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INTO THE WILD

아일라 위스키 고유의 야생적인 스모크 향. 그 정점에 아드벡이 있다.

프로필 by 오정훈 2024.01.31
 
아드벡 증류소는 스코틀랜드 서해안 아일라(Islay)섬에 자리하고 있다. 길이 25마일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아드벡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위스키 증류소들이 모여 있어 위스키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길들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인 아일라섬의 야생성은 아드벡의 맛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소금기 머금은 해풍과 차갑고 습한 공기,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양이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며 아드벡만의 특별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아드벡을 가장 ‘아드벡답게’ 만드는 재료는 습지대인 섬 도처에 묻어 있는 토탄이다. 아드벡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라면 토탄은 지휘자 옆에서 음악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제1 바이올린 연주자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식물성 화석의 퇴적물인 토탄은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되는 귀한 물질로, 부패가 진행 중인 이끼나 야생화, 지의류 등에서 풍부하게 발견된다. 이 지역 양조자들은 토탄을 태운 연기로 맥아를 건조해 특유의 알싸한 스모크 향을 위스키에 입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드벡이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훈제 향’ ‘갯내음’ 등으로 표현되는 아드벡의 스모크 향은 아일라섬에서 생산되는 싱글 몰트 위스키, 즉 ‘아일라 위스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요컨대 스모크 향은 아일라 싱글 몰트 위스키를 타 지역 싱글 몰트 위스키와 차별화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아드벡은 저마다 개성이 또렷한 아일라 위스키들 중에서도 자기주장이 강한 위스키로 손꼽힌다. 스모크 향이 유난히 강하고 그 복잡성 또한 두드러진다.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터프한 스모크 향을 이처럼 섬세하게 조율한 아일라 위스키는 역사상 찾기 어렵다. 강렬한 스모크 향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풍미가 돋보여, 이 같은 현상에 ‘토탄 향의 역설(The Peaty Paradox)’이라는 근사한 애칭이 붙었을 정도다.
 
 증류를 마친 아드벡 위스키가 최고의 맛을 위해 숙성을 거치는 오크통 창고.

증류를 마친 아드벡 위스키가 최고의 맛을 위해 숙성을 거치는 오크통 창고.

1815년 설립된 아드벡은 1980~1990년대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으로 부침을 겪다가 1997년 글렌모렌지 컴퍼니에 인수되면서 르네상스를 맞았다. 아일라섬의 이끼 빛깔을 닮은 녹색, 맥아를 건조할 때 사용하는 토탄의 갈색, 아드벡의 크리미한 풍미를 대변하는 크림색에서 영감을 받아 브랜드 코드를 다듬고, 고유의 개성을 앞세워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아드벡 포트폴리오의 요체는 ‘아드벡 10년(Ardbeg 10 Years Old)’이다. 2000년 출시된 아드벡 10년은 스모키한 과일 향과 강한 멘톨 향, 밀랍처럼 끈끈한 다크 초콜릿 뉘앙스로 아일라 위스키를 사랑하는 ‘피트 마니아’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히트를 기록했다. 바싹 태운 토탄에서 비롯한 아드벡 10년의 폭발적 풍미는 수백 가지 맛의 향연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미각을 다채롭게 깨운다. 톡 쏘는 레몬과 라임 주스 맛, 흑후추 향, 건포도의 짭조름한 풍미가 차례로 찾아오는 한편 크리미한 카푸치노와 구운 마시멜로를 연상케 하는 피니시가 진한 여운을 남기며 길게 이어진다. 아드벡 10년의 매력을 이어받은 코어 라인업도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아일라섬 최남단에 위치한 ‘오 곶(Mull of Oa)’의 우뚝 솟은 절벽에서 영감을 받은 ‘아드벡 언 오(Ardbeg an Oa)’는 은은한 스모크 향과 시럽처럼 달콤한 풍미로 아드벡의 순하고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한다. 아드벡의 수원지인 우거다일 호수에서 이름을 딴 ‘아드벡 우거다일(Ardbeg Uigeadail)’은 기름을 잘 먹인 가죽의 진한 향과 당밀 토피의 달콤함, 겨울 느낌의 향신료 풍미 등으로 아드벡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카이엔 페퍼를 뿌린 스테이크처럼 매콤하고 짭조름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아드벡 코리브레칸(Ardbeg Corryvreckan)’, 5년 동안 숙성되어 대담한 스모크 향을 자랑하는 ‘아드벡 위비스티(Ardbeg Weebeastie) 역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드벡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라인업이다.
아드벡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다. 위스키 자체뿐 아니라 증류소 또한 많은 업적을 보유하고 있다. 아드벡의 수장인 빌 럼스던 박사는 ‘올해의 마스터 디스틸러’ 상을 4년 동안 세 번이나 수상했으며 아드벡 증류소 역시 2019년과 2020년 두 해에 걸쳐 ‘올해의 증류소’ 상을 수상했다. 아드벡 증류소는 목이 긴 증류기에 정화기를 설치해 무거운 기체는 다시 증류되고 가벼운 기체만 증류기를 빠져나가도록 함으로써 토탄 향과 과일 향 사이에서 아드벡 고유의 균형 잡힌 풍미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에 위치한 아드벡 증류소. 스모크 향을 위스키에 입히기 위해 토탄을 태운 연기로 맥아를 건조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에 위치한 아드벡 증류소. 스모크 향을 위스키에 입히기 위해 토탄을 태운 연기로 맥아를 건조하고 있다.

 
아드벡의 위대한 유산을 이어가는 글로벌 팬클럽, 아드벡 커미티 
아드벡 애호가들의 열렬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단체가 있으니, 바로 아드벡 커미티(Ardbeg Committee)다. 풀어 말하면 ‘아드벡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쯤 될까? 2000년 창립된 이 단체의 목표는 회원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드벡의 유산을 면면히 이어가는 것, 즉 ‘아드벡 증류소의 문이 다시는 닫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전 세계 수천 명의 아드벡 애호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아드벡 커미티는 팬들의 순수한 애정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발적 팬덤’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현재 전 세계 130여 개국에서 10만 명 이상이 아드벡 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드벡 본사는 새로운 에디션을 출시할 때마다 회원들의 의견을 수집해 이를 제품에 적극 반영한다. 회원들에게만 은밀히 제공되는 전용 제품은 이 단체를 한층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그뿐만 아니라 커미티 인증을 받은 회원들은 아드벡과 관련한 특별 모임과 테이스팅, 이벤트에 우선적으로 초대받는다. 때로는 소장 가치 높은 한정판 컬렉션을 가장 먼저 접하는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BBQ에서 영감을 받아 실험적인 캐스크 토스팅 작업을 감행한 ‘아드벡 비자르비큐(Ardbeg BizarreBQ)’, 아드벡의 고전적인 스모크 향에 망고, 구아바 등 열대 과일의 뉘앙스를 불어넣은 ‘아드벡 트라이 반 19년 배치 5(Ardbeg Traigh Bhan 19 Years Old)’, 소테른 와인 캐스크에서 숙성해 달콤하고 섬세한 풍미를 더한 ‘아드벡 앤솔로지: 하피스 테일 13년(Ardbeg Anthology: The Harpy’s Tale 13 Years Old)’, 아드벡 설립 이래 최초로 정화기 없이 증류를 시도한 ‘아드벡 헤비 베이퍼스(Ardbeg Heavy Vapours)’ 등 2023년 한 해 동안 아드벡이 소개한 한정판 위스키의 경우 모두 출시 10분 만에 완판을 기록하며 회원들의 뜨거운 팬심을 입증한 바 있다. 현재 아드벡 증류소 책임자인 미키 헤즈(Mickey Heads)가 이끌고 있는 아드벡 커미티는 아드벡 공식 홈페이지(ardbeg.com)에서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왼쪽부터) 아드벡 헤비 베이퍼스, 아드벡 비자르비큐, 아드벡 앤솔로지: 하피스 테일 13년, 아드벡 트라이 반 19년 배치 5.

(왼쪽부터) 아드벡 헤비 베이퍼스, 아드벡 비자르비큐, 아드벡 앤솔로지: 하피스 테일 13년, 아드벡 트라이 반 19년 배치 5.

Credit

  • EDITOR 오정훈
  • WRITER 강보라
  • PHOTO ARDB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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