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12월, 우리가 스테이크를 먹어야 하는 이유

12월, 우리가 스테이크를 먹어야 하는 이유

BYESQUIRE2019.12.11
 
’어떻게 해야 최대한 제값을 받고 스테이크를 팔 수 있을까. “

’어떻게 해야 최대한 제값을 받고 스테이크를 팔 수 있을까. “

연말의 레스토랑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위한 트리와 장식, 붐비는 사람들, 떠들썩한 분위기,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음식을 나르는 직원들, 잔과 잔, 커틀러리와 접시가 부딪히고 긁히는 까랑까랑한 소리까지. 이런 빗장을 푼 어수선한 들뜸과 흥분이 매장을 가득 메운다. 물론 영업이 잘되는 레스토랑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분위기에 맛있고 특별한 음식이 빠질 리가 없다. 예약석에 미리 세팅된 커틀러리는 이런 음식이 어떻게 진행될지 대략적으로 미리 알 수 있는 척도다. 그중에서 가장 안쪽에 놓인 큰 포크와 날이 잘 선 나이프는 해당 코스 메뉴의 메인 디시가 스테이크임을 알려준다. 전채부터 서비스가 시작되면 미디엄 사이즈의 포크와 숟가락, 나이프가 하나둘씩 사라진다. 매장에 흐르는 음악처럼 식사는 리듬을 타고 점점 고조되고 포크와 나이프만 남게 되면 한 셰프의 코스 요리를 훌륭하게 완성시킬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가 테이블에 서비스된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타임 허브와 향신료, 채소를 올린, 겉이 바삭하게 익은 스테이크를 자른다. 나이프가 스테이크를 가르고 뒤이어 접시 표면을 긁는다. 스윽, 티딕. 포크로 자른 부위를 집어 들고 입에 넣는다. 바삭하고 거친 고기의 겉면이 혀에 닿으면서 허브와 향신료의 향과 소스의 짜고 신 맛이 느껴진다. 한 입 씹으면 미디엄 레어로 익은 고기의 육즙이 입안에 조금씩 들어찬다. 혀에 착 감기는 레드 와인 한 모금을 뒤이어 들이켜면 육즙과 레드 와인의 보디감이 뒤섞인다. 약간의 타닌이 입안에 남아 있다면 그건 고기 한 점을 더 부르는 떫은맛이다. 지방 덩어리가 약간 있는 부위라면 특유의 식감이 더해지고 입에 진하게 남은 기름기가 와인의 떫은맛까지 깊숙이 끌어안는다. 이런 스테이크는 연말 음식의 절정이자 마침표다. 스테이크보다 더 화려하고 새로우며 감탄사를 자아내는 요리도 많다. 하지만 고기가 지닌 원초적 강렬함과 포만감을 넘어서기는 힘들다. 각 레스토랑이 연말 코스 메뉴나 단품 메뉴 중에서도 스테이크에 신경을 쓰는 것도 그런 연유다. 평소보다 비싼 음식을 먹었는데 한 끼를 배부르게 먹었다는 느낌이 없으면 재방문율이 떨어진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등재된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이 유려한 요리를 내놓다가 디저트가 나오기 전에 밥과 국, 반찬을 서비스하는 것도 배부름이라는 맥락이 포함되어 있다.
스테이크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가격이다. 스테이크는 레스토랑에서 주류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다. 스테이크를 주문한 테이블은 1인당 객단가가 상당히 올라간다. 그리고 연말은 객단가를 올려줄 스테이크가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다. 물론 스테이크는 다른 메뉴에 비해 식재료 원가가 높고 수익률이 낮다. 반대로 그만큼 메뉴 단가가 높기 때문에 전체 매출과 수익 증대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더군다나 1년 중 12월은 레스토랑에 대목이기도 하지만 연간 매출을 확정 짓는 중요한 시점이다. 11월까지 매출이 부진했다 하더라도 12월에 매출을 올린다면 이를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다. 경기가 악화됐다고 하지만 이르게는 10월부터 연말 모임 예약 문의가 잇따른다. 시장에 돈이 풀릴 때, 고객이 지갑을 열 때 그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면 그다음 과정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1월과 2월은 외식업계의 최대 비수기다. 겨울잠을 준비하는 포유류처럼 시장이 냉각되는 기간을 버틸 자금을 12월에 비축해야 한다. 그래서 12월의 스테이크는 업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셰프들은 스테이크가 포함된 코스 메뉴를 기획하고, 더 좋은 부위를 쓰거나 소스나 가니시를 변경해 스테이크 단가를 높인다. 업장의 매니저들은 스테이크 가격을 할인해 판매량을 높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레스토랑은 고객의 선입견과 싸워야 한다. ‘스테이크는 너무 비싸다. 그만큼 값비싼 부위를 써야 한다’는 것. 일선 셰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반적인 한우구이 전문점에서 먹는 가격을 생각하면 이는 오해라고 항변한다. 한우의 가격과 부위에 대한 시선을 조금 돌려보면 우리는 일반적인 한우구이 전문점에서 다양한 부위를 구워 먹는다. 등심이나 안심, 치맛살, 제비추리, 토시살, 살치살, 채끝살, 부채살, 차돌박이 등이 있고 부산물인 곱창이나 막창, 대창, 특양이라 부르는 양깃머리도 있다. 모두 저마다의 식감과 풍미가 있고, 사람들도 부위의 맛을 알고 즐긴다. 다만 스테이크라는 이름이 붙으면 선입견이 생긴다. 요즘은 채끝이나 안심, 티본, 립아이 등 이전보다 사용하는 부위가 더 다양해졌지만 그래도 스테이크 부위로 등심을 가장 선호한다. 안심이나 등심처럼 마블링이 좋고 육질이 부드러운 부위를 스테이크로 선호하는 국내 고객 특성상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등심은 소고기 중 가장 비싼 부위다. 고깃집에서 한우 1++ 등심 200g을 5만~6만원씩 주고 먹는 이들도 동일한 부위의 200g짜리 스테이크를 6만~7만원씩 주고 먹는 건 비싸다고 생각한다. 연말은 업장이 자신이 쓰려는 부위를 원하는 만큼 구하기 힘들다. 미리 물량을 확보해도 평소보다 비싼 가격에 공급받는 경우가 잦다. 준비해둔 물량이 생각보다 더 빨리 소진되면 그처럼 난감한 경우도 없다. 상태가 좋지 않은 고기를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가격에 구입할 수밖에 없다. 셰프들의 고민도 여기서부터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제값을 받고 스테이크를 팔 수 있을까.  
그래서 아예 생소한 부위를 연말 스테이크 메뉴로 내놓는 곳도 있다. 지금쯤이면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연말 채비를 마친 시점인데, 얼마 전에는 한 유명 셰프가 스위트브레드라는 생소한 부위를 겨울을 타깃으로 한 특선 메뉴의 재료로 쓰려고 판매처에 문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위트브레드는 송아지의 흉선과 췌장을 뜻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나 5성급 호텔에서 간혹 쓰는 식재료인데 국내에서는 송아지 도축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구하기 힘든 부산물이다. 몰캉몰캉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 쌉싸름한 뒷맛이 특징이다. 실제로 고급 부위이지만 생소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대한 저항감이 덜한 메뉴다. 다만 수입 물량이 많지 않아 선점해야 한다. 청담동의 한 와인 바는 스테이크에 스토리를 더했다. 유럽의 경우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고, 연말은 친구와 파티를 여는 시기다. 그래서 연말에는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로 선택한다. 여기에 착안해 큰 보드에 2명 이상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를 낸다. 푸짐한 양과 비주얼 덕분에 높은 가격에 대한 저항감도 최소화된다. 한때는 수비드 기법이나 드라이에이징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서 스테이크 가격을 높이기도 했지만 그런 방식이 대중화된 지금은 아예 원론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바로 숯불에 정성 들여 구워내는 우드 파이어 그릴 같은 방식이다. 스테이크 하나를 굽는 데 품을 더 파는 거다. 연말을 기념하는 한 접시의 스테이크에 담긴 셰프의 12월 생존 전략이자 노림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