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을 대만의 마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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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을 대만의 마음

오성윤 BY 오성윤 2022.10.02
 
요즘 들어 피싱 문자가 부쩍 늘었다. 기상 알람보다도 일찍 메시지가 와서, 뭔가 하고 보면 꼭 피싱 문자다. 10년 가까이 대만에 거주 중이지만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일관되고 꾸준하게 문자를 받아본 일은 없었다. 문자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하나는 대출 독려 문자다. 주거래은행에서 보내는 온건한 스팸문자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수수료도 담보도 없이 신분 확인만으로 돈을 대출해주겠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확인하라는 문자다. 하루에 5통 정도는 받는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유출된 신상 정보에 대한 걱정부터 했을 텐데, 지속적으로 받다 보니 언젠가부터 대만의 김미영 팀장에게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하는 마음이 슬쩍 들기도 해 늘 삭제를 한다.
솔직히 얼마 전에는 정부 보조금이 나온다는 두 줄 문자에 혹해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도 있다. 클릭하고 들어가면 코로나 백신을 맞을 때 몇 번 들어가봤던 건강보험국과 유사한 사이트가 등장한다. 전화번호 인증을 거쳐 서너 개의 일반 정보를 넣던 중, 계좌번호 입력란을 발견하고 퍼뜩 멈췄다. ‘어, 계좌번호? 이건 좀 이상한데.’
문의를 겸해 건강보험국에 전화를 했다. 신고 부서가 아니라며 사이버경찰청에 연락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바로 사이버경찰청165에 전화를 걸었더니 공무원이 올해는 정부 보조 계획이 없다고 했다. “아, 또 이 건이군요.” 그는 짐짓 심드렁하게 들릴 수 있는 말투로 신고를 접수해주었다. 익숙하다는 듯한 반응. 그래도 나름 사리 분별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를 자괴감도 들고 걱정도 들었다. 언제부터 대만이 이렇듯 사이버 사기가 난무하는 무협지 같은 세상이 되었는가.
그 수많은 피싱 문자의 출처로 의심할 만한 역대급 사건이 8월의 대만에 불을 지폈다. 청년들이 국제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알선한 캄보디아 등지의 취업을 따라 출국한 다음 연락이 두절되고 돌아오지 못했다는 보도가 터진 것이다. 그 수는 무려 5000명에 육박한다고 했다. 이들 조직은 해외 취업을 미끼로 취업 사이트와 페이스북 등 관계 연락망을 통해 교묘하게 침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 여파로 사회적 취약계층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으로 방치되어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청년들은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감금되었다. 공권력조차 닿지 않는 곳으로 끌려가 여권을 빼앗기고 인신매매를 당하고, 또 다른 희생자를 유인해 자신이 당했던 일을 당하게 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할당받은 가혹한 성과를 내지 못할 때는 무자비한 폭행이 자행되었으며, 반항할 경우 장기까지 적출하는 참혹한 처지에 내몰렸다고 한다. 경찰에서 확인한 피해자 규모는 약 300명 선이지만, 실제 피해자는 공식 수치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애초에 이들이 약속받은 보수는 월 급여 2500달러. 결과론이기는 해도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값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모든 업종을 망라한 대만 사회 초년생의 임금은 미화 1000달러 수준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청년층 인구의 평균 월 급여는 1400달러. 25세 미만의 월급은 960달러, 30세 미만도 1300달러 정도로 파악된다. 대학을 막 졸업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가정할 때 월급을 1400달러까지 끌어올리는 데 8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만의 저임금 인력은 25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0% 수준에 달한다. 그중 30%인 82만 명 정도가 청년층으로, 연령대 분포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22년에 결정된 최저 시급은 168대만달러로, 미화로 환산하면 5.6달러다. 사회 초년생의 경우는 파트타이머와 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거의 없어 그나마 시간 탄력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시급제 근무를 더 선호하는 추세다. 대만 청년들이 왜 2500달러 월급에 발목이 묶여버렸는지, 사지의 벼랑 끝에 서서 한 번은 대출계 상담원이 되고 한 번은 검찰이 되어 자국민을 속이는 데 동원되어야만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 스마트폰을 아침저녁으로 울려대던 피싱 문자들의 출처까지도. 어쩌면 그것은 대만 청년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구조 요청 신호였던 것이다.
11월 26일로 예정된 지방공직자 및 각 직할시 시장 선거 포스터가 8월 무렵부터 거리에 달리기 시작했다. 꽤 일찍부터 선거 유세가 가능한 대만 선거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임기 중 민심을 점검하고 대권의 향방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작동한다. 지방선거와 총통은 공히 두 번 이상의 연임이 불가하므로, 민진당을 적으로 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에게는 이번 선거가 아주 중요할 것이다. 2020년 연임 이후로 2024년까지 안정적인 집권과 정권 운영에 있어 중요한 갈림목이 될 테니까.
타이베이는 여러모로 대만 정치 지형의 축소판이다. 1994년 재정된 ‘직할시자치법’에 따르면 시민 직접 선출이 시작된 이후 첫 민선 시장을 역임한 천수이볜(陳水扁)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대만 총통을 역임했고, 민진당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가 타이베이 시장을 역임한 후 2016년까지 8년간 총통 재임 기회를 얻었다. 타이베이 시장 선거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이유는 타이베이 시민이 추구하는 실리주의에 있다. 현재 재임 중인 타이베이 시장 커원저(柯文哲)는 의사 출신으로, ‘녹색연맹’을 이끌며 무소속 출마한 후 민중당을 창당하고 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민진당과 국민당 주요 양당에 대한 세력에 견주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띠는 정치인. 그 존재 자체가 타이베이 시민이 갖고 있는 초당적 실리주의에 대한 기대를 대변하는 것이다. 물론 민중당이 기존 세력인 민진당과 국민당의 대항마가 되기를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타이베이시가 그동안 커원저라는 인물을 통해 두 지배 정당의 알력을 중재하며 시정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민진당은 이번 타이베이시 후보로 전 위생복리부 장관 천스중(陳時中)을 발탁했다. 코로나로 여전히 신음하고 있는 글로벌 환경에서 대만을 방역 모범국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의사 출신으로 위생국 공무원 경력 외에 별다른 정치 이력은 없지만 서글서글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을 가졌다. 국민당은 장제스(蔣介石)의 증손자 장완안(蔣萬安)을 내세워 보수주의자들을 집결하고 있다. 이제 40대 초반인 그가 젊은이들을 응집하는 아이콘이 될 수 있겠다는 나름의 분석도 있었던 것 같다. 수려한 외모의 장완안이라는 금수저 정치인이 보수층과 청년층이라는 교집합이 되어 변화를 주도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8월 말까지의 후보자 지지도는 천스중이 26.3%로 1%p 내에서 장완안을 앞서고 있다. 이는 차세대 대권주자를 향한 대만 국민의 결정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답보 상태임을 말해준다.
역사적 맥락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서 존재의 당위를 찾을 수밖에 없는 국민당이 아이러니하게도 상시적 위협을 날리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래의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8월 한 달 중국의 위협을 뚫고 연이어 방문해준 미국 국회의 지원 사격 덕분에 집권당인 민진당은 전에 없던 원군을 얻은 듯하다. 군사적 위협을 빌미로 국방비 예산을 전년 대비 13.6% 증가하기로 결정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칩4동맹’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보답이라 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그리고 대외적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정계의 고심은 대만 국민의 최우선 가치인 ‘민생 챙기기’의 소홀함으로 드러날 것이다.
해외에서는 중국을 금방이라도 무력을 동반해 대만을 침략할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대만에게 중국은 ‘상시적인 위협’을 일삼는 연인 관계 같다. 그와 대립각을 둔 미국은 대만에게 ‘상시적인 구애’를 날리는 연인이라 할 수 있겠고. 지금과 같은 세계 정세 속에서 ‘두 연인’의 러브콜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굵직한 사건사고를 등에 지고 맞이하는 선거는 그 둘의 관계만큼 중요한 민생 현안들을 좌시하지 말라고 일깨운다. 당면한 현안과 역사적 당위의 경계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시기를 막론하고 언제나 대만의 존립을 규정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국경 지역을 조롱하듯 드나든 중국의 드론기 출몰에 차이잉원 총통은 이렇게 말했다. “도발할수록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부당한 충돌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추스르는 일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만의 결심을 위협에서 지켜내는 일이다.” 그 속에서 생활하는 나 같은 관찰자에게도 대만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해 보인다. 그러나 그건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라기보다, 차분해야만 무엇이든 상시적 상태로 받아들이고 대처 가능하기에 그렇게 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터이다.
 
이도형은 대만에 기거하며 광고회사 미디어랩에서 콘텐츠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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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WRITER 이도형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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