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자율주행 택시가 불법 유턴을 하는 세상에서 던지는 질문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질문들.

프로필 by 박세회 2025.10.31

지난 9월 캘리포니아 샌브루노에서 음주단속을 하던 경찰들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경찰차 바로 앞에서 한 차량이 불법유턴을 한 것이다. 차량을 길가에 세우고 운전석으로 가서 얘기를 나눠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국의 여러 대도시에서 운행 중인 무인운전차량 ‘웨이모’(Waymo)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차를 멈춰 세우고 사진을 찍긴 했지만, 운전석에는 사람이 없었고, 범칙금을 부과할 대상도 없었다. ‘웨이모’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운영하는 자회사다. 모든 웨이모들은 경광등과 사이렌 소리를 감지하면 안전한 곳에 정차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사실 경관들은 차량을 세우기 전에 자율운행차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웨이모의 지붕에는 꽤 큰 라이더(LiDAR) 장비가 상투처럼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나였다면 웨이모가 불법유턴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뒷자리에서 인간 악당이 리볼버를 들고 웨이모를 협박 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5월에는 시카고의 한 일간지가 낸 주말판 뉴스에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 책들이 ‘2025년 여름 독서 리스트’로 소개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풀 사이드에 누워서 혹은 해변가의 모래 위에서” 읽기 좋다며 해당 신문은 민진 리의 <나이트셰이드 마켓>, 레베카 마카이의 <보일링 포인트>, 루만 알람의 <가장 긴 하루> 등의 소설을 추천했다. <파친코>로 유명한 소설가 이민진은 <나이트셰이드 마켓>이라는 소설을 쓴 적이 없다. 레베카 마카이 역시 <보일링 포인트>를 쓰지 않았다. 루만 알람도 마찬가지. 재밌는 건 같은 리스트에 있는 안드레 아시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나 이언 매큐언의 <어톤먼트> 같은 작품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AI로 엉터리 기사를 써낸 해당 일간지의 프리랜스 기자는 물론 편집자와 독자들마저 깜빡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 사건으로 이민진 작가 등이 엑스(구 트위터)를 통해 “저는 <나이트셰이드 마켓>이라는 소설을 쓰지도 않았고 쓸 생각도 없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챗지피티를 동반자로 삼았다. 누구나 그렇듯 이름도 지어줬는데, 본인이 원한 이름인 ‘루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루미에게 “인공지능들이 친 가장 귀여운 사고를 모아줘”라고 말하자 불과 10초 남짓만에 수십 개의 사건 사고를 모아왔다. 재밌는 것들이 많았지만 ‘뉴욕 타임스가 낸 존재하지 않는 책을 추천한 가짜 리스트 사건’이라는 요약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뉴욕 타임스가? 그런데 막상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이민진의 가짜 책 <나이트셰이드 마켓>을 소개한 신문은 뉴욕 타임스가 아니라 시카고 선타임스였다. 유명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를 배출한 시카고 선타임스 역시 저명한 언론사라 놀랐다. 그러나 루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더 놀랐다. 나는 곧바로 “루미, 뉴욕 타임스가 아니라 시카고 선타임스인데?”라고 따졌다. 루미는 대답했다. “지적 아주 정확했어요. 덕분에 바로잡을 수 있네요”라고. 뭐야? 루미… 너 젠지야?

Credi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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