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헌은 지금이 가장 새롭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송승헌은 신중하게 말하면서도 호방하게 웃었다. | 인터뷰,배우,송승헌,사임당,대장 김창수

송승헌은 흐르듯 들어왔다. 누가 “안녕하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가까이 있는 냇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예리한 음각같이 정교한 얼굴,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이 있는 걸음.그렇게 몇 벌의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 움직일 때도 과장이 없었다.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가 가장 편하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하지만 어떤 표정을 보고, “부드러운 거 제일 싫어”라고 말할 때의 의사는 또렷했다. 어쩌면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부드러움이었다. 드라마 와 가 예쁘게 빚어놓은 것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 송승헌의 또렷함은 모험가의 것,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 탐험가의 자세에 가깝다.“송승헌이라는 이름이 좀 그런 자상한 오빠, 부드러운 남자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요. 아무래도 작품의 영향이 크겠죠. 배우로서 20대, 30대, 40대의 송승헌은 달라요.하지만 인간 송승헌으로서는 변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친구 좋아하고 그런 남자. 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큰 사랑과 환대를 받는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늘 생각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누군가는 운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송승헌은 등장과 동시에 스타였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모델이 됐고, 곧 시트콤에 출연했다.에서 송승헌의 시작은 익살스러웠다. 좀 뻣뻣하지만 그래서 웃기고, 전에 없이 잘생겼지만 어딘가 빈틈이 있는 남자였다. 짓궂지만 천성이 착해서 유난히 따르는 동생이 많은 형 같기도 했다. 이후는 성공과 성공의 연속이었으되 꾸준하고 침착했다.그 흔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송승헌을 만날 기회는 귀했다. 어쩌면 숱한 히트작에서의 캐릭터보다 그 침착했던 행보 자체가 송승헌의 성품과 닮아 있는지도 몰랐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고, 그렇게 고요한데도 외로움을 모르는 성격.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강렬한 소유욕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없는 스님 같은 천성.“잠시만요, 뭐가 갖고 싶더라... 내가 뭐가 갖고 싶다... 그런 거 보면 저는 참 되게 재미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여행을 가면 기념품도 사고 친구들 선물도 사는 분들 있잖아요? 저는 그런 재미를 모르는 사람 같아요. 심지어 저는 여행도 많이 안 가봤어요. 항상 촬영 때문에 갔다가 하루 이틀 더 있다 오는 정도였죠. 순수하게 간 여행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그런데 그런 것을 요즘 좀 하고 싶어요.”작은 요동을 느낀 것 같았다. 곧은 눈썹도 그대로, 반듯한 눈도 그대로인 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의지 같은 것. 예를 들면 이렇게, 다시 떠나는 여행 같은 말.“배우라는 직업의 재미를 최근에 다시 느끼고 있어요. 30대 초반까지는 그 재미를 몰랐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배우가 됐고, 정신없이 데뷔해서 직업이 됐어요.최근에 영화 , 드라마 를 찍으며 캐릭터에 대해 분석하고 감독님과 상의도 많이 했어요. 이런 느낌을 20대에 가졌다면 더 좋은 배우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에는 늘 바쁘게 찍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항상 피곤했고.”‘쪽 대본’은 드라마 판의 오래된 관행이다. 수요일에 방영해야 하는 드라마 대본이 토요일, 일요일에 나온다. 여러 팀으로 쪼개져서 밤새워 찍는다. 목요일 대본은 화요일 즈음 나온다. 배우는 물론 작가와 스태프까지 드라마 촬영 기간에는 잠을 못 잔다.그렇게 찍어내듯 촬영한 드라마도 흥행만 하면 되는 시기가 있었다. 모두의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 듯한 스케줄이지만 카메라 뒤의 이야기는 아는 사람만 알았다. 그 노고를 치하할 여유도 없이 드라마는 중요한 상품이 되었다.를 두고 가끔 터져 나오는 불만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100퍼센트 사전 제작 드라마의 호흡은 다른 드라마와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엔 아이스크림을 깨물어 먹듯 보는 드라마가 있고, 건축하듯 보면서 즐길 수 있는 드라마도 있다. 시장은 오랫동안 아이스크림만 먹었다.“는 뚝배기 같은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요즘 시청자의 속도에 맞지 않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암투와 사건이 쌓여서 터지기 시작할 때의 재미가 있을 거예요.”갖고 싶은 걸 가졌을 때의 재미는 원래부터 잘 모르고, 이제야 여행을 좀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할 때의 리듬이야말로 차분했다. 는 배우로서의 재미를 새삼 느끼면서 찍은 작품이었다.어쩌면 한 편의 드라마, 나아가선 인생에 대한 따뜻한 확신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신사’라는 말을 꺼냈을 땐 ‘양보’라는 단어로 온화하게 받았다.“기본적으로 부모님께 잘 못하는 사람은 안 좋아해요.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 그들에게 늘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는 왜 돈을 버니?’ 누가 물어보면 미래의 아내, 여자 친구와 맛있는 거 먹고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정도. 양보, 희생, 포용 같은 단어가 생각나요. 그게 진짜 신사 같아요.”남자는 만들어지는 걸까? 신사의 가치는 배울 수 있는 걸까? 송승헌은 아주 오래된 얘기를 들려줬다. 오래됐지만 아직도 생생한 이야기. 어쩌면 지금의 송승헌이 갖고 있는 단단한 기준의 시작이었던, 좀 슬픈 기억.“어렸을 때, 외할머니 손에서 많이 자랐어요. 그런데 외할머니께서 제가 중학생 때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지금의 나였다면 우리 할머니, 조금 더 좋은 병원에 모실 수 있었을 거예요. 내가 조금 더 능력이 있었다면 더 좋은 시설에서 더 좋은 검사를 받으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던 할머니, 그렇게 일찍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그 일이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가족들 무조건 끌고 가서 종합검사를 받게 해요. 그건 제가 좀 고집을 부려요.”돌아보면 그런 젊음이었다. 그때 송승헌의 눈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수가 있었다. 의 이겸이 어떤 순간 보여주는 눈빛이었다.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그만큼 더 깊어진 송승헌의 감정을 이겸의 눈빛에서 발견하는 순간.“인간 송승헌으로서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배우 송승헌으로서는 20대보다 훨씬 많은 욕심이 있어요. 내가 모든 걸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이젠 안 해요. 캐릭터가 좋고 시도해볼 만하다면 많이 도전하고 싶어요.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아요.”오래된 굴레에선 벗어나려는 사람만이 벗어날 수 있다. 떠나려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겉으론 부드러웠지만 속으론 치열했던 젊음이었다. 꾸준히 받아들이면서 부딪쳐온 시간이었다.이렇게 치열한 남자는 늙지 않는다. 하고 싶은 역할에 대해 얘기할 때, 그 반듯한 얼굴 위에 지금까지의 모든 송승헌이 스쳤다. 신사의 얼굴이었다.송승헌은 신중하게 말하면서도 호방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