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자민당과 지금의 일본 정치
한국을 잘 아는 일본인 기자가 쉽게 설명해주는 지금 일본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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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낮 기온이 30℃를 넘는 도쿄, 9월 7일 일요일 오후 3시를 좀 넘었을 때였다. ‘이시바 총리 사퇴 결심, 밤에 기자회견’이라는 속보가 울렸다. 불과 일주일 전에 ‘당신이 모르는 자민당,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일본 정치의 변화’라는 내용으로 <에스콰이어>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고, 속보가 울렸을 땐 쓰기 무척 어려워 보이는 그 주제를 들고, 주말 내내 고생해 거의 완성시키려던 찰나였다. 난 원고에서 이시바 잔류에 슬며시 배팅했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자민당이었고, 당내에서는 이시바에 대한 사퇴 요구가 들끓었지만, 나는 그가 버틸 거라고 예상했다. 이 ‘개고’(改稿)를 보내기 전의 글은 이시바의 총리직 연장을 예상하고 쓴 글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뿔싸, 사퇴라니. 아니, 마감이 내일인데? 한숨과 눈물이 나왔다. 불확실성이 점점 늘어만 가는 일본 정치에 대해, 그리고 그런 정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 나 자신의 안목에 대해.
일단 일본 정치가 한국과 좀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총리는 국회의원의 투표로 선출되고, 실질적으로 선출되는 것은 여당 대표다. 이시바가 물러난 자리를 두고 자민당 총재를 선출하는 당내 선거는 오는 10월 4일에 치러질 예정이다. 한국에도 유명한 ‘펀쿨색좌’ 고이즈미 신지로, ‘여성판 아베’ 다카이치 사나에 등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지만 다른 후보들도 속속 도전장을 던지고 있어 지금은 당선자를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며 국회 의석의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자민당의 고충은 적어도 앞으로 3년간은 계속될 전망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다음 총리가 되더라도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법안도 예산안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통과시킬 수 없다.
1955년의 ‘보수 합당’으로 탄생한 지 70년, 정권을 놓친 적이 1993~1994년과 2009~2012년 겨우 두 번밖에 없는 그 단단했던 자민당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7월 치러진 참의원 선거(총 248의석을 3년마다 반수 개선)에서 자민당은 개선 전 52의석에 훨씬 못 미치는 39의석에 그쳐,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의석을 합쳐도 16년 만에 중의원, 참의원의 양원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야당도 분열된 상황이라 정권은 계속 잡고 있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세 번 있었던 주요 국정, 지방선거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이시바에게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선 총재의 책임을 촉구하며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시바는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 등 국내외의 어려운 과제에 대처해 나가겠다’고 버텼지만, 결국 당의 내홍을 잠재우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이시바는 아베 신조와 각을 세우던 사람이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무려 8년간 총리직에 있었던 아베 신조와 대립하며, 아베 정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당연히 당내에서는 계속 비주류로 머물러야 했다(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립한 후 계속 비주류로 물러났던 한국의 모 정치인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아베가 총을 맞아 사망한 2022년 이후 자민당은 통일교와의 유착 관계와 정치인 파티 수입을 조직적으로 불법 비자금으로 전환한 비리 사건 등이 연이어 터져 궁지에 몰렸다. 참고로 일본에서 통일교는 물건을 사지 않으면 본인이나 가족에게 큰 탈이 생길 거라며 협박해 장사하는 ‘영감 장사’로 악명이 높아 사회적 이미지가 매우 나쁘다. 그런 와중에서 전격 사퇴한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에 이어 이시바는 작년 10월 드디어 당 총재로 올라섰다. 애초에 비주류 정치인으로 당내 기반이 약했다. 일본에서 유명한 정치학자 미쿠리야 다카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작년 겨울 총리 관저를 찾았을 때 이시바로부터 “여기가 조용해서 좋죠”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총리 관저가 조용하다니 말이 되나. 여러 사람이 모여 자기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시끄럽게 경쟁하는 곳이 관저다. 마치 관저가 텅 빈 거 같았다”라는 것이 미쿠리야 교수의 설명이다. 기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텅 빈 정권. 출범부터 다사다난했던 이시바 정부의 난항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애초에 그렇게 탄탄했던 자민당이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설명한 여러 스캔들에서 완전이 벗어나지 못한 채 물가고에 시달리는 일본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경제 부양책을 내세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 여태까지 본 적도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이는 1955년 이후 자민당이 거대 여당으로 안정적으로 정권을 운영해온 ‘55년 체제’의 종식을 예감하게 하는 장면들이고, 내가 판단을 잘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자민당을 지지해온 ‘조직표심’의 약화를 꼽을 수 있다. 오사카에서 부동산 중개회사와 민박집를 운영하는 구리야마(가명, 50대 남성) 씨는 현지의 공인중개사들로 구성되는 ‘자민당 오사카 택건 지부’(오사카부 택지 건물 거래업 협회)의 회원이자 자민당원이다. 입당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고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다가 자동적으로 입당하게 된’ 것이었지만, 업계의 민원을 지역의 자민당 의원들에게 전달해 국정 운영에 반영시키는 창구 역할을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대신 의원들이 파티를 열면 1장에 2만엔짜리 입장권을 몇 장 정도 구입하는 우회적 방식으로 정치활동을 후원해왔다. 부동산업계만 이런 게 아니다. 일본은 노동조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 단체가 자민당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단체의 조직원들은 조직표로 정당을 지지해왔다.
특히 농촌에 가면 그 구도가 더욱 튼튼하다. 농협을 바탕으로 하는 ‘농업 정치 연맹’의 활동은 농민들의 생활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어 다른 정당은 그림자조차 느낄 수 없다. 농촌의 기초단체 의원에 무소속이 대부분인 이유는 자민당이라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민당 국회의원들이 자당을 ‘국민 정당’이라 일컫는 건 정치 이념의 차이를 떠나 보수-우파부터 진보-리버럴까지 다양한 인사가 한 당 안에 집결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보수 정당도 의원마다 이념 차이는 있지만, 자민당의 스펙트럼은 그보다 휠씬 크다는 게 나의 인상이다. 예를 들면 역사적으로 대러시아, 대중, 대북 수교 모두를 자민당이 추진해왔다. 자민당 안에서 여러 파벌이 마치 정당 내 정당처럼 경쟁하면서 ‘유사 정권 교체’를 반복해 올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오사카의 구리야마 씨가 다른 후보에게 투표했다. “일본 경제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데, 업무상 만나는 자민당 의원들은 기득권 수호에만 급급하는 것처럼 보였다”라며 실망을 토로했다. 업계–사장–직원으로 이어지며 자민당을 지지해왔던 ‘업계 조직표’가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1999년부터 자민당과 연립 여당을 구성해온 공명당의 퇴색도 상징적이다. 1950년대 고도 경제 성장기부터 세력을 확대한 불교계 신흥 종교단체 SGI(창가학회) 신도들이 세운 이 정당은 그 놀랄 만한 조직력과 열성적인 활동으로 자민당의 선거를 뒷받침해왔다.(한국으로 치면, 자유통일당이 선거 때마다 서울 도심에서 기독교 집회를 열면서 국민의힘에 지원 사격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 신도들이 대부분 70대 이상에 접어들면서 이번 선거에서 그들의 비례대표 득표수는 21년 전에 비해 300만 표 이상 줄어들었다. 고령화에 따른 세대 교체에 실패하면서 조직력이 약화하는 이러한 현상은 비단 공명당뿐 아니라 일본 사회의 여러 조직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일이다.
당내 소수파였던 이시바는 야당과의 대화와 협조를 통한 ‘숙의(熟議) 정치’를 소신으로 삼았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그의 이런 정공법적인 성향은 일부 소수정당이 소비세(VAT) 감세, 외국인 배척 등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SNS 등의 채널을 통해 일으키는 돌풍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었다. 선거 전 의석수가 2개에 불과했던 신흥 우파 정당인 참정당이 ‘일본인 퍼스트’라는 외국인 유입 반대 공약을 내세워 무려 14의석을 얻어내며 약진한 데 비해, 자민당에서는 스기타 미오, 와다 마사무네 등 우파색이 짙은 후보들이 대거 낙선했다. 이들의 낙선은 아베 정부 시절에 자민당에 흡수되어 있던 우파 지지층이 비교적 진보 성향으로 보인 이시바 총리를 떠나 야당에 합류한 이유로 볼 수 있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 레임덕이 된 줄 알았던 이시바의 내각 지지율이 오히려 상승한 것도 전대미문이었다. 각종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는 ‘사퇴할 필요는 없다’는 대답이 ‘사퇴해야 한다’를 항상 웃돌았고, 총리 관저 앞에서는 야당 지지자들의 ‘이시바 사퇴 반대’ 시위가 계속됐다. 그런 여론을 인식한 듯 당내의 사퇴 요구 압박도 그 힘이 약했다.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고 이시바가 사퇴 의사를 밝힌 날, SNS에서는 일부 야당 지도자들의 이례적인 작별 메시지가 잇따랐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는 여당뿐만 아니라 기성 야당도 대부분 세력 확대에 실패했다. 오랜 야당 생활에 익숙해진 기성 야당들은 자민당을 타도하기 위해 뭉치고 정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 자민당과 협상하며 자신들의 정책 일부라도 실현시키는 게 훨씬 편했던 것이다. 그런 기성 야당들에게 자못 진보적인 태도로 귀를 기울여주던 이시바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을까. 야당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았고, 오히려 이시바의 지지율이 올라갔던 데는 바로 이런 구조가 배경에 있었다.
여당이 신뢰를 잃었지만, 야당도 정권을 잡을 만큼의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표류 상태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어디로 가는가. 이제 토사구팽의 신세에 직면한 공명당을 버리고 연립을 개편할 것인가. 아니면 정책 이슈마다 정당을 바꿔가며 연계하는 부분 연합을 반복할 것인가.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참정당은 유럽의 극우 정당처럼 세력을 확대할 수 있을까? 누가 되었든, 새 총리는 이 극우 정당과 손을 잡을 것인가. 그리고 이시바가 약속했던 이재명 대통령과의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다음 총리는 이어받을 것인가. 일본 정치는 안개 속이다.
요시노 다이치로는 1997년 <아사히 신문>에 입사해 국제부와 사회부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허프포스트 재팬> 뉴스 에디터 등을 거쳐 현재는 아사히신문사 산하의 라이프스타일 인터넷 매체 ‘Kosho-Kojitsu’의 부편집장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요시노 다이치로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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