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JYP가 만든 일본인 걸그룹 '니쥬'는 왜 새 시대의 상징인가?

니쥬가 케이팝 그룹인지는 잠시 접어두자. 니쥬의 의미가 훨씬 중요하니까.

BYESQUIRE2020.10.04
 
JYP 느낌이 가득한 니쥬 멤버들. 국적이 다를 뿐 니쥬는 트와이스와 닮은 점이 많은 동생이라고 볼 수 있다.

JYP 느낌이 가득한 니쥬 멤버들. 국적이 다를 뿐 니쥬는 트와이스와 닮은 점이 많은 동생이라고 볼 수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보다는 메이드 바이 코리아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굳이 정체성을 분류해야 한다면 저는 니쥬의 국적이 ‘한류계(系)’라고 봐요.”
 
9명의 소녀들이 “너를 웃게 만들게”라고 노래한다. 칼 군무 사이에 드러나는 후렴구의 ‘줄넘기 댄스’는 일곱 살짜리도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쉽다. 걸 그룹 니쥬(NiZiu)의 〈메이크 유 해피(Make You Happy)〉 뮤직비디오에는 ‘JYP스러움’이 가득하다. 한강, 아파트 가득한 신도시와 초록 버스 등 익숙한 풍경과, 원더걸스의 ‘Tell Me’나 트와이스의 ‘Knock Knock’ 뮤직비디오에서 그랬듯 잠깐이지만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도 코믹하게 등장한다. 랩 파트에서는 ‘Tell Me’, ‘OOH-AHH’, ‘FANCY’ 등 익숙한 노래 제목이 쏟아져 나온다. 다만 JYP의 다른 걸 그룹과 차이점이 있다. 멤버 중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니쥬는 JYP가 일본 소니뮤직과 함께 프로듀싱한 걸 그룹이다. 트와이스 멤버들을 뽑았던 Mnet 프로그램 〈식스틴〉과 마찬가지로, 멤버 선발과 트레이닝 과정이 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Nizi Project)〉를 통해 공개됐다. ‘니지(虹)’는 무지개를 뜻하며, 무지개처럼 다양한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다. 〈식스틴〉과 유사하지만 한 가지 다른 건 대상이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니지 프로젝트〉는 일본 OTT 플랫폼 ‘Hulu’와 민영방송 니혼TV에서 방영됐는데 반응이 엄청났다. 6월 발표한 프리 데뷔 앨범 〈메이크 유 해피〉는 일본 오리콘 차트 최초로 실물 음반 판매 없이 디지털 포인트만으로 1위를 기록했다. 정식 데뷔 하기도 전에 팀이 구성되는 과정 자체로 기록을 남긴 셈이다.
 
마케팅 등을 위해 소니뮤직과 손을 잡았으나 니쥬를 선발하고 트레이닝한 건 전적으로 JYP였다. 박진영 대표는 2018년부터 ‘일본에서 일본인이 케이팝을 하는 그룹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결성 이후 니쥬가 JYP의 계보를 이을 걸 그룹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메이크 유 해피〉의 랩 파트에 역대 JYP 걸 그룹의 타이틀곡 제목이 들어간 것은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니쥬는 11월 한일 양국에서 공식 데뷔할 예정이다. 공식 데뷔 이전에 한국에서는 이들에 대한 작은 논란이 불거졌다. 이들이 정말 케이팝 그룹이냐는 것이었다.
 
박진영 대표가 직접 ‘니쥬는 케이팝을 하는 그룹’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JYP의 프로듀싱 시스템이 일본에 유출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니쥬가 공식 데뷔하더라도 ‘노 재팬’ 운동의 일환으로 불매해야 한다는 글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좋아요’를 잔뜩 받기도 했다. 한일 감정이 한몫을 했다. 그 골은 워낙 깊으니 차치하고,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자.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제이팝이라는 주장은 늦어도 한참 늦은 이야기다. 니쥬의 탄생은 이미 2000년대 초, 아이돌 그룹이 수출용 상품으로 굳어진 그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케이팝은 3세대를 거치며 이미 하나의 글로벌 음악 장르가 됐습니다. 해외에서 케이팝 요소를 갖춘 현지 그룹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죠.” 조지 메이슨 대학교 이규탁 교수에 따르면 케이팝은 지금껏 3세대로 발전해왔다. 1990년대 후반에 활동한 1세대 그룹과 2000년대 중반의 2세대 그룹, 그리고 현재 활동 중인 3세대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그의 책 〈갈등하는 케이, 팝〉에 따르면 1세대 그룹에는 교포가 포함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트렌디한 느낌으로 한국 내에서 인기가 높았다. 2005년 이후 등장한 f(x)와 미스에이 등 2세대 그룹에는 외국 국적을 가진 멤버들이 투입됐고, 케이팝이 세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3세대에 와서는 외국인 멤버는 없으면 안 될 존재가 됐다. 블랙핑크에는 태국 출신 리사가 있으며, 니쥬의 선배인 트와이스는 멤버 9명 중 4명이 외국인이다.
 
혼합은 확장이며, 확장은 지혜로운 비즈니스 전략이다. 2세대부터 유입된 외국인 멤버들은 보통 중화권이나 일본, 태국 출신이다. 이는 ‘자긍심’과 ‘시장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자국민이 케이팝 그룹에 소속되면 친근감과 동시에 약간의 자랑스러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슈퍼주니어 멤버였던 한경과 2PM의 닉쿤 등은 그룹의 전 아시아적 인기 견인에 큰 역할을 했다. 이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6월에 나온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의 검색량은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압도적이었다. 아이즈원 역시 히토미, 사쿠라, 나코의 존재로 일본에서 주목받았다.
확장을 통해 얻는 열매는 이윤이다. 3세대 그룹, 즉 한국인과 외국인 멤버가 적절히 섞인 케이팝 그룹은 그렇게 탄생했다. 시장 논리였다.
 
케이팝을 둔 가장 위험한 주장은 시장논리 바깥에서 나온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표어를 케이팝의 인기와 결부시키려는, 이른바 ‘국뽕’적 분석이 나온 것이다. EDM이 바탕인 ‘강남스타일’에 “한민족의 문화 DNA가 있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그러나 ‘강남스타일’을 듣던 중 휘모리장단의 아름다움에 우리의 가슴이 웅장해진 적이 있던가? 과도한 국뽕은 오히려 ‘한국적’,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것과 멀어진 케이팝의 방향성을 보여줬다.
 
“외국인들도 케이팝에 한국적인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규탁 교수의 설명이다. “근데 그 ‘한국적’이라는 건 연습생 트레이닝 과정, 데뷔 후 매니지먼트, 뮤직비디오나 무대에서 보여지는 비주얼과 완성도를 합친 거죠. 민족문화적인 게 아니에요.” 즉 케이팝은 한국적 색채가 들어가야 한다거나, 한국인만 구현 가능하다거나, 한국어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닌 셈이다.
 
니쥬의 등장이 갖는 의미는 크다. 지금껏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구성된 그룹이 한국 기획사를 통해 데뷔한 경우는 많았다. 니쥬는 조금 다르다. JYP 시스템을 통했지만 전부 일본인이고, 한국어보다 일본어로 더 많은 활동을 할 예정이다.
 
니쥬는 과거 등장한 ‘한국인 없는 케이팝 그룹’과도 다르다. 무려 6년 전인 2014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석사과정에서 김보라 씨는 ‘한국인이 없는 케이팝 그룹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며 비한국인 남성들을 선발해 케이팝 그룹을 만드는 실험을 했다. 그렇게 결성된 그룹이 이엑스피 에디션(EXP Edition)이다. 이들은 비록 전문적이지는 않았지만 트레이닝을 받고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불렀다. 김보라 씨의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이들은 한국 데뷔를 준비했고, 2017년 한국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들은 스스로를 ‘케이팝 그룹’이라 칭했고, 한국인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실제 그해 이엑스피 에디션은 케이팝 관련해 두 차례 작은 수상을 하기도 했다. 니쥬와 같은 구성이지만 반응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이에 대해 자본 수준의 차이를 언급했다. “이엑스피 에디션은 정식 아이돌이라기보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팬들의 서브컬처에서 탄생한 느낌이 있죠. 그에 비해 니쥬는 JYP라는 거대 자본 아래서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받았잖아요.”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한일 갈등도 있겠죠?”
 
한국 기술에 현지인 멤버들이 더해져 탄생한 아이돌 그룹 역시 니쥬가 처음은 아니다. 니쥬에 앞서 중국에서는 보이스토리가 데뷔했다. 멤버 중 한국인은 없지만 이들을 프로듀싱한 건 JYP다. 다만 이들은 한국에서 니쥬만큼 화제가 되진 못했다. 한일 관계의 비관적인 상황이 오히려 니쥬의 이름을 알린 셈이다.
 
다국적 한류 4세대 그룹이 시작되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나 YG엔터테인먼트, CJ ENM 등 대형 기획사들도 현지 그룹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프로듀스〉 같은 거 몇 번만 더 하면 한국에서 출연 안 해본 연습생이 없을 거라고 하잖아요.” 김윤하 음악 평론가가 웃으면서 말했다. “한국에서 만들 수 있는 인프라에는 한계가 명확해요. 그래서 수많은 케이팝 그룹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거고, 이제 그걸 넘어 케이팝 시스템을 현지에 이식시키려는 거죠.” 케이팝 시스템의 확산은 소프트파워의 수출이라는 것이다.
 
니쥬는 아주 단적으로, 트와이스의 동생 같잖아요.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 과정이 공개된 거나, 무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정하는 것도 그렇고요. 케이팝 그 자체죠.”
이런 이식 과정에서 기술 등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 비즈니스 센터의 황선혜 센터장은 이렇게 답했다.
 
“이미 10여 년쯤 전부터 한류 드라마나 케이팝 콘텐츠를 만들던 분들이 아시아 각국으로 이직하곤 했어요. 그런 분들의 노하우나 아이디어가 해외 콘텐츠에 들어갔을 텐데 케이팝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나요?”
이규탁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케이팝 기획사에서 일하던 분들이 해외로 이직해 현지에 노하우를 이식한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케이팝이 글로벌 음악 장르가 됐기 때문에 케이팝적 요소를 갖춘 해외의 음악이 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죠.” 그에 따르면 ‘케이팝 느낌’의 제이팝이나 시팝(중국 팝)은 결코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없다. 트와이스의 ‘미사모쯔’나 니쥬는 아류가 되기보다 스스로 케이팝에 포함되길 선택한 셈이다.
 
황 센터장은 케이팝의 프로듀싱으로 만들어진 아이돌이 일본에서 인기를 넘어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보다는 메이드 바이 코리아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굳이 정체성을 분류해야 한다면 저는 니쥬의 국적이 ‘한류계(系)’라고 봐요.”
암초는 있다. 역사와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동아시아의 특수성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불매 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건 사업 측면에선 리스크다. 김윤하 음악 평론가는 문화 산업과 정치사회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아이돌이나 음악 산업은 ‘호감’을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워요. 애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필요하겠죠.”
 
정식 데뷔를 하기 전부터 일어나는 소동을 보면, 케이팝 아이돌 니쥬가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다. ‘케이팝 이식’이 들불처럼 번질 것이다. 케이팝의 확장은 이제 막 시작됐다. 새 시대의 문 건너편에서 니쥬는 우리가 쫓아오길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