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너 왜 내 문화 훔쳐가?

K팝, 너 왜 내 문화 훔쳐가?

BYESQUIRE2020.12.31
 
 

K팝, 너 왜 내 문화 훔쳐가?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걸그룹 블랙핑크에게 갑자기 인도인들의 ‘댓글 폭격’이 쏟아졌다. 싱글 ‘How You Like That’의 뮤직비디오에 잠깐 등장한, 힌두교 신 중 하나인 ‘가네샤’의 신상(神像)이 문제였다. 결국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측은 관련 이미지를 삭제하고 다른 소품으로 대체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보이그룹 NCT U에게 해외 팬들이 비판을 퍼부었다. 싱글 ‘Make a Wish’의 뮤직비디오에서 멤버 루카스가 드레드록스(dreadlocks) 헤어를 한 게 원인이었다.
 
두 사건에 대한 해외 팬들의 공통된 지적은 ‘문화 도용(Cultural Appropriation)’이라는 것이다. 케임브리지 사전에 따르면 문화 도용이란 ‘다른 문화권의 문화 요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존중 없이 그것을 이용하는 행위’다. 블랙핑크의 경우 가네샤 신상을 바닥에 방치하듯 놓은 것이 ‘힌두교도가 모시는 신에 대한 존중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NCT U는 ‘노예로 끌려와서 고생한 북중미 흑인들의 고난과 아픔을 상징하는 드레드록스 헤어를 단순한 패션으로 취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도나 북중미 흑인들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 및 존중 없이 해당 문화적 요소들을 소품처럼 활용했다는 것이다.
 
K팝의 문화 도용에 관한 논란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K팝 팬이라면 2017년 마마무가 콘서트에서 브루노 마스의 ‘Uptown Funk’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하고 등장했다가 국내외 팬과 미디어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사과한 일을 기억할 것이다. 2013년에는 샤이니가 멕시코 콘서트 도중 멕시코인 분장을 한 채 1990년대 라틴팝 히트곡 ‘Macarena’를 무대 위에서 커버한 것이 해외 팬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라틴팝이긴 하지만 ‘Macarena’는 스페인 가수의 히트곡으로 멕시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부 멕시코 팬들은 이 무대가 ‘멕시코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결여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문화 도용 논란이 과거보다 자주 제기되는 건 K팝의 인기 영역이 그만큼 넓어져서다. 1990년대 후반의 1세대 K팝은 대체로 한국 팬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로컬 음악’이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2세대 K팝은 국제적인 음악이 되었지만, 주요 시장은 여전히 본국인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였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3세대 K팝 가수들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최근 3~4년 사이 극적으로 팬층이 넓어진 현재, K팝은 더 이상 한국만을 위한 음악이 아니다. 굳이 과장이나 ‘국뽕’을 더하지 않아도, K팝은 이제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대중음악 장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제는 문제가 된다. 10년 전 노라조가 한국 팬들을 대상으로 ‘카레’를 발표했을 때는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만, 전 세계에 팬덤을 거느린 K팝 그룹 세븐틴이 그 노래를 부르면 즉시 해외 팬들에게 알려지는 동시에 ‘인도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마마무나 샤이니의 경우처럼 K팝 산업 세계화의 속도에 비해 기획사나 가수의 타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다소 뒤처지는 것 역시 이러한 논란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K팝의 문화 도용 논란은 K팝의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이미 글로벌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 영미권 대중음악은 수용자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포괄하는, 일종의 보편성을 가진 음악으로 인식된다. 즉 그들이 다른 문화의 요소를 일부 차용한다고 해도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령 2014년 팝가수 에이브릴 라빈이 자신의 곡 ‘Hello Kitty’의 뮤직비디오에 일본 문화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때, 정작 일본인을 포함한 해외 팬들이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화가 되었다고 해도 비서구·비영어권 음악인 K팝은 근본적으로 ‘한국(및 동아시아)’라고 하는 특정한 지역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악이다. 그렇다 보니 이질적인 문화 요소가 차용될 경우 이에 대한 설왕설래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K팝은 팬들과의 활발하고 즉각적인 소통, 즉 ‘팬들의 요구 사항에 발 빠르게 응대하고 그것을 수용한다’라는 것을 중요한 특성으로 하는 장르다. 다른 장르의 팬들에 비해 K팝 팬들은 기획사나 가수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고, 이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과 결합되어 이런 논란이 더욱 크게 이슈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 기획사나 가수 입장에서는 이들의 요구 사항을 무시할 수 없기에 공식적인 대응을 통해 팬들과의 소통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문화 도용과 관련된 논란은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다. 특히 지역 음악에서 글로벌 음악이 된, 흔치 않은 사례인 K팝은 장르적 특성상 지역적 특수성과 글로벌 보편성을 모두 구현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다른 문화의 요소를 단지 볼거리 소재로만 다루는 관습이나 특정한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관점은 글로벌 장르로서의 K팝이 반드시 심각하게 고려하고 피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드레드록스 헤어스타일과 관련된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 이미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화에 대해 특정 집단이 일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2018년 한 흑인 사회운동가가 브루노 마스를 ‘흑인 음악을 도용하여 금전적 이익과 명성을 얻은 문화 도둑’이라고 비판했을 때 - 그는 푸에르토리코인과 유대인 혼혈 아버지와 필리핀인과 스페인인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인종적 배경을 갖고 있다 - , 다른 흑인들이 ‘더 이상 흑인 음악을 흑인의 것으로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 이제 흑인 음악은 모두의 음악이다’라고 반박했던 것처럼, 빠르고 폭넓게 세계화가 이루어진 현 대중음악에서 ‘내 것 네 것’을 강조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 없는 일이 된 지 오래다. 저명한 문화연구자인 고(故) 스튜어트 홀의 말처럼 ‘대중음악은 근본적으로 혼종성(하이브리드)에 바탕을 둔 문화’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국내외 수용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K팝 산업의 이(異)문화에 대한 감수성보다 수용자들, 특히 K팝의 주요 수용자인 Z세대의 이문화 감수성이 훨씬 앞서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획사나 가수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팬들이 앞서 지적하고 논쟁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 도용과 관련된 논란은 어쩌면 새로운 4세대 K팝이 등장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K팝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벌 대중음악이 되어가는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Who is the writer?
이규탁은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로, K팝과 대중음악 그리고 음악산업을 연구한다. 저서 〈케이팝의 시대〉, 〈대중음악의 세계화와 디지털화〉, 〈갈등하는 케이, 팝〉을 비롯해 대중음악과 K팝에 관한 다수의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