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젊은 것'들을 위한 변명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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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젊은 것'들을 위한 변명

김현유 BY 김현유 2022.11.05
 
아리아나 허핑턴이 일을 그만뒀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온라인 미디어 〈허핑턴포스트〉를 2005년에 창간한 사람이다. 여성 언론인이자 사업가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가 2016년 자신의 이름을 딴 허핑턴포스트를 그만둔다고 발표하자 미디어업계는 난리가 났다. 허핑턴포스트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전 세계 15개국에서 현지 에디션을 낼 정도로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한국 〈허핑턴포스트〉도 2014년 창간했다. 잡지사를 다니던 나는 창간 소식을 듣자마자 편집장으로 합류했다. 한국 창간일에 맞춰 아리아나 허핑턴이 방문했다. 그를 만나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구루(guru)다.
모든 유명하고 위대한 비즈니스 리더들은 어딘가 좀 구루 같은 데가 있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2014년 〈제3의 성공〉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공의 정의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에서 몇몇 구절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탈진은 우리 문명의 질병인가? 스마트폰이 우리를 더 지혜롭게 해주는가?
그렇다. 〈제3의 성공〉은 회사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달려온 사람들이 잠시 멈추어 서서 새로운 성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설법하는 책이다. 부록으로는 ‘명상과 마음 챙김을 위한 12가지 애플리케이션’ 등이 있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성공의 정점에 서 있을 때 과로와 수면 부족으로 쓰러진 후 이 책을 썼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항상 말했다. “잘 때는 스마트폰을 치웁시다. 대신 예쁜 구식 알람 시계를 쓰세요.”
나는 그것이 매우 이율배반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허핑턴포스트〉는 24시간 사람을 깨어 있게 하는 온라인 미디어다. 기자들은 24시간 기사를 제조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잠시 치우라니. 아리아나 허핑턴은 2016년 〈허핑턴포스트〉를 그만뒀다. 나는 그가 드디어 제3의 성공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그는 건강 관련 플랫폼인 ‘스라이브 글로벌(Thrive Global)’을 창업했다.
성공의 정의를 바꾸자고 외친 구루는 성공의 정의를 바꾸자며 건강 앱을 팔아먹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건 어떻게 봐도 조용한 사직, 그러니까 콰이어트 퀴팅(Quite Quitting)은 아니었다.
콰이어트 퀴팅은 신조어다. 조용한 사직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진짜 회사를 그만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틱톡의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며 화제가 된 이 단어는 해고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소극적으로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순식간에 새로운 세대를 정의하는 단어가 됐다. 갤럽이 지난 2022년 6월 미국인 1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0% 정도가 콰이어트 퀴팅족에 해당했다. 특히 35세 이하 직장인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짙었다.
재미있는 건 아리아나 허핑턴의 태도였다. 그는 콰이어트 퀴팅을 반대한다는 글을 썼다. “콰이어트 퀴팅은 직장에서 그만둔다는 의미를 넘어 자신의 삶을 그만두는 것의 시작이다. 일은 의미와 목적을 준다. 우리는 일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는 문화와 번아웃에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번아웃을 피한다는 것이 일을 사랑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일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박이 쏟아졌다. “내가 들은 가장 쓰레기 같은 CEO적 글"이라는 조소 어린 댓글이 눈에 띄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MZ세대 댓글러였을 것이다.
나는 함께 조소하지는 않았다. 대신 매우 양가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는 사십대 중반이다. 엑스세대다. 나 역시 번아웃을 겪었다. 몇 년 전 겪은 번아웃은 결국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우울증이 스트레스보다는 두뇌의 화학적 실수로 벌어진다는 해석을 더 믿는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랫동안 쌓인 업무 스트레스가 두뇌의 화학작용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여기서 우울증의 의학적 발생 원인에 대해 토론할 생각은 없다. 놀라운 것은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 동안 내가 보인 태도였다. 나는 도저히 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회사에 다녔다. 책임감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일을 그만두는 순간 나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랬다. 나의 진정한 병명은 번아웃도 우울증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병명은 어쩌면 ‘일중독’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회사가 아니라 내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세대의 일원이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MZ세대 후려치기’의 원조는 ‘엑스세대 후려치기’였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대라 내 세대에 대한 베이비붐 세대와 386 세대의 분노가 덜 기록되어 있을 따름이다. 나와 같은 세대라면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이놈의 엑스세대들은 말이야"로 시작하는 기나긴 잔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엑스세대는 여전히 인생에서 일을 완벽하게 분리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사라지는 순간 나 자신도 사라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공적인 삶을 위해 반드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엑스세대는 54.7%가, 밀레니얼은 46.6%가 그렇다고 답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무려 75%가 그렇다고 답했다. 좋은 직장이 성공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현대적인 직업의 정의를 만들어낸 20세기 중반 이후, 일이 자신의 삶을 정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점점 감소했다. 만약 당신이 진화론자라면 이것 역시 인간이 진화하는 거대한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종종 ‘성공의 의미는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기 전에는 항상 같은 답을 내놓았다. 좋은 글쟁이가 되는 겁니다. 그런 대답에는 항상 같은 질문이 따랐다.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대답은 분명했다.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지금의 나는 다른 대답을 내놓고 싶다. 각자의 성공은 각자의 기준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물론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리길 내심 주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일에서 성공의 의미를 찾는 낡은 세대의 일원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당장 내일부터 콰이어트 퀴팅을 실천하겠어’라고 다짐한다면 나는 지나치게 무책임한 글을 썼다며 스스로를 비난할 것이다. 나는 당신 삶을 책임질 수 없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했듯이 어쩌면 인간은 유전자의 자기 보존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 기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에 따르면 성공적인 유전자의 자질은 냉혹한 이기주의다. 맞다. 당신이 어제 콰이어트 퀴팅을 결심했다면 그건 당신이 자기 할 일만 하고 카톡 알람을 끈 채 칼퇴근하는 이기적인 세대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기적인 태도는 일에 중독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류 유전자의 진화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에 찬성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이미 낡아버린 세대의 일원으로서 콰이어트 퀴팅의 물결 앞에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변명을 당신을 위해 내놓고 있을 따름이다. 어쨌거나 모든 새로운 세대는 모든 낡은 세대에게 조금은 더 이기적이었으니까.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 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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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김도훈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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