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국경에서 내가 목격한 사람들
같은 국경에서 다른 목적으로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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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본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에게, 걸어서 다른 나라의 땅을 밟는 경험이란 마치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다. 베트남과 국경을 맞닿은 캄보디아로 향할 때는 언제나 육로로 입국했다. 그럴 때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했다. 꽤 고생한 몰골로 백팩을 든 채 서 있는 여행자, 커다란 박스를 카트로 잔뜩 나르는 21세기 보부상, 심카드와 달러를 흔들며 다가오는 브로커, 옆집에 마실 가는 듯한 차림으로 출국하고 또 입국하는 국경 지역 사람들까지. 제복을 입은 이민국 공무원이 곳곳에 서 있는 것과는 달리 엄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다채로운 삶의 모습 속에서 유독 궁금증을 자아내던 이들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나와 같은 국적의 사람들, 나와 같은 피부색을 갖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 그러나 사뭇 다른 덩치에 팔뚝과 종아리에 잔뜩 문신을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들. 늘 궁금했다. 이 먼 국경에서 그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산 지 12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뉴스보다 이 나라, 우리 동네 소식에 더 예민하다. 더욱이 호찌민시티나 하노이 같은 대도시가 아닌 메콩델타의 시골 마을에서 지내다 보니 내가 직접 보고 듣는 이야기, 예컨대 메콩델타 땅이 매년 물에 잠기고 있는 기후변화의 심각한 현실 같은 소식은 한국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다. 어느 순간부터 부쩍 국경 지역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이야기되지 않던 사람들. 누구도 나서서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이따금 현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군수군 소문이 오가곤 했다. 막연하게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하고 무시할 순 없었다. 베트남, 캄보디아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그들과 같은 한국 사람이었으니까.
코로나 봉쇄의 여파가 풀리면서 나는 더욱 자주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를 왕래하게 되었다. 매달 캄보디아를 드나들며 프놈펜뿐 아니라 깜뽓, 시아누크빌 등을 오가면서 출장 업무를 수행했다. 여권 페이지마다 캄보디아 비자 스티커가 늘어났고, 행여나 누군가가 그런 나를 수상한 사람처럼 볼까 싶어서 평소보다 말쑥한 모습으로 입국 심사대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인도 여행자도 아닌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나와 그들뿐이었다. 제아무리 다른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신경만 더 쓰였다.
“불법 도박하는 사람들이야. 아는 척하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마.”
막 국경을 넘어서 프놈펜에 도착했던 저녁, 캄보디아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나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한다. 쉽게 얘기하면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와 사회 개발을 지원하는 일이다. 거창하지만 결국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는 게 나의 일이다. 그런 나에게 그들의 존재를 쉬이 무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도박도 나쁜 거라는데, 불법 도박은 대체 뭘까? 또 그런 일을 하려고 한국을 떠나 캄보디아까지 와 있는 이유는 뭘까? 캄보디아에선 단속을 피하기 쉬워서 그렇다는 친구의 말은, 결국 잡히지만 않으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들렸다. 나에게는 협력과 존중의 땅인 이 공간이 그들에게는 단속을 피해 불법을 저지르는 기회의 땅이었다.
올해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의 조명을 받기 전부터 캄보디아 범죄 단지 문제는 이미 베트남, 태국, 미얀마에서 공공연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한국인만 납치를 당한 게 아니었다. 인근 국가의 시민들도 납치당하고 감금당했다. 범죄의 유형은 한국에서 알려진 것과 거의 똑같았다. 고액의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채용 공고에 속고 속아서 어디론가 끌려간다. 여권과 휴대전화를 모두 빼앗긴 채 불법 도박이나 로맨스 스캠,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게 된다. 주로 경찰이나 법원을 사칭해서 피해자를 꾀어낸다는 레퍼토리까지 모두 같았다. 현지 사람들의 목소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피해자였고, 문제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특정한 한 국가로 기울기 쉬웠다.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직업 윤리상 동의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10월 한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을 때, 베트남뿐 아니라 인근 나라 사람들까지 모두 환호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동안 피해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인근 국가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국가보다 훨씬 강력한(그들의 의견으로는 그렇다) 나라, 대한민국이 이 문제에 칼을 뽑았으니 범죄 조직이 뿌리째 뽑혀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항간에는 한국 정부가 항공모함을 타고 군대를 이끌고 와서 소탕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피해자가 속출하고 나서야 이 문제는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인식되었다.
연일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아는 사람의 말만 믿고 해외에 갔다가 끌려갔다는 사례도 있었고, 여행 도중에 납치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피해자는 아니었다. 텔레그램을 통해서 전달받은 수상쩍은 채용 공고 속 고액 보장이라는 네 글자만 보고 비행기에 오른 이도 있었다. 정상적인 일은 아닐 거라 생각은 했겠지만, 잠깐 한탕 뛰고 온다는 생각으로 갔다가 연루된 경우다. 이미 자신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아버린 그들은 단속 이후에도 국내로 귀환하는 것을 거부하고 현지에 머물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들의 마음속에서 불법이라는 자각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주변의 눈을 피해 해외로 가서 돈을 벌고 오겠다는 그들의 모습은 국경에서 내가 보아온 사람들과 겹쳐졌다.
국경에서 그들을 볼 때마다 괜히 혼자 움츠러들었던 까닭은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캄보디아 범죄 단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정부가 제일 먼저 꺼내 든 카드는 캄보디아 대상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사업 재검토였다. 국제개발협력은 개발도상국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ODA보다 더 큰 개념이기는 하지만, 내가 맡은 사업의 대부분이 정부의 ODA 지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일한다는 생각까지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우리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같은 땅에서 누군가는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고 누군가는 우리나라를 피해서 범죄를 저질렀다. 그 사실이 두드러기처럼 몸 곳곳에서 돋아나 날 불편하게 했다.
국제개발협력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하면 대체로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답변을 듣는다.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나는 좋은 일을 하려고 이 일을 택한 게 아니라 직업으로 이 일을 선택한 것뿐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좋은 일이기 때문에 돈을 적게 벌어도 된다는 자기 최면에 빠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좋은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선택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혹시나 내가 가진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은 아닐까 성찰해봤다. 내가 뭐라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나는 누군가를 위하는 일을 위해 국경을 넘고, 그들은 누군가를 해하는 일을 하고도 걸리지 않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그걸 바꿀 방법은 없었다.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나는 캄보디아와 인접 국가의 범죄 단지에서 자발적으로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 윤리와 도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잠시 돈만 벌고 오겠다는 생각,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벌어도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은 어느새 캄보디아의 국경, 목숨을 잃어도 이상할 게 없는 땅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을 밀어붙일 정도로 팽배해져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끼리 월세거지, 전세거지, 빌라충이라 부른다는 기사는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가담한 한국인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증상일 뿐 원인은 이미 온몸에 퍼져 있다. 기사가 하나 떠오른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센터에서 매년 실시했던 과거 조사 중에는 ‘10억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항목이 있었다. 2012년 조사에서 이 문항에 긍정한 학생은 초등 12%, 중학 28%, 고등 44%였다. 그러나 마지막 조사 결과를 찾을 수 있는 2019년 같은 항목에 초등학생 23%, 중학생 42%, 고등학생 57%가 긍정의 답변을 했다. 그동안 떨어진 10억원의 가치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속도로 모럴 해저드가 가속화되어 가는 걸 우린 이를 악물고 모른 척한 게 아닐까?
조용석은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다. 미얀마를 거쳐 현재는 베트남 남부 메콩델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조용석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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