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생각했던 나, 비윤리적인가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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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생각했던 나, 비윤리적인가요?

없던 윤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최첨단 윤리의 쟁점을 철학자와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2.03.08
 
Q 얼마 전 어느 유명 대기업 소속 디자이너가 자살한 사실이 뉴스로 보도됐습니다. 유족의 입장에 따르면 그는 직장 상사에게 오랜 기간 폭언과 잔업 강요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잔업을 강요하는 방식도 악랄했습니다. '야근 금지'를 지향하면서 오후 5시에 회의를 하고 피드백에 따른 수정안을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요구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유가족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지만, 솔직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달린 ‘고인이 당하는 동안 동료들은 대체 뭘 했지?’라는 댓글을 보면서는 ‘나라도 안 나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고요. 제가 너무 비겁한 사람인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듭니다.
 
2021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미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을 가까이서 목격했습니다. 도시 외곽의 작은 사립학교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세 번의 크고 작은 총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맨해튼 도시 한복판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폭행 사건은 충격이었습니다. 여성이 거구의 남성에게 폭행당할 동안 뻔히 쳐다보던 주변 행인들, 경비원들 중 그녀를 도운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죠. 뿐만 아닙니다.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오가는 전철에서 발생한 여성 승객에 대한 성폭행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CCTV에 녹화된 당시 상황을 보면, 십여 분 이상 지속된 일방적인 폭행 현장에도 모든 탑승객은 얼어붙은 방관자들처럼 무관심하게 대처했습니다. 신고하거나 저지하기는커녕 휴대폰으로 녹화하고 소셜미디어에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극도의 무관심, 얼어붙은 유대감, 공감 능력의 마비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현대 서구 문명에서의 상호 무관심, 불간섭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개인 간의 건강한 유대 관계를 마비시키는 이 같은 사회적 관행은 사적 개인(Private individual)의 권리(rights)와 자유(liberty)를 절대화한 서양 근대 사유의 산물입니다. 내가 피해를 받지 않은 한 누구 일에도 개입하지 않으며 부정의나 불공정은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하는 자본주의적 인간 유형도 유사한 배경에서 탄생했고요.
 
물론 서구 문명에도 시민과 공민(公民), 공동선(common good)과 공적 가치에 대한 오랜 관심이 존재했죠. 하지만 관계보다는 개인을, 유덕함보다는 경쟁력을, 의무보다는 권리를 집요하게 정당화한 근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은 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고독하고 소외된 개인상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념 중 하나인 ‘자유’의 근저에는 무한경쟁과 개인 능력을 최우선으로 간주하는 냉혹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논리죠. 마이클 샌델은 이러한 세태를 두고 ‘능력주의의 횡포(The Tyranny of Merit)’라고 강력하게 비판한 적 있습니다.
 
2020년 9월, 유명한 자동차 회사 디자인센터 연구원이었던 이모씨가 계속된 과로와 압박감,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더 슬픈 일은 1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추도사나 호소문도 돌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개인의 취약한 심성 문제라고 말할 수도, 조직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 떠났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의 죽음을 부조리한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라고 마음 아파할 수도 있고요. 마음속으론 슬퍼하면서도 행여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두려워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한 점은 동료 대다수가 품었을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2022년 1월, 죽음을 택한 동료의 아픔을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자발적 모임이 이루어졌습니다. 영하의 추위에도 수십 명의 연구, 사무 직원들이 촛불 추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같은 자발적 집단행동은 해당 회사 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252명의 동료가 마음을 담아 작성한 추도사와 호소문도 이때 비로소 세상에 빛을 보았고 우리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마음 한편에서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건의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무관한 일로 간주한다면 애당초 괴롭거나 고민할 이유가 없겠죠.
 
사람은 누구나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신체적 능력의 일부를 잃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건강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삶의 이런 보편적이고 실존적인 인식에서 시작합니다. 과거 산업화에 몰두했던 한국형 자본주의에는 온정적인 가족적 유대감을 강조했습니다. 돈으로 이어진 메마른 계약 관계가 아닌 한솥밥 먹는 식구(食口)를 강조했죠. 자발적으로 회사에 헌신할 것을 종용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를 진정한 유대 관계가 아니라 ‘사이비 가족 논리’라고 말하는 까닭은, 필요할 땐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고 쓸모없어지면 버리는 이기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무한경쟁과 능력주의(meritocracy)가 발전과 진보를 가져온다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발전이며 진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계속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 행복은 나 혼자 만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인륜(人倫) 관계에서 성장합니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야만 관계가 주는 의미를 온전히 음미할 수 있습니다.  

Who's the writer?

백민정은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정약용의 철학: 주희와 마테오 리치를 넘어 새로운 체계로〉 〈맹자: 유학을 위한 철학적 변론〉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중국철학 이야기 제2권: 제국의 논리에서 마음의 탐구로〉 〈혜강 최한기 연구〉(공저)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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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호준
    WRITER 백민정
    ILLUSTRATOR 양승희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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