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란드, 일루리사트 - 8월의 어느 쾌청한 날, 헬리콥터는 그린란드 서부에 위치한 야콥스하운 빙하 북쪽 끝에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다. 북극권 한계선에서 약 240km 북쪽 지점이다. 발밑의 땅은 회색 점토로 되어 있었는데,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바윗돌이 섞여 지면은 거의 달 표면에 가까워 보였다. 빙하 표면 끄트머리의 진흙은 어찌나 깊은지 내 부츠를 거의 삼켜버렸다. 이 빙하의 이름은 ‘세르메크 쿠알레크’다. 빙하 남쪽 표면에서는 거대한 얼음 바위가 분리되어 주기적으로 해수면 아래로 추락했다. 300m 이상 높이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파일럿에게 이 루트를 비행하기 시작한 이래로 빙하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대충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는 저 멀리 떨어진 피오르 한복판의 바위섬을 가리켰다. “2007년에는 빙하가 저기 있었어요.”
20세기가 지나는 동안 야콥스하운 빙하는 원래 위치로부터 10~15km 정도 뒤로 후퇴했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해양학자 조시 윌리스에 따르면, 그 뒤 불과 8년이 지나는 동안 이 빙하가 움직인 거리는 지난 100여 년간 움직인 거리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빙하의 최전선은 지난 몇 년 사이 조금 전진했다가(해류와 일부 연관이 있는 복잡한 역학에 의한 결과였다) 다시 물러나고 있는 중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의심을 품어본 적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그린란드 방문은 신체 교정 기구 같은 기능을 한다. 섬 대부분을 덮고 있는 방대한 빙상 위를 낮게 날아가는 동안 나는 얼음 녹인 물이 고인 짙은 청색의 커다란 연못들과 흰 얼음으로 이뤄진 도랑 위로 빠르게 흘러가는 수십 개의 물줄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연못과 도랑은 최근 20년 동안 훨씬 더 늘어났으며,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형성 시기가 더욱 빨라졌다. 2021년에는 북극 한계선에서 800km 북쪽의 빙상 정점에서 비가 내리기까지 했다. 1980년대에 기록을 시작한 이래 최초의 일이었다.
섬을 둘러싼 짙은 색의 산맥과 빙상이 가까워지는 한편, 해변 언저리에는 베이지색 선 모양의 황량한 땅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폭은 수백에서 수천 미터에 달한다. 말라붙은 호수나 저수지에서 볼 수 있는, 욕조에 낀 땟자국처럼 생긴 이 선은 한때 얼음이 어디까지 존재했고 얼마나 뒤로 물러났는지를 보여준다. 역사 속 기록을 봐도 노르웨이의 프리드쇼프 난센이나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 같은 위대한 19세기 그린란드 탐험가들은 빙상 위에 오르기 위해 가파른 얼음벽을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 지금은 평평한 땅에서 얼음과 마른 땅이 만나는 곳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시장(市場)도 움직이고 있다
일루리사트 해변 마을에서 보 묄러 스텐스고르와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구리, 니켈, 코발트, 아연, 일메나이트 채굴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 블루제이 마이닝의 CEO이자 지질학자다. 스텐스고르는 빙상의 후퇴로 탐사할 땅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기후도 따뜻해져서, 배가 얼어붙어 갇힐 위험 없이 섬으로 항해할 수 있는 시즌이 길어졌어요. 현장 인력 투입 기간을 늘릴 수 있게 된 거죠.” 몇 달간 텐트에서 지내며 현장에서 지질을 연구한 그는 이런 변화를 기업가의 눈으로만 보고 있지 않았다. “저는 빙하가 완전히 사라지는 걸 눈앞에서 봤어요. 해빙이 사라져서 굶주리는 북극곰들도 봤죠. 상당히 무서운 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채굴하고자 하는 광물들은 미래의 모든 ‘녹색 에너지’ 전환에서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기후변화는 빙하가 녹고 있는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기회를 빙하 위에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나는 어쩌다 여기 오게 되었나?
나는 여러 해 동안 스스로가 기후변화 부정론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라니, 과격한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그보다는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한 불가지론자, 기후변화가 인류의 미래에 재앙적 위협이 된다는 생각을 비웃는 편에 가깝다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현대문명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뿜어대서 산업 시대가 시작된 이래 지구의 평균온도가 섭씨 1℃ 올라가고 해수면이 몇 센티미터 상승하는 데 일조했다는 시각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종류의 위협이 꽤나 과장된 것 같았고,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방안에서는 하나같이 뉴에이지 종교가 섞인 구식 국가 통제주의의 냄새가 났다. 예전에도 환경적 재앙이 곧 다가올 거라는 경고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 널리 퍼진, 인구 과잉이 대규모 기아를 만들어낼 거라는 믿음.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개발도상국의 식량생산력을 급증시킨 ‘녹색혁명’은 맬서스의 끔찍한 예언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줬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뛰어난 능력이 기후변화가 가져온다는 끔찍한 일들 역시 막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의구심도 있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의 기후 패턴을 ‘예측’하는 컴퓨터 모델에 기반해 수조 달러짜리 정책을 짠다는 건 좋게 봐주려 해도 도박처럼 보였다. 기후 활동가들은 ‘태양열 에너지’나 ‘바이오 연료’ 기술에 기반한 정책들을 계속 홍보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직 완벽하게 입증도 되지 않은 기술일 뿐이었다.
북미와 유럽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자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여 노력해왔지만,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이 화석연료 사용을 지속하는 한 성과는 없어 보였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기후 활동가들이 보여주는 종말론적 이미지였다. 물에 잠긴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 모두가 더욱 절약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끝장나게 될 거라는 위협을 하는 식이다.
지난 2017년 4월, 나는 이런 시각을 담아 〈뉴욕 타임스〉에 ‘완전한 확실성의 기후’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예상했지만 반발은 거셌다. 기후 과학자들은 공개 서한을 통해 나를 맹비난했다. 나를 해고하라는 청원이 돌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기후 활동가들의 이상한 자기 확신에 대한 반감만 더 커졌다.
해수면 상승과 관련해 환경운동을 벌이는 단체인 라이징 시스 연구소(Rising Seas Institute)의 운영자이자 해양학자인 존 잉글랜더 역시 그중 하나의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2년 후, 뉴욕에 온 그는 불쑥 내게 서신을 보내 만남을 제안했다. 나를 폄하하던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서신은 굉장히 따뜻하고 다정했다. 우리는 다음 날 만나기로 했다.
잉글랜더는 늘씬하고 다정한 72세의 달변가였다. 그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수천 년 동안의 인류 역사에 걸쳐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해안선은 과거에는 자연력에 의해 변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인류가 만들어낸 힘에 의해 더 빠르고, 처참하게 변할 것이다. 지상의 얼음 중 8분의 1이 있는 그린란드에 직접 방문하면 이런 변화가 얼마나 급격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가보지 않겠는가?
서신만큼이나 따뜻하고 다정한 제안이었다. 만남을 거절하지 못했듯, 나는 이 제안도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다정함보다도 큰 이유가 있었다. 내가 기후 활동가들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가 그들의 오만한 자기 확신 때문이라면, 나의 확신이 옳은지 확인해볼 의무 또한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을 시험했을 때 벌어질 문제점이라고 해봐야 내 뜻이 바뀔 수 있다는 정도일 테니 말이다.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는가?
제트기에서 바라본 그린란드의 가장 큰 특징은 광활함과 단조로움이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자신의 시 ‘적막강산(Desert Places)’을 통해 ‘어둠 속에서 더욱 공허한 흰 눈에는 표정도, 표현하려는 것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빙상에 직접 서보고 나니 그 시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백색 속에 갇힌 것은 명확했다. 세계의 먼 과거와 실현될지도 모를 미래였다.
그린란드는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를 합친 정도의 크기다. 해변을 제외하고는 얼음에 덮여 있는데, 얼음의 두께는 장소마다 다르지만 대략 3km 정도 된다. 이보다 여섯 배 이상 큰 남극의 얼음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문제는 그린란드의 얼음은 남극의 얼음보다 훨씬 더 빨리 녹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린란드의 얼음이 전부 녹을 경우, 세계 해수면은 7.3m 정도 상승하게 된다. 자카르타, 방콕, 코펜하겐, 암스테르담, 마이애미, 뉴올리언스 등 수많은 지역의 해변 도시 수백 곳이 물에 잠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고 있는 속도는 얼마나 빠른 것일까? 우리 생전에 닥쳐올 긴급 상황일까? 사실 얼음 손실을 측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린란드는 긴 시간에 걸쳐 가늠이 불가능한 수준의 얼음을 계속해서 모으는 동시에 떨궈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그린란드에서 얼음 코어 샘플을 시추해왔고, 지구 중력장의 이례적 변화를 감지하는 인공위성들이 거의 20년 동안 정기적으로 이곳 빙상을 측정해왔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현재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훨씬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확인한 데이터에 따르면, 그린란드의 얼음은 확연히 줄고 있다. 늘어나는 양보다 없어지는 양이 훨씬 더 많다.
그린란드로 향하기 전 나는 코펜하겐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린란드 지질학 조사에 참여한 캐나다 출신 지질학자 리엄 콜건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1990년대 말 이후, 그린란드에서 얼음이 상당량 증가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손실량은 해에 따라 크게 다르다. 지난 30년 동안의 변화를 연간으로 환산한 평균량은 매년 170기가톤에 달한다는 게 콜건의 설명이다. 이는 1초당 얼음 약 5400톤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NASA의 윌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2100년에 해수면 수위가 어떻게 될지 안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추정치’를 말하는 것에 불과해요.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거대한 빙상이 녹는 건 역사상 처음 목격되는 일이라 얼마나 빨리 사라질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 윌리스 역시 추정치를 내놓았다. “2100년에는 아마 해수면이 30~60cm 이상 올라가 있을 거예요. 상승폭이 210~240cm를 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상승폭의 최고치가 어느 정도가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죠.”
표면적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들린다. 만약 윌리스가 내놓은 추정치의 최대치인 240cm가 상승하더라도,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인류에게는 80여 년의 시간이 있다. 기후변화 결과에 적응해 가면서 그 영향력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력이 그사이 극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현재 가난한 국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가 훨씬 더 부유해지고, 그에 따라 홍수나 밀려드는 조수, 허리케인과 눈보라 같은 슈퍼스톰을 견뎌내는 능력도 더 커지지 않을까?
나와 달리, 잉글랜더는 전혀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전 세계 해수면 상승의 평균속도는 최근 30년 동안 3배 이상 빨라졌다. 30년 전에는 매년 1.5mm씩 상승했다면, 최근에는 5mm씩 상승하는 것이다. 미미한 수치로 보일 수 있겠지만, 기하급수적인 증가가 가져오는 타격감은 엄청나다. 우리 모두는 팬데믹 기간 동안 그것을 느꼈다.
“직선이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가는 궤적은 예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은 지진이나 진흙 더미의 붕괴처럼 불규칙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갑자기 바뀌어 우리를 놀라게 할 수도 있어요.” 잉글랜더의 말이다. “더 이상 가까운 과거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에요.”
소행성 충돌과는 다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란에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쿠닌이 쓴 글이 실렸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과학차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한때 나의 목소리였을 수도 있는 논조로 빙하 손실과 관련해 여러 의문점을 던졌다. 그는 그린란드 빙하 손실의 원인이 지구온난화가 아니라고 본다. 북대서양 해류와 기온의 자연적 사이클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은 평균으로 회귀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확실히 시니컬했다. “요즘 기후 관련 기사들 상당수는 기후가 망가졌다는 내러티브에 들어맞는 단기적 변화에는 초점을 맞추지만, 잘 맞지 않는 이야기는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그냥 날씨’일 뿐이라고 넘어가버리는 것이다.” 그가 지난해 2월에 쓴 글이다.
콜로라도대학교 볼더 캠퍼스에서 환경학을 가르치는 로저 필크 주니어 역시 기후에 대한 우려는 ‘기우’라고 생각하는 넌알라미스트(nonalarmist)다. 내가 필크를 ‘회의론자’라고 부르지 않는 건, 그는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와 관련된 변화가 실재하고 심각하며 아마 최소 수십 년 안에는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선뜻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필크가 (비교적) 낙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전화를 걸자 그는 반갑게 받아줬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갑작스럽게 등장해 눈에 띄지 않게 위협을 가하는 문제보다는 느리게 시작해서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주는 문제가 낫지 않겠어요? 후자가 기후 위기라면, 전자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소행성이겠죠.”
기상과 기후 관련 재난에 대한 장기 트렌드 분석이 필크의 전문 분야 중 하나다. 그에 따르면 허리케인, 홍수, 화재, 가뭄 등 재난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일기예보 기술, 인프라, 재난 대비와 대처 관련 정책 등이 훨씬 고도화된 것이 이유다. 동시에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가 즐긴 부의 막대한 증가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1940년대와 비교했을 때, 홍수가 미국 GDP에 미치는 영향은 70% 이상 감소했어요.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줄고, GDP 대비 피해가 줄어드는 건 전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일이죠.” 필크의 말이다.
필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의 양은 상당하다. 1920년대에는 세계에서 매년 자연재해로 인해 5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1년에는 중국에서만 홍수 피해 사망자가 400만 명에 달했다. 홍수로 인한 익사와 체온 저하, 그 이후 생겨난 질병과 기아 등이 원인이었다. 더 최근의 예를 보면, 현재 방글라데시의 일부인 볼라에서는 1970년 사이클론으로 50만 명이 사망했다.
2010년대의 연간 평균 기상 재난 사망자 수는 5만 명 이하였다. 한 세기 전에 비해 10분의 1로 떨어졌다. 플로리다에 상륙했던 역대 최악의 허리케인 이언은 지난해 최소 119명의 사망자를 냈다. 비슷한 규모로 추정되는 1900년의 허리케인 그레이트 갤버스턴 피해 사망자가 8000명으로 추산되는 것에 비하면 극히 일부다. 물론 아직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문제에 취약한 최빈국들이 있으나, 그 지역에서조차 기후 재난으로 인한 인명과 경제적 손실이 과거 대비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지구온난화는 실재하고, 더 악화되고 있지만 인류도 함께 적응하고 있어요. 그 영향을 상쇄할 수 있을 거예요.” 필크의 말이다.
위험 가능성이 낮을지라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몇 년 전이었다면 나는 쿠닌과 필크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만큼의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사이 팬데믹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기후에 의한 인류의 파멸이라는 발상을 비웃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1900년대 초반의 인플루엔자 발병에 맞먹는 대재앙적 팬데믹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무시했다. 우리는 에볼라, SARS, MERS, 광우병을 엄청난 인명 손실 없이 뚫고 지나오지 않았던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러스학, 공중보건 연구, 공중위생, 약 개발, 의학 등은 전부 크게 발전했다. 그렇기에 과거 세계를 공포에 밀어 넣었던 팬데믹과 현재 상황에 대한 비교는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20년 봄, 우리 모두는 자연이 얼마나 신속하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가장 부유하고 기술력이 발달한 사회조차 압도해버리는지 경험했다. 내가 남들에게 추천해온 ‘지적인 겸허함’에 대한 교훈이 되는 사건이었다. 나부터가 겸허함을 좀 더 지녀야 했다.
몇 가지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과거가 미래 예측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면? 기후 위험이 점진적으로, 비교적 예측 가능하게 진화하지 않고 갑자기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다면? 해수면 상승 같은 일에 대처하려면 준비 기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할 때의 위험과 과잉 대응 시의 위험은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위험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보기 위해,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 매니저 중 한 명인 세스 클라만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라만은 기후변화 전문가는 아니지만, 모든 유형의 위험에 대해 수십 년간 깊이 생각해온 인물이다. 또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잘 바꾸는 희귀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선뜻 인정했다. “정말 많은 전문가와 얘기를 나눴고, 정말 많은 증거를 봤습니다. 저는 기후가 변하고 있다고 확신해요. 기후변화는 제가 진행하는 자선 활동에서 우선 순위로 등극했습니다.” 그가 줌을 통해 나에게 전한 말이다.
“국가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생명 등 존재 자체를 뒤흔들 가능성이 높은 위험을 마주하게 된다면, 위험 가능성이 5%에 불과하다고 해도 헤징에 나서야 할 겁니다.”

암을 치료하듯이
“우리는 가격이 아주 저렴할 때 보호 대책을 사두려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 젊고 건강할 때 보험에 든다든가. 평생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죠.” 그는 잉글랜더와 비슷한 말을 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들은 기후변화가 주는 피해가 더욱 명백해지기 전에 가역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일찍 행동한다면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잘 대처할 수 있겠지만, 아직 한참 남은 일이라면서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될 겁니다. 우린 바로 지금 행동해야 하는 거죠.”
즉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기후변화가 암과 비슷하다면 정말 옳은 말이다. 암은 초기 단계에서는 관리나 치료가 가능하지만, 말기로 갈수록 파멸적이 된다.
클라만은 가장 간단하고 명백한 기후 헤징이 ‘탄소세’라고 말했다. “석유, 가스, 석탄 가격을 올려야 합니다. 대안 에너지에 경제적 이점을 부과하는 거죠. 그럼 시장이 알아서 움직일 겁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탄소세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만 부과될 경우, 이는 진지한 기후변화 정책이 아니라 미덕을 과시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탄소세는 짐을 불공평하게 부담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시골 거주자보다는 도시 거주자에게 유리하고 제조업보다는 지식 산업이 유리하다.
버락 오바마는 재임 시절 탄소세를 거부했다. 이유가 있었다. 오바마는 유권자들이 탄소세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프랑스의 탄소세는 극우 세력의 힘이 된 ‘노란 조끼’ 시위를 불러왔다.
내가 늘 믿어왔던 대로, 미래 세대에게 중대한 위험이 있을 것을 알리고 이에 따라 지금 세대가 희생하길 바라는 것은 인간 본성에 배치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위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효율적인 행동은 쉽지 않다
채굴회사 대표 스텐스고르와 식사를 하던 중, 나는 그가 언급한 수치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2040년까지 니켈, 코발트, 구리, 리튬, 망간, 그래파이트, 크롬, 희토류 등 주요 광물을 현재의 여섯 배 이상 채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광물은 러시아, 중국, 콩고 등에서 주로 나온다. 전략적, 환경적, 인도주의적 위험이 따르는 지역들이다. 해당 지역을 제외한 채 여섯 배 이상의 광물을 캐내는 것이 가능할까?
이건 스텐스고르 같은 사람들에게는 끝내주는 뉴스여야 한다. 그린란드 측에서 협조한다면야 말이다. 우리가 식사를 한, 빙산이 흩어져 있는 만의 건너편에는 ‘디스코섬’이 있었다. 롱아일랜드의 두 배 정도 크기이며 주민은 1000명 정도 거주한다. 스텐스고르는 그 섬에 니켈이 1200~1600만 톤 정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의 니켈광 중 하나인 러시아 노릴스크에서 1940년대 이후 생산된 니켈의 양은 830만 톤 정도다.
탄소중립을 꼭 이뤄내고 싶은 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청정’ 에너지를 위해서는 디스코섬이 여러 개 필요할 것이다. 굳이 ‘청정’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건, 별로 적절한 명칭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에도 공짜 점심 같은 건 없다. 원자력, 바이오 연료, 천연가스, 수력전기, 심지어 풍력과 태양광까지 포함한 모든 형태의 에너지는 대규모로 사용될 경우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산업용 사이즈 풍력발전용 터빈 하나에는 보통 희토류 금속 1톤, 그리고 채굴 과정이 파괴적이고 오염이 심하기로 악명 높은 구리 3톤이 들어간다. 압도적이고 지금으로서는 탈출이 불가능한 화석연료 의존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청정에너지’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화석연료를 수송, 발전, 난방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질소비료를 생산하는 데 화석연료가 필요하다는 걸 우리가 고려하기는 할까? 캐나다 학자 바클라브 스밀에 따르면, 화석연료가 없으면 80억에 육박하는 전 세계 인구의 최소 40%, 최대 50%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주로 탄화수소 에틸렌과 프로필렌으로 만드는 플라스틱, 점결탄과 천연가스로 만드는 강철 그리고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없는 현대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영웅적 낙관주의로 스밀의 말을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유기농, 지역 내 유통과 소비에 더 많은 힘을 쓸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으로, 이는 거의 마술적 사고에 가깝다. 이런 방식으로 기후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려면 수백만 명이 귀농해야 하고, 지구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간의 숫자가 훨씬 줄어든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풍력과 태양광 투자에 환호하지만, 재생 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화석연료에 대한 전반적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해는 언제나 비추지 않고, 바람도 늘 불지 않는다. 여분의 에너지를 우리에게 필요한 정도의 규모로 저장하는 법은 발명되지 않았다. 결국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는 그대로다.
독일은 이런 마술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국가다. 독일은 역사적인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 에너지 전환)에 착수했지만 성과는 보잘것없었다. 21세기로 넘어올 무렵, 독일은 1차 에너지의 85% 정도를 화석연료에서 얻었다. 지금 그 비율은 78% 정도다. 꽤 줄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로 얻는 전기의 비율을 늘리기 위해 쓴 엄청난 비용에 비하면 감소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문제는 많았다. 2011년 후쿠시마 재앙 직후 독일 내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한 앙겔라 메르켈의 돌연한 결정도 그중 하나였다. 결국 독일은 석탄과 수입 석유, 가스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자들이 에너지 저장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찾아낼 무렵이 되면 상황이 이미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중앙과 지방 정부가 님비(NIMBY)주의를 극복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독일 북부에서 에너지가 부족한 남부로 송전할 수 있는 대규모 에너지망을 허가하고 건설할 수도 있다. 혹은 환경운동가들이 숙고 끝에 마침내 원자력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도 있다. 원자력은 수력발전과 더불어 안정성과 에너지 밀도를 갖췄으며 직접적 탄소 배출이 없는, 몇 안 되는 에너지원 중 하나다.
이런 변화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암에 대한 비유를 조금 더 이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 효과가 있다 해도 부작용이 심할 수 있는 암 치료와 기후 치료는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 치료 사이 갭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크다. 그린란드에 다녀온 뒤 문제점은 더욱 분명해졌지만, 해결책은 그렇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답일 수 있다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이 미쳤다. 내가 오랫동안 품어온 믿음이 해결책을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바로 ‘시장’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거대하고 끈질긴 문제들에 대처했던 방식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수십 년간 세계 은행, IMF, 국제개발기구 등 전 세계 기관들은 최빈국에 엄청난 양의 돈을 쏟아부었다. 기발한 개발 계획들은 지역의 현실과 만나 무너져 내렸다. 개발도상국은 빚의 함정, 원조가 부채질한 부패, 쇠약함을 불러오는 의존의 사이클에 갇히곤 했다. 베트남과 중국 같은 국가들은 ‘바텀 업’ 방식의 시장 주도 개발 모델을 택하고 나서야 수억 명을 극빈에서 구할 수 있었다.
스밀이 주목한 다른 놀라운 팩트도 있다. 1965년 대비 2015년 미국의 물 소비 증가량은 4% 미만이다. 같은 기간 동안 인구는 60% 이상 늘었다. 법과 규제, 커져가는 환경에 대한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시화의 영향도 컸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늘수록 물을 줘야 하는 정원은 줄어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세계 담수 공급의 70%를 쓰는 농업 부문에서 왔다. 물 낭비가 많은 담수관개 대신 스프링클러와 점적관개로 전환하는 농부들이 점차 늘어난 것이다. 물을 아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점적관개 기술이 더 높은 작물 수량과 이윤 폭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농업기술 기업 N-드립의 최고 지속가능성 이사 세스 시겔은 “담수관개를 없앨 수 있는 혁명적이고 공격적인 접근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이 혁신의 대부분은 자유시장 주도 아래 일어날 것이며, 정부와 NGO들이 중요한 유인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고결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행동에는 거창한 야심과 빈약한 실행력이 어우러진 ‘톱타운’ 방식의 계획이 진행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한때 엘 고어가 에탄올을 강력히 지지하던 때가 있었다. 한참 지난 2005년, 조지 W. 부시는 RFS(Renewable Fuel Standard, 신재생연료 의무 혼합제도)를 통해 이를 자신의 정책으로 만들었다. 이 제도는 현재 완벽한 실패로 간주된다. 규제를 준수하려면 수십억 달러가 들지만, 농업이 주력 산업인 주의 정치인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폐기할 수도 없게 됐다.
배출권거래제가 이산화탄소 배출 통제를 위한 시장친화적 방식으로 포장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 캘리포니아, UN 기구들에 이르기까지 산업계와 정부는 모두 배출권 거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써먹거나 부패시킬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15년 파리협정 복귀를 발표하며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파리협정은 아주 거창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해, 여기 서명한 국가들은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훈장을 다는 셈이다. 그러나 강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는 데다,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그리고 석탄 의존이 점점 늘어나는 인도 같은 국가들이 스스로 밝힌 배출 목표를 달성하리라는 기대를 품는 건 공상을 넘어 부조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시장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 의미 있는 환경적 진전이 있다.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7년 60억 톤을 기록해 정점을 찍었으나, 21세기 전체를 따져봤을 땐 연간 50억 톤 아래로 내려갔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미국 GDP는 50% 이상 성장했고 총인구가 17% 정도 늘었음에도 말이다.
여기에는 재생 가능 에너지, 특히 풍력이 기여했다. 에너지 효율 의무화의 영향도 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2017년까지 탄소 배출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발전 연료를 석탄에서 천연가스로 바꾼 것이었다. 가스는 석탄에 비해 약 절반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최근 10여 년간에 걸쳐 일어난 프래킹(fracking, 천연가스 채취법 중 하나) 혁명의 결과다. 여러 환경 활동가들은 지하수 오염 위험이 있는 프래킹을 격렬히 반대했지만, 이를 통해 미국은 세계 최대 가스 생산국이 되었다. 원자력처럼 프래킹에도 메탄 배출 등 무시할 수 없는 환경적인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배출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유용한 해결책에 관심이 있다면, ‘완벽함’을 ‘좋음’의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길게 봤을 때,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거창한 해결책보다는 그에 부합하는 부분적 해결책을 도입하는 게 진전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거대한 아이디어보다는 수천 개의 작은 아이디어들이 쌓여 영향력을 늘리는 식이다. 기후변화와 직접적 연관이 없어 보일지라도, 시장의 시험을 거치는 방식으로 나타나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향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린란드를 떠나며
그린란드에서 보낸 마지막 날 밤, 나는 배를 탔다. 일루리사트 빙하 피오르에서 떨어져 나와 디스코만의 깊은 물 위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거대한 빙산들 사이를 지나갔다. 이런 빙산 중 하나가 여기서부터 북대서양까지 흘러가 1912년 4월 14일 밤, RMS 타이타닉을 만나 침몰시켰을 것이다. 이는 나의 상상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추정이다. 그린란드는 이와 비슷한 끔찍한 놀라움을 훨씬 더 큰 규모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지역이었다. 우리 역시 갑자기 침몰해버리는 순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 치명적 순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오만하지 않다. 우리의 문제는 오만함이 아니다. 양극화, 마비, 과학적 제도를 포함한 모든 제도에 대한 엄청난 불신이 우리의 문제다. 우리는 팬데믹을 지나며 그 점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효과적인 기후 대책은 모든 정책이 작동하는 사회적, 정치적 현실을 인지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에 개선할 점을 몇 가지 생각해봤다.
1. 비판하는 이들을 참여시켜라. 모욕과 불협화음은 결코 훌륭한 설득 도구가 못 된다. 기후 회의론자를 겁주거나 검열해서 입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잉글랜더의 경우, 사실상 “닥쳐”라고 쓰인 서한에 서명한 것보다는 “이야기합시다”라는 말을 한 덕분에 나를 설득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예전 칼럼에서 막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분노에 찬 반응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나는 기후 활동가들에 대해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매력이 없으며, 바다가 물러가고 바람이 잦아들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지식을 아는 척하는 계층’이라고 썼다.)
2. 팩트와 예측, 그리고 정책과 예측을 분리하라. 지구온난화는 ‘팩트’다. 인간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도 팩트다. 온도와 해수면 상승이 목격되고 있는 것도 팩트다. 우리가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경우 계속 올라갈 거라는 것도 팩트다. 하지만 증가 속도는 가장 복잡한 컴퓨터 모델링을 동원해도 예측하기 어렵다. 과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는 부분만큼이나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소통에 나서야 한다. 그러면 신뢰는 증진될 것이다. 기후 과학자들이 해당 분야에서 자신들이 가진 권위만으로 현실성 없는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신뢰는 바닥을 찍을 것이다.
3. 기후가 중도좌파만의 관심사가 되지 않게 하라. 여러 보수주의자들이 기후문제에 몸서리를 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제까지 제안된 여러 해결책에서 국가 통제주의적 낌새가 묻어났고, 비용도 그만큼 막대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는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재화이며 진정한 공동의 관심사여야만 한다. 만약 당신이 보수주의자라면, 현실적인 정책 제안을 짜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차세대 원자력을 위한 빠른 인허가 절차와 세금우대 조치 등이 있겠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지난해 내가 그랬듯, 행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먼저 설득부터 당해야 할 사람들이긴 할 터다.
4. 정직해져라. ‘곧’ 기후 재앙이 닥친다는 이야기는 오해를 살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제각각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계속해서 경고음을 내다간 오히려 피로감만 줄 수 있다. 물에 잠긴 자유의 여신상을 보여주는 대신, ‘티핑 포인트가 곧 닥칠 수 있다’고 표현하라.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날 최악의 결과는 아직 먼 훗날의 일일 수 있지만, 그걸 되돌릴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하라. 이번에도 암에 비유하는 게 유용할 수 있겠다. 무시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고, 4기보다는 2기에 대처하는 게 훨씬 낫다.
5. 겸허하라. 기후변화에 대해 에네르기벤데급의 대응을 할 경우,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을 경우 잃게 되는 것도 많다. 작게 생각하는 게 좋을 때가 있다. 스밀의 지적처럼, 주택을 지을 때 삼중창을 달고 단열 처리를 제대로 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도 좋은 대응책이 될 것이다.
6. 증손주들이 겪게 될 문제에 대한 해결을 시작하라. 해수면 상승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마이애미나 콜카타를 옮기는 건 지금 당장도, 또 앞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개발을 막고 해안선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7. 경제성장을 문제점으로 여기지 말라. 산업화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일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일종의 ‘탈산업화’를 시행해야 하나? 세계가 빈곤과 궁핍에 빠져들게 될 텐데. 우리는 경제성장을 기후변화에 맞서는 싸움의 ‘동맹’으로 여겨야 한다. 경제성장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경감해줄 수 있는 부를 생산하고,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기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가난한 국가에 더욱 해당되는 말이다. 기후 회복력을 키우는 데에는 수십억 달러의 해외 원조가 아니라 외국의 투자, 자유무역, 시장 기반 개혁과 바람직한 규제 제도가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8. 청정에너지 이용에 따라오는 환경적 ‘트레이드오프’를 진지하게 생각하라. 풍력발전을 지지하는 동시에 전력을 공급해줄 송전선 건설을 반대할 수는 없다. 풍력발전을 지지하는 동시에 터빈 설치를 반대하거나, 미국 내 희토류 채굴의 타산성을 떨어뜨리는 환경 규제에 찬성할 수는 없다. 그 결과는 의미 있는 규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중국 같은 곳에 채굴을 맡기는 상황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환호하는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한 천연가스 프래킹 혁명에 반대할 수는 없다.
9. 미래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도덕에 대한 문제다. 우리가 미래에 진 빚을 책임진다고 주장하는 보수주의 운동은 자녀들에게 본보기를 만들어주는 동시에 그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중의 책임을 지고 있다. 개인의 재무 상황, 사업상의 결정, 사회보장제도, 연방 부채 및 재무 건전성 등 온갖 위험을 고려할 때와 같이 세심한 논리를 적용해 기후 정책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