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칼럼니스트의 영업 비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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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섹스 칼럼은 좀 웃겨요. “둘 중에 한 명, 바람둥이가 있다”라고 쓰인 카피에서 눈이 멈췄다. ‘연애의 과학’이라는 인스타그램 페이지의 카드뉴스였다. 카피 밑에는 남자 두 명의 그림이 있었다. 왼쪽 남자 A는 눈이 덮일 정도로 머리가 길고 라운드넥 티셔츠를 입었다. 오른쪽 남자 B는 가르마에 셔츠. 엄지손가락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튕기며 다음 카드로 넘어갔다. “연구에 따르면 바람둥이는 섹스를 할 때 이미 행동에서 티가 난다. 당신은 알아볼 수 있을까?”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게, 알아볼 수 있나? 카드뉴스를 한 장 더 넘겼다가 잠깐 흠칫했다. 머리 긴 남자 A의 직업이 섹스 칼럼니스트였다. 이름은 안서준, 나이는 32세. 설명이 이어졌다. “서준은 TV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꽤 이름이 알려진 섹스 칼럼니스트다. 얼굴은 평범하지만 미려한 문체로 그를 추종하는 젊은 여성도 있다.” 7년 동안 섹스 칼럼을 띄엄띄엄 써온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국에 얼굴은 평범하지만 TV에 나가기도 하고 미려한 문체로 섹스 칼럼을 써서 여성 추종자가 있는 남성 섹스 칼럼니스트가 있나? 지금 내가 알기로 한국에 기명 섹스 칼럼을 정기적으로 쓰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다섯 명도 안 된다. 이것도 넉넉히 잡은 수치다. 기명 섹스 칼럼이 직업의 일부이거나 그걸로 수익을 올리는 사람(특히 남성)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나뿐이다. 그러니 ‘섹스 칼럼니스트 서준’ 같은 사람 역시 한국에 없다. 서준과 나의 공통점은 얼굴이 평범하다는 것뿐이다. 나는 TV에도 안 나갔고 이름도 안 알려졌고 문체도 안 미려하고 나를 추종하는 젊은 여성도 없다.  이 게시물을 만든 에디터에게 섹스 칼럼니스트란 어떤 이미지일까? “섹스 칼럼니스트가 바람둥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왠지 안심됐다. 해당 게시물을 작성한 ‘연애의 과학’ 문형진 에디터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그건 바람둥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연구 결과로 만든 가상의 캐릭터예요. 연구 결과에 입각해 바람둥이의 디테일을 넣기도 했지만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이 바람둥이의 디테일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시야를 돌리는 미끼 같은 역할로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사용한 셈이다. 나는 문형진 에디터에게 간단히 내 사정을 전했다. 지금 내가 아는 한 실명으로 섹스 칼럼을 쓰는 게 직업의 일부이거나 섹스 칼럼을 기고해서 수익을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국의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에스콰이어] [GQ] [아레나] 중에서 섹스 칼럼이라는 걸 유지하는 잡지는 <에스콰이어>뿐이라고. 말하자면 내가 라스트 섹스 칼럼니스트라고. “아,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문형진 에디터는 ‘어쩌라고’ 싶은 이야기일 텐데도 열심히 들어주었다. “저는 허지웅이나 곽정은 같은 사람을 생각하며 그 직업을 설정했어요.” 이어지는 문형진 에디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실제로 한국에 섹스 칼럼니스트가 다섯 명도 안 된다 해도,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게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꽤 많을 겁니다.” 하긴 문형진 에디터가 언급한 두 분이 JTBC [마녀사냥]에서 섹스 이야기를 하거나 섹스 칼럼니스트라는 포지션을 잡으며 그 일을 널리 알린 것도 사실이다. 방송의 힘이란. 문형진 에디터는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섹스 칼럼을 몇 년 쓰셨다고요? ‘연애의 과학’이 요즘 필진이 부족한데 혹시 외고 생각 있으세요?” 이런 상황에서 외고 필자를 찾다니 문형진 에디터 역시 프로였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나라도 황당할 것 같았다. 원고에 별생각 없이 ‘섹스 칼럼니스트’라고 적어뒀는데 그다음 달에 진짜 섹스 칼럼니스트에게 전화가 온 것 아닌가. 내가 [에스콰이어] 섹스 칼럼의 뮤즈 김예리 씨를 몇 달 언급했더니 본명이 김예리인 분께서 편집부로 전화해 “나 섹스 안 하거든요?”라고 일갈한 것과 마찬가지다(그런 일은 당연히 없었다). 우리의 김예리 씨는 라스트 섹스 칼럼니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박찬용 씨 전의 섹스 칼럼들은 제 살 깎아먹기 같은 느낌이 있었죠. 자기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게 뭐랄까, ‘이빨 까는’ 느낌이랄까?” 김예리 씨는 본인이 섹스에 능한 걸 넘어 한국 잡지 섹스 칼럼의 충실한 독자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형 섹스 칼럼의 계보를 꿰는 건 물론 글을 통해 사람을 꿰뚫어 보기도 했다. “섹스 칼럼을 썼던 에디터들이 활발한 성생활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왠지 키보드 워리어 같은 느낌이 있었죠. 거들먹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이 그랬다. 섹스 칼럼 상당수가 자신의 경험담이었다. 내가 섹스 칼럼을 사사한 송원석 편집장이 그 분야의 명인이었다. 그는 일찍이 ‘여관에서 특급 호텔까지 한 여자와 섹스하며 반응 살피기’라거나 ‘나의 자위 기구 체험기’ 같은 구미권 체험 저널리즘적 섹스 칼럼으로 후대의 모범이 되었다. 그분께서 이끄시던 편집부에서 나는 피처팀 막내였기 때문에 섹스 칼럼을 맡았다. 선배 두 명 중 한 명은 여성, 한 명은 유부남이었고 두 분 다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쩌다 섹스 칼럼을 맡은 막내일 때는 이 나이까지 섹스 칼럼을 할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 중요히 여긴 섹스 칼럼의 원칙도 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쓰지 않기로 했다. 자위를 빼면 세상에 나만의 섹스 이야기는 없다. 내 섹스 경험담은 그때 그곳에 있었던 상대의 경험담이기도 했다.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상대에게 ‘쟤 이거 쓰는 거 아니야?’라는 의구심을 주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지단의 머리숱처럼 몇 없는 내 성 경험 중 “이거 기사로 쓸 거지?”라는 질문을 몇 번 받았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좀 난처한질문이었다. 여자가 읽는다면 불편해질 원고를 안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여기를 이렇게 하고 저기를 저렇게 했더니 그녀가 밤을 보내주더라…’처럼 엉터리 매뉴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라는 과제를 풀면 여자가 섹스를 하게 해준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여자를 잘 모르지만 적어도 모든 여자가 수준 높은 복잡도를 갖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여자는 ‘과제 → 섹스’처럼 단순하지 않다. ‘최선을 다하면 아주 좋은 섹스를 할지도 모른다’ 정도의 모호한 일반론으로 정리할 뿐이다. “적극적인 이미지예요. 남성호르몬이 많을 것 같고요. 그런 칼럼을 쓰려면 세상 경험도 많을 것 같아요.” 이게 섹스 칼럼니스트를 보는 세간의 이미지인 것 같다. 한강대교 북단에서 대구지리 머리뼈의 살을 빼 먹던 홍수현 씨의 생각이었다. “야, 넌 진짜 좋겠다. 섹스 칼럼을 화제로 삼아서 여자랑 섹스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잖아.” 권헌준 씨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심지어 권헌준 씨는 “내 친구가 섹스 칼럼니스트인데 말야”라는 말로 여자와 섹스를 화제에 올린 적도 있다고. 권헌준 씨와 나는 기묘한 공생 관계일까. “나는 섹스 칼럼을 늘 마지막에 썼어.” [GQ]에서 섹스 칼럼을 담당했고 지금은 DJ 겸 작가로 활동하는 유지성이 회고했다. 그는 이달 칼럼 주제가 ‘라스트 섹스 칼럼니스트’라고 하자 약 20초간 웃더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반 원고가 지하 1층 집중력, 신경 쓴 원고가 지하 3층 집중력이라면 섹스 칼럼 원고는 지하 5층 집중력이었어. 쓰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그렇게 섹스 칼럼을 즐겁게 열심히 썼지만 또 쓰고 싶지는 않아. 섹스 칼럼을 쓴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껴 다가오는 여자도 있긴 했지. 그런데 그런 여자는 오히려 내가 멀리했어.” 내 마음도 이와 같다. 그와 나의 차이점은 원고를 쓰는 순서뿐이었다. 그는 [GQ]에서 일할 때 섹스 칼럼을 늘 맨 마지막에 썼다고 했다. 나는 [에스콰이어]에서 일할 때 섹스 칼럼을 늘 맨 먼저 썼다. “당신 섹스 칼럼은 좀 웃겨요. 당신이 성 경험이 많은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빨을 까거나 거들먹거리지는 않아.” ‘라스트 섹스 칼럼니스트에게 한 말씀해달라’고 했더니 김예리 씨가 덕담을 보내주었다. “그러니 내가 자기를 어여삐 여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죠.” 김예리 씨가 나를 어여삐 여겨준 덕에 오늘도 내 블로그 유입 검색어에 ‘붕맨꿀’이 있다. “수고했다. 그런데 왜 계속해?”는 유지성 에디터의 한 말씀이다. 그러게, 나는 왜 이걸 계속하고 있을까? 만약 내년 12월 호까지 섹스 칼럼을 쓰고 있다면 그때는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