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이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야 된다고 말하는 이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삶을 완성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임영웅에게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너무 뻔하고 진부하지만 결국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더 사랑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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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 김서룡. 터틀넥 니트 톰 포드. 레더 팬츠 페라가모. 첼시 부츠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모래 알갱이’라는 노래였어요. 그 노래에서 목소리가 정말 예쁘더라고요. ‘London Boy’에서는 확 트인 소리가 나오는데, 또 ‘온기’에서는 굉장히 깊은 소리가 나와요.
‘모래 알갱이’ 같은 노래가 앞서 말한 바로 그 경우예요. 예전 같았으면 좀 더 무겁게 떨어뜨려서 소리를 냈을 법한데, 음악의 완성도를 위해 소리를 가볍게 써본 겁니다. 연하고 약하게.
최근에 <산골총각 영웅>에서도 그런 목소리로 성시경 씨의 노래를 불렀죠. 정말 놀랐어요. 그런 미성이 가능한 줄은 몰랐거든요. 모든 목소리가 다 가능한 것 같아요.
아녜요. 그런 건 아니고, 팬분들이 잘 모르시는 모습도 한 번쯤 보여드려야겠다 싶어서 방송에서 한번 풀었어요.
여러 장르, 다양한 톤의 노래를 부를 뿐 아니라 정말 다양한 음악을 직접 만들죠. 자작곡 비중이 날로 늘어나고 있어요. 곡을 쓸 때 멜로디가 먼저인지 가사가 먼저인지 궁금해요.
그때그때 달라요. 멜로디를 먼저 쓸 때도 있고, 트랙을 먼저 만들어놓고 그 위에 멜로디를 입힐 때도 있고, 가사를 먼저 써두고 거기에 맞춰갈 때도 있어요. 장르는 가리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다 좋아했거든요. 그때그때 듣고 영향받은 것들을 최대한 제 스타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작업해요.
어떤 악기로 작업하세요?
악기를 잘 다루는 편은 아니에요. 곡을 만들 때 건반을 ‘띵띵’거리는 정도죠. 기본 코드들만 짚어가면서 곡을 씁니다. 일단 메인 멜로디를 쓰고 나서, 디테일을 조금 더 살리고 싶거나 멋을 넣고 싶을 때 작곡가분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가사를 쓰는 루틴도 궁금해요.
최근 제 루틴이 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카페에 나가 먼저 책을 읽고, 제 마음을 평화로운 상태로 만든 후에 가사를 쓰기 시작해요. 아침 일찍 가면 카페에도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뭔지 알겠어요. 많은 창작자가 반드시 확보하는 시간이 ‘아무런 자극 없이 혼자만 있는 시간’이라고들 하더군요. 뇌과학적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창의력이 살아난다고들 하고요. 많은 사람이 샤워하다가 아이디어를 얻는 이유라고도 해요.
저도 그래요. 샤워하다가 멜로디가 갑자기 떠오르거나 가사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가끔은 저녁에 샤워할 때 받았던 영감들을 어딘가에 막 적어뒀다가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정리하기도 했고요.
혹시 침대 옆에 노트가 있나요?
어! 있어요. 곡 작업할 때는 여기저기에 노트를 두세 개씩 둬요. 예를 들면 하나는 침대 옆에, 하나는 소파에 두는 거죠. 언제 어떤 가사가 떠오를지 모르니까 성실하게 준비를 해두는 거죠.
자다가 일어나서 멜로디를 녹음해두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곡 작업을 할 때면 휴대폰 녹음 기능에 자다 일어나서 부른 멜로디들이 쌓여요. 자다가 꿈속에서 멜로디가 나오거든요. 비몽사몽간에 일어나서 그 멜로디를 녹음해 두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기억도 안 나지만, 다 모아두죠. 대부분 들어보면 못 쓸 것들이지만….
그래도 거기서 뭔가가 만들어지기도 하죠?
녹음해둔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만져보다가 그게 노래가 되기도 하거든요. 예전에 어떤 멜로디가 떠올랐는데 ‘꼭 이 멜로디를 기억해뒀다가 내일 녹음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음 날이 되었는데 그 멜로디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 자다가 일어나서라도 머릿속에 스치는 모든 멜로디나 가사를 녹음해두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렇게 모인 것들은 현대미술적으로 해석하자면 임영웅의 무의식의 기록이군요.(웃음)
(웃음)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어요.
트렌치코트 김서룡. 터틀넥 니트 톰 포드. 레더 팬츠 페라가모.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곧 나올 신곡들을 작업하고 있어요. 이제 네 곡 정도 썼습니다.
이번에 전작을 한 번에 몰아 들으면서 크게 놀랐어요. 장르 면에서, 이적 님과 함께 작업한 발라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홍키통크풍의 컨트리 곡 ‘나는야 HERO’, 정통 힙합 곡인 ‘답장을 보낸지’ 등 정말 다양하잖아요. 다음 앨범에선 어떤 스타일을 품어보고 싶은지 궁금해요.
꼭 다음 앨범 얘기는 아니지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스타일이라면 재즈를 해보고 싶긴 해요. 재즈를 좋아하거든요.
오! 저도 영웅 씨가 ‘외로운 사람들’(이정선)을 커버했을 때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좋아하는데 아직 제 앨범에서 도전해본 적이 없어요. 언젠가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사실 재즈가 어렵죠. 세상에 쉬운 장르는 없다지만, 재즈는 정말 연구를 많이 하고 더 깊이 들어본 다음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적 씨가 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나요. 솔직히 이적 씨 본인이 부르는 것보다 더 이적 같다고 생각했어요. 호흡이라든지 강약이라든지, 정말 완벽한 이적표 발라드였습니다.
이적 형이 디렉팅을 워낙 디테일하게 잘해주셨어요. 그걸 바탕으로 저도 계속 다시 녹음하고 또 녹음하면서 완성한 곡이에요. 그 작업을 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자주 만나는 걸로 알아요.
자주는 아니고, 가끔 만나서 한잔하면 음악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제가 형들한테 뭔가 배우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특히 이적 형을 만날 때면, 음악적으로 늘 뭔가를 배우게 돼요.
아까 잠깐 루틴 얘기를 했는데요, 아티스트 중에는 루틴을 가진 분이 많죠. 아침에 카페에 가는 것 말고 또 다른 루틴이 있나요?
루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습관이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음식에 꽂히면 한동안 거의 매일 그것만 먹어요. 예를 들어 설렁탕에 꽂히면 한두 달 정도 점심은 설렁탕만 먹는 거죠. 한 달 정도 있다가 순댓국으로 넘어가고, 갈비탕으로 넘어가는 식이에요.
엇!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어차피 요새는 이 음식이 제일 맛있으니까요.
굳이 다른 걸 찾으려고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은 거죠.
옷을 입을 때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죠. 같은 옷을 여러 벌 사두고 고민 없이 돌아가며 입는 사람.
저도 약간 그런 편이에요. 차려입고 나갈 때 입는 옷, 편하게 나갈 때 입는 옷, 평상시에 입는 옷을 정해두고 입어요.
브이넥 니트, 블랙 로퍼, 포켓 셔츠 모두 르메르. 그레이 와이드 팬츠 메종 마르지엘라. 벨트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빈티지 워치 파텍 필립.
요새는 어떤 음식에 꽂히셨어요?
최근에는 버터 치킨 커리에 꽂혀서, 점심때마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따로 먹고 싶은 게 있지 않으면 버터 치킨 커리를 먹으러 가곤 해요.(웃음)
‘온기’ ‘천국보다 아름다운’ ‘모래 알갱이’ 등의 노래들이 빌보드 글로벌 익스클루딩 US 차트(미국 제외 차트)에 진입하기도 했지요. 2023년에는 LA 돌비 시어터 무대를 가득 채웠고요.
얼떨떨했어요. 그런 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고, 그냥 ‘쓱’ 하고 지나가버린 것 같습니다. 너무 신기하기는 했어요. 그날 오신 분들 중에는 한국말을 아예 잊으신 분들도 계시고, 현지에서 나고 자라 애초에 한국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시는지 너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저 역시 팝 음악을 좋아하지만, 영웅 씨가 부르는 ‘보랏빛 엽서’를 들으면 눈물이 흘러요. 한국인의 피를 건드리는 소리가 있나 봐요.
그런 것 같아요. 트로트나 발라드에 한국인의 어떤 공통 정서 같은 게 들어 있다는 생각을 저도 해요.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음악 장르를 좋아하든, 한국 사람이라면 마음이 흔들리는 멜로디와 소리가 있어요.
‘건행’이라는 말이 일종의 시그너처입니다. 저는 그게 영웅 씨와 팬들이 함께 공유하는 삶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건강과 행복. 삶에 또 다른 하나가 필요하다면 뭘까요?
너무 뻔하고 진부한데, 사랑이요. 진심으로요. 공연장에서도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 늘 사랑하시라고. 또 사랑한다고 늘 팬분들께 말해요. 사랑은 항상 해야 해요.
아! 좋은 얘기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할 때는 정말 행복하죠. 아무리 경제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압박을 받아도, 내가 사랑할 누군가가 있다면 이겨낼 수 있더라고요.
저도 시월이를 만나고 더 강하게 느끼고 있어요. 그전에도 늘 팬분들께 사랑하시라고, 사랑한다고 표현하시라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말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정작 ‘나는 평소에 사랑을 하며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시월이를 만나고, 시월이를 사랑하고, 시월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면서 지내니까 정말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요새는 정말 매 순간 사랑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어쩌면 영웅 씨가 많은 분들에게 그런 존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실적인 문제들로 힘든 팬들에게 영웅 씨를 사랑하는 건 그 자체로 치유일 거예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저로서는 너무 감사한 일이죠.
Credit
- EDITOR 이진수
- FEATURE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희준
- STYLIST 이혜영
- HAIR 이일정
- MAKEUP 안성희
- SET STYLIST 이나경
- ASSISTANT 김지효/박현지/한다원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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