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로 돌아온 지 11년이 되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로 돌아와 살고 있다. 옛날 그 목욕탕, 옛날 그 식당 같은 게 여전하다. 그러나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드라마를 떠올리지는 마시라. 목욕탕 사장님도, 식당 사장님도 잘 모르는 사이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한라산 대신 앞집 베란다 빨래가 보인다. 바다를 보고 싶을 때는 차를 탄다.
낭만적인 쪽과는 거리가 먼 제주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만큼, 육지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을 얘기를 하나 할까 한다. 지난달 6·1 지방선거 의제 하나와 관련된 이야기다. 녹색당은 이런 구호를 들고 나왔다. “관광객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 의심의 여지 없는 대한민국 원픽 여행지 곳곳에 그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하필이면 6월의 황금연휴가 선거일과 맞물려 20만 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찾았으니, 누군가는 그걸 봤을 거다. 불청객이 돼서 황당하거나 섭섭했을 거다. 이해한다. 그건 도민들도 쉽게 받아들이는 의제는 아니었다. 현재 한 해 동안 제주를 찾는 관광객의 수는 1000만 명에서 1500만 명 수준. 제주 인구가 70만 언저리라는 걸 생각하면 좀 징글징글하기는 하다. 그래도 징글징글하다 뿐이지, 제주도민들 입장에서도 관광객 없는 제주는 상상하기 어렵다. 혹은 두렵다.
제주도 관광객 수치가 저렇게 폭넓게 쓰인 이유는 그만큼 심하게 요동치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870만 명 수준이었다가 2019년에 이르러 15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다 코로나 시기에는 1000만 명으로 급감했고, 지난해 1200만 명 수준으로 회복했다. 녹색당이 말하는 ‘관광객 수 절반’이라면, 내가 제주로 돌아오기 딱 이전의 수준이라는 뜻이다. 2010년 무렵, 제주도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이런 것들이었다. ‘올레길’ ‘올레꾼’ ‘한 달 살기’ ‘1년 살기’ ‘제주 이주’…. 올레 코스를 중심으로 날마다 새로운 게스트하우스와 민박이 생겨났고, 여행자들만의 문화가 제주로 깊숙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제주도에서 열리는 하우스 공연이 홍대 다음으로 많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들은 은퇴자들의 로망이었던 제주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춤추게 했다.
같은 시기, 인구도 꾸준히 늘었다. 지방으로서는 이례적이었다. 다만 제주의 인구 증가가 가진 특이점은, 자연 증가는 사실상 멈춘 상태에서 타 지역 인구 유입으로 인한 증가라는 것이었다. 제주에서 가장 역사 깊은 초등학교마저 폐교 위기에 처했던 판국에, 제주 사회는 사람들이 놀러 오는 게 아니라 ‘살러’ 온다는 사실에 좀 의아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토박이가 아닌 사람은 그저 ‘육지 것’이었다. 그건 괄호가 쳐진 말이었다. 괄호 안에는 ‘이제 금방 떠날’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 괄호는 지워졌고, ‘이주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주민센터마다 부랴부랴 이주민들을 위한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어느덧 연예인 누가 이사 왔다더라 하는 얘기는 너무 흔해져서 기억도 못 하게 됐고, 내 친구들만 해도 절반 이상이 이주민이다. 그들은 모두 이주민이기 전에 여행자들이었다.
그런데도 ‘감히’ 관광객을 절반으로 줄이자고 한다. 절반으로 줄여서 제주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생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한다. 제2공항을 백지화하고 탄소 배출도 낮춰보자고 한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 구호는 여행자들만 불편하게 한 게 아니었던 듯싶다. 오직 유권자의 1.9%만 표를 던졌고, 녹색당의 기치를 옹호해온 이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그럴 만했다. 궁극적인 기치는 동의하더라도 실현 가능한지, 도민들 공감은 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의제였기 때문이다. 저걸 다 하려면 현 국토부장관, 그러니까 제주도 개발 시대를 활짝 열었던 전임 제주도지사와 대결해야 할 텐데, ‘강력한 요구’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상황이었달까. 그리고 이런 견해도 있었다. 제주도가 처한 문제들이 정말 관광객에 의해 비롯된 것이냐는 반론. 증가하는 인구를 소화하지 못하는 도시계획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사실 제주 사람들도 서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제주도민도 아파트 좋아하고, 공동주택 중심으로 편하게 살기를 원한다. 고밀도 주거 개발 정책과 결합된 도시적 욕망이 왜 제주에 없겠는가. 바닷가 앞 옛날 집의 낭만은 일주일짜리지만 지네, 곰팡이, 해풍, 태풍과의 싸움은 사는 내내 벌여야 한다. 드라마에는 안 나오는 얘기다.
‘관광객을 줄이자’는 구호는 실은 이렇게 번역되는 피케팅이다. “제주 자연은 압도적으로 아름답지만 불행히도 무한한 자연은 아니다. ‘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개발하는 방식으로만 제주를 팔지 말자!” 집값, 땅값 상승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디폴트값이라 하더라도, 쓰레기와 오폐수 처리 문제는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다. 여행자들과 도민들이 만들어낸 생활 쓰레기는 산처럼 쌓이고 있고 몇 해째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골프장과 휴양시설이 지어질 때마다 오폐수 처리 규정 위반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인근의 곶자왈과 지하수는 제일 먼저 오염된다. 비가 오면 도두하수처리장의 오폐수는 바다로 직접 배출되는데, 이곳의 현대화에는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동부하수처리장은 1일 평균 처리 가능 용량의 96.6%를 감당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한국기후변화학회와 제주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구와 경제 규모 및 관광 수요 증가로 인한 배출량만 해도 420만 톤으로 2018년의 두 배 수준이며, 주민1인당 탄소 배출량도 서울보다1.7배가 더 높다. 외지 사람들에게 제주도가 어떤 이미지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런 제주도도 제주도다.
당신이 모를 것 같은 얘기는 더 있다. 제주 해수면은 지난 55년 동안 23.4cm 상승했는데, 그건 전 세계 평균 상승 속도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가라앉는 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글은 이런 의미다. “관광객을 줄이자”는 구호는 그저 여행자인 당신을 ‘빌런’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고. 제주가 품은 구구절절한 현실과 미래를 압축하기에 선거의 언어가 너무나 초라할 뿐이었다고. 낭만적으로 가라앉는 섬 따위가 있을 리 없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느냐고. 2019년 로마와 베니스,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 같은 도시들이 외친 구호는 한결 더 과격했다. “Tourists are Terrorists!” ‘오버투어리즘’은 그해 가장 힙한 키워드였다. 그리고 영국 리스판서블트래블닷컴(responsibletravel.com)에서 발표한 전 세계 오버투어리즘 지도에는 제주도도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제주는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로마처럼, 베니스처럼. 혹은 환경오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전면 폐쇄를 단행했던 보라카이처럼.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 비명은 언제나 극단적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물숨〉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해녀들의 삶을 다룬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인 해외 영화 관계자들은 이렇게 물었다. “왜 공기통을 메지 않고 위험하게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는가?” 감독 고희영은 즉답하지 못했다. 대신 제주에 돌아와 추가 인터뷰를 한 뒤 해외 버전을 새로 만들었다. 그 내용을 사투리로 재구성하면 이런 거다. “그건 약속이지게! 공기통 맹 들어강 다 따오민 다음 세대 해녀들은 뭘 따?” 그러니 지금 제주도에는 이렇게 말하는 누군가가 있는 거다. 다음 세대 여행자들은 뭘 봐? 다음 세대 제주인들은 어떵 살아? 제주도는 그야말로 한 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고, 다음 선거에서 녹색당이 내건 구호는 조금 더 혁명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때 너무 놀라지 마시길.
조은영은 11년 차 제주 리터니다. 카페 겸 책방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뼘책방’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