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어워드 논란에 관한 모든 것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급진적이고자 몸부림치는 그래미, 그래서?



미국 현지 시각 2020년 1월 26일에 개최 예정인 62번째 그래미 어워드를 두고 매년 그랬듯 백인 ‘아재’ 주류 감성만을 따른 듯한 그들의 고리타분한 선택에 쏟아붓던 비난은 좀 더 입체적이고 꼼꼼해질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에 후보 리스트가 공개된 다음의 일이다.
그래미 어워드가 편파적이라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받고 케이티 페리는 못 받는 기준이 뭐냐는 성토는 오래됐고, 그래미를 흥미롭게 지켜본 대중이라면 알리시아 키스를 손녀딸처럼 편애하는 모습을(올해 그래미 진행자도 알리시아 키스다) 얼마나 자주 목격했는지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으며, 기타와 피아노로 된 곡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반대하기도 힘들다. 힙합 부문은 아예 없다가 랩 카테고리가 생기며 언급된 시기가 1995년인데, 이건 에미넴이 데뷔한 때보다도 늦다.

그래미는 레코딩 아카데미로 개명한 구 국립 예술과학 레코딩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s) 단체가 음악 산업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후보를 선정한다. 그 관계자들에 최근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BTS가 포함되었다는 풍문이 돌았다. BTS도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는 게 아닌지 기대하게 만든 단초다. 작년에 투표인단을 새로 구성할 때 1만3000여 명의 투표권 중 여성, 비백인, 40세 미만과 같이 그간 그래미에서는 소수 의견이었던 이들 900명의 투표권이 포함됐고 그 기준으로 인해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외 K팝 관련 업계 사람들이 투표권을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게 진정한 다양성 포용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래미를 둘러싼 논란을 인종차별 또는 보수주의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더 절망적인 분석은 그래미는 애초에 음악상으로서 공정한 기준도 없고 음악적 흐름도 제대로 짚을 줄 몰라 공신력이 없다는 의견이다. 미국 잡지 〈버라이어티〉의 지적처럼 올해 앨범 부문의 모든 후보는 2년 연속 40세 미만이다. 2019년에 낸 19번째 스튜디오 앨범 〈Western Star〉로 호평받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퍼포먼스와 음악을 더 적극적으로 결합한 시도가 대담한 앨범 〈Madam X〉로 컴백한 마돈나는 그래미 어디에도 이름이 없다. ‘옛날에 상 많이 받아 간 늙은이들’은 더 이상 주류 세대를 대변하지 않아서 배제됐나? 그렇다면 1990년대 유럽 내 차트를 폭풍처럼 휩쓸던 크렌베리스가 당시에는 월드 뮤직 부문(그래미에서도 기준이 모호하기로 꼽힌다)에서조차 단 한 번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가 2018년 초에 프런트 우먼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사망하면서 유작 앨범이 된 〈In the End〉는 왜 갑자기 베스트 록 앨범 후보가 된 건지. 크렌베리스조차 황당해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하도 나와서인지 크렌베리스는 공식적으로 “기쁘고 감사하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하여간 그래미 후보에 대한 미국 매체들의 총평은 “급진적이려고 몸부림치는 그래미”다. 작년 그래미에서 차일디시 감비노가 올해의 레코드에 이어 올해의 노래 수상자로 연속 호명된, 귀를 의심한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곡을 싫어하고 시상식에 오지도 않은 그가 가장 중요한 상들을 휩쓸어가다니. 그 전해에 7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상 하나 받지 못한 켄드릭 라마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올해 주요 부문들 후보를 보니 더 큰 이변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본상 후보들이 올해의 신인상 후보 리스트를 복사해다 붙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선한 이름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번 그래미 신인상 후보이면서 올해의 레코드 부문 후보인 빌리 아일리시, 리조, 릴 나스 X는 2019년 이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던 뮤지션이다. 2019년 3월에 정규 앨범을 낸 2001년생 싱어송라이터 빌리 아일리시는 신드롬이라고 할 만하다. 빌보드의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25주 동안 1위를 지켰고, 그래미보다 앞서 열린 2019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신인상도 수상했다. 애플 뮤직이 선정한 올해의 글로벌 아티스트 역시 그녀다. 공포 영화에서 얻은 영감을 발현해낸 기괴하고 어두운 음악과 뮤직비디오, 강박 장애와 신체 이형 장애를 갖고 있지만 패션은 물론 헤어스타일까지도 젠Z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뮤지션이다.
릴 나스 X도 밀리지 않는다. 그가 부른 노래 ‘Old Town Road(feat. Billy Ray Cyrus)’는 애플 뮤직 집계 기준, 2019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곡 1위에 올랐다. 이 외에도 무려 7개의 EP를 여러 차트 상위권에 올렸기 때문일까, 각각 따로 낸 EP 음반을 그래미가 자진해서 ‘올해의 앨범’으로 묶어다가 후보로 올려준 희한한 선물을 받았다. 그런 릴 나스 X를 차트에서 끌어내린 사람이 리조다. 플러스 사이즈를 전면에 내놓은 가사와 비주얼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인데, 그녀의 노래 가사가 틱톡을 통해 밈으로 재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됐다. 다양한 클래식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등 실력이 출중하지만 그간 무명 기간과 혹독한 가난을 겪은 리조는 예전에 발표한 곡들이 갑자기 차트를 역주행하며 평생의 고생 역시 뒤엎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동화 같은 이 실화의 해피 엔딩을 그래미가 장식한다면, 아마도 다음 수순은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개봉하는 일일 것이다.

이 뮤지션들이 올해 미국에서, 특히나 젊은 세대로부터 무서운 지지를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 음악 담당 기자와 평론가들이 모여 그래미에 대한 사견을 쏟아낸 팟캐스트를 들으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부분은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릴 나스 X가 소셜 미디어에서나 대스타이지 모든 세대로 보자면 “누구세요?”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더 이상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은 그래미의 반박문과도 같은 이 후보들은 그래미의 항변을 위한 증거가 된 건 아닐까?
이쯤 되니 매해 논란을 만들어온 그래미의 ‘악마의 후보 선정'은 더 많은 주목을 받기 위한 그래미의 빅 피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미가 누구에게 상을 줄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누가 받든 그 누군가가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진은 두고두고 회자될 테니까.


Bad Guy – 빌리 아이리시
역시 그래미에서의 무대가 예정된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는 이제는 후렴구쯤은 모두 알 만한 곡. 시간이 흘러도 이 곡을 듣는 순간 2019년을 기억하게 될 거다.

Norman Fucking Rockwell!! – 라나 델
라나 델 레이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Norman Fucking Rockwell!〉과 동명의 곡. 거물급 신인들의 이야기에 가려진 게 안타까울 정도로 명반, 명곡이다.

Cuz I Love You - 리조
그래미에서 라이브 퍼포먼스가 확정된 리조의 인생을 바꾼 곡. 나체의 리조가 당당하게 커버를 꾸민 앨범 〈Cuz I Love You 〉의 대표곡이자 리조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다.

이 세 곡은 미리 듣기를 추천한다. 수상 결과와 무관하게 귀가 호강하고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다
급진적이고자 몸부림치는 그래미,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