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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올림픽 한국 첫 메달 김상겸에 대한 4가지 이야기

2026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김상겸은 오스트리아의 벤야민 카를에게 0.19초 뒤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팀 코리아의 대회 첫 메달이자, 개인 종목 역대 최고령 메달리스트,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로 기록된 김상겸의 메달 레이스 비하인드 스토리.

프로필 by 정서현 2026.02.09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찰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정교한 레이스이자 반복된 루틴으로 완성되는 정확도의 미학.
  • 15년의 세월 동안 축적한 미세한 감각과 운영 능력으로 일궈낸 월드컵 첫 메달의 쾌거.
  • 척박한 인프라와 고단한 생계의 압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다져온 독보적인 생존 본능.
  • 운이 아닌 세 번의 올림픽 경험과 인고의 시간이 빚어낸 한국 통산 400번째 메달의 영광.

평행대회전은 반복 훈련

김상겸이 출전한 평행대회전은 두 명이 나란히 출발해 코스를 평행으로 깎아 내려오는 종목으로, 한번 실수가 승패를 좌우한다. / 출처: 게티이미지스

김상겸이 출전한 평행대회전은 두 명이 나란히 출발해 코스를 평행으로 깎아 내려오는 종목으로, 한번 실수가 승패를 좌우한다. / 출처: 게티이미지스

김상겸을 설명할 때 먼저 종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올림픽 스노보드 종목은 5개로 구성되는데, 크로스, 슬로프 스타일, 빅에어, 하프파이프 그리고 평행대회전이 있다. 김상겸이 출전한 평행대회전은 두 명이 나란히 출발해 코스를 평행으로 깎아 내려오는 종목으로, 하프파이프처럼 화려한 멋을 보여주는 경기라기보다, 실수하지 않는 속도를 설계하는 레이스에 가깝다. 직선에서 보드를 눌러 속도를 끌어올리고, 게이트 사이를 통과할 때는 보드의 엣지를 칼처럼 세워 라인을 만든다. 한 번 흔들리면 그대로 끝이다. 점수판이 아니라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는 레이스다. 단 한 번의 삐끗함이 메달을 갈라버리는 종목에서 김상겸은 오래 버텼다. 평행대회전은 결국 가장 빠른 사람보다 가장 정확한 사람에게 우승을 주는 방식으로 종종 결론 난다. 그래서 이 종목의 영웅은 반복된 루틴과 경기 운영으로 만들어진다. 김상겸의 커리어는 그 루틴을 몸에 새긴 시간의 연속이었다.



데뷔 15년 차

스노보드는 월드컵부터 올림픽까지, 늘 변수가 많다. 눈의 질감이 다르고, 코스 세팅이 다르고, 그날의 바람이 다르다. 그래서 우승은 종종 실력이 아니라 경기 운영 능력에서 결정된다. 김상겸은 그 운영을 경험으로 채워왔다. 2009년 FIS 월드컵 데뷔 이후 수십, 수백 번의 스타트를 끊으며 코스의 언어를 배웠고, 그 시간이 마침내 메달로 환산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2024–25 시즌 월드컵 개막전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데뷔 15년 만의 첫 월드컵 메달이라는 헤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올림픽도 같은 맥락이다. 2014 소치, 2018 평창, 2022 베이징을 거치며 그는 한 번의 대회보다 꾸준히 출전하는 선수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고배를 마시면서도 계속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는 점이다. 평행 종목에서 오래 뛴 선수만이 알게 되는 감각이 있다. 스타트 반 박자, 코너의 엣지 각도 1도, 게이트 통과 타이밍 등 그 미세한 조정이 토너먼트에서 승패를 가른다. 김상겸은 그 미세한 차이를 축적해온 선수였다.



인간 승리의 과정

한국에서 저변이 넓지 않은 스노보드 선수를 이어가기 위해 그는 생계와 훈련을 병행해야 했다. / 출처: 게티이미지스

한국에서 저변이 넓지 않은 스노보드 선수를 이어가기 위해 그는 생계와 훈련을 병행해야 했다. / 출처: 게티이미지스

김상겸의 은메달이 인간 승리로 읽히는 건, 경기장 밖의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스노보드는 한국에서 저변이 넓지 않다. 훈련 인프라와 해외 전지 비용, 장비 유지비가 크게 드는 종목인데도 관심과 지원은 늘 충분하지 않았다. 몇몇 보도는 그가 생계와 훈련을 병행해야 했던 시기,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시간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느릴지 몰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미담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비롯된 것처럼 들리는 이유다. 중요한 건 고생담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환경이 김상겸의 경기 스타일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평행대회전은 큰 모험보다 작은 실수의 관리가 핵심인 종목이다.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아도, 장비가 100%가 아니어도, 멘탈이 흔들려도 레이스는 출발한다. 이 종목의 베테랑은 무너지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한다. 김상겸이 보여준 건 바로 그 생존 감각이었다.



은메달은 운이 아니다

리비뇨 스노파크의 결승은 짧고 잔인했다. 눈 위에서 몇십 초, 그 안에 커리어가 압축된다. 김상겸은 결승에서 벤야민 카를에게 0.19초 뒤져 은메달을 확정했다. 카를은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로 커리어를 마무리했고, 김상겸은 네 번째 올림픽에서 마침내 첫 메달을 손에 넣었다. 토너먼트는 운이 아니라 집중력의 연속이다. 한 번의 실수로 끝장나는 대진에서, 김상겸은 라운드를 거듭하며 자신의 레이스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메달은 이미 확보되는 성격을 띤다. 16강, 8강, 4강을 지나 결승선을 통과하는 동안, 그는 한국 선수단의 첫 메달을 만들어냈고,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김상겸은 오늘 갑자기 강해진 선수가 아니다. 오랫동안 월드컵을 뛰며 코스의 변수를 학습했고, 올림픽을 세 번 지나며 압박의 공기를 배웠다. 지원이 넉넉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시즌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 시간들이 레이스의 정확도로 바뀌었다. 오늘의 은메달은 운이 아니라, 버틴 시간의 정밀함이다.

Credit

  • WRITER 조진혁
  • PHOTO 게티이미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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