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의 기다림, 지구에서의 하루
우주에서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다양한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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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좆 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 됐다.”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은 이렇게 시작한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 마크 와트니의 이 절망적인 독백은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심리를 단 한 줄로 압축한다. 우주는 미지와 꿈의 공간이고 보기에 아름답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우주는 생명에게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공간이다. 지구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된 지구의 생명체는 우주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일단 숨을 쉴 수 없다. 우주에는 우리가 필요한 질소와 산소로 구성된 공기가 없고, 1기압에 맞춰 설계된 우리의 몸은 사실상 진공에 가까운 낮은 기압에 노출될 경우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지구의 평균온도는 약 15℃지만, 우주는 위치에 따라 온도라는 개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항성의 주변을 제외하면 극저온인 절대 영도에 가깝다. 중력도 없다. 1G의 중력에서 살아온 인간의 근육과 뼈는 무중력 속에서 급속히 약해진다. 게다가 우주는 생명체에 유해한 감마선과 우주선이 끊임없이 날아드는 공간이기도 하며, 이를 막아주는 지구의 대기와 자기장도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우주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 인간의 생존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주복, 산소공급장치, 열조절 시스템, 방사선 차폐 구조물 등 다양한 기술이 동원된다. 즉 인간이 우주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구의 조건을 인공적으로 재현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이 우주로 가는 일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자, ‘까딱하면 죽을 수 있는’ 공간으로의 진입이다. 마크 와트니의 외침에는 이런 디테일이 숨어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공간에 수많은 사람을 보내본 경험이 있고 그 와중엔 ‘까딱’해본 사례도 있다. 1961년,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해 108분 동안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는 지구 바깥 환경을 처음으로 직접 경험한 인간이 되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69년, 아폴로 11호 미션에서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고, 1970년 아폴로 13호의 승무원인 짐 러벨, 잭 스위거트, 프레드 헤이스는 달로 향하던 중 산소탱크 폭발 사고를 겪었다. 이들은 임무를 달 착륙에서 지구 귀환으로 바꾸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지구로부터 40만171km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했다. 아직까지도 지구로부터 40만 km 이상 멀리 간 인간은 이들이 전부다.
현재 지구 상공 약 400km에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 돌고 있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국제 협력의 상징이다. 2000년 11월 2일, 인간이 처음으로 ISS에 장기 체류하며 임무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비워진 적이 없다. 보통 6명의 우주인이 한 팀으로 파견되며, 각국의 우주인이 약 6개월씩 교대로 임무를 수행한다. 아무리 생명과 건강 유지 장치가 잘 갖춰져 있다 해도 인간을 몇 년씩 우주에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260명 이상의 우주인들이 ISS에 머물렀으며, 오늘도 여전히 그곳에서는 인간이 과학 실험, 기술 검증, 생리 적응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우주정거장 내부에서 생활한다. 이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 물, 음식은 지구와 유사한 수준으로 공급되고, 온도와 습도도 정교하게 조절된다. 근육과 뼈의 손실을 막기 위해 러닝머신, 자전거 등의 운동기구를 활용한 규칙적인 운동도 필수다. 이처럼 우주에서 인간이 살아남으려며,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는 순간, 생존은 끝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볼 수 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어떤 이유로 이들이 지구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면?’
최근에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ISS로 떠난 두 명의 우주비행사 부치 윌모어와 수니 윌리엄스가 9개월 만에 지구로 귀환한 얘기다. 이들은 지난해 6월 ‘보잉’사가 개발한 우주선 ‘스타라이너’의 첫 번째 유인 시험 비행에 참여 차 ISS에 8일간 머물 예정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들이 타고 간 스타라이너는 몇 가지 기술적 문제에 봉착했고, 결국 이들을 태우고 지구로 귀환하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두 사람을 ISS에 남겨둔 채 무인 상태로 복귀했다. 다음 버스는 늦어도 20분이면 오지만 다음 우주선은 기약이 없다. 가장 가깝게 ISS를 왕복하는 우주선은 9월에 도착하는 스페이스 X 캡슐이었다. 문제는 이 스페이스 캡슐에 탄 우주비행사들 역시 ISS에 6개월을 체류한 뒤인 올해 3월에 귀환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부치와 수니의 우주 여정은 8일에서 9개월로 늘어났지만, 지난달 무사 귀환에 성공했다.
이런 사례가 좀 더 황당한 이유 때문에 벌어지기도 한다. 1991년 5월, 러시아의 세르게이 크리칼레프는 소련 소속 우주비행사로서, 미르 우주정거장에 올라갔다. 원래 계획된 체류 기간은 약 5개월. 하지만 그해 말, 지구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다. 소련이 해체된 것이다. 국가가 사라졌고, 정권과 조직은 혼란에 빠졌다. 행정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그에게 내려와야 할 ‘귀환 명령’도 중단됐다. “너를 대신할 다음 우주인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지상에서는 이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그는 귀환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기약 없이 우주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행히 미르 정거장의 생명 유지 장치는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소련 해체 이후 출범한 러시아 연방 정부가 식량과 물을 공급하기 위한 무인 보급선은 계속 보내줬다. 독일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그는 결국 1992년 3월 25일에야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다. 예정됐던 5개월을 훌쩍 넘겨 거의 1년 만인 311일을 우주에서 버틴 끝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가깝게는 미국의 프랭크 루비오 사례도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올라갔던 그의 계획된 체류 기간은 6개월이었다. 올라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구로 귀환해야 할 소유즈 우주선의 외부 냉각계에서 냉각수가 누출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NASA와 러시아의 로스코스모스(Roscosmos)는 “이 우주선은 귀환용으로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랭크는 지구로 돌아갈 탈것을 잃은 셈이 되었다. 지상에서는 대체 귀환선을 보내기 위한 준비가 시작됐지만, 우주선을 제작하고 발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예정된 임무보다 6개월 더 우주에 머물러야 했고, 1년을 넘겨 총 371일간의 체류 끝에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세르게이도 프랭크도 부치도 수니도 다행히 우주에 혼자 남은 것은 아니었다. 팀으로 함께 우주정거장으로 향한 동료들, 그곳에 함께 머무는 동료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이 예정대로 지구로 귀환하는 와중에도, 그들은 귀환이 가능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체류 연장이 아니었다. ‘우주 공간에서의 고립’이었고, 어쩌면 죽음의 공포와 맞닿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았다. 연장된 체류 기간 동안 그들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묻자,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실험하고, 정비하고, 기록하고, 운동하고, 동료를 도왔으며, 다음 임무를 준비했다. 기다리며 일했고, 일하며 견뎠다. 하루하루를 ‘귀환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우주에 남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냈다.
연구가 잘 풀리지 않는 어떤 밤에는 종종 우주에 홀로 고립되었던 마크 와트니를 떠올린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직면한 문제 같은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되기도 한다. 인간에게 생존이란 그런 것이다. 소위 말하는 ‘죽고 사는 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앞서니까. 마크 와트니가 정말 소설같이 영화같이 기어코 살아남아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희망을 붙잡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도 그런 일일지 모른다. 각자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지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판에 박힌 말 같지만, 우주 밖에서의 생존에 직면한 급박한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의 일상이 내리는 명령은 명료하다.
전은지는 항공우주공학자다. 2012년 미시간대학교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 항공우주센터,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교와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희박한 우주 공간에서 빠르게 흐르는 유동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현재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조교수로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전은지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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