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시대를 초월해서 반복되는 슈퍼푸드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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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하는 슈퍼푸드, 과거에는 ‘건강 음식’이라 불리던 것들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 요소가 있다. 일단 누군가 좋다며 권하는 사람이 있다. 아침마다 전 국민이 민들레와 케일, 신선초를 녹즙으로 갈아 마시던 30년 전에는 이웃의 영향이 컸다. 지금은? 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 속 인플루언서가 매달, 매주 새로운 슈퍼푸드를 들고 나온다. 대개 그런 슈퍼푸드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을 달고 있다. 외국에서 즐겨 먹는다는 생소한 음식을 가져와 다소 장황한 스토리로 ‘썰’을 풀고, 이 음식만 먹으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슈퍼푸드의 공식이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에서는 잘게 채 썰어 수프를 끓여 먹는 케일을 우리는 즙을 내 마치 약처럼 먹고, 브라질에서 흔히 주스로 마시는 아사이베리지만 우리는 동결건조 분말 캡슐로 먹는다. 요즘 미국에서 뜨거운 인기라는 ‘아쉬와간다’ 역시 이 공식에 정확히 부합한다. 낯선 이름이지만 효능은 생소하지 않다. 불안, 스트레스, 불면증을 완화하고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까지 끌어올려준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소리. 인도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약초라니 왠지 믿음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쉬와간다에도 부작용이 있다. 사람에 따라 위장장애나 구역질, 설사가 일어날 수 있고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사람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다. 이렇듯 부작용이 명확하다는 것도 이른바 슈퍼푸드의 공통점이다. 과거 인기가 대단했던 해독주스 역시 피부 발진을 유발하거나 항응고 약물과의 상호작용으로 문제가 된 바 있는데, 같은 맥락이다.
특정 식품이나 성분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때 대단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 슈퍼푸드가 화려하게 ‘컴백’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라는 도구가 생기고 난 뒤 이런 현상을 더 자주 보게 됐다. 대표적인 예로 엽록소가 있다. 엽록소를 섭취하면 피부가 맑아지고 배에 가스가 줄어들며 심지어 체취까지 좋아진다고 한다. 수십 년 전에 봤던 광고 문구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지만 인기는 높다. 틱톡이나 릴스를 보면 엽록소 캡슐을 삼키는 사람뿐만 아니라 액상 엽록소를 물에 타서 마시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효능을 살펴보면 글쎄, 일단 슈퍼푸드 제품으로 만들어진 엽록소는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 물질이 아니다. 식물에서 꺼낸 엽록소는 금방 변질되어 상품화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시장에 나와 있는 엽록소는 분자 속 마그네슘을 구리로 대체한 반합성품이 대다수다. 더 큰 문제는 엽록소가 애초에 인체 내에 잘 흡수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덩치가 너무 큰 분자이기 때문이다. 흡수도 안 되는 성분이 피부를 깨끗하게 해줄 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구취 제거나 장내 가스 제거는 체내 흡수와 상관없이 가능할 수는 있으나, 관련 연구는 형편없다. 1980년에 62명의 요양원 노인을 대상으로 체취를 줄일 수 있는지 연구한 결과가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신빙성이 떨어질뿐더러 40년이 지나는 세월 동안 재현된 적도 없다.
이렇게 근거가 부족함에도 다시 엽록소의 인기가 높아진 건, 효과가 있어서가 아니다. 수십 년 전 부모 혹은 조부모가 속아 넘어간 과대광고에 경제력을 갖게 된 젊은 세대가 다시 속아 넘어갔을 뿐이다. 16세기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가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고 말하지 않았나.
나의 첫 책에도 썼지만 잡식동물인 인간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특정 음식을 계속 먹다가 금방 질려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어서는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 기능이 우리 뇌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슈퍼푸드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슈퍼푸드라고 하나만 먹다간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양을 조절해서 한 종류에만 치우치지 않게 음식물을 섭취하면 된다. 간단하지만, 사실은 어렵다. 그에 비하면 한 가지 음식만 먹어서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쉽게 들리는가? 특정 음식을 일주일간 먹었더니 아침이 가벼워지고 혈색이 달라졌다는 유튜브 영상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쉬운 방법으로 건강해지고 싶은 우리의 욕구가 반영돼 있는 것이다.
특정 음식 또는 특정 성분을 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지목하고 밥상에서 제거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밑에 깔린 정서는 똑같다. 여기서도 방점은 ‘빼는’ 게 아니다. ‘먹는’ 데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글루텐 프리 다이어트’는, 글루텐만 빼고 먹고 싶은 대로 먹어보자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얘기다. 그런 다이어트로 식사량이 줄어들 수 있다면 건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양 조절에 실패하면 일반적인 식단과 아무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글루텐 섭취량 때문에 건강에 영향을 받는 경우는 셀리악병 환자가 아니면 극히 드물다.
슈퍼푸드는 상술이다. 실제 건강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없거나 당신의 기대치를 한참 밑돈다.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대개의 경우 슈퍼푸드라고 하는 것들도 ‘식품’의 일종이므로 엄청난 양을 먹지 않는 이상 몸에 해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지갑에는 분명히 해롭다. 나 역시 각종 슈퍼푸드 광고에 홀리거나 주위의 추천에 흔들려서 이것저것 먹어본 경험이 있다. 대부분은 큰 실망으로 끝났다. 짜증이 나서 잠이 안 올 정도였다. 이럴 때 상추 물을 마시면 쉽게 잠들 수 있다고, 한 해외 인플루언서가 한 말이 떠올랐다. 2년 전 해당 인플루언서가 상추 물의 효능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언급하며 극찬하는 영상을 공개한 덕분에 한동안 상추 물이 난리였다. 해당 영상에서 언급된 과학적 근거는 국내 연구진의 연구 결과였다. 상추 추출물을 수면제와 함께 생쥐에게 먹이니 그냥 수면제만 먹인 경우보다 20분을 더 잤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동물 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양쪽에 다 수면제를 주고 실험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상추 추출물의 효과인지도 불확실하다. 야생 상추는 진정 효과가 있지만, 독성도 있어서 사람이 먹을 수 없다. 2009년 야생 상추를 잘못 먹고 중독돼 응급실에 실려 간 이란인 두 명의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아무래도 상추 물을 마시고 잠들긴 틀렸다. 더 이상 슈퍼푸드의 신화에 속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쓰린 마음을 달래보는 수밖에.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기도 전에 또 다른 슈퍼푸드가 같은 효능을 들고 등장하겠지만 말이다.
정재훈은 약사이자 푸드 라이터다. 자칭 ‘카트 끄는 잡식동물’로 미식과 새로운 음식 맛보기를 즐긴다. 저서로 <소식의 과학><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정재훈의 식탐> 등이 있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정재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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