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의 공사는 대체 언제 끝이 날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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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의 공사는 대체 언제 끝이 날까?

오성윤 BY 오성윤 2022.09.29
 
2022년 5월 10일부로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일부 등산로가 막혀 있던 북악산 역시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졌다. 청와대 인근 주민으로서 늘 청와대 내부보다 더 궁금했던 것이 ‘청와대 전망대’가 자리 잡은 북악산 등산로다. 나는 청와대 전망대에 올라 광화문 일대를 꼭 한번 내려다보고 싶었다. 사연이 있다. 이를 말하려면 2008년 6월의 광화문 풍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8년 6월은 광우병 불안감으로 촉발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촛불을 든 수십만 명의 시민은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채 청와대까지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그중 일부는 광화문 너머 청와대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다 6월 10일, 광화문 앞 도로에 2층 구조의 컨테이너가 성벽처럼 우뚝 섰다. 이른바 ‘명박산성’이었다. 시위대는 명박산성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 달리 시위 열기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게 컨테이너 너머의 광화문과 청와대를 겨누었다. 결국 그해 6월 말,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소고기 수입 재협상에 나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전망대에 올라 시위대로 가득한 광화문광장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민들의 노랫소리를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나는 그때부터 북악산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이런 생각에 빠지곤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광화문광장을 없애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광화문광장의 정치’가 기존의 정치를 재편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2008년의 사례를 언급하긴 했지만, 광화문광장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한국 근현대 정치사의 주요 무대였다. 그 일대의 풍경과 성격의 변화 역시 많은 부분 궤를 같이한다. 2022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공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에서는 광화문 일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조선왕조의 중심이었다는 역사성, 대한민국 정치 행정 외교의 중심이라는 정치적 상징성, 시민의 문화 활동과 집단적 의사 표현이 이루어지는 군중 집회 현장.”
광화문광장의 변화를 야기한 몇 가지 정책만 추려도 한국 현대 정치사를 대략 일괄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을 대표하는 이순신 장군상을 세운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1968). 그는 자신이 추진하던 ‘조국 근대화’를 상징하는 사람으로 무인인 이순신 장군을 내세웠고, 친필로 ‘충무공 이순신장군상(忠武公 李舜臣將軍像)’ 글씨를 조각에 새겼다. 그리고 광화문 사거리에 매일매일의 수출 실적이 표시되는 시계탑을 설치했다. 광화문 뒤편에 세워져 경복궁을 가리고 있던 조선총독부를 철거토록 한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군인 출신이 아닌 일반 국민이 수립한 정부’라는 뜻의 ‘문민정부’를 표방한 그는 이 터를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1995).
이순신 장군상 뒤편에서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디자인 서울’이라는 시정 목표를 내세운 당시 오세훈 시장의 의지가 담겼다(2009년). 이때 광화문광장은 양쪽으로 차들이 오가는 도로 위의 섬처럼 둥그러니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찬반 시위가 광화문광장을 휩쓸었다. 광화문광장은 다시 한번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각각의 개인이 (탄핵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 ‘공화국의 시민’이라는 주체로 호명될 수 있는 장소로 재탄생한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은 이런 역사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 ‘시민 민주주의 실현의 장, 소통과 통합의 장으로서 광화문광장의 위상 강화’라는 목표와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의 공간이었던 광화문 일대가 2016년 1700만 촛불에 의해 소통과 화합의 일상적 민주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상징성을 강조한 이 계획은 고 박원순 시장 재임 시절 기획된 것이었다(2018). 국제현상공모를 거쳐 당선된 설계안은 ‘Deep Surface(과거와 미래를 깨우다)’다. 설계안은 세 가지 목표를 내세웠다. 대한민국의 대표 상징축으로서 ‘주작대로의 계승’,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며 시민이 주인인 다층적 기억의 공간을 형성할 수 있는 ‘수직도시와 지하도시의 연결’, 자연과 도시를 아우르며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한국적 경관의 재구성’.
그러나 예기치 않게 서울시장이 바뀌고 여러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하며 기존 설계안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여러 논란 끝에 광화문광장은 1년 9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2022년 8월 6일 재개장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또 광화문 앞 월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내가 청와대 전망대에 오른 것은 광화문광장이 재개장을 하고 일주일이 지난 때였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청와대와 경복궁, 정부서울청사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새롭게 조성된 광화문광장과 그 주변을 가로와 세로로 가르며 서울의 사방을 연결하는 사직로와 세종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광화문 일대가 마치 지난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모이고 흩어지는 거대한 물길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 개인의 권력과 사적 욕망으로 멈추거나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길. 설사 그 개인이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재개장한 광화문광장을 주말 저녁 산책길에 들렀다. 많은 시민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광장을 누리고 있었다. 광장 서쪽에는 바닥에 새겨진 지난 역사의 연대기가 끊어지지 않는 물길 아래로 유유히 흘렀고, 나무를 심고 분수와 벤치를 배치한 녹지공간에서는 은은한 풀 냄새도 풍겨왔다. 걷고 쉬기에는 나쁘지 않은 공간이다. 광장 설계를 맡은 조용준 서울시 공공조경가의 말처럼 광화문광장은 “집회보다는 일상을 위한” 곳이 된 것이다. 물론 집회와 시위를 막기 위한 정치적 설계라는 비판과 차량 흐름을 무시한 전시행정이라는 비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반응은 광화문광장이 영속적인 모습을 가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보여준다.
광화문광장에 대해 나의 생각을 물은 〈에스콰이어〉 박세회 피처 디렉터는 안국동 인근에 산다. 그는 “광화문광장을 계속 뜯어고치는 게 지겨워 죽겠다”며 분노를 토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계속 고치고만 있으면 통행과 교통 흐름의 불편함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월대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어도 정치가 지속되는 한 광화문광장은 언제든 다시 공사터로 돌아갈 것이다. 시민들의 편의, 국가 행정의 효율성, 과거와 현재의 조화 등의 명목을 내세우면서. 역시나 인근 주민인 나는 이런 공사가 나쁘기만 한 것도,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목적이 시민들의 시위를 막는 것에 있다면 그 공사는 이미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도로를 점거하거나 공공시설을 점유하는 불법이 두려워 불의에 침묵하는 시민은 역동적인 한국 역사의 디폴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불법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목소리를 내려는 시민들이 디폴트였다. 광화문광장은 어떤 모양새든 늘 뜨거운 공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변화된 광화문광장의 모습에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는 이유다.
 
김기창은 소설가다. 장편소설 〈모나코〉 〈방콕〉, 단편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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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오성윤
    WRITER 김기창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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