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볼 수 있었던 글로벌 패션 하우스들의 '디자인'적 진면목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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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볼 수 있었던 글로벌 패션 하우스들의 '디자인'적 진면목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난 낯익은 패션 브랜드들. 그들 각자의 색깔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스펙터클을 보는 즐거움.

오성윤 BY 오성윤 2023.06.06
 
팔라초 세르벨로니 정원에 설치된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전시 설치 작품 ‘노마딕 파빌리온’.

팔라초 세르벨로니 정원에 설치된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전시 설치 작품 ‘노마딕 파빌리온’.

매해 4월이면 밀라노행 비행기표 가격과 시내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세계 최대 디자인 행사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문이다. 이 행사는 1961년 이탈리아 가구산업 육성을 위해 출범한 살로네델모빌레, 즉 가구박람회가 그 시초이니 62년이나 된 셈인데, 놀랍게도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축제의 주제가 가구에서 디자인 전체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행사 장소가 박람회장에서 도시 전역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실내 전시인 살로네델모빌레는 물론 이벤트 전시인 푸오리살로네가 밀라노 곳곳에서 열리며, 소규모 브랜드, 동네, 레스토랑, 카페 차원에서도 자발적으로 이 주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를 연다.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여행 비용과 인파에도 여행자들이 여전히 이 시기에 밀라노를 찾는 건 그런 이유다. 밀라노의 브랜드들과 디자이너들, 방문자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아 도시 전체에 선순환을 만들고, 그것이 방문자에게 안겨주는 건 새로운 경험의 범주를 넘어 삶의 대한 영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즐거운 놀라움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는 도시’의 감흥이랄까.
유명 패션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이들에게 브랜드의 진면목을 보여주거나 새로운 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장이 되었고, 방문객에게는 구글 검색창에 ‘milano design week’와 함께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의 이름을 집어넣어보는 것도 이 주간의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들과 협업 형태로 가구를 선보이는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이 올해 전시 장소로 택한 것은 팔라초 세르벨로니였다. 밀라노 시내 중심에 위치한,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신고전주의 궁전. 아틀리에 오이, 로우 에지스, 아틀리에 비아게티, 마르셀 반더스, 마크 뉴슨 등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협업한 가구들은 이 화려하고도 고적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궁전 실내와 어우러지거나 대비되며 저마다의 매력을 뿜어냈고, 특히 내부 정원에 세워진 1600여 장의 알루미늄판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 ‘노마딕 파빌리온’은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큰 화제를 모은 작품 중 하나였다.
 
아티스트 가에타노 페세와 협업해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를 설치 작품 ‘VIENI A VEDERE’로 꾸민 보테가 베네타.

아티스트 가에타노 페세와 협업해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를 설치 작품 ‘VIENI A VEDERE’로 꾸민 보테가 베네타.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패션 브랜드 행사에서 만날 수 있는 공통적 태도는, 이 행사를 단순히 신제품을 소개하는 장으로 삼는 대신 브랜드의 감성이나 철학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품은 뒤쪽으로 미뤄두고 브랜드가 공감하는 아티스트의 미술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올해의 대표적 예는 보테가 베네타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아티스트인 가에타노 페세와 협업해 몬테나폴레오네 플래그십에 꾸민 설치 작품 ‘VIENI A VEDERE(Come and See)’였다. 레진과 패브릭으로 제작된 거대한 통로 형태의 이 인스톨레이션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마치 동굴 속을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팔라초 이심바르디에서 열린 로에베의 ‘로에베 체어’.

팔라초 이심바르디에서 열린 로에베의 ‘로에베 체어’.

로에베의 전시 공간 역시 궁전이었다. 장인정신과 공예에 깊은 관심과 힘을 기울여온 조나단 앤더슨이 팔라초 이심바르디에서 ‘로에베 체어’라는 전시를 선보이겠다고 했으니 가구 애호가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은 예정됐던 일. 그는 골동품 상인에게 산 22개의 앤티크 제품과 영국의 아틀리에에서 특별 제작한 8개의 스틱 체어를 기반으로, 브랜드 내외의 장인들과 협업한 30개의 의자를 선보였다. 의자들은 가죽, 라피아, 펠트는 물론 종이, 노끈, 양털, 포일 등의 소재로 기상천외하게 재단장되었고, 그들이 밀라노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차 있는 풍경은 로에베와 조나단 앤더슨이 끊임없이 강조해온 장인정신과 혁신의 조화에 대해 저절로 생각하게 했다.
 
에르메스 홈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 샬럿 마커스 펄맨이 직접 연출한 공간에서 펼쳐진 에르메스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 전시.

에르메스 홈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 샬럿 마커스 펄맨이 직접 연출한 공간에서 펼쳐진 에르메스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 전시.

반면 에르메스는 새로운 홈 컬렉션을 공개할 공간으로 직접 빚은 공간을 택했다. 에르메스 홈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인 샬럿 마커스 펄맨이 직접 공간 연출까지 도맡은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들이 전시 환경을 구성하는 데에 ‘최소한의 선택’을 하고자 노력했다는 것. 자연적인 생명력, 미니멀리즘 등 본질적 요소에 주목한 이번 컬렉션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동굴 같은 은근한 조명 아래 콘크리트 골조와 쇠막대만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방문자로 하여금 촉각적 심상에 집중하도록 해 가죽, 유리, 패브릭, 도자 등 자사 제품 소재의 품질을 좀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살로네델모빌레 전시에서 선보인 베르사체의 새로운 홈 컬렉션.

살로네델모빌레 전시에서 선보인 베르사체의 새로운 홈 컬렉션.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출발점이자 여전한 중심, 살로네델모빌레에서 만날 수 있는 패션 브랜드도 있었다. 베르사체, 펜디, 에트로 같은 독창적 미감을 바탕으로 리빙 분야까지 진출한 브랜드들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베르사체는 럭셔리리빙그룹과 협업해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여 전시 기간 내내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개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제품은 현대 건축가 로베르토 팔롬바, 루도비카 세라피니의 협업으로 만든 ‘젠세이셔널 소파’. 베르사체의 고전주의와 신화적 영감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추구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이었다. 500m² 규모의 완전히 분리된 ‘블랙박스’ 내부에 빛을 반사하는 천장, 후면 조명이 들어간 실크 크레이프 패널로 조성한 전시 공간 역시 살로네델모빌레 같은 행사에서 패션 하우스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할 만했다.
 
마르니가 런던아트월페이퍼와 협업해 만든 월페이퍼 컬렉션 ‘마르니 런던 아트’ 컬렉션.

마르니가 런던아트월페이퍼와 협업해 만든 월페이퍼 컬렉션 ‘마르니 런던 아트’ 컬렉션.

다양한 형태의 협업 역시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날 수 있는 묘미다. 이탈리아 브랜드 마르니가 올해 보여준 행보가 좋은 예다. 이들은 벨기에 디자인 브랜드 세락스와 협업해 첫 식기 컬렉션 ‘미드나이트 플라워’를 선보이는가 하면, 동시에 벽지 전문 브랜드인 런던아트월페이퍼와 협업해 ‘마르니 런던 아트’ 컬렉션도 선보였기 때문이다. 둘 모두 최상급 품질의 리빙 제품들 위에 마르니 고유의 감성, 패턴, 색감을 고스란히 살려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브랜드들에 불어넣는 동력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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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PHOTO 루이 비통/보테가 베네타/로에베/에르메스/베르사체/마르니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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