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고고한 스타와 휘황찬란한 광고의 시대를 회상하다

고고한 스타와 휘황찬란하던 광고의 시대를 회상하다.

BYESQUIRE2021.03.15
 
 

고고한 스타와 휘황찬란하던 광고의 시대를 회상하다

 
현빈이 공격했다. 페이스북에 현빈의 광고가 떴다. 그는 아주 평범하게 세팅된 방의 침대에 걸터앉아 말했다. “솜의 형태로 된 메모리 폼이 친환경 옥수수 솜을 만나 포근하고 부드럽게 목을 지지해줍니다. 세탁도 간편하니 꼭 사용해보세요”. 아찔했다. 왜 현빈이 1980년대 화장품 방문판매원처럼 베개의 효능을 설명하고 있는 거지? 내가 상상한 현빈의 베개 광고는 이런 게 아니다. 현빈이 누워 있다. 미드 센추리 스타일로 세팅된 방에서 베개에 목을 괴고 있다. 앰비언트 음악이 흘러나온다. 현빈이 천천히 눈을 뜨고 당신을 바라본다. 아래에 광고 문구가 나온다. 포근하게, 부드럽게, 편안하게. 그게 스타의 힘이다. 광고는 스타의 이미지가 발산하는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스타는 상품의 효능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함께 등장해 살짝 웃기만 하면 된다. 이 광고는 그러지 않았다. 현빈의 입에서 베개의 효능이 줄줄 나왔다. 2개를 구매하면 사은품을 준다는 말을 현빈이 직접 말했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비가 급습했다. 티브이를 틀자 비가 있었다. 그는 홍삼 스틱을 하나 꺼내더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건 추억의 과자 아폴로 이후 처음이라는 듯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혼잣말을 했다. “어우 맛있다. 안 쓰고 맛있네. 힘내야지." 그러다 카메라 옆의 누군가에게 홍삼 스틱을 건넸다. “먹을래 홍삼?" 제대로 된 조명도 세팅도 없었다. 마치 아이폰으로 친구가 찍은 것 같았다. 놀라웠다. 내가 상상했을 법한 비의 홍삼 광고는 이런 게 아니다. 비가 화려한 조명에 감싸여 있다. 그는 공연을 끝내고 대기실로 간다. 홍삼 스틱을 하나 발견한다. 홍삼 스틱은 화려한 조명에 감싸여 있다. 그걸 들고 한 번에 들이켠다. 쪽쪽 빨아먹어서는 안 된다. 스타는 화면 앞에서 뭔가를 쪽쪽 빨아먹지 않는다. 그리고 비가 말한다. “비가 선택한 힘." 광고는 끝난다.
 
연이은 습격에 놀라 냉수를 한 잔 마셨다. 광고는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광고쟁이들을 동경했다.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30초의 영상으로 보는 사람을 완벽하게 사로잡아 소비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엄청난 자본이 아낌없이 투하된다. 어떤 광고들은 걸작으로 불리는 드라마나 영화 못지않은 예술적 지위를 획득하기도 한다. 광고는 새로운 영화감독을 발굴하는 일종의 오디션장이기도 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해야 할 사람은 리들리 스콧일 것이다.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로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가 된 그는 원래 광고쟁이였다. 동생 토니 스콧과 함께 그는 1968년 광고 회사 RSA(리들리 스콧 어소시에이션)를 차려 2000여 편이 넘는 광고를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건 전설적인 애플 매킨토시의 광고일 것이다. 1984년 1월 22일 슈퍼볼 시즌에 딱 한 번 방영된 이 광고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킨토시의 새 컴퓨터가 출시된 해는 1984년이다. 미래의 전체주의 사회를 풍자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배경이 되는 해다. 리들리 스콧은 시장을 정복하고 있던 컴퓨터 회사 IBM을 〈1984〉의 통제 시스템인 ‘빅 브라더'로, 매킨토시를 새로운 시대의 구원자로 묘사했다. 경찰에 쫓기며 뛰어가던 여성이 거대한 IBM 컴퓨터 화면을 해머로 파괴하는 이 광고는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를 낳았고,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의 영감의 원천이 됐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세븐〉 〈파이트 클럽〉의 데이비드 핀처도,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도, 〈300〉 〈저스티스 리그〉의 잭 스나이더도,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도 광고쟁이였다. 한국에도 광고쟁이 출신 감독들이 있다.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유령〉의 민병천, 〈뷰티 인사이드〉의 백종열이다. 이들이 모두 좋은 감독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패작에서도 그들은 잊히지 않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광고는 앞섰고 영화와 드라마는 뒤를 따랐다. 그게 순서였다. 2021년의 광고는 그렇지 않다. SNS를 인내심 없이 새로고침 하는 이들을 위한 바이럴 광고에 집중할 뿐이다. 순서는 바뀌었다. 누구도 티브이를 위해 광고를 만들지 않는다. 바이럴 광고를 만든 뒤 그걸 티브이 광고로도 편집해 방영한다. 어쩔 도리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손바닥 속 화면에서 수억 원짜리 세트와 전문적인 조명과 특수효과의 힘을 더는 실감하지 못한다. 스타의 힘도 예전처럼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옆집 친구처럼 생긴 사람이 “이거 써봤어? 대박!”이라고 외칠 때 비로소 스크롤을 멈춘다. 그래서 바이럴 광고 속에서는 스타들도 옆집 친구가 된다. 현빈은 잘생긴 옆집 총각이 되고 비는 앞집 둘째 아들이 된다. 베개를 들고 홍삼 스틱을 빨아먹으며 제품의 효능을 늘어놓는다. “정보를 더 알고 싶으면 팔로우하세요!” 방문판매원처럼 외친다.
 
라떼는 그랬다. 당대의 스타들에게는 당대의 광고가 있었다. 창의적인 광고쟁이들은 스타를 허투루 소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타의 이미지를 최대한 증폭시켜 수많은 사람에게 물건을 성공적으로 팔아야 했다. 나는 아직도 1990년에 나온 이미연의 가나 초콜릿 광고를 기억한다. 이미연은 한 남자의 품에 안겨 가나 초콜릿을 들고 수줍게 재킷 안에 얼굴을 묻었다 내민다. 노래가 나온다. “난 사랑해요. 이 세상 슬픔까지도. 젊음은 좋은 것. 하늘을 보면서 살아요.”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정말 기가 막힌 광고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남자 모델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미연은 만인의 연인이었다. 만인의 연인에게는 특정한 연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나 초콜릿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미연에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연인의 이미지가 남았다. 전지현의 광고가 등장한 1999년의 어느 날도 여전히 기억한다. 무명이던 전지현은 삼성 마이젯 프린터 광고에서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말없이 춤만 췄다. 프린터는 마지막 화면에서야 잠깐 비쳤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모두가 전지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프린터는 기가 막히게 팔렸고 전지현은 말 한 마디 없이 스타가 됐다.
 
그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티브이의 위상은 추락한다. 모두가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를 본다. 마하의 속도로 지나치는 영상들 사이에서 광고를 본다. 스타들은 일상적인 배경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당신에게 물건을 판다. 세상은 바뀐다. 광고는 미디어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결국 소비자가 선택한 것이다. 광고 시장에서 소비자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왕이다. 그래서 슬프냐고? 사실은 좀 슬프다. 고고한 스타와 휘황찬란한 광고의 시대가 내 눈앞에서 막을 내리고 있다. 어떻게 비극적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고민하다 페이스북을 켰다. 정우성이 세수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세안하는 거 한번 볼래? 오늘도 자알 생겼다"라고 애교를 부리더니 정확한 발음으로 화면을 보며 말했다. “세안 후에는 xxxx의 올인원! 이거 바르면 나랑 사귀는 거다." 정우성이었다. 한국 최후의 고전 스타 중 한 명인 정우성이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얼굴만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스타였다. 나는 마침내 무릎을 꿇고 더는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끝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던 광고의 시대는 이미 끝난 것이었다.
 
Who's the writer?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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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이은호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