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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사기꾼으로 살아남는 법

프로필 by 오성윤 2022.03.10
 
 
노르웨이 출신인 세실은 런던에 거주 중이었고, 종종 틴더를 통해 남자들을 만났다. 그녀는 낯선 사람과의 데이트에 따라오는 긴장감을 즐겼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어릴 적 보고 자란 디즈니의 영화 같은 사랑을 찾았다. 특히 사운드트랙에 나오는 모든 노래를 외울 정도로 <미녀와 야수>를 좋아했다. 상처받은 야수를 구한 벨은 이후 야수로부터 구원받는다.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그녀에게 사이먼은 한때 정말 사랑이었다. 디제잉을 배우는 게 인생의 대수인 회사원 아저씨들과 술주정뱅이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낸 틴더의 한량들 사이에서 사이먼은 보석처럼 빛났다. 그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는 세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수염을 가지런하게 가다듬은 유대계 미남 사이먼은 인스타그램 사진 속에서 전용기의 가죽 의자에 앉아 샴페인을 들이켰고, 시저 도어를 열어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앞에서 포즈를 취했으며, 럭셔리 요트의 포어덱에서 한낮을 즐기고 있었다. 스와이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번 그냥 보자는 건데, 결혼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세실과 사이먼과의 첫 데이트만으로도 단편소설 하나쯤 쓸 수 있을 것이다. 둘은 포시즌스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이 ‘다이아몬드의 왕’으로 알려진 레브 레비에프의 아들, 사이먼 레비에프라며 ‘다이아몬드의 왕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당신과 더 친해지고 싶은데, 오늘 불가리아로 출장 가야 한다’는 사이먼의 말에 세실은 사이먼의 롤스로이스를 타고 집에 가 짐을 챙겨 왔다. 롤스로이스에서 내려 전용기를 타고 캐비아를 먹고 샴페인을 마시며 불가리아로 떠나는 인생을 꿈꾸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불가리아에서 사이먼과 밤을 보낸 세실은 사이먼의 등에 있는 상처를 발견한다.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 중 하나가 자신을 배신하고 사기죄로 고발하는 바람에 남아공 감옥에 갇혔을 때 얻은 상처라고 말했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이제 남은 것은 벨이 상처 입은 다이아몬드 왕자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뿐이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뒷얘기는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이먼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며 세실에게 돈을 요구하고, 세실은 자신이 다이아몬드 왕자님을 구원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눈치챘다시피 사이먼은 일종의 폰지 사기꾼이었다. 전에 만나던 여자의 신용(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는다)을 담보로 흥청망청하며 다음번 여자를 꾀고, 다음번 여자가 넘어오면 또 다른 희생자를 찾는다.
최근 패션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기꾼 이야기는 뭘까? <배너티 페어>의 포토 에디터였던 레이철 윌리엄스가 지난 2018년에 <피플> 매거진의 인턴으로부터 6만 달러를 사기당했다며 까발린 일이 아니었을까? 레이철은 맨해튼 브룸 스트리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애나 델비를 처음 만났다. 레이철은 애나를 보기 전부터 알았다. 뉴욕 패션 피플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여러 번 오르내렸던 터라 이미 낯이 익었다. 심지어 당시 애나의 계정만 해도 팔로워가 4만 명이 넘었다. 잡지사 인턴치고는 대단한 유명세를 이미 누리고 있었던 셈이다. 레이철이 애나와 몇 주에 한 번씩 만나는 동안 애나는 11 하워드 호텔에 머물며 호텔 지상층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르쿠쿠에서 주로 식사를 했다.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수상한 파인 다이닝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몬턱산 장어로 애피타이저를 시작하며 빳빳한 100달러짜리 지폐를 팁으로 뿌렸다.
레이철은 르쿠쿠의 셰프인 다니엘 로즈가 애나를 위해 메뉴에도 없는 부야베스를 내오는 걸 봤다. 레이철과 애나는 빠르게 친해졌다. 그 결말에 대해서는 2018년에 레이철이 <배너티 페어>에 쓴 장문의 기사에 자세히 나와 있다. 애나는 모든 비용이 다 지불되어 있으니 모로코의 마라케시로 여행을 떠나자면서 레이철과 그녀의 친구를 꾀었다. 1박에 7000달러인 리조트에서 5일간의 환상적인 휴가를 보냈을 때, 호텔 직원들이 찾아와 일행에게 ‘사용 가능한 신용카드’를 요구했다. “잠깐 돈이 막혔는데 곧 갚아줄게”라는 애나의 말을 레이철은 믿었고, 지갑에서 자신의 아멕스 카드를 꺼냈다. 이 여행에 들어간 돈 총 6만2000달러(7400만원)가 레이철의 카드로 결제됐고, 애나는 결국 그 돈을 갚지 않았다. 애나에게 돈을 뜯긴 사람이 레이철만은 아니었다. 뉴욕 상류사회의 컬렉터들, 자산가들, 은행이 그녀에게 약 20만 달러를 뜯겼다. 호텔에서 뿌리던 100달러짜리 지폐가 뉴욕 뱅커들의 대출이었던 셈이다. 레이철의 시점이 아닌 <뉴욕> 매거진의 기자 제시카 프레슬러의 시점에서 풀어낸 애나의 이야기가 넷플릭스에 <애나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있으니 참고하시길.
 
이 시대에 사기꾼으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확연하다. 항상 인스타그램을 생각하라. 니콜 키드먼과 휴 그랜트가 주연으로 만나 화제를 뿌렸던 HBO의 드라마 <언두잉>은 살인자 남편에게 속은 아내의 절망에 관한 이야기다. 그레이스(니콜 키드먼 분)가 사랑하는 남편, 언제나 완벽해 보였던 암 전문의 조너선(휴 그랜트 분)이 사실은 난봉꾼에 살인자였다는 내용이다. 남편의 정체를 알게 된 그레이스가 이 남자와 어째서 사랑에 빠졌는지를 자책하고 있을 때, 그레이스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 그에게 말했으니까.”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 가장 정확하게 올라와 있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미녀와 야수>를 사랑하는 여성에게 남아공에서 입은 등의 상처를 보여주며 ‘실은 다이아몬드 나라의 왕자’라고 내비치는 사람을 당해낼 순 없다. 파인 다이닝에서 보르도 와인을 마시며 마치 서재에 드나들듯 부티크 호텔에 드나드는 삶을 원하는 잡지사 에디터에게 메뉴에 없는 셰프의 부야베스는 필살의 한 수다. 매혹적인 사기꾼들에 관한 두 개의 작품이 넷플릭스에서 동시에 인기를 누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우리의 욕망을 나열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다. 우리는 남들이 나열한 욕망을 스크롤하며 학습한다. 그러니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본 스타일의 사진과 마주칠 땐 머릿속에 빨간불을 켜기 바란다. 인피니티 풀과 석양을 배경으로 비키니를 입고 있는 여자, 벤츠의 삼각별이 박힌 핸들 위에 금장 롤렉스를 찬 손목을 얹고 있는 남자의 사진 따위 말이다. <애나 만들기>는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모두 실화다. 완전히 꾸며낸 부분만 제외하면.” 당신이 학습한 모든 욕망에 대입해 봐도 참인 문구다. →
 

 
Who‘s the writer?
박세회는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피처 디렉터이자 소설가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WRITER 박세회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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