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울리는> 혜영 역의 정가람을 만나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정가람은 늘 자문한다고 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하루는 제대로 살았는가?” 하루하루를 성심으로 사는 것, 그것이 배우 된바 그의 책무이기에.



정가람의 눈

스웨터 로에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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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넥 스웨터, 코듀로이 팬츠 모두 폴로 랄프 로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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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태생이죠?
네, 맞아요.
고등학생 때쯤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이 개봉했겠네요.
그 영화가 아마 2007년에 개봉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마… 중학생 때?
동네에서도 떠들썩했겠네요, 영화 찍는다고.
맞아요. 영화 촬영한다고 촬영용 차들이 지나다니고, 저도 오가다가 그런 걸 봤던 기억이 나요. 촬영장까지는 못 봤고요. 사실 영화도 못 봤어요. 15세 관람가라서. 대학생 되고 나서 봤죠.
대학은 부산에서 다녔죠.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때라고 했어요.
1학년 때 모델 알바를 했어요. 상상하시는 의류 모델 그런 건 아니고, 소셜 커머스에 쓸 제품 광고 사진을 찍는 정도였죠. 그때가 쿠팡, 티몬 이런 사이트가 막 시작될 때였거든요. 물티슈를 판다고 치면, 제가 ‘어, 여기 물티슈가 있네’ 하는 생각으로 제품을 바라보고 있고 그 장면을 이 각도에서 찍는 거예요.(웃음)
의류 모델보다 연기력은 더 필요했겠네요.
네, 어떻게 보면. 그런데 하다 보니까 그 일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상황에 맞춰 해석하고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결과물을 보는 게 신기했던 걸까요?
둘 다요. 현장도 재미있고, 그런 사진이 나오는 것도 재미있고요. 그때 마침 제가 한창 진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대학에 들어왔지만 어쩐지 제가 원하는 걸 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데 모델 일을 하면서 처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이렇게 평생 즐거울 수 있을까?’ 그래서 한 학기 마치고 바로 상경한 거예요.
무작정?
무작정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본 것도 제가 이 길을 택한 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버지가 영화광이었어요.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아버지와 함께 비디오나 DVD를 빌려 봤어요. 장르도 안 가리고. 그때 그런 걸 궁금해했던 게 기억나요. ‘책(시나리오)으로부터 실제를 표현해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고요. 그런데 막상 제가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굉장히 반대하시더라고요. 어우. 말도 안 된다고. 두 분이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영역에 뛰어들겠다고 하니 걱정이 되셨던 거겠죠. 그래도 고집을 부렸어요. 용돈도 안 받을 테니 방값만 내달라. 자식 이기는 부모 없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에 서울에 월 25만원짜리 방을 얻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죠. 용돈은 정말 안 주시더라고요.(웃음) 아르바이트하면서 먹고살기도 바쁜데 돈 모아서 프로필 사진 찍고 그랬어요.
오디션을 많이 봤겠네요.
네, 정말 많이 봤어요. 다른 연기 지망생과 비교해봐도…. 저는 정말 오디션 많이 본 것 같아요.
연기 학원은 안 갔어요?
아예 그럴 생각도 못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수업 듣는 데 월 60만~70만원이 들어가니까요. ‘아, 이건 내가 할 수 없겠다’ 하고 바로 포기한 거죠.
연기를 배우지도 않고, 응원하는 사람도 없고, 혼자 발로 뛰어서 매번 떨어지고. 그래도 언젠가는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나 봐요.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이쪽 업계에 아는 사람도 없고, 뭐든 저 혼자 생각해서 판단해야 하니까. 막막하잖아요. 인터넷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배우들 인터뷰에서요. 지금은 유명한 어느 배우도 어릴 때는 오디션에 많이 떨어졌구나, 힘들었구나, 그런 걸 보면서 버틴 거죠. ‘나도 지금 그 과정에 있는 거야’ 하고요. 그땐 누구 하나 조언해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지금 이 인터뷰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면 ‘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거든요. 멘탈을 다잡으려고 해도, 정말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없으니까. 저한테는 훌륭한 배우들에게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도움이 됐어요. ‘정말 그랬을까.’ ‘처음엔 다 나처럼 시작했을까.’ ‘그래 이런 길도 있겠지.’
한 번도 연기를 배운 적 없다는 게 신기하긴 하네요. 첫 작품 〈4등〉으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받았잖아요. 연기력이… 타고난 걸까요? 스스로의 연기에 확신이 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일단 뭐가 맞는 연기인지 저 혼자선 전혀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물론 아직도 잘 모르기는 한데… 그런데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본인이 느끼는 걸 표현하는 게 연기잖아요. 기술적인 게 아닌 거죠. 지금의 저는 그런 연기가 되게 잘하는 연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느낀 걸 제대로 전달해서, 보는 사람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연기. 물론 배워서 잘할 수 있게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론으로 배울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점점 이야기가 ‘타고났다’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요.(웃음)
아니에요, 아닙니다.(웃음) 아무튼 〈4등〉의 정지우 감독님도 제 그런 사고방식에서 좋은 에너지를 느끼고 뽑아주신 것 같아요. 정작 저는 되게 걱정했지만요. ‘내가 뭔데 이걸 하게 됐지?’ 싶기도 하고, 실제로 감독님한테 직접 물어보기도 했어요. 내가 왜 뽑혔는지. 정작 촬영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기도 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또 굉장히 걱정되더라고요. 내가 작품 다 망친 건 아닐까 하고.
아무래도 지금껏 촬영한 것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일까요?
애착…이라기보다 조금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뭔가 그립다고 해야 하나. 이게 약간 슬픈 게,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되게 좋은 작품을 같이 만들었는데, 첫 작품이라 제가 너무 정신이 없었는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그걸 지금 같이 했더라면…. 〈4등〉 팀은 그 후로도 종종 만났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 뒤로 많이 달라졌네요. 〈시인의 사랑〉 때만 해도 캐스팅 소감으로 ‘세 주인공이 모두 흔히 만날 수 없는 캐릭터여서 너무 하고 싶었다’고 말했죠. 연기자가 됐어요.
대본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물론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됐죠. 근데 그게 또 배우라는 일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도전한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 즐거운 일이잖아요. 책에서 영상이 되는 걸 처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기자는 정말 축복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의 사랑〉의 한 장면에, 시인이 술자리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싸 와서 주니까 소년이 “씨발, 이거 동정이에요?” 묻죠. 시인이 당황하면서 아니라고 대꾸하자 바로 “그럼 됐어요. 감사합니다” 하며 90도 인사를 하고요. 그런 걸 너무 잘 표현했어요. ‘맞아 저런 사람들 있지’ 하고.
일단 감독님이 생각한 확고한 느낌이 있었고, 저는 그걸 제 느낌이랑 섞으면서 캐릭터를 잡았죠. 고민이 많이 되긴 했어요. 감정이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잖아요. 잘못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될 테니까요.
이해가 안 가는 정도면 다행이죠. 잘못하면 굉장히 어설퍼 보일 수 있는 캐릭터예요.
맞아요. 뜬금없는 데에서 갑자기 힘을 싣고 그러니까요. 양익준 선배님이 많이 도와줬어요. 워낙 자연스러운 연기로 유명한 배우잖아요. 저도 그런 스타일로 주고받으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더블브레스트 재킷 코케트 스튜디오.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니커즈 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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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오디너리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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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 로에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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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울리는〉은 웹툰 때부터 열렬한 팬이었다고 했어요. 특히 혜영 역을 맡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선오가 아니라?
웹툰 보면 혜영이가 참 따뜻하고 상냥하잖아요. 그래서 해보고 싶었어요.
시즌 2 촬영 들어가죠? 웹툰 결말이 안 나고 있는데, 저한테만 슬쩍 결말을 알려주면 안 되나요?
저도 몰라요. 아직 대본이 다 나온 게 아니라서. 배우들도 궁금해서 제작진한테 막 물어보고 그러는데, 안 알려주더라고요.(웃음) 정말 열린 결말만 아니라면 좋겠어요. 선오든 혜영이든 둘 중 누구라도 확실하게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끝이 확실한 게 좋은가 봐요.
아뇨. 작품마다 다른데, 〈좋아하면 울리는〉은 워낙 선오파, 혜영파로 갈려 있는 작품이니까요. 한쪽으로 가더라도 아마 작가님이 다른 쪽의 애절함을 잘 표현하실 것 같고요. 그냥 이 감정들이 어중간하게 마무리되지만 않으면 좋을 것 같은 거죠.
아직도 애정이 보이네요. 〈좋아하면 울리는〉에. 원래부터 순정 만화도 보나 봐요.
저는 다 봐요. 저는 웹툰 플랫폼 3개를 보는데 거기 올라온 작품 90%는 봐요. 유료 선결제로 매달 5만원은 쓰는 것 같고요.
굉장한데요.(웃음) 의외의 면이 있네요. 주변에서는 어떤 사람이라고 해요, 정가람을?
글쎄요, 그냥 재미있는 사람? 재미없어서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사람을 말로 웃기지는 못하는 편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생각해도 재미없는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이 어이없어서 웃는 그 상황을 좋아해요. “아, 재미없어!” 하는 게, 그게 저한테는 재미있죠.
어느 인터뷰에서 ‘정가람은 어떤 사람인가’ 직접적으로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죠. “정가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신선한 답이었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게 미덕으로 잘 회자되지 않으니까.
제가 생각했을 때, 그냥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솔직함과 정직함은 다르잖아요. 솔직한 나쁜 놈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죠.(웃음) 그게 그냥… 사실은 제가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미국 어느 대학의 졸업식 축사 영상에 빠졌거든요. 거기 나오는 말에 꽂혔어요.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았는가?” 그걸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죄책감만 드는 질문인데요.
물론 그런 질문을 계속하면 저도 죄책감이 들 때가 있죠. 다이어트 기간인데 늦은 시간에 라면을 먹었다든지, 그런 날이면 특히 심해요. ‘유혹을 이기지 못했구나’ 좌절하게 되고. 그래도 오늘은 그런 질문을 하면 뿌듯할 것 같아요.
자기 안에 일종의 종교가 있네요. 엄격한 절대자도 있고.(웃음)
되게 재미있어요. 그거랑 엄청 싸워야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새벽에 TV 보는데 치킨이 나오고, 그런데 서울은 24시간 언제든 너무 쉽게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는 도시이고. 하지만 ‘나는 먹지 않을 거야’, ‘이겨낼 거야’ 스스로 되뇌면서 닭가슴살을 꺼내 먹는 거죠. 같은 닭이니까. 다른 느낌이지만 배도 부르니까. 뿌듯하죠. ‘치킨을 먹으면 행복하겠지만 나는 닭가슴살을 먹고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런 소소한 행복이 참 좋아요.
바른 사람이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배우로서 한계로 작용하는 면은 없을까요?
만약 살인자를 연기한다고 하면 그런 사고방식을 한번 생각해볼 수는 있죠. 지금의 정가람이 어쩌다 대본 속의 이 캐릭터가 되었는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활용해서 캐릭터에 맞게 몸을 딱딱하게 긴장시키거나 유연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일단 준비되어 있는 것인 것 같아요. 좋은 컨디션을 만드는 것.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를 좋아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지금 이야기한 연기론과는 정반대되는, 메소드 연기의 표본이잖아요.
그냥 그 행위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방식을 따르고 말고를 떠나서. 자신을 완전히 조커로 만들기 위해서 모텔을 빌려서 일주일 동안 틀어박혀 있었잖아요. 누구나 배역을 받으면 ‘깊이 연구해보겠다’ 다짐은 하겠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죠. 그 사람의 조커 연기를 보면 정말 제대로 표현이 되었잖아요. 그러니 인터뷰에서 하는 말들도 다르게 다가오죠. 저는 연기에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서 꾸준히 행하는 게 중요한 것 같고, 특히나 제 단계는 그러면서도 계속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봐야 하는 때인 것 같아요.
존경하는 배우로 전도연 씨도 꼽곤 했잖아요. 곧 개봉할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함께 출연했는데, 마주칠 기회가 좀 있었나요?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첫 촬영하시는 날 제가 인사드릴 겸 일부러 찾아갔죠. 그런데 그때 엄청 충격받았어요. 전도연 선배님은 정말 대배우잖아요. 그래서 좀 여유 넘치고 그런 느낌을 상상했나 봐요. 그런데 메이크업받으면서도 대본을 엄청 꼼꼼히 보시고, 생각도 많이 하시고, 촬영 전부터 감정에 집중하시고, 그렇더라고요. 제 또래 배우들과 작업했을 때는 느끼기 힘든 부분이었죠. 촬영장 분위기도 편안하고, 서로 좀 유연하게 연기하니까. 전도연 선배님 촬영하는 걸 보면서 정말 딱 한 대 맞은 느낌이었죠. ‘아, 그렇구나…’ 뭐 그런 느낌?
아까 하신 말씀이 딱 맞는 것 같네요. 연기는 답이 없다는 거. 하지만 지금의 정가람은 일단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맞아요. 제가 이종격투기 보는 걸 참 좋아하는데요,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격투기 선수는 1분 만에 끝날지 모를 경기를 위해 6개월 동안 고생하잖아요. 식단 관리하고, 하루 10시간 숨 넘어갈 때까지 훈련하고. 저도 그들처럼 ‘프로 배우’로서 할 수 있는 훈련이 있을 것 같아요. 꾸준히 노력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거죠. 아, 제가 그 졸업식 축사 영상을 보여드리면 좋은데. 되게 좋거든요. 편집도 되게 잘해놨고… 혹시 한번 보실래요?
하하하. 그래요 그럼. 한번 보여주세요.
잠시만요, 휴대폰 좀 갖고 올게요
정가람은 늘 자문한다고 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하루는 제대로 살았는가?” 하루하루를 성심으로 사는 것, 그것이 배우 된바 그의 책무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