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주말에 여유롭게 보고 싶은 개인전 3

갤러리에 들어서면 전시를 전투하듯이 보게 된다. 오늘 다 보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모처럼 주말, 한 시간, 두 시간 세지 말고 한 작가의 작품만을 쭉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BY이충섭2020.10.27
성낙희 개인전 ‘LUCID’
성낙희 개인전 'LUCID', 피비갤러리

성낙희 개인전 'LUCID', 피비갤러리

성낙희, Elation 1, acrylic on canvas, 97x130cm, 2020

성낙희, Elation 1, acrylic on canvas, 97x130cm, 2020

성낙희, Elation 10, acrylic on canvas, 97x130cm, 2020

성낙희, Elation 10, acrylic on canvas, 97x130cm, 2020

성낙희는 지난 20여년간 추상 이미지를 그려온 작가로서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 요소를 통해 캔버스에 리듬과 운율, 또는 자유롭게 유영하는 색들의 운동감이나 형태를 그려낸다. 특히, 밑 그림 없이 직관적으로 다양한 색감을 선택하고 유연하게 붓질을 해서 유기적인 공간을 평면 위에 구축하는 자신만의 화법을 연구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 〈LUCID〉에서 선보일 ‘Elation’은 2018년 시작된 ‘Transpose’ 연작과 2019년 ‘Sequence’ 연작과 구성적으로 같은 맥락을 갖고 있지만 작가의 시각이 좀 더 심화됨으로서 변주한다. 특히, 화면 속에 중첩된 이미지들은 그 안을 점유하는 공간들 사이에 느긋이 머물면서 작가의 의도와 움직임을 더욱 주목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성낙희 작가의 추상 작업을 흔히 절제된 결정(decisiveness)으로 이루어진 색과 면들이 켜켜이 더해 가면서 서로 밀고 당기는 짜임을 가진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구조는 순간의 선택으로 예측하기 어렵고 보는 사람에 따라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반대로 면들끼리 서로 감싸 안는 하모니를 느낄 수도 있다. 성낙희 작가는 채워져 있지만 채워지지 않은 부분과 완성됐지만 완결되지 않은 부분을 주목하고 하나하나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통해 완전함을 향해 간다.

날짜 11월 5일 ~ 12월 26일 장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 125-6, 1층 피비 갤러리
 
 
이정배 개인전 ‘평평한 돌기’
이정배, 평평한 돌기 Flat protrusion, installation view, GOODSPACE, 2020

이정배, 평평한 돌기 Flat protrusion, installation view, GOODSPACE, 2020

이정배, 평평한 돌기 Flat protrusion, installation view, GOODSPACE, 2020

이정배, 평평한 돌기 Flat protrusion, installation view, GOODSPACE, 2020

이정배는 한계가 없는 작가다. 전공인 회화를 비롯해 사진, 영상, 설치 작업, 가구 조형 등 매체와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을 한다. 그런 이정배 작가를 변하게 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2016년 ‘부분이 된 전체’ 연작을 선보이면서 부터다. 그는 자본에 잠식돼 가는 풍경과 본연의 의미를 잃은 자연을 폭로하기 위해서 분절된 풍경의 이미지를 오브제로 옮기고 페인트로 조색한 다음, 수백 번에 걸쳐 도장하는 과정을 통해 빌딩숲 사이로 조각나 버린 자연의 경관을 구성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해 버린 자연을 비정형의 덩어리로 재현하고 그 위에는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 일명 ‘달콤한 컬러’를 입혔다.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의 기하학적 풍경을 연출하는데 본연의 모습을 잃고 표류하는 자연을 포착해서 이정배 작가 특유의 입체적이고 날카로운 해석이 들어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평평한 돌기(Flat protrusion)’는 거대 자연이 부분적으로 탈바꿈된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나타낸다. 이정배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서 인간의 필요와 욕망,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곱씹어보는 것은 어떨까.
날짜 10월 27일 ~ 11월 27일 장소 대구 중구 동덕로 8길 26-13 굿스페이스
 
이진주 개인전 ‘사각(死角)’
사각 死角 The Unperceived, 2020, Korean color and acrylic on linen, 122x488cm, 122x488cm, 122x244cm, 122x220cm ⓒ 2020 Jinju Lee

사각 死角 The Unperceived, 2020, Korean color and acrylic on linen, 122x488cm, 122x488cm, 122x244cm, 122x220cm ⓒ 2020 Jinju Lee

사각 死角 (a) The Unperceived (a) ⓒ 2020 Jinju Lee_세부

사각 死角 (a) The Unperceived (a) ⓒ 2020 Jinju Lee_세부

사각 死角 (b) The Unperceived (b) ⓒ 2020 Jinju Lee_세부

사각 死角 (b) The Unperceived (b) ⓒ 2020 Jinju Lee_세부

이진주 작가는 우리가 알 수 있었으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 존재하는 사실이지만 어둠에 가리워져서 보이지 않는 것, 즉, ‘사각(死角)’에 주목했다. 우리는 세상을 헤아릴 때 저마다의 생각과 경험의 범위에서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스스로는 완벽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근본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쪽이라기 보다, 어딘가 왜곡되거나 불완전한 판단에 가깝다. 이진주 작가는 가로 폭 4.8미터 회화 2점과 2.4미터 회화 1점, 2.2미터 회화 1점이 영어 알파벳 A자 형태를 이루는 대형 설치 회화 작품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사각’을 표현했다. 뮤지엄 공간 어디에 서도 4점의 작품 전체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없는 구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삶의 이면과 보이지 않는 진실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작품 속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a면은 삶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상기시키는 흰색 벽들로 구분된다. 그 벽들 사이로 의사가 막 태어난 아기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리는 모습이나 발끝으로 디디고 서서 벽에 난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아이 등을 찾아 볼 수 있다. a면은 다양한 오브제가 뒤엉켜 있긴 하지만,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살아남아 보려는 사람들의 희망찬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반면 b면은 어지럽게 뒤엉킨 광목 천들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탁한 적갈색의 강물, 핏빛 속살을 드러낸 나무, 그 나무의 수액을 채취 중인 사람 등을 표현함으로서 사람들이 혼돈의 시대를 바로잡으려고 하기 보다 무규범의 상태로 퇴보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길게 펼쳐진 a, b면의 서사를 지나서 c면은 검은색 어두운 배경의 한 가운데 한 여인과 미성숙한 여아가 눈을 감은 채 앉아 있고 그 주변으로 눈꽃처럼 잿가루가 흩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두운 세상 속에 선 연약한 두 존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비교적 평온한 표정의 두 여자는 순수 그 자체이자,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어둠이 더 이상 그들의 영역에 다가서지 못하도록 막는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날짜 ~ 2021년 2월 14일 장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 83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