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는 그렇게 뉴스룸을 지켰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JTBC의 '뉴스룸'은 저널리즘의 실력을 통해 저널리즘의 정의를 바로 세웠다. 그 중심에 손석희가 있었다. | 손석희,뉴스룸,JTBC,뉴스,방송

손석희는 뉴스를 전했고, 뉴스를 만들면서, 스스로 뉴스가 되었다. 미리 말하자면 이 글은 누군가에 대한 찬양도 비난도 아니다. 대한민국 뉴스사에서 손석희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에 대한 이야기다.“저희는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JTBC ‘뉴스룸’의 마지막 멘트다. 누구나 살면서 수없이 말해봤을 이 평범한 문장.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드라마 유행어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문장을 통해 아무도 추궁하지 않은, 아니 추궁해야 하는 것인지도 잊고 있던 그 최선을 매일같이, 대중을 향해 자발적으로 약속하고 있다.손석희는 ‘뉴스룸’을 통해 ‘언론이 무엇이냐’고 자문한다. 그리고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답하고 있다.‘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12년 연속 1위. 국정 농단 사태로 ‘손석희를 대통령으로’라는 자조 섞인 구호가 나왔고, ‘손석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SNS 페이지에는 35만이 넘는 사람이 모여 있다. 단순 팬클럽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비영리 단체’를 표방하는 모임이다. 보수와 진보, 촛불집회와 맞불집회로 양분된 여론이 극렬하게 부딪히는 요즘, 손석희는 한쪽에서는 ‘언론 자유의 선봉장’으로, 다른 쪽에서는 ‘반정부 불온분자’로 도마 위에 올라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아닌 한 인물의 영향력이 이만큼 컸던 적이 있을까. 2017년 2월 중순 현재 ‘뉴스룸’ 주간 평균 시청률은 7.4% 안팎(닐슨코리아 조사 수도권 기준). KBS1 뉴스를 제외하고는 MBC, SBS 지상파의 메인뉴스를 이미 제쳤다. 그 8할이 손석희의 힘이라는 데 이의를 가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손석희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지금 언론계에서 손석희가 차지하는 무게감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손석희와 ‘뉴스룸’은 이제 따로 떼서 상상할 수 없는 한 몸이다. 1984년 MBC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우리 곁에서 뉴스를 전해온 손석희. 그는 지금, 그 자체로 뉴스가 되었다. JTBC 뉴스의 변화JTBC 메인 뉴스는 출범 이후 평균 시청률 1%(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를 넘지 못했다. 18대 대통령 선거(2012년) 당시에도 ‘0.9%’대에 머무르며, 또 하나의 종합 편성 채널(종편)에 지나지 않았다.그런 JTBC가 이듬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손석희를 보도부문 사장으로 ‘영입’한 것. 당시만 해도 종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일 때라, 신뢰도 1위를 지켜왔던 손석희의 선택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손석희가 JTBC 보도부문 사장으로 첫 출근한 게 2013년 5월 13일, “다시 마이크 앞에 서지 않겠다”는 선언을 깨고 앵커로 직접 나선 것이 4개월 뒤인 9월 16일이다.시청률부터 움직였다. 손석희 투입 전 8개월(2013년 1~8월)간 JTBC 메인 뉴스 시청률은 평균 1.14%, 투입 이후 8개월(2013년 10월~2014년 5월) 평균은 2.33%로 2배 이상 뛰었다.이제 따져볼 것은 내실이다. 손석희가 공언한 변화는 혁신에 가까웠다.첫째, 기존의 백화점식 열거 뉴스와 정확히 반대되는 이슈 집중 보도다. 중요 사안에 압도적인 비중을 두었고, 비교적 덜 중요한 뉴스는 과감히 뺐다. ‘뉴스룸’의 간판인 ‘팩트 체크’와 ‘비하인드 뉴스’ 코너를 통해 사안의 핵심을 파고들고, 아무도 말하지 않던 뉴스의 이면을 다뤘다.둘째, 미국방송 뉴스에서나 봤던 본격 앵커 중심의 뉴스가 펼쳐졌다. 앵커가 기자를 현장 연결하거나 스튜디오로 불러 사전 약속 없이 즉석에서 묻는다. 계속해서 묻는다. 취재가 덜 되거나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부분을 파고들면 기자가 우물쭈물하거나 답을 못 하기도 한다. “취재 다시 해서 보도하라”는 질타가 뉴스 중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JTBC 기자들은 스스로 남들보다 더 넓게 질문하고, 더 깊게 취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그리고 ‘앵커 브리핑’의 등장. 신문사로 따지면 논조가 드러나는 ‘사설’을 극적인 영상으로 만든 손석희 기획·감독·주연의 ‘모노드라마’,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문학적 텍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코너다.‘뉴스룸’은 출범 이후 몇 번의 극적인 국면을 맞닥뜨린다. 먼저 2014년 세월호 참사 보도. 당시 서복현 기자와 김관 기자를 계속해서 팽목항에 주둔시키며 언론사 중 가장 오랫동안 세월호 이슈를 메인으로 다뤘다.실종자 가족들은 기존 주류 언론이 아닌 JTBC를 신뢰했고, 이때 월평균 시청률은 3.89%를 찍는다. 미디어투데이의 정철운 기자는 이를 두고 “JTBC는 정부 여당에 편향된 주류 언론의 대체제로 성장했다”며, “오늘날 손석희와 JTBC 뉴스의 가치는 주류 언론이 무엇을 왜곡하고 무엇을 보도하지 않는지 알려주는 기준점 역할을 하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뉴스룸’은 손석희라는 개인에게 사실상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이는 다시 손석희 한 명에게 언론의 공정성과 진실 추구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뭐만 하나 삐끗하면 비난도 그만큼 거세다.결국 ‘손석희 없는 뉴스룸’이 JTBC에는 가장 큰 과제다. 그건 JTBC가 알아서 할 일이고, 짚고 넘어갈 것은 이것이다. 손석희를 필두로 일어난 언론 지형의 변화. 함께 일하는 기자들이 변했고, 채널의 신뢰도가 변했고, 언론 전체가 변하고 있다. 왜 여전히 손석희의 뉴스를 보느냐고? 다음 설명이 가장 근사치의 답이 될 것 같다.“뉴스는 어디에나 있고 사실은 공정하지 않다. 뉴스가 진실을 추구한다는 믿음은 이제 순진하게 느껴진다. 진짜 중요한 건 누가, 어떤 뉴스를, 어떻게 전하느냐는 것이다.” 의 정우성 기자가 쓴 손석희에 관한 칼럼 중에서 인용한 문장이다.공정한 저널리즘손석희는 JTBC 뉴스를 시작할 때 ‘사실, 공정, 균형, 품위’ 네 가지를 표방했다.“JTBC가 여러 한계를 갖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가능한 한 합리적인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내재돼 있다. 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도전해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손석희의 JTBC 영입 조건은 ‘보도 방침에 대한 일체의 불간섭, 언론 자유의 완전한 보장’이었다. 결과물은 속속들이 나타났다.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신인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에 대해서 JTBC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언론인 출신인 만큼 재산이나 도덕성 문제에 앞서 언론인 시절에 썼던 칼럼과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가 제 식구에게 후한 평가를 냈던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이다.삼성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14년 5월에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를 인터뷰했고, 삼성의 노조 무력화 전략 문건을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손석희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보도를 했을 때 별의별 음모론적 분석이 다 나왔다. 전부 틀린 얘기다. 우리가 이 문제를 보도하는 것이 화제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 태도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쿨하다.”‘뉴스룸’이 지적을 받을 때도 물론 있었다.2015년 1월, “JTBC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관련 보도를 하면서 편파적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세월호 사건 당일, JTBC 박진규 앵커가 세월호에서 막 구조된 여학생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던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손석희는 그날 바로 직접 사과했다.“오늘 낮 여객선 사고 속보를 전해드리는 과정에서 후배 앵커가 구조된 여학생에 건넨 질문으로 많은 분이 노여워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해명이나 변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나마 배운 것을 선임자이자 책임자로서 후배 앵커에게 충분히 알려주지 못한 저의 탓이 가장 큽니다. 깊이 사과 드립니다.” 손석희가 ‘뉴스룸’을 이끈 이후부터 “너는 어디 편이냐”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진실과 시민 사회, 약자 편에 서겠다”고 답했다. 인터넷의 한 극우 사이트에서는 이렇게 비난했다.“약자 편에 서겠다는 건 이미 특정한 편에 서겠다는 선언이다. 언론 고유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극적 선동 보도를 중단하라!” 극우 인사들은 요즘 손석희의 서울 평창동 집 앞으로 몰려가 인터넷 생방송을 한다. “손석희가 이렇게 좋은 집에 산다”고 고발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언론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은 다름 아닌 ‘건강한 시민 사회’다. 건강하다는 건 극단이 아닌 합리적 사고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디가 더 ‘합리적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그 남자의 사생활가장 많은 말을 하지만 가장 말 없는 사람, 손석희.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 대한 수많은 ‘증언’이 전설처럼 떠돈다.대학 시절 내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항상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서 별명이 ‘교복’이었다. MBC 보도국의 간판 스타가 된 뒤에도 옷에 돈 쓰는 걸 싫어해서 몇 벌 안 되는 양복을 돌려 입으며 버텼다.1992년 MBC 파업 때는 주동자로 몰려 20일간 구치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당시 수의 입고 수갑 찬 그의 사진이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MBC 시절 김주하 앵커는 이렇게 증언했다.“손석희 선배의 순발력과 판단력은 배워서 체득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급한 순간이라도 단어 몇 개만 주어지면 앵커 멘트를 단숨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손 선배다.”반듯한 이미지의 손석희이지만, 반전도 있다. 평소 입이 거칠다(?)는 증언이 파다하다. MBC 파업 당시 방송국 견학을 갔다가 손석희를 맞닥뜨린 한 대학생의 매우 소소한(?) 일화도 있다.“MBC 로비에 텐트가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서 손석희가 나왔다. 그러더니 넥타이 매고, 거울 보고, 머리 대충 쓸어 넘기니 빛이 나더라. 파업 중이라 사측에서는 학생들의 견학을 꺼리는 분위기였는데, 손석희가 ‘잠깐만 얘들아’ 하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전화기에 대고 ‘야, 이 개XX들아! MBC가 너희 거야?’ 소리를 질렀다. 전화 끊고 갑자기 웃으면서 ‘자, 이리 따라오세요~’ 하며 견학 안내를 해주고, 본인은 뉴스 하러 올라갔다. 진짜 다들 손석희에게 ‘뿅’ 갔다.” 손석희라면 욕을 해도 이렇게 ‘멋있게’ 풀린다. 손석희는 MBC 아나운서 후배인 신현숙과 결혼,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가정에서는 어떤 남편일까. 아내의 증언이다.“따뜻한 남편이에요.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겨요. 식구들과 여행하기를 좋아하고요.” 글쎄, 믿거나 말거나다.신화는 없다손석희는 JTBC 사장으로 가서도 기자들과 가까이 있겠다며 3층 임원실을 마다하고 1층 보도본부를 고집했다. 기자들 모두에게 자신을 ‘사장’ 말고 ‘손선배’라고 부르도록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자들과 미팅을 갖는데 낮에 하면 샌드위치, 밤에 하면 치맥과 함께한다.JTBC의 편집 회의 시간은 다른 언론사보다 2~3배쯤 길고, 모두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한다. 근 20년을 정치권 영입 일순위로 오르내리지만, 손석희는 한 입으로 두말 안 했고 여전히 여기에 있다. “정치를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방송인은 공정성이 생명이다. 퇴직한 후 정당을 선택해 정치를 하는 것은 공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13년간 진행했던 ‘손석희의 시선집중’(2000~2013)과 ‘100분 토론’(2002~2009)은 손석희에게 ‘대체 불가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물 들어오면 노 젓고, 뜨면 변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들 한다. 적어도 손석희는 들뜨거나 동요한 적이 없다.1988년 MBC 노조 파업 당시 손석희가 뉴스를 진행할 때 ‘공정 방송 쟁취’라 쓰인 리본을 양복 안쪽에 달고 나간 것이 화제가 됐는데, 그는 “달고 나갈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달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게 내가 기회주의자라는 걸 말해준다”고 말했다.MBC 파업 주동자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을 때도 “나야말로 노조 활동으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다. 한 일도 없는데 무슨 민주 투사라도 되는 양 대접받는다”고 했다.JTBC ‘뉴스룸’에 대한 칭찬에는 “뉴스의 주체는 기자들이다. 나만 노력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노력하고 있다”고 답한다.손석희는 신화가 아니다. 아직은 대체제가 없는 한 명의 언론인 정도가 맞는 평가겠다. “누가 손석희를 영웅으로 만드느냐”고 손가락질하는 이가 있다면 “당신의 손가락이 그랬다”라고 점잖게 대꾸해주면 될 일이다.“진실은 단순해서 아름답고, 단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지킬 용기뿐이 아니던가.”손석희의 유일한 자서전 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는 누구나 진실을 갈구한다. 그것을 지킬 용기는 아무에게나 없다는 사실이 뼈저릴 뿐이다. 우리는 지금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