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그 자체로 고통인 공간
일본 나가사키 항구에서 1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 하시마(端島). 그리고 전체 모습이 마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군함도. 20세기 초반의 일본 근대화와 산업화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그들의 자랑. 그러나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악착같이 버텨내야 했던 한국인에게는 지옥이었던 섬. 0.063㎢(상암 월드컵경기장의 3분의 1도 안 되는)에 불과한 공간에 빽빽한 아파트를 세우고, 최하층과 지하에 한국인과 중국인이, 환경과 시설이 좋은 상층에는 일본인이 거주하며, 가장 높은 지대에는 신사가 자리 잡고 있어 일본의 식민 지배 질서를 철저하게 구현하였던 곳. 1천 미터 가까운 깊이의 해저 탄광에서 석탄을 생산해내어 전쟁 물자로 동원하였던 전범 기업의 핵심 시설.
역사를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입장에서 군함도라는 공간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는 것은 당연하게도 태평양 전쟁 시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로 징용되어 희생된 아픔으로 가득한 섬이라는 점이다. 즉, 일제 강점기의 한반도를 축소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곳이 바로 군함도다.
영화 ‘군함도’는 이러한 처절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정교한 촬영 세트를 비롯해 당시 한국인들의 조악한 생활상을 화면으로 옮기는 데 상당한 노력을 들인 작품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끌려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치욕과 두려움에 떨며, 각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불가피한 방식으로 ‘생존’하려는 모습에서 공감대를 찾을 수 있었다. 이강옥(황정민)이 툭하면 내뱉는 ‘조선 종자’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30년 넘는 식민 지배에 자존감과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그와 한국인들의 처연함을 씁쓸하게 느껴야 했다. 온 몸으로 아픈 역사를 감당하고 살아낸 또 다른 주인공 말년(이정현)을 보면서, 여성이었기에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지도 모르는 일본의 만행에 마음의 동요가 생기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편 같은 한국인이지만 일본의 앞잡이로 더욱 동포들을 괴롭혔던 자들이 보여준 악랄함은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 그 이상의 감정을 갖게 했다. 이렇게 극도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밑바닥’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언제나 우리를 자괴감에 이르게 한다. 그런 점에서 군함도는 억지 설정을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사지(死地)였다.
1941년 진주만 사건으로 촉발된 태평양 전쟁, 그리고 1945년 8월 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영화는 일본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였던 전쟁에서 자국민과 식민지 한국인까지 모두 동원하면서까지 승리를 취하고자 했던 끔찍한 시기를 큰 배경으로 삼았다. 참고로 이 시기에 국외로 강제 징용된 한국인의 수 약 68만 명, 국내에서 각종 부역에 동원된 연인원 5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적 희생이 있었다고 한다(그 안에는 군함도로 끌려간 500~800명 정도의 한국인도 포함될 것이다). 여기에 무장 투쟁으로 항일 전쟁을 수행한 독립군의 활동, 즉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이 미국 OSS(미 전략정보처, CIA의 전신)와 함께 1945년에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는 사실도 끌어들였다. 이렇게 영화는 관객들에게 시대적 분위기와 배경에 취할 수 있는 그럴듯한 장치들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아쉬움이 생겼고 조금씩 커져갔다. 영화 초반, 인물들에게 닥친 위기 속 아슬아슬한 생활상은 어느 순간 생지옥에서 벗어나 있었다. 군함도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의 증언 기록을 읽었을 때의 고통과 안타까움이 더 이상 화면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처지의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절망, 무력함 등이 갈수록 반감되었고 군함도가 주는 악(惡)의 이미지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때부터 영화는 매우 익숙한 문법에 따라 갈등이 일어나고 고조되었으며, 결국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으로 이어졌다. 주인공들의 활약과 최후는 비장했고 멋졌다. 아니다. 분명 멋진 장면이지만 멋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역사에 아로새겨진 객관적인 고통의 무게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민족을 배신한 독립운동가를 처단할 때도, 욱일승천기를 반으로 가르는 장면에서도 통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를 잃는 사고를 당하거나 갱도에 갇혀 목숨을 잃은, 그리고 수도 없이 폭행을 당하던 한국인들의 모습만 더욱 뚜렷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사실(史實)이 주는 무게는 정말 쉬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역사를 소재로 진실의 울림과 감동, 재미를 한 번에 다 담아내는 작업은 어느 분야에서든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도 그러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