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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열이 밝힌, 다작을 하면서도 하나하나 명징하게 작업하는 비결

한 작품 한 작품, 누군가의 삶을 바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려고 한다고 했다.

프로필 by 임건 2026.08.25
핸드 페인티드 데이비드 라이트 재킷, 나일론 스메릴리아토 재킷, 미네랄 다이드 카고 팬츠, 컴퍼스 로고 패치 스니커즈 모두 스톤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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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4>의 백창기는 어땠을까요? ‘서사가 없는 순수 악’이라는 지점에서, 평소와는 아예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빌드업해야 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점이요. 음, 일단은 백창기를 준비할 때 제가 대사 삭제를 좀 제안드렸었어요.

대사를 없애달라고 했다고요?

네. 원래는 그것보다는 말이 좀 더 많은 캐릭터였는데, 제가 준비하면서 느끼기로는 불필요한 말을 하기보다 그냥 바로바로 행동부터 나오는 느낌으로 전달되면 좋겠더라고요. 표정도 아예 없다가 마지막에만 웃는 얼굴을 한 번 딱 보여주고.

어떤 잔인한 짓을 자행하건 모든 게 건조하고 지루하다는 얼굴이다가 마석도 형사에게 최후의 일격을 당하기 전에야 활짝 웃죠.

그게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백창기였던 것 같아요. 폭력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고, 이제 무감각해졌지만 그래도 거기에서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 사실 그것도 원래 대본에는 웃는 부분이 없었거든요. 촬영 날 살짝 말씀드리고 딱 보여드렸는데, 다행히 다들 너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19세 관람 불가 나오는 것 아니냐’며 너무 끔찍하다는 의견도 있긴 했지만요.

물리네 코튼 셔닐 니트, 오가닉 코튼 저지 셔츠, 나일론 메탈 카고 팬츠 모두 스톤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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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기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포인트도 없고 별다른 서사도 제시되지 않는 캐릭터인데, 말씀하신 그런 디테일 때문에 그렇게 큰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저는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안 떠오르는 것 같아요.

카타르시스가 큰 역할을 맡고 나면 ‘이런 역할을 좀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나요? 이번 <참교육> 이후 처음으로 동네 주민들에게 ‘멋있다’는 호응을 얻고 있다고도 하셨잖아요.

연기라는 행위 자체에 ‘정화 작용’, 카타르시스가 있다고들 하죠.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연기를 하고, 그런 순간을 살게 되면 자연히 마음도 생겨요. 이런 순간을 좀 더 살고 싶다는 마음. 그런데 결국 저희가 하는 일은 관객과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건 또 다른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았다고 해서 그게 전부인 게 아니라 공감을 얻기 위한 이성적인 계산이 필요한 거죠. 감정적으로 너무 좋은 연기를 했다고 느꼈더라도 그게 꼭 공감을 불러온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래서 ‘배우는 항상 제3의 눈을 가져야 한다’고 하나 봐요. 연기를 하면서 몰입하고 있지만 동시에 연기하는 내 모습을 보는 또 다른 내가 있어야 하는 거죠.

<참교육>의 나화진이라는 캐릭터에게서 제가 가장 신기해했던 건 이런 부분이었어요. 기본적으로 늘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인데 어딘가 깊은 슬픔의 뉘앙스가 감돌고, 그런데 또 장난도 잘 치고 농담도 많이 해요. 어떻게 설계했을까요?

일단은 이 사람의 원동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교권 보호 활동이라는 걸 하게 된 이유 자체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었고, 그 사랑하는 사람의 신념을 다시 한번 지켜주고자 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잖아요.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단단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까 얘기했던 <퍼스트 닥터>가 전문적인 영역의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면 <참교육>은 정서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 거죠. 그래서 작품이라든가, 이야기라든가, 인터넷에 누군가 올린 글이라든가, 레퍼런스가 될 만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어요. 감독님한테 ‘이거 누가 인터넷에 올린 글인데 꼭 나화진과 최가윤 선생님 이야기 같다’ ‘이런 사람이 있는데 최가윤 선생님이 이런 사람 아니었을까’ 이런 식으로 계속 보내 드리기도 했고요. 사실 나화진이라는 사람이 교권보호국이라는 가상의 조직에서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막대한 권한을 갖고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잖아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어떻게 설득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부분도 컸죠. 결국 ‘정말 좋은 아저씨’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권리를 짓밟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 그런 측면에서 웃음과 여유를 택한 측면도 있었어요.

라이트 나일론 3L 재킷, 브러시드 코튼 스웨트셔츠, 브러시드 코튼 팬츠 모두 스톤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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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라는 영역을 잘 모르는 저는 그런 복합성이 신기한 거죠. 연인이 살해당했다는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가진 사람이 주머니에 한 손 넣고 봐주면서 싸우고 농담도 하잖아요. 실제 세계의 인간도 다양한 면모로 살아가겠지만 작품 속에서 그렇게 묘사될 때는 이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나화진은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복합적일까요?

그럴 (이중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최가윤 선생님에 대한 전사를 충실히 만들고 감정적인 부분을 단단하게 만들어 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요. 그런 감정이 단단하게 무게중심을 잡아줄수록 오히려 더 유연하게 장난을 칠 수 있거든요. 그 모든 게 그 사람을 위한 일이 되는 거니까. 결국 스스로에게도 믿게 할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감정적인 부분을 넘어 이성적으로도요. 나는 이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바쳐서 내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길을 걷는 선택을 했고, 그래서 이렇게 했겠구나, 그렇게 해야만 납득이 되는 거죠.

<소년심판>도 홍종찬 감독의 작품이었잖아요. 비행 청소년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작품의 성격이나 김무열 씨가 보여준 연기 측면에서는 정말 달랐던 것 같아요. <참교육>의 나화진이 작품의 중심에 있는 느낌표의 뉘앙스라면 <소년심판>의 차태주는 이야기 맥락에서 은근하게 전달되는 물음표 같았다고 할까요.

그건 이야기의 줄기에 누가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소년심판>이 우리 사회가 소년범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이야기였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여러 입장이 있잖아요. 철저히 단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온정주의도 있고. 차태주 판사님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그렇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줄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쓰인 거죠. (기본적으로 배우는) 늘 그렇게 쓰인다고 봐요. 다만 홍종찬 감독님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제가 늘 즐거웠던 이유, 다시 또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도 같아요. 이야기의 어떤 줄기를 보여주건, 각 에피소드의 잔가지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세심함이 있거든요. 홍종찬 감독님 작품에서는 에피소드별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각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까지도 주목받잖아요. 그런 특유의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무열 씨의 지난 필모를 보면 정말 다작하는 배우예요. 사람들이 ‘다작’이라는 표현을 꺼리는 건 양을 추구하면서 심도가 떨어질 거라는 전제가 들어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무열 씨 작품을 보면 하나하나 정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것 같아요.

하.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비결이 뭘까요?

음. 제가 늘 인지를 하고 책임감을 가지려고 생각하는 명제가 하나 있는데요. 제가 하는 이 일이 누군가의 인생 궤적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연기가.

네. 영화가, 드라마가, 공연이. 물론 좀 거창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각자의 삶에는 정말 수많은 사건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제가 하는 건 소설로 치자면 한 단어, 그림으로 치자면 저 멀리 하나의 풍경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한 단어와 하나의 풍경이 삶을 바꾸는 변곡점, 전환점이 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예술과 문학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이라는 게 있다고 믿는 거예요. 그런데 바꿔 말하면, 저는 제 작품을 본 분들의 인생에 들어가서 간섭하게 되는 거예요. 고귀한 일인 거죠. 대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인 거고요. 연기를 하는 그 순간에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그런 책임감을 느끼려고 해요. 이제야 내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되는 연차가 됐구나, 요새 느끼기 시작하고 있어요.

슬릭 나일론 텔라 재킷, 나일론 스메릴리아토 재킷, 모노필라멘트 오간자 베스트, 오가닉 코튼 립스톱 카고 팬츠 모두 스톤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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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PHOTOGRAPHER 고원태
  • STYLIST 신지혜
  • HAIR 임진옥
  • MAKEUP 이준성
  • SET STYLIST 이나경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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