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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울분에는 이유가 있다_최용환

30대의 울분에 관한 30대의 솔직한 심정.

프로필 by 박세회 2024.10.06
얼마 전 기사 하나를 봤다. 국민 절반이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놓여 있다는 한 조사에 대한 소식이었다. “10명 중 1명은 답답하고 분한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었는데”로 시작하는 기사였는데, 그다음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중에서도 30대는 심각한 수준의 울분을 겪고 있다.” <에스콰이어>에서도 아마 이 기사를 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30대인 내게 물어왔다. 지금의 30대가 겪고 있다는 울분은 과연 모든 세대가 성장하며 30대 때 겪는 과정의 부산물인가, 아니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지금의 30대만이 겪는 특수한 감정인가?
어느 세대나 고충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복작복작하고 다이내믹한 사회에서 크고 작은 위기 없이 지나간 세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예를 들면 한국전쟁 시절을 겪어낸 세대보다, 군부독재 시절을 겪어낸 세대보다 지금의 30대가 더 힘들다는 얘기는 할 수도 없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누가 누가 힘들었나 대결을 하자는 이야기로 가면 어느 세대의 사정이든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정말 30대의 울분이 궁금하다면,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차근차근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인구 중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13~14%이고, 이를 인구수로 환산하면 66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안에서도 열 살 가까운 나이 차이부터 성별, 거주 지역, 부동산 소유 여부 등에 따라 겪고 있는 현실은 수천 갈래일 것이니 30대의 상황을 한 가지로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당연히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아닌데” 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이 지나온 과거와 겪고 있는 현실에는 울분의 씨앗이 움틀 만한 교집합이 있다.
지금의 30대들이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는 1980~1990년대에 태어났고, 2000년대 금융위기와 2020년대 팬데믹을 거쳐 2024년 마침 한국 사회에서 30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지난 20년 사이 가장 큰 화두는 두 가지, 부동산과 일자리였다. 2000년대 이후 주택 가격은 솟구쳤고, 2010년대부터 실업률까지 크게 증가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소득 및 자산의 격차가 가속화되는 시기에 사회에 발을 디딘 이들이다. 이를 너무 명확하게 보여주는 언어적 현상이 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진 ‘취준생’ ‘흙수저’ 등의 신조어들은 모두 우리가 20대를 거치는 시기에 탄생했다. 반대로 말하면 ‘준비생’을 거치지 않고 취업을 할 수 있었던, 또 ‘수저’ 없이도 미래를 그릴 수 있었던 세상은 2010년대에 이미 막을 내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비슷한 현실을 겪고 있는 2030 전체 세대 중에서도 콕 집어 30대가 울분을 토로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기회의 배가 바다 위 점이 되어 떠나가는 광경을 눈으로 목격한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 세대의 무력감을 대표하는 ‘N포세대’ 시리즈의 시초인 3포 세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의 30대가 20대였던 2011년이다. 연애, 결혼, 출산에서 시작된 포기의 범위는 인간관계, 내 집 마련, 꿈, 희망, 외모 관리, 건강 등으로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즉 지금의 30대는 20대 시절, 바로 위 30대들의 다수가 당연한 듯 누리던 기성세대의 가치를 하나하나 포기해나가며 생존한 인간들이다. 지금의 20대들이 맞이하는 현실 또한 결코 녹록지 않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흔히 말해 꿈을 꾸면 이룰 만했던 시절을 아예 목격한 경험도 없으니, 우리와는 울분의 온도가 다르다.
또 하나, 지금 30대인 우리가 20대였을 때, 우리 자신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가 실패할 때면, 그 실패와 좌절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자기계발서가 2011년, 2012년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것이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부딪히고 깨지며 깨달은 것이 바로 이른바 ‘수저의 벽’이었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압력에 대한 반발로 나온 냉소의 표현이 바로 ‘노오력’이었다. 우리는 뜨거운 ‘노력’보다는 냉소 어린 ‘노오력’을 농담으로 주고받으며 씁쓸하게 웃던 사람들이었다. 그 시절 개개인에게 쏟아진 화살과 공감받지 못한 무기력의 경험은 10여 년이 지나서도 모두의 가슴 한편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다.
현실이 이렇게 과거와 달라졌음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과거와 같은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강요됐다. 37세의 회사원 남성 A 씨는 7년 전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신랑 측이 주택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자 친구 집안의 압박을 못 이겨 결혼을 포기했다.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39세 남성 C 씨는 독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잔소리를 듣지만 월급과 생활비를 계산해보니 돈을 전혀 못 모을 게 뻔해 버티고 있다.
결혼을 한 30대들도 결코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은 대개 크든 작든 부모 세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부모 세대의 30대가 하던 것들을 강요받는다. 35세의 직장인 여성 B 씨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육아는 기본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는 (사회 전반의 눈과 시부모님의) 압박에 시달린다고 토로한다. 딩크를 약속한 본인들의 뜻과 관계없이 부모 세대에게 출산의 압박을 받는 부부도 있다. 지인 몇몇의 삶이 이 시대 30대 모두를 대표하지는 않겠지만, 이와 닮은 경우를 여러분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30대는 그들 부모 세대의 30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2020년을 전후해 쏟아져 나온 “지금의 2030세대는 6.25 이후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최초의 세대”라는 기사들이 그 상황을 요약한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 아래에 있는 모든 나라의 추세이며,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불안과 울분의 원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한 “My parents in their 20s(30s) / Me in my 20s(30s)” 밈을 찾아보면 현 상황에 대한 2030 세대의 인식과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밈들은 대체적으로 “우리 부모님은 내 나이 때 이미 결혼해서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셋째 아이를 계획했지만, 나는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모은 게 자랑이고, 게임 레벨이 최대 업적이다” 같은 자조적인 비교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나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 구조를 지닌 한국 사회에서는 그 영향이 보다 뼈아프다.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는 부동산 소유 여부에 따른 자산과 계층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자, 노동력의 가치 하락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2000년대 이후 가속도가 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증대, 비정규직의 확대, 수도권과 지방의 생활 격차, 결혼율과 출산율 하락 등 지금 30대를 둘러싼 복합적 문제들은 모두 서로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처럼 커져가는 격차와 촘촘해진 기준들은 30대를 세대, 성별뿐 아니라 주택 소유자와 미소유자, 기혼자와 미혼자, 직장인과 자영업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등 수많은 레이어의 파편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레이어를 바꿔 쓸 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슬픈 현실을 살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는 이전 세대가 바라는 가치와 새로운 시대에 발맞춘 새로운 가치를 모두 요구받는 ‘낀 세대’다. 안정적 수입과 도전적 태도,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능력과 개인의 취향을 가꾸는 여유, 기존 가치에 대한 순응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다양한 가치와 사상에 대한 유연성, 이걸 다 붙잡고 가려면 고무고무 열매라도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푸념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쉽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엔 ‘다 힘들지 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울분이 모두에게 완벽하게 이해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도 누군가 하나라도 파이팅을 외쳐주는 사람이 생기면 그걸로 족하다. 일단 나부터,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분투하고 있을 30대 친구들, 파이팅이다.

최용환은 음악과 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최용환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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