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낙수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던 이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로 돌아온 류승룡을 만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류승룡은 그 뒤에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서, ‘숭고한 책임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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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로에베.
화보 촬영을 굉장히 열심히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화보 촬영이 재미있어요.
마지막 컷 끝날 때 힘들었다는 말씀도 하셨잖아요. “와 이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10월 말에 공개되는 류승룡의 새 드라마. 이하 <김부장>) 촬영보다 더 힘들었어” 하고.
(웃음) 아이, 그건 농담으로 그런 거죠. 물론 즐기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이것도 일이잖아요. 홍보의 일환이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업이 작품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농구로 치자면 촬영까지가 3쿼터고 지금이 4쿼터인 거죠.
연기만이 배우의 일이 아닌 거군요.
(<김부장>의 제작진) 다른 분들은 지금 열심히 후반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만큼 저도 타이틀 롤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거고. 그런데 또 작품을 떠나 생각해보면 화보 촬영이라는 게 지금의 제 모습을 남기는 일이기도 한 거죠. 영광이잖아요. 얼마나 훌륭한 일석이조예요.
코트, 티셔츠, 쇼츠, 슈즈 모두 드리스 반 노튼. 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즐거운 우연이네요. 아까 화보 촬영하다가 문득 이 기사의 가제가 떠올라서 여기다 이렇게 써놨거든요. ‘류승룡의 일’이라고. 좀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승룡 씨는 배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시나요?
텍스트에 살을 붙이고 숨결을 불어넣는 일이죠. 사실 배우는 창작자의 영역에서 보면 아주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창작자잖아요. 작곡가나 미술가, 소설가는 자기의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해내지만 배우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누군가가 창작한 뼈대에 숨결을 불어넣는 거죠. 물론 중요한 일이에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선택하는가가 중요하기도 한 거고요. 내 자신과 좀 더 교집합이 많은 표현을 할 수가 있으니까.
<김부장>도 그런 의미의 선택이었을까요?
그렇죠. 사실 제가 작품을 선택한다고 표현하지만 결국 먼저 선택을 받아야만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김부장>을 제안받았을 때 되게 설레었어요. 이 작품이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이웃의 이야기, 어쩌면 내 얘기나 누군가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면에서 너무 와닿았어요. 위로도 되고, 공감도 많이 됐고, 평상시 관심 있던 여러 사회문제들을 담아내기도 했고요. 이 작업을 굉장히 하고 싶었어요.
흥미로웠던 게, 저는 <김부장>의 원작을 읽으면서 풍자소설에 가깝다고 느꼈거든요. 제목에서 묘사하듯 주인공인 김낙수라는 인물 자체가 물질적인 것들과 사회적 입지로 사람들을 계급 짓고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작품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기성세대들이 공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사실 그 제목은 반어법이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풍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불쌍한 거잖아요. ‘나 이만큼 살아’ 하면서 타인의 욕망이나 시선을 그렇게나 의식하고 산다는 게요. 저는 이 작품이 사람들이 가진 왜곡된 행복의 기준, 삶의 ‘평균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그리고 있다고 봐요. 그 부분을 짚는 게 위안을 주는 거고요.
특정한 인물 군상을 풍자한다기보다 우리 사회의 야만을 묘사한 작품인 거군요.
어떻게 보면 김낙수 부장은 사회의 더 높은 층위, 시스템에 의해서 이용당하고 희생되는 사람인 거죠. 그 사람의 언행을 보며 욕하고 낄낄거릴 수도 있겠지만, 계속 보다 보면 속으로 움찔거리게 되거든요. 그 안에 내 모습이 다 있으니까.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결국은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나의 모습이고…. 누구에게나 경제활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오잖아요. 하지만 또 누구에게나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요.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부분들을 보다 보면 ‘진짜 행복이란 뭘까’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한번 해보게 될 거라고 느껴요. 최근에 OTT 디즈니+에서 방영됐던 <파인: 촌뜨기들>도 그랬거든요. 죄다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인간들이 나와서 서로 속고 속이는데,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사실은 우리 안에 있는 보편적 욕망에 대해 얘기를 하는 거죠.
하긴 오관석(<파인: 촌뜨기들> 속 류승룡의 캐릭터)도 가족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죠.
김낙수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저도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김낙수는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제가 내린 결론은 ‘책임감’이에요. 어떻게 보면 비루하고 서툴지만 비겁하게라도 악착같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건 결국 이타적 삶이거든요. 자식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지 자기 혼자라면 여차하면 그만둘 수도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거룩한 책임감인 거죠. 그런 게 없었으면 저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 저희 윗세대의 아버지들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평생을 배우로 사셨잖아요. 평범한 직장인의 비애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지는 않았나요?
제가 직장인의 삶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제 나이가 딱 그런 위기를 겪을 시기잖아요. 주변만 봐도 힘들고 마음 아픈 사연이 정말 많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격적이고, 가슴이 찢어지죠. 도무지 남 일 같지 않고. 오히려 그런 얘기들을 워낙 많이 듣다 보니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생겨나서 이 작품을 하게 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코미디로 풀어내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코미디가 정말 어렵죠. 한 번의 웃음을 위해서 (만드는 사람은) 정말 세 번의 눈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고민해야죠. 웃음이라고 해서 생각처럼 바로 휘발되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블랙 코미디예요. 가장 선호하기도 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웃다 보니까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오기도 하는 그런 코미디가 저는 인생과 가장 닮았다고 느껴요.
코트, 모크넥 티셔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
사실 저는 그런 블랙 코미디 장르에서의 표현력 때문에, 류승룡 배우가 <김부장>의 드라마 주연을 맡았다고 했을 때 ‘정말 잘하실 수 있는 걸 택했구나’ 했어요.
아니에요. 잘하는 게 어디 있어요. 치열하게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죠. 정말 노력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차라리 사극이죠. 얼굴 크고 털 많으니까 다 가리고 (양손을 이마와 목에 가져다 대면서) 여기만 나오면 되잖아요. 그냥 목소리 낮게 깔고 말하면 되고.(웃음)
그런 부분도 신기했어요. 발랄한 코미디와 무거운 사극, 깨방정 캐릭터와 소름 끼치는 악역을 종횡무진 하시잖아요. 예를 들어 <극한직업> 다음에 <킹덤>이 나왔는데,<킹덤>의 조학주는 대사도 표정 변화도 별로 없는 악인이에요. 그런데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류승룡의 넘치는 재기가 전혀 떠오르지 않고 오직 잔혹함만 떠돌더라고요.
그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한 사람 안에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잖아요. 제 안에도 굉장히 밝은 모습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어두운 부분도 있고, 악한 인간의 여러 면모도 있겠죠. 그냥 그걸 다 감추고 사는 거고. 그런데 직업이 배우니까 원래라면 감춰야 할 부분도 꺼내서 확장을 시키는 거죠. 그래서 저는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내면에 있는 면모들을 꺼내 확장하는 거군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거나 하기보다.
그게 제일 자연스럽잖아요. 연기 양식에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저는 이 방식이 저한테 제일 잘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껏 살아온 환경에서 갖게 된 걸 풀어내는 거니까. 딱 두 번 다른 방식으로 메소드 연기를 한 적이 있었죠. <시크릿>하고 <7번 방의 선물>. <시크릿>의 재칼이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는 이렇게 파충류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는 식으로 동물을 흉내 낸 부분이 있었고요. <7번 방의 선물>에서는 발달장애를 가진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그랬죠. 그렇게 어쩔 수 없는 경우들을 제외하면 저는 사실 메소드 연기를 지양하는 편이에요. 저는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작품 선택 측면에서 굉장히 유연하시기도 한 것 같아요.
유연하지 않으면 부러지니까요. 작품을 선정할 때 특별히 제약은 두지 않아요. 너무 잔인하다거나, 야하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종교적이라거나 정치적이라거나 그런 부분이 있다면 꺼리게 되는 건 있죠. 장르나 매체는 가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건 왜일까요? 자제분들과 함께 보기 힘들기 때문에?
모르겠어요. 그냥 뒤돌아봤을 때 제가 해온 작품들 보면 그런 작품을 거의 안 했더라고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경우에는 장르부터가 국내에서 불모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뮤지컬 영화였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택하셨던 걸까요?
그건 명확하죠. 가족에 대한 이야기고, 죽음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고, 행복에 대한 이야기였잖아요. 그런 메시지가 있으면 확 끌리는 것 같아요. 노래를 해야 한다거나 춤을 춰야 한다거나, 그런 건 지극히 부수적인 부분인 거죠. 그런 장치가 없었다고 해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었어요.
아, 그럼 <무빙>을 택하셨던 이유도 히어로물이라서가 아니라….
마찬가지예요. 가족과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 물론 작품을 택할 때 제가 메시지만 본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와 상황을 고려하게 되죠. 예를 들어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과의 패밀리십, 프렌드십도 중요한 부분이고요. 이번에 함께 해보니 조현탁 감독님(<김부장> 연출)과도 합이 너무 잘 맞았기 때문에 서로 성숙하고 성장해서 또 좋은 작품으로 만났으면 좋겠고. 그런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하다 보면 장르는 아주 부수적인 부분이라는 거죠.
슈트, 셔츠, 슈즈 모두 드리스 반 노튼.
흥행 가능성이나 시청률 같은 부분도 염두에 두실까요?
무시할 수는 없죠. 하지만 저는 사실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아요.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 작품의 스코어로 판단되는 그 시선에서 제가 좀 열외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냥 배우로서 가진 모습, 작품을 대하는 태도로 인식되면 좋겠어요. 늘 책임감을 갖고 작품 열심히 찍고, 그때그때 맞춰서 홍보 열심히 하고, 무대 인사도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라고.
천만 관객 영화를 네 번이나 하시고 무수한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배우이기에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지금 류승룡이라는 배우 안에는 어떤 열망이 남아 있을까요?
글쎄요. 사람들에게 공감과 응원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게 열망과는 좀 다른데…. 열망이라기보다는, 소망이랄까요? 이렇게 <김부장>처럼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는 게 제 가장 큰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redit
- PHOTOGRAPHER 김형상
- STYLIST 송희경
- HAIR 백가영
- MAKEUP 설영은
- ART DESIGNER 최지훈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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