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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사태가 던진 질문 : "케이팝은 누가 만드는가"

민희진 사태가 던진 질문 : "케이팝은 누가 만드는가"

프로필 by 박세회 2024.06.04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있던 4월 25일, 나는 언론사 사옥에서 유튜브 콘텐츠를 찍고 있었다. 하이브가 어도어 감사를 언론에 천명한 날 이후 처음으로 관련된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는 자리였다. 당시 이미 입 있는 모두가 이 사태에 열을 올리며 이 칼럼의 몇 배나 되는 텍스트와 소회를 쏟아내는 모습을 목격하며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물론 당시의 피로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사이드 모니터에 경영권 찬탈, 배임, 무속 경영으로 궁지에 몰린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대표가 등장했다. 그도 지쳐 보였다. 나는 그의 등장을 보며 ‘오늘로 이 공해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민 대표가 사과를 하고 모든 게 끝나겠구나, 라고 나뿐 아니라 모두들 생각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멍청한 예상이었나. 촬영이 끝나고, 다시 TV를 켜니 파란 야구 모자를 면류관처럼 쓴 민 대표가 무대를 휩쓸며 하이브의 경영진들을 비판하는 폭풍과 분노의 랩을 쏟아붓고 있었다. “앞으로 더 바빠지겠는걸.” 함께 그 장면을 보며 친한 프로그램 디렉터 A가 나를 위로했다.
한숨을 내쉬며 근처 작곡가 B의 스튜디오로 발걸음을 옮겼다. B는 재능 있는 프로듀서로 국내외 유명 아이돌 그룹 음악 작업에 다수 참여했다. 만나면 술 한잔 기울이며 케이팝 음악 제작 과정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사이다. 팍팍한 작업 과정과 마감일, 지나치게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크레디트 분배에서의 불공정함 등 한심한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거나하게 취해 있기 일쑤다. 민 대표의 울분에 찬 욕설과 ‘개저씨’ 특강은 우리의 술자리를 똑 닮았다. ‘민 대표와 소주 한잔하는 기분’이라는 댓글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군대 축구같이 골을 자꾸 의장한테 몰아줘요” 부분에서 통쾌한 탄성을 내질렀다. “난 민 대표 말에 완전히 공감해.” 언제부터인가 악지 중의 악지처럼 느껴지는 용산. 그 용산이 내려다보이는 스튜디오의 옥상 계단 위에서 B가 말했다. “케이팝은 눈치를 X나 봐야 해. 자유롭게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다들 알아서 기고 있으니. 자기 거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저렇게 말하잖아? 정신 좀 차려야 해.” ‘자기 거’라는 표현이 남았다. 하이브가 제기한 배임 의혹도, 민 대표가 언급한 배신과 지키기도, 결국 ‘자기 거’를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 아니었던가. 한 마디도 놓치기 싫어 켜놓은 휴대폰에선 민 대표가 눈물을 흘리며 “내 새끼들” 뉴진스를 ‘출산한 기분’을 격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아직 방송이 한창일 무렵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가 전화를 걸었다. “‘케이팝은 누가 만드는가’ 정도로 써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내 마음을 어떻게 읽었을까?
“누가 보면 유난일 수 있어. 그렇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케어해주는 기획자가 소중해.”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C와 연락이 닿았다. 내가 아는 가장 열렬한 케이팝 팬인 C는 광고 업무와 더불어 그토록 응원하던 케이팝 신의 작업물을 담당하는 바람에 고생하고 있다. 쏟아지는 제안과 요청을 수용하며 환상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그에게 민 대표의 자신감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노래, 뮤직비디오, 광고, 자체 콘텐츠. 케이팝은 이제 분야가 넓잖아. 그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사람은 민 대표밖에 없어. 모든 부분이 그룹 이미지에 연결된다는 사실을 아는 거지. 아직 엔터는 한 사람의 뜻이 가장 중요하잖아. ‘빠순이’ 입장에서 제일 ‘빠순이’랑 닮은 사람이야.” C의 목소리에 점차 힘이 붙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영상을 하면서 케이팝 작업도 하는 것이지, 케이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케이팝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고, 따로 있다는 얘기다.
케이팝 관련 프로그램 제작팀에서 일하는 D에 따르면 케이팝이란 ‘엔터 고연차들의 집합 창작물’이다. 그는 매니저, 실장, 대표 등 높은 직책에서 오래 일한 이들이 공유하는 의지와 연대감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직장을 옮긴 E 역시 그들의 결속력이 ‘상당한 수준’이라 뒷받침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빨리빨리 교체되는 산업이다 보니 고연차 직원에 대한 신뢰가 대단해. 함께 동고동락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돈독하고. 사실상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 사람들이 다 하지.” 유영석, 이수만 시절을 생각해보자. 사실 케이팝은 한땀 한땀 공들여 만드는 기존 기획사 고연차 작곡 장인들의 아틀리에에서 탄생했지 않나. 한국을 대표하는 기획사 대부분이 유명 가수, 프로듀서들의 회사고 그들의 영어 약자를 기업 이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E는 그 역사의 계승자로 민 대표를 지목했다. “케이팝의 잔다르크지.”
민 대표가 지난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어도어 레이블을 설명하며 “어도어의 프로덕션 구축과 진행에서 하이브는 어떠한 연관성도, 접점도 없다”고 힘주어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도어는 민 대표가 설립해 하이브가 인수한 회사가 아니라, 하이브가 영입한 민 대표를 위해 자본을 내 만든 자회사다. 멀티 레이블 체제 자체에 책임을 돌리며 하이브의 비대한 인수·합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최근 많은데, 오디션을 위해 설립한 빌리프랩이나 걸그룹 데뷔를 위해 인수·합병한 쏘스뮤직과 어도어는 궤가 다르다. 어도어는 하이브 역사상 최초의 독립 레이블이다. 민 대표가 이야기한 ‘창작과 운영 자율성에 간섭이 없는 ‘시스템을 하이브가 보장했고, 어도어는 하이브의 브랜드와 자본, 노동력을 공유했다.
잔다르크가 이 지점에서 실패한다. 연예기획사에서 근무하는 F는 이 점에서 “다 같이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결국 ‘내 꺼’라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늘날 케이팝은 진작에 산업혁명이 끝난 컨베이어 시스템이다. A&R팀이 음악을 수급하고, 기획팀이 서사를 만들고, 촬영팀이 업체를 선정하고, 홍보팀이 마케팅 계획과 활동 일정을 정하고, 법무팀은 활동 과정에서 예측되는 문제를 미리 해결한다. 2000년대 말부터 대형 기획부터 중소 기획사까지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촘촘한 공정이다.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의 블라인드에서 민 대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민 대표의 시정을 이해한다고 대답했던 D와 E조차 이 부분에서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냈다. “케이팝을 공장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잖아요. 정말 잠깐 쓰는 영상, 짧은 노래 파트인데도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구나 싶어요. 크레디트에 올라온 이름보다 더 많은 사람이 걸쳐 있는 업계예요. 혼자 다 하기는 어렵죠.” 제작의 많은 부분에 참여했더라도 뉴진스를 ‘내 꺼’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내 꺼’는 창작의 주체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케이팝은 음악이 아니고 아이돌 그룹은 정해진 노래와 춤을 연습해 현장에 선보이는 꼭두각시 인형이라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데뷔를 위해 많은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케이팝 연습생의 인권에 동정이 쏟아지고, 이윤 창출을 위해 예술성을 포기하는 탐욕스러운 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과연 무 자르듯 쉽게 나눌 수 있는 문제일까?
‘뉴진스는 내가 블렌딩한 내 꺼’라고 말하면, 뉴진스 역시 꼭두각시가 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발적으로 아이돌이 되려고 연습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자기 의지로 보컬, 춤 학원 다니면서 캐스팅을 노리고, 데뷔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요. 그들도 케이팝의 주체잖아요? 기획자가 케이팝을 다 만들 수는 없어요.” 아이돌도 창작자의 일부라는 것이 D의 의견이다. 아이돌이 어느 정도 자신들의 창작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사태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떠오른 뉴진스의 제작 포뮬러를 하이브가 무분별하게 카피하고 있다는 민 대표의 주장을 이런 견해와 함께 찬찬히 생각하자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아이돌은 단순히 제작자의 설계도에 따라 조립하고,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창조되는 게 아니에요.” D가 말했다.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설계된 공정에 연습생들을 뽑아 넣더라도 그 결과물에는 아이돌 주체들의 매력과 개성이 더해져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콘셉트인가, 아이돌 그 자체의 매력인가? 뉴진스를 완성한 것은 민희진의 포뮬러인가, 뉴진스 멤버들의 매력인가? 민희진 대표가 자신의 지분을 더 크게 주장하면 할수록 뉴진스 멤버들의 지분은 줄어든다. 누군가 과정을 지켜보면 명확하게 칼질할 수 있나?
그래서 케이팝은 누가 만드냐고? 분명하지 않다. 불분명하다는 것만이 분명하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케이팝의 매력이다. 케이팝은 ‘쓰까’ 먹는 비빔밥이다. 온갖 대중음악 장르와 최신 트렌드, 다양한 세대와 문화권의 취향을 거칠게 비벼 먹는다. 지금 우리가 비비는 것은 과거의 전통적인 나물과 지단만이 아니다. 마요네즈가 맛있어? 버터가 맛있어? 일단 다 넣고 비빈다. 고추장에 참기름을 한 스푼 뿌리면, 비빔밥이 완성된다. 비빔밥은 모든 재료의 색을 살리는 샐러드가 아니다. 비비는 행위는 일치단결의 마음과 수많은 마찰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무시와 탈락을 수반한다. 단독이었다면 빛을 발했을 소시지 반찬도 비빔밥 안에서는 빨갛게 버무려진 토핑일 뿐이다. 비인간적인 시스템, 비대한 자아, 비정한 기업 논리, 비상식적인 소비와 과도한 앨범 구매 강요 등에 대한 오랜 비판에도 불구하고 케이팝은 하나의 장르로 선택되어 사랑받고 있다. 민 대표와 하이브의 갈등은 이 낙원이 실은 영화 <트루먼 쇼>와 같은 초거대 세트장이라 폭로하는 역사적인 모먼트였다.
이 사태에서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격무에 시달리는 C와는 함께 가기로 한 식당에 몇 달째 못 가보고 있다. D는 3일 철야, 3시간 수면, 3일 철야의 스케줄을 반복하며 생존하고 있다. ‘엔터는 야근, 박봉, 비난의 삼박자’라 이야기한 E는 야근을 마치고 새벽에야 전화를 받았다. “케이팝 작곡을 하다 보면 솔직히 영혼 없이 일할 때가 많아.” B가 고백한다. “케이팝을 누가 만드냐고? 대중이, 팬이 만드는 거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욕심 부리지 말고, 말도 안 되는 거 하지 말고…. 세상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서로 보듬어주면서 말이야.” 가능하다면 우리가 이런 걸 모르던 4월 22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Credit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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