스레라고 하기에는 섬뜩하다. 차이 총통의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는 다르게 들린다.
 
 

⑤ 행운과 운명

차이 총통의 재선을 ‘운빨’로 치부하는 시선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대만과 처지가 다른 듯 비슷한 홍콩에서 들려온 어두운 소식이 차이 총통을 도운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한 국가에서 두 개의 제도가 가능할까? 홍콩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이를 두고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일당 체제의 국가주의 앞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홍콩의 외침은 턱없이 작기만 했다. 게다가 홍콩은 아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무르익어 가장 발달하고, 민주주의를 가장 발전된 형태로 체계화한 지역이었다. 2014년의 우산혁명,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 요구를 계기로 시작된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대만에도 연일 보도되었고, 그 뒤숭숭한 분위기는 몇 년이 지나도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고도로 발전되고 제도의 성숙함을 갖춘 도시국가라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가 시작됐다. 대만의 독립 노선을 걷고 있는 민진당과 중국과의 관계를 통한 상생을 추구하는 국민당의 싸움을 두고 대만인들이 내린 선택은, 차이 총통이 어쩌다 거머쥔 행운이라기보단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약관의 나이에 홍콩 우산혁명의 선봉장이 되어야 했던 조슈아 웡은 대만 선거 이후 이런 트윗을 남겼다. “오늘 대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냈으며, 무엇보다도 중국의 독재적 침략에 맞섰다.”
 
 

⑥ 이혼을 허하라

차이 정권의 대만은 (미온적인 한국 정계에 비춰보면) 간혹 급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사법원석자제748호해석시행법(司法院釋字第748號解釋施行法)’, 즉 동성혼인 법안을 들 수 있다. 2019년 5월, 대만 입법원(국회)은 동성결혼 합법안을 가결했다. 아시아 최초이자 아마 당분간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결정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 제도를 통해 대만은 좀 더 범세계적인 주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동성결혼 합법안과 국제사회의 존재감 표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언론을 통제하고, 자유 발언을 저지하고, 스스럼없이 폭력을 자행하는 힘, 즉 중국의 압력에 대항하며, 대만은 인간이 가져야 하는 존엄한 가치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존엄성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는 존재한다. “시대가 바뀌고 있어요. 우리가 그 변화의 상징입니다.” 이는 대만이 스스로 모호한 상태를 벗어나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솔직히 말하면, 합법화 이후 제도를 계기 삼아 대만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한껏 ‘레인보’스러워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손깍지를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동성 커플이 간혹 보이는 정도랄까? 2020년 한 해 대만 행정원 성별평등회 통계 자료로 확인된 동성혼인 커플 수는 2300쌍이다. 이 중 남성 커플이 28%, 여성 커플이 72%다. 이혼 사례도 있다. 372건으로 10%를 약간 넘긴다. 어렵게 이뤄낸 제도인데 백년해로하지 못한다고 혀를 찰 필요는 없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은 결혼하고, 아니다 싶으면 이혼할 수 있는 자유를 권리로서 누리는 것. 그렇게 삶과 제도가 충돌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가치이니 말이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 1주년을 맞이해 민간에서 대국민 설문조사가 이뤄졌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이 법안이 당신에게, 그리고 대만 사회에 영향을 미쳤습니까?’라는 질문에 92.8%는 ‘개인적인 영향이 없다’고 답했다. 사회적으로도 영향이 없었다는 답이 50.1%였다.
 
제도는 생활을 견인한다. 사회를 유지하고 이끌어가는 데 부정적 파장이 없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라고 대만인들은 생각하는 모양새다. 동성혼인은 전 세계적으로도 오래된 화두지만, 이에 대해 제도 확립까지 이어지는 움직임은 확실히 더디다. 제1세계를 중심으로 여전히 30개국이 안 된다. 아시아에서는 대만 외에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움직임이 없다.
 
시행 3주년을 맞이한 이 제도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중국과의 ‘일국양제’도 어려운데, 외국인과의 결혼까지 고려하면 생각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그러나 동성혼인이라는 국제적 화두가 민주주의 제도의 성숙도를 판가름하는 주제임을 생각해볼 때, 이에 대한 첫 단추를 여민 대만 사회가 얼마나 깊은 수준으로 이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민감한 주제에도 모호한 입장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서 조급히 처리하지 않고 진중한 자세로 충분히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조율하는 것, 그러한 능력이 있음을 세계를 향해 알리는 일. 이것이 이전 대만 정부의 노선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대만은 민주주의라는 오래된 이야기로 국제사회의 주위를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레인보’ 깃발을 흔드는 차이잉원 총통 지지자의 모습.

‘레인보’ 깃발을 흔드는 차이잉원 총통 지지자의 모습.

⑦ 산업 전환의 결정체, TSMC

위에서 언급한 BBC 인터뷰에서 차이 총통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부심 강한 사람들입니다.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어요. 민주주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수호하고, 경제 영역의 성적도 나쁘지 않죠.” 대만이 민주주의 가치를 어떻게 수호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살폈다. 그렇다면 대만은 경제 영역에서 어느 정도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을까?
 
작년 2월, 한국 경제 매체는 대만 통계청의 발표를 빌려 2024년에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을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을 보도했다. 이후 7월 연합뉴스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전년 대비 3.1% 증가하는 저력을 보인 대만이 올해도 계속 성장세가 확인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해당 기사들은 대만의 이러한 부상은 미중 분쟁의 반사이익을 얻은 효과가 크고, 미국과 일본 등의 글로벌 기업 중 일부가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전한 일, 애플의 생산시설을 대만으로 이전한 영향이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아울러 대만 경제의 성장은 TSMC 등의 반도체 기업들이 주도했으며, 이들의 수출액이 대만 전체 수출액의 3분의 1에 육박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TSMC 등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지배력 확대가 대만의 경제성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영역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으며, 그 점유율은 66%에 달한다.
 
반도체 기술은 미래의 석유를 보유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한국도 시대적 맥락의 궤적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1980년대까지 경공업 중심의 OEM을 주된 산업 기반으로 하던 대만이 차세대 국가 동력으로 결정한 것은 반도체 기술이다. 대만 인적자원의 밀도 및 규모와 이 자원들의 기술 함량 수준을 고민해낸 결과다. 1978년부터 1988년까지 대만의 6·7대 총통을 역임했던 장징궈(蔣經國) 총통은 재임 당시 대만의 경제 구조가 영세한 중소형 규모로 산업이 유지되는 것을 보고,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설비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설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장 총통은 당시 공업기술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장종모우(모리스 창, 張忠謀) 박사와 논의한 끝에 대만적체전로제조고분유한공사(台灣積體電路製造股份有限公司), 오늘날의 TSMC를 설립한다. 행정원의 투자로 공기업으로 출발했고, 장종모우 박사는 설립에 관한 전두지휘와 함께 초대 CEO까지 맡아 운영했다.
 
국가 주도로 시작됐고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긴 했으나, 한국의 여느 대기업과는 차이가 있다. TSMC가 집중하고 주목한 것은 반도체 영역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 그 자체였다. 규모와 성장 동력을 기준으로 하면 삼성 같은 대기업을 쉽게 연상할 수도 있지만, 한국의 문어발식 그룹사 운영 방식처럼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일은 없다. 각각의 기업 간에는 산업적 영역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필요한 산업적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이상의 영향 관계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 영역에서 TSMC 모델을 ‘범국가적 모범’으로 기준 삼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식의 흐름도, 논의도 없었다. 한국의 기업들이 기존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 모델을 따르는 것과의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해당 분야 종사자가 아니라면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기업이라고도 볼 수 없다. 어쩌면 전면에 존재를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않는 TSMC의 스타일은 파운드리의 속성 그 자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⑧ 다음 30년에 대한 질문과 대만의 선택

많은 언론에서 분석하고 평가한 것과 같이 대만의 경쟁력은 산업 발전을 위한 반도체 영역의 준비가 이뤄낸 성과다. 글로벌 질서가 재편되는 현시점에서 이런 성과가 대만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맞다. 중국이 TSMC의 질주와 산업 독점에 대적하기 위해 SMIC(중심국제집성전로제조유한공사, 中芯国际集成电路制造有限公司)를 만들어 추격에 나섰다고는 하지만 고도의 기술 집약 산업은 쉽게 추월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만약 그 문턱이 낮았더라면 대만의 독주 체제를 적어도 5년간 낙관하는 관측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만이 반도체를 선택한 덕분에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처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은 중요하다. 차이 총통이 단순히 운이 좋아 연임에 성공한 것인지 지금은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대만이 자국의 운명을 가르는 기로에 서 있고, 이런 상황에서 결정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이 차이 총통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차이 총통에게 대만은 묻는다. 그래서 다음에 이어질 30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차이 총통은 세계의 환경적 추이에 발맞추기 위해 2025년까지 대만은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차세대 대체 전력에 대한 대안은 아직 없다. 이는 차이 정부가 해결해야 할 큰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기초 에너지 공급의 중요성도 더욱 부각될 것이다.
대만은 외부의 리스크와 마주하면서도 미래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재편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변화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 우리가 몰랐던 대만은 조금 더 알고 싶은 대만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다음 30년을 위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Who's the writer?
이도형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대만으로 건너가 국립대만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만 광고회사에서 대만관광청 광고 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는 미디어 랩에서 콘텐츠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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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이도형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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