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에 한국식 포장마차가 생긴 이유

뉴욕 한복판에 포장마차 거리가 생긴 이유

BYESQUIRE2021.01.06
 
 

뉴욕 한복판에 포장마차 거리가 생긴 이유

 
 
한동안 뉴욕은 전쟁터였다. 지금도 전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도시 곳곳에 도사리며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이 위협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럼에도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곳을 ‘전장(戰場)'이라는 단어 이외의 다른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고요한 전쟁이었다. 락다운이 된 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쌀을 사기 위해서였다. 뉴욕의 중심 5번가는 초현실주의 화가 키리코의 그림처럼 적막했다. 평소 가득하던 관광객도, 항상 길을 가로막던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은 너무나 무력하게 무너졌다. 주말 브런치의 블러디메리, 대화가 불가능한 시끄러운 펍에서 마시는 크래프트 맥주, 관광객과 뉴욕 사람들이 뒤섞인 미술관, 센트럴 파크 잔디밭의 일광욕, 1달러면 먹을 수 있는 해피아워 오이스터와 점심시간만 되면 한참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던 푸드트럭도 모두 사라졌다. 팬데믹은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확진자와 사망자의 그래프는 날씨가 더워질 무렵에야 겨우 꺾였다. 폐허 같던 도시는 다시 조금씩 맥박이 뛰고 숨을 쉬기 시작했다. 도서관과 미술관이 다시 열렸고, 상점들도 손님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마침내 레스토랑도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실내에서의 취식은 여전히 금지돼 있었다. 그 대신 뉴욕시는 도로변 주차를 금지하고 그 공간을 식당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식당의 다이닝 룸은 그렇게 거리로 나왔다. 여름의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노천 테이블 위로 파라솔이 등장했다. 거리에 놓인 노천 테이블 때문에 뉴욕은 흡사 유럽 어느 도시의 풍경과 비슷해 보였다.
 
다만 한식당들이 모여 있는 32번가 K타운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방풍 비닐이 등장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야외 테이블은 ‘포장마차’ 같은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유럽의 어느 거리 같던 노천 테이블은 종로3가 어디쯤과 더 비슷해졌다. 주말에 차량 통행까지 금지된 K타운은 완전히 포장마차촌으로 변했다.
 
한국에 있던 시절, 카카오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 피크 타임에 종로나 을지로에서 술자리가 파하면 인사동 초입에 있는 포장마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술을 과하게 마신 날에는 라면이나 우동으로 다음 날 숙취를 대비했고, 술이 부족한 날에는 간단한 안주와 소주를 주문했다. 안주를 기다릴 것도 없이, 영혼 대신 조미료만 든 서비스 어묵탕과 김치만으로도 소주 반 병 정도는 금방 비울 수 있었다. 귀가가 급한 사람들이 다 무사히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데 이만 한 장소가 없었다.
 
사실 포장마차에서 굉장한 음식을 맛보기는 어렵다. 조리 환경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볍고, 볶고, 구울 수 있는 음식이 주인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오돌뼈, 꼼장어 등 어느 포장마차를 가도 메뉴는 대체적으로 큰 특징 없이 비슷하다. 그런데 이것저것 구비된 건 또 많다. 워낙 메뉴가 다양하다 보니 보관 과정에서의 위생 관리나 선도가 걱정되기도 한다. 게다가 특별히 저렴한 것도 아니다.
 
그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포장마차에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드라마 주인공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PPL도 안 하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뉴욕에 새로 생긴 이 포장마차가 한국과 다른 점은 아마도 전 세계 각종 음식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전 세계 국가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뒤섞여 사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K타운의 포장마차에서 족발과 소주를 마실 수도 있지만, 몇 블록만 자리를 옮기면 파테와 샤퀴테리를 앞에 두고 셰리를 마실 수 있다. 광둥식 에그누들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바로 옆 가게로 옮겨 타코로 입가심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뉴요커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확진자가 다시 늘어가는 추세 속에서 이런 인기몰이가 과연 방역에 좋은 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레스토랑들도 손님들도 바이러스로 황폐해진 도시의 폐허 속에서 일상을 조금씩 재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인다. 금요일 저녁 K타운의 포장마차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다른 식당들도 있지만 유독 K타운에 사람들이 더 몰리는 이유는 뉴욕에서 한국의 문화가 점차 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뉴요커들 사이로 따끈한 방탄소년단의 신곡이 울려 퍼지는 뉴욕 32번가는 타향살이를 하는 한국 사람들이 미처 향수를 느낄 틈도 주지 않는다.
 
겨울은 방역에도 포장마차에도 가혹한 계절이다. 아무리 난방을 한다고 하더라도 파스타는 금세 식을 것이다. 온기를 잃은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한국식 포장마차처럼 블루스타에 전골 냄비를 올리고 탕이나 국물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애초에 프렌치나 이탤리언 식당에서 마음까지 뜨끈해지는 국물 요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절에 상관없이 업장의 25%밖에 채울 수 없도록 규제를 받는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야외 테이블을 포기할 수 없다. 아마 포장마차는 긴 겨울과 함께 여전히 뉴욕 거리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고요하고 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어떤 식당들은 버티지 못하고 스러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당은 이 겨울 날씨에 적응하는 신메뉴를 내놓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든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포장마차는 그 전선의 최전방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Who`s the writer?
신현호는 뉴욕의 다국적기업 본사에서 전략 부문 업무를 한다. 스스로 “주 40시간은 회사에서 가격과 가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 주 80시간은 레스토랑을 다니고 요리를 한다”라고 말할 만큼 미식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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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WRITER 신현호
  • Illustrator 노준구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