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은 수십 년 전에 처참하게 박살이 났지만, 그 방식은 아직 유효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지 말 것, 어깨너머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짝사랑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당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서 표현할 것. 이런 제멋대로인 사랑의 지론은 대체로 성공보다는 고배를 들게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실패는 “내가 잘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래?”라는 매몰찬 거절이었다. 좋아해서 잘해주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좋아하니까 잘해줄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라는 대답만으로는 상대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보고 자란 사랑의 방식이 오직 이뿐인지라 오늘도 나는 실패한 사랑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활동이다. 개념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만연해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에서 출발했다. 구체적인 활동은 1945년 UN 헌장을 통해서 경제, 사회, 문화 및 인권과 관련된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 증진을 발표하고 다양한 활동을 개시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 역시 1970년대까지 UN 산하 여러 기구의 지원을 받았으며, 1991년부터는 무상원조 전담기관으로 외무부 산하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국제개발협력 활동에 뛰어들었다.
이런 거창한 설명을 달았지만, 결국 이런 활동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선행’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달마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적금을 붓고, 보험도 들고 사는 급여노동자인 나를 자원봉사자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좋은 일을 하니 재능 기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라면서 터무니없는 급여를 제시하는 기관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언제나 좋은 일만 가득할 것’이라는 저속하고 게으른 감수성이다. 밀란 쿤데라가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의 현실은, 특히 개발도상국 속에서의 개발 활동은 불완전함 그 자체다. 그것을 인정하고 똑바로 마주해야 하는 것이 개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다.
한 나라 안에서 발생한 빈곤을 종식하기 위한 일은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치부를 파헤치고 민감한 구석까지 건드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장 활동가들은 환영받지 못할 때가 많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한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일 뿐이고, 오랫동안 자신만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온 한 공동체가 바다 건너 멀리 외부로부터 온 타인을 ‘선의’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사업을 설계하기 위해 처음 방문한 마을에서 한 주민이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다! 한국의 시각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말라! 우리를 그렇게 보는 한국인들이야말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다!”라면서 목소리를 높였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민들뿐만이 아니다. 해당 지역의 관료들에게도 우리의 존재는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한번은 중앙정부 공무원이 느닷없이 나를 호출해 3시간 떨어진 도시까지 끌려가서 경찰 조사를 받은 적도 있고, BTS보다는 싸이에 가깝게 생긴 나를 기꺼이 반겨주던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공안으로부터 “왜 학생들은 앞에 쪼그려 앉아 있고 너는 그 뒤에 꼿꼿하게 서 있나?”라는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이런 일들을 겪을 때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긍지나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다는 명예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지만 그런 사랑의 방식이 누군가에는 상처가 되고 부담이 되었듯,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내가 겪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 일에 일말의 회의감이나 후회를 가져본 적은 없는데, 이는 결국 사랑에 실패해도 그리고 실패할 것을 알아도 계속 사랑을 찾아 헤매던 인류의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각기 이유는 다를지라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문명의 기본 전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설명되기도 하고, 실패해도 거듭해야만 하는 사랑이란 이유로 표현할 수도 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도 기술이며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당장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지언정, 또 나름의 호의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을지언정, 지금 이 활동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의 이름에, 국제개발 활동의 이름에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11월 25일은 국제개발협력의 날이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던 2009년 11월 25일을 기념하고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장려하고자 지정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공적개발원조 예산을 국민총소득 대비 0.7%까지 늘릴 것을 권장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0.14%로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단순 수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해당 예산을 올바르게 집행하는 것 또한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곧 다가오는 국제개발협력의 날을 맞이하여 이 일이 지구 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있길 바란다. 국제개발협력의 원동력은 누군가의 선행과 호의만은 아님을,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실 우리의 단순한 감정이라는 것을.
Who's the writer?
조용석은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다. 미얀마를 거쳐 현재는 베트남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