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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은 사라지게 될까?

정장은 사라지는 걸까

BYESQUIRE2021.01.01
 
 

정장은 사라지는 걸까

 
 
몇 달 전 코로나 시대의 재택 근무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몇몇 케이스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상 회의를 하는데 상사가 옷을 제대로 입었는지 확인하겠다며 일어나보라고 했다는 거다. 또 금융권 영업 사원이 역시 반바지에 상의만 정장을 입고 화상 회의에 참여했다가, 물 가지러 일어나는 바람에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소문을 전해 듣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정장은 실용적, 능률적인 면에서 딱히 필요하지는 않고 일하는 데도 불편한데 사회생활에서 형식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비록 상의라도 갖춰 입는 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의 스타일이 단숨에 캐주얼화되었다며 앞으로 신사복 판매점은 거의 없어질지 모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 얘기는 예전부터 계속 있었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더 강렬하게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거다. 정장은 과연 사라질 것인가?
 
사실 온라인이 아니더라도 엄격한 정장 문화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얼마 전 대기업에 다니는 후배가 복식 규정이 있다기에 내용을 물어본 적이 있다. 예컨대 재킷에 바지를 입으면 좋지만 딱히 색을 맞출 필요는 없다. 넥타이는 없어도 된다. 구두 대신 스니커즈를 신어도 되는데 요즘 유행하는 못생기고 커다란 스니커즈나 쿠셔닝 러닝화는 곤란하다. 가만히 들어보면 엄격한 기준보다는 그저 튀지 않는 정도로 분위기를 잘 맞추면 되는 듯했다. 직장에 출근할 때는 적어도 ‘양복’이라는 유니폼을 차려입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아무튼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은 ‘형식성’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형식’을 따지기 때문에 그게 굳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치 옛날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상의만 정장을 차려입는 요식 행위를 하고 있다. 다른 많은 영역이 그러했듯 실제로는 필요하지 않은데 요식 행위로만 유지되는 것들은 시간이 좀 걸리거나, 전통 고수파의 반발이 있기도 하지만 결국 사라진다.
 
이런 형식성을 타파하기 위해 정장이 사라질 듯이 밀어붙이던 시절이 과거에도 있었다. 1970년대에는 기존의 규격화된 사회화를 거부하며 군용 재킷을 입고 평화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또는 요세미티 아래 모여 살며 암벽을 오르거나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머무르며 서핑을 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지금은 노스페이스와 파타고니아, 블랙 다이아몬드, 스투시 같은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런 일은 아방가르드, 그런지, 안티 패션 같은 형태로 이후에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정장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세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여태 봐오던 팝과 힙합, SNS 문화 속의 멋진 사람들은 후드를 걸치고 스니커즈를 신는 쪽이 더 많았고, 세계 최고의 거부가 된 젊은 사업가들도 티셔츠나 터틀넥을 입고 있었다. 편안함과 실용성은 시대의 정신이다.
 
느슨해진 정장의 모습은 패션계에서도 볼 수 있다. 몇 년 전 발렌시아가의 남성복은 퇴근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 허름하고 느슨해서 몸에도 잘 맞지 않아 보이지만 맘은 편해 보이는 정장 룩을 선보인 적이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버버리는 시그너처 체크의 플리스 재킷을 내놓고, 루이 비통은 모노그램 패턴의 윈드브레이커를 내놓는다. 프라다의 옷은 실제로 익스트림한 등반을 할 수도 있을 분위기다.
 
남이 나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나 역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자기 중심주의와 다양성 존중처럼 자신의 삶 주변에서 더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는 윤리적 기준, 편안한 게 최고라는 실용적인 가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이 세기말적인 분위기 속에서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형식미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일상에 집중하고 있고, 한 번 사는 인생 자신에게 더 가치 있고 즐거운 것을 추구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깨뜨리고 인생을 즐길 방법으로 패션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정장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는 걸까? 아마도 지금의 정장은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지고 어딘가 촌스럽고 갑갑해 보이는 이미지가 쌓여가다 어느 순간 다른 무엇인가로 변해가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넘어갈 거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패션계에서 일하고 있는 에디터 중 한 명은 여러 위기 속에서도 형식적인 옷이 필요한 영역은 남아 있을 테고 그렇다면 비율만 바뀌어 캐주얼과 정장이 7 대 3 혹은 8 대 2 정도로 남아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지금 사라지고 있는 남성 정장 브랜드들은 과공급이 원인이므로 비율이 적당하면 어느 정도 변화된 정장 양식을 가지고 지속이 될 거다.
 
그보다는 조금 더 큰 폭의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18세기 말 이전 프랑스의 귀족 남성은 웨이스트 코트에 레이스가 달린 셔츠, 통이 좁은 반바지를 입고 힐 같은 걸 신었다. 그때는 그런 옷이 예의 있는 정장이었을 거다. 그러다가 세계대전의 군대 복식, 계급의 붕괴 같은 거대한 변화를 거치며 스리피스 정장에 프록 코트 등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옷이 정장의 영역에 자리를 잡았다. 그 착장이 시대에 맞춰 변화해가며 지금까지 흘러왔다.
 
즉 비대면 사회를 필두로 한 사회생활 형태의 변경뿐만 아니라 성 다양성과 인종 다양성의 존중, 자기 몸 긍정주의 등등이 어우러져 있는 지금의 거대한 사회 변화는 코로나가 지나간 후에도 계속될 테고, 지금의 정장 형태가 어느 정도 변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혀 다른 새로운 정장이 등장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물론 그게 뭔지는 모른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소비자 입장에서 새로운 패션, 멋지고 세련된 패션을 원하지만 그게 어떻게 생긴 건지는 잘 모른다. 무엇을 생각해도 이미 있거나, 벌써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디자이너가 선보인 새로운 컬렉션, 그리고 어디선가 채택된 우연의 산물 등이 합쳐지며 내가 찾던 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식이었다. 그러므로 아직 나오지 않았거나, 나왔는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그리고 지금 입고 있는 정장은 어떻게 될까. 오랜 시간 동안 쌓인 복잡다단한 복식의 규칙들은 인터넷 포럼들을 떠돌아다니며 ‘이건 어때요, 저건 맞나요’라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계승되고 있다. 사람들이 패션에서 더 많은 것을 포용하기 시작하면 정장의 룰 역시 지금의 패션 서브컬처들처럼 사회와의 적당한 거리를 견지해가며 그들만의 즐거움을 만들어가지 않을까. 패션을 즐기는 방식도 분명히 훨씬 다양해질 테니까 말이다.
 
Who`s the writer?
박세진은 패션에 대한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 〈패션 vs. 패션〉, 〈레플리카〉, 〈일상복 탐구〉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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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박세진
  • Illustrator 노준구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