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베테랑 신문기자가 '시티팝 붐'을 보며 느낀 것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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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베테랑 신문기자가 '시티팝 붐'을 보며 느낀 것

오성윤 BY 오성윤 2022.05.27
 
 
음악 트렌드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시티 팝’이라는 장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야마시타 타쓰로, 다케우치 마리야 등 최근 1980~1990년대의 일본 가요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끄는 이 ‘시티 팝 붐’의 일등 공신 중 한 명이 한국인 DJ라는 사실은 생소할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나이트 템포. 이 36세 한국 남성은 그 시대 일본의 음악들을 재조합해 인터넷에 올렸고, 그 결과물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3년 전부터 꼭 한 번 그를 만나고 싶었다. 일본에서 근무하던 신문사를 휴직하고 2월 말에 한국으로 와 처음 만난 인터뷰이가 나이트 템포였던 것은 그런 이유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1973년생인 나는 동시대에 그런 음악을 접해왔기에 익숙하다. 그러나 케이팝이 세계를 흔들고 있는 오늘날에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듣기에는 아무래도 좀 낡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내겐 쑥스러운 10대 때의 기억이 살아나는 음악이지만, 그 시대를 모르는 세대에게 그런 음악이 ‘멋지고 힙하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나이트 템포가 업로드한 음원 중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곡을 일본 가수들이 커버한 넘버도 많다. 마이클 포튜나티의 ‘Give Me Up’, 바비 콜드웰의 ‘Special to Me’…. 나는 물었다. 왜 원곡보다 커버곡을 더 선호하나?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시아인의 감성에 맞게 만들어지거나 편곡되어 있으니까요. 저도 아시아인이라서, 말은 못 알아들어도 공감되는 무엇인가가 있는 거죠.”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그는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무역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고급 오디오 기기와 해외 팝송 음반, 테이프를 사들였고 초등학생이던 그도 그 영향으로 한국 가요보다는 모던 토킹 같은 유로 디스코 뮤직을 즐겨 듣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에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가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선물로 CD 워크맨을 사왔는데, 그 안에 든 노래를 듣는 순간 가슴이 설레었다고 한다. 인기 여성 아이돌 가수 나카야마 미호의 ‘Catch Me’. 일본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데도 이상한 느낌은 전혀 안 들었다고 했다.
“제가 그 음악을 만난 1990년대 중반은 좋은 시절이었어요. 몇 년 후면 IMF 금융 위기가 온다는 걸 꿈도 꾸지 못했을 때, 가전제품은 주로 일본 제품을 쓰던 우리 집 살림도 나쁘지 않았던 거죠.”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아 있던 ‘내가 좋아한 것들’을 다시 추구해보고자 그는 4년 전에 프로그래머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음악 제작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2019년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야외 음악제 ‘후지 록 페스티벌’에도 출연했다.
어린 시절 자기 안에 갑자기 들어온 이문화가 인생의 방향성을 결정지었던 셈이다. 대답을 들으면서 비슷한 시기에 내가 겪은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나이트 템포가 동경하던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도쿄. 사회 전체가 ‘버블 경제’라 불리는 미친 듯한 호경기에 들떠 있던 시절 나는 나이트 템포처럼 자국(일본) 가요는 듣지 않은 중학생이었다. 네 살 많은 사촌 형의 영향으로 마이클 잭슨, 프린스 등 전성기를 맞이한 월드 팝 스타들의 음악을 접한 후, 일본 가요는 팝송의 흉내만 낼 뿐 들을 만한 노래가 없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심야 방송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한 무대에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980년대 초반의 인기 여성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를 닮은, 단발머리 파마 헤어스타일에 동그란 안경을 쓴 가수. 좁은 무대 위 너무 많은 백댄서에게 둘러싸여 하얀 치마를 흔들며 일심불란하게 노래를 부르는 소녀. 세련된 스타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에는 유난히 힘이 있었다. 얼굴이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가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직 되풀이되는 단어 하나만 알아들 수 있었다. ‘영(Young)’. “이선희 양이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이랍니다.” 프로그램 사회자가 소개한 그 한국인 가수는, 당시 뉴스에서 본 6월 민주 항쟁, KAL기 사건, 서울올림픽의 모습과 함께 왠지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대학생이 된 나는 1995년에 미국도 영국도 아닌 한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한국은 유행의 최첨단을 주도하는 X세대가 온갖 색깔의 립스틱을 바르고 신촌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였다. 음악 트렌드는 이선희에서 벗어나 댄스 뮤직으로 바뀌었고, 음악 테이프를 파는 구루마가 길거리를 메우고 룰라, 듀스, 노이즈를 시끄럽게 흘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이른 여름밤,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던 호프집에서 R.ef의 ‘이별공식’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음악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모았던 댄스 음악 유닛 TRF를 이름부터 철저하게 벤치마킹해 만들었다는 이 남성 3인조의 히트곡은 도입부부터 독일의 댄스 음악 유닛 리얼 매코이의 세계적인 히트곡 ‘Another Night’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왜 웃냐고 묻는 한국인 친구한테 “다 표절이잖아” 하고 대답하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사가 너무 공감이 가는 거야. 얼굴도 못생기고 노래도 춤도 잘 못 하는 이들이 이렇게 큰 인기를 구가하는 건 다 가사 때문이야.” 마침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다는 그 친구는 음악이란 가수의 솜씨나 곡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대중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설명을 남겼다. 나는 정말 그럴까 싶어서 그 노래에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결국 나는 지상파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가요 TOP10’에 꽤 오래 등장했던 그 노래를 외워버렸다.
당시엔 지금처럼 한국 가수나 배우 중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드문 시대였다.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지금처럼 취직이 유리해지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한국에 왔을까? 여러 나라에서 모인 유학생들 중에도 그 질문에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기에 우리는 만나면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며 고기를 먹고 노래방을 다니면서 청춘을 불태웠다. 누군가가 귀국한다고 하면 만취해서는 노래방에서 송별가로 ‘이별공식’을 불렀다. 턱없이 신나는 그 노래는 이별의 외로움을 잠시 잊어버리는 데 도움이 됐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지난 2월 말부터 다시 한국에 살고 있다. 서울의 한 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어찌 보면 무궤도였던 청춘 시대로 다시 시곗바늘을 되돌리려고 하는 무모한 시도일지도 몰랐다. 27년 만에 생활해 본 서울은 코로나로 사람을 만나기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어려운 상태였지만. 알고는 있었으나 정작 다다르고 보니 ‘여기까지 뭐 하러 왔는가’ 끊임없이 자문해야만 했던 그 시기의 어느 밤, 혼자 방에서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귀에 익은 노래를 듣게 되었다. R.ef의 ‘이별공식’. 1995년도의 영상이 아닌, 이제는 아저씨가 된 멤버들이 다시 모여 추억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신이 나서 계속 돌려 봤다. 여전히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관객석을 꽉 채운 X세대들은 유난히 흥분되어 보였다. 무대 위에서 숨 가쁘게 뛰는 멤버들을 보면서 나도 마치 옛 친구들을 만난 기분이 되었다.
인생을 결정지은 음악과의 만남은 대부분이 우연의 산물이다. 업계나 평론가들의 평가가 어떻게 되었든, 우연히 만난 음악이 오래도록 가슴속에서 숨을 쉬며 가끔 인생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이별공식’이 나에게 그런 노래였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도 해제된 만큼 이제 옛 친구들을 찾아 약속이나 잡아볼까 한다. 그날 나이트 템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가서 들어본 1980년대 음악이 나의 선입견과 달리 전혀 낡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히 달라진 신촌 길거리에서의 오랜만의 만남이 내게 새로운 발견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요시노 다이치로는 기자 겸 편집자다. 〈아사히 신문〉 기자, 〈허프포스트 재팬〉 뉴스 에디터 등을 거쳐 지난 2월 말부터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펠로로 서울에서 주로 북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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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오성윤
    ILLUSTRATOR VERANDA STUDIO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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