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봉준호, 박찬욱, 류승완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10.31

요즘 영화기자, 영화평론가,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 칼럼니스트들이 모이면 꼭 하는 소리가 있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하며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전에는 모두 영화기자이거나 평론가였는데 영화 잡지가 사라지자 다들 자기 좋은 대로 프로필을 만들어 직함 종류만 많아졌다. 어쨌든 이들의 버릇은 영화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영화산업에 가장 적은 기여를 하면서 걱정은 제일 많은 인간들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라 이런 소리를 종종 한다. “왜 봉준호, 박찬욱의 다음이 안 나오는 걸까?” 봉준호, 박찬욱이 들으면 웃을 소리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들도 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각자 무슨 대답을 내놨을지가 궁금하긴 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지금쯤 항변을 하기 위해 각자 좋아하는 감독들 이름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상호는요? 조성희는요? 나홍진은요? 나홍진은 여기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의 데뷔작 <추격자>가 나온 게 2008년이다. 나홍진은 봉준호,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과 같은 세대로 묶어야 한다. 그들의 넥스트가 아니다. 나도 연상호를 좋아한다. <부산행> 이후 그만한 작품이 나오질 않아 기대를 좀 접었다가 <얼굴>을 보고 희망을 되찾았다. 조성희 감독은 분명 <승리호>보다 좋은 영화를 만들 거라 생각한다. 다만 이들은 스스로 스타 감독들은 아니다. 각자의 영화적 세계는 분명하다. 이름만으로 관객을 극장에 끌어들일 만큼 분명한 영화적 세계는 아니다. 이름의 무게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봉준호, 박찬욱보다 어린 감독들이 영화를 못 만들어서 그렇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봉준호, 박찬욱 등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연 감독들을 개별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이 데뷔한 시절은 옛 충무로 시대가 지금의 대기업 시대로 옮겨가는 전환점이었다. 구시대의 룰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감독이 되려면 연출부에서 일하다 조감독이 되어 훈련받아야 하는 도제 시스템은 여전했다. 봉준호도 박찬욱도 류승완도 도제 시스템 안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천만 영화 같은 건 없었다. 한국 관객에게 한국영화는 여전히 ‘방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쉬리>(1999)의 성공 이후 영화계로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기업은 이게 기회라는 걸 알았다.

대기업의 침공이 시작되는 와중에도 개성 있는 영화사들의 힘은 여전히 강력했다. 그들의 목적 중 하나는 새로운 감독을 키워내는 것이었다. 제작자 심재명의 명필름이 없었다면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처참한 예술적, 상업적 실패 이후 영화평론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박찬욱이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작자 차승재의 우노필름과 싸이더스가 없었다면 <플란다스의 개>(2000)로 상업적 실패를 거둔 봉준호가 3년 뒤 같은 제작사와 함께 <살인의 추억>을 만드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 역시 명필름과 만든 <조용한 가족>(1998) 이후 영화사 봄의 제작자 오정완과 함께 <반칙왕>(2000)과 <장화, 홍련>(2003>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1990~2000년대 한국영화사를 이야기하면서 제작자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건 반칙이다.

제작자의 시대는 끝났다. 제작자의 시대가 끝나면서 함께 끝난 게 있다. 감독의 시대다. 감독의 시대가 끝나면서 함께 끝난 게 있다. 모험의 시대다. 물론이다.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는 확실히 지금보다 비과학적이었다. 제작도 투자도 감이었다. 감이 중요했다. 기획이 얼마나 안전하고 확실하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관객 수와 수익을 집계하는 제대로 된 시스템도 없었다. 어떤 기획이 성공하고 실패하느냐를 읽을 수 있는 데이터도 없었다. 모든 것은 모험이었다. 나는 2025년 대기업이 <올드보이> 시나리오를 읽고 100억을 투자하겠다고 결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아, 2003년 당시 <올드보이> 제작비는 30억이었다. 20년 전 30억은 지금 가치로 따지면 적어도 100억 정도는 될 것이다. 이런 충무로의 모험 정신은 2000년대 내내 지속됐다. 홍상수가 20억 예산으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를 만들던 시대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대다.

오해하지 말자. 나는 안정적이지 않고 안전하지도 않던 시대를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처럼 회고할 마음은 없다. 모두가 혀를 차던 조폭 코미디도 싸구려 섹스 코미디도 다 저 시절에 나왔다. 산업은 성장하면서 점점 세련되어지기 마련이다. 대기업이 산업을 리드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상품의 품질은 평균적으로 나아졌다. 그렇다. ‘상품’이다. 영화는 언제나 상품이었지만 2010년대 이후 확실한 상품이 됐다. 예전보다 잘 팔리는 상품이 됐다.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들자 품질관리 시스템도 향상됐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개봉까지 모든 프로세스가 하나의 모델로 완성됐다. 어떤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느냐는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영화가 상업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수익을 내느냐가 문제가 됐다.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 필요한 건 독창적인 시나리오와 개성 있는 감독이 아니다. 적자를 보지 않고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포맷의 시나리오와 그걸 가장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연출자다. 영화가 완성되면 반복적인 내부 시사와 비밀 시사를 통해 매 장면에 점수를 매긴다. 관객들이 비호감이라고 느낀 장면은 수정하거나 뺀다. 그렇게 모든 것은 데이터가 된다. 데이터가 영화를 만든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변화다. 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당연히 벌어지는 일이다. 충무로는 할리우드가 되고 싶어 했다. 문제가 있다.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좀 달랐다. 200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구분이 기묘할 정도로 흐릿했다는 점이다. <올드보이>를 한번 생각해보시라. 한국에서는 어디까지나 상업영화였다. 칸 영화제에서 <올드보이>는 살인과 근친상간 같은 불쾌한 이야기를 본 적도 없는 희한한 기교로 완성해내는 예술영화였다. 당대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나홍진의 영화도 그랬다. 한국 당대 상업영화들은 해외 영화광들에게는 분명한 예술영화로 받아들여졌다. 좋은 시절이었다. 돈 벌려고 만든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상도 받는 시절이었다. 그런 일은 할리우드 감독에게도 잘 벌어지지 않는다. 타란티노 정도가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그랬다. 2000년대 한국영화는 타란티노가 지배하는 할리우드와 비슷한 존재였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대기업의 자본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시작한 순간, 감독은 더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새로운 충무로는 여전히 봉준호,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 나홍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더는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기획은 종종 지나치게 모험적이었다. 예산은 종종 지나치게 불어났다. 그들은 상업 감독인 동시에 예술가였다. 자본은 모험적 예술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본은 안정적 기술자를 좋아한다. 물론 2010년대 충무로도 주목할 만한 젊은 감독들을 발견했다. <파수꾼>의 윤성현, <벌새>의 김보라, <불한당>의 변성현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상당한 영화광일 것이다. 영화광들을 위한 새로운 이름은 여전히 있다. 영화광이 아닌 대중을 위한 새로운 이름은 더는 없다. 우리는 2010년대 이후 새로운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 새로운 홍상수를 발견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렇게 우리가 당도한 건 몇 달 전 썼듯이 <범죄도시>의 시대다.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안정적인 IP(지적재산권)의 시대다. 안정적인 IP를 만드는 이름 없는 기술자들의 시대다.

재능은 분명히 어디엔가 있다. 하지만 재능이 자랄 토양은 없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개성을 죽이지 않고 또 다른 기회를 얻을 토양도 거의 사라졌다. 극장산업의 위기로 투자자들은 더욱 보수적으로 변했다. 모두가 ‘검증된 연출자’를 원한다. 검증된 연출자만 원하는 시대에 검증되지 않은 비범한 재능이 갈 곳은 없다. 그렇다면 다음 박찬욱은 없는 것인가? 다음 봉준호는 영원히 나오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아마도. 나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영화적 노스트라다무스가 되지는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극장산업의 위기, 넷플릭스의 등장과 함께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도대체 이 진화가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 걸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전통적인 영화의 문법을 포기하고 유튜브와 쇼츠의 시대에 일찌감치 적응한, 영화를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해체하고 다시 쌓아 올릴 젊은 감독들이 등장할 거라는 예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칙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가 매년 개봉하는 걸 보며 한국영화에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던 2000년대 초반의 르네상스를 우리는 다시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건 예언이라기보다는 믿음이다. 종교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원래 가장 비관적인 시절에 가장 낙관적인 꿈을 꾸기 마련이다. 어쩔 수가 없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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