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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하영은 궁금한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당신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문신한 신부 ‘김화영’를 알고, <모범형사 2>의 구둣방 주인의 딸 정희주를 알고, <이두나>의 순애보 김진주를 알지만, 그 본체인 안하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맘껏 궁금해해도 좋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3.12.21
 
블라우스 마틴 로즈.

블라우스 마틴 로즈.

 
아직 어릴 때 이렇게 작품 같이 한 배우들이 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럴 것 같아요. 당연하겠지만 단톡방도 팠거든요. 다들 리액션이 고루고루 좋아요.
전 진주에게도 기회를 한 번 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의 로맨틱코미디물이었다면 원준과 진주가 단둘이 술 한잔하다가 뭔가 로맨틱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며 두나와 원준의 관계에 위기가 왔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런 위기 없이 두나와 원준이 계속 서로만을 좋아하다 끝나요.
저도 그 지점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저희가 대부분 봤던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의 흐름이랑은 달랐죠. 그런데 진주 입장에서는 원준의 행동이 정당하기도 했어요. 삐뚤어진 유교 가부장 가정폭력의 희생자(진주는 이성 교제를 하면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의 딸이다)로 원준과 거리를 두며 살 수밖에 없었던 진주이기에, 자신을 사랑했던 원준이 이미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어요. 원준이에게 진주가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해 일찍 털어놨더라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한편으론 이해가 가요. 그런 끔찍한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니까요.
그런데 그런 아버지들이 많나 봐요.
저도 그런 가정을 간접으로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다큐멘터리나 책을 찾아봤어요. 정말 딸을 지나치게 죄수 다루듯 규제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저 입장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나 이해를 청할 수 있을까? 그 결론이 ‘쉽게 터놓기는 어렵겠다’는 거였죠.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들을 살펴보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소영이나 <너의 밤이 되어줄게>의 지연, <이두나>의 진주도 다들 약간 바르고 모범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진주도 사실 비정상적인 부모에게 마지막까지 반항을 못 하고 성인이 된 아이죠.
실제의 저는 전혀 달라요. 저는 제가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하고, 싫은 게 있으면 싫다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진주랑은 가정환경도 전혀 다르죠. 그런데 저도 영상을 보면서 제 목소리 톤이라든지 인상, 표정을 짓는 얼굴의 근육을 쓰는 방식 등이 그런 캐릭터에 적합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일단은 제게 주어진 것들을 충실하게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죠. 물론 마음 한편으로는 제가 가진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해요.
<에스콰이어>가 오늘 화보를 기획한 이유이기도 해요. 연기도 이미 잘하고 여러 역을 맡을 수 있는 포텐셜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번 화보를 통해 정말 아름답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엄청 잘나가는 광고대행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강력계 형사도 어울리는 배우의 모습으로요.
다들 너무 해보고 싶은 역할이에요. 액션이 많은 작품이나 걸크러시 느낌의 역할들, 최근에 본 넷플릭스 <발레리나>의 전종서 씨 역할 같은 연기요.
운동은 좀 하세요?
좋아해요. 필라테스 좋아하고, 예전에는 테니스를 한 2년 정도 치기도 했어요.
어느 정도 치세요?
잘 치진 못하고 공 주고받으며 랠리 할 정도, 서브 넣기는 할 수 있는 정도예요. 주말에 동호회 가서 몇 게임 뛰곤 했어요.
와! 그 정도면 여성 중에선 정말 엄청 잘 치는 거네요. 남자 중에도 서브 넣고 랠리 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코치들이 그 정도만 해도 운동신경이 진짜 좋은 거라고 말하곤 하지요.
그때는 좀 바짝 열심히 했거든요. 날아오는 공과 내 거리를 맞추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순발력도 좋아야 하고 보는 눈도 좋아야 하죠.
액션에 꿈이 있을 만하군요.
액션 작품 너무 해보고 싶어요. 최근에 에밀리 블런트가 나온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라는 영화를 봤어요. 그녀가 FBI 요원으로 등장해 정말 드라이하게 감정 연기를 이어가더라고요. 액션 신도 대단했고요.
 
하프넥 스웨터 지고트.

하프넥 스웨터 지고트.

 
벌써 찍어둔 작품이 있지요?
내년에 공개되는 작품이 있어요. <중증외상센터>라는 작품이고, 실제 의사가 쓴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가 원작이에요. 초임 교수 백강현이 한 대학병원에 부임해 중증외상팀을 꾸리고 성장시키는 이야기예요. 주지훈 선배가 백강현 역을 맡아서 함께 촬영했는데 정말 이것저것 잘 챙겨주셨어요.
아참,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여군 출신이라는 루머가 있던데 그건 대체 뭔가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였는데요. 그냥 뜬금없이 한 게시판에 제가 여군 출신이라는 글이 올라와서 퍼진 적이 있어요. 저도 대체 왜 그런 루머가 퍼졌는지 모르겠고, 그냥 좀 신기하고 색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아트로 대학원을 나오신 분인데, 누군진 몰라도 아주 재밌는 전혀 다른 분야의 전공을 찾아줬네요. 학부는 서울에서, 대학원은 뉴욕에서 미술을 전공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거든요. 그때는 그냥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 후에는 작가로 살 줄 알았고요. 뭔가를 생각하거나 감정을 표현해내는 일이 너무 즐거웠죠. 그런데 작업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게 조금 외로웠던 모양이에요. 나중에 배우가 되고 난 뒤에 깨달은 거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떤 스타일의 아티스트를 좋아했어요?
바넷 뉴먼이나 마크 로스코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을 좋아했고,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제임스 터렐처럼 숭고미가 있는 작품에 푹 빠졌었죠.
뮤지엄 산에 가면 볼 수 있지요.
맞아요. 뮤지엄 산 말고도 일본에 나오시마라는 예술 섬이 있는데 그곳에 터렐의 작품이 여럿 있거든요. 그중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안도 다다오가 개조한 아주 오래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라이트 아트’였어요. 공간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그 어둠에 망막이 슬슬 적응을 하기 시작하고 대략 7분 정도가 지나면 희미하게 터렐의 빛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때부터 거대한 숭고함이 밀려오기 시작하는데, 그런 체험적인 작품을 좋아해요.
그런데 지금 말한 작가들이 다들 워낙 거대한 이름이라 본인의 작품을 할 때와는 조금 괴리감이 있었겠어요.
(웃음) 그렇죠. 초라하기 그지없었죠. 실제로 내가 좋아하고 감탄하는 작품들과 내가 만드는 것들 사이에 괴리감이 엄청 크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좋아하는 작품과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좀 다르더라고요. 그때 나름대로는 제 작품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보고 싶네요. 정말 너무 보고 싶어요.
지금 말고 나중에요.(웃음)
최근 일상은 어떤가요.
<이두나>와 진주를 공허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어요. <중증외상센터> 촬영이 끝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가족들이랑 시간을 좀 더 보내고 고양이 수발을 들고 있습니다.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일은 없나요?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특히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려고요. 너무 새벽에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12시 전에는 반드시 일어나려고 애써요. 자기 시간을 자기가 관리하는 배우라는 직업이 그런 게 의외로 잘 안 되기도 하거든요. 아까 얘기한 저희 주인님 식사 시간, 아침 놀이 시간과 저녁 놀이 시간을 딱딱 지켜드리는 것 정도가 제 루틴이에요. 겨울이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려 하는 습성이 있어서 하루에 반드시 5000보 이상, 1시간 정도는 걸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여태까지는 괜찮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대답을 했어요. 그게 정말 제가 원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좀 바뀌었어요.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어졌어요. 사람들이 제게서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저 사람의 본모습은 어떨지 궁금해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졌어요.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송시영
  • STYLIST 오주연
  • HAIR 조미연
  • MAKEUP 오가영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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