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아미리의 현재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거침없는 추진력 그리고 선한 마음가짐. 마이크 아미리는 이 재료들로 ‘아미리’라는 성을 쌓아 올리고 있다. 요란스럽지 않게, 아주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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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한국 방문이다. 이미 홍콩과 상하이에 들렀고, 다음은 일본으로 간다고 들었다.
요즘 팀원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시아 마켓이다. 새로운 의견과 문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아시아 지역을 몇 곳 돌아다니고 있다. 한창 바빠지기 전에.
홍콩은 어땠나.
홍콩에는 좋은 갤러리가 참 많다. 바쁜 일정 중에도 틈틈이 잘 쉬었고 잊지 못할 영감도 많이 얻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일정도 기대하고 있다. 내일은 인사동 같은 동네를 정처 없이 걸어볼까 생각 중이다. 아, 저녁에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기로 했다. 스타일리스트, 디자이너, 에디터, 아티스트…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들 말이다.
사람을 좋아하나 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상호작용을 좋아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어울릴 때 생기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좋다. 아미리를 커뮤니티처럼 만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와 내 브랜드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청중’들과 함께 꿈과 용기, 믿음, 건강한 태도를 나누고 싶어서.
청중?
아미리의 팬에게 붙인 나만의 애칭 같은 거다. 그들은 가장 현재적인 문화를 향유하며, 아름다움의 가치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반짝이는 것을, 진짜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 그런 사람들. 청중들이 나의 행보를 지켜보는 만큼 나 또한 그들을 예의 주시한다. 이들의 문화를 몸과 마음속 깊이 익히려고. 굉장히 건강한 관계가 아닌가?
어릴 적엔 래퍼였다. 한때 드렁큰 타이거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어떻게 본인의 이름을 내건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게 됐나.
래퍼 친구들에게 옷을 만들어주던 것이 아미리의 시작이었다. 그땐 재킷이나 데님 팬츠 같은 아이템을 주로 만들었다. 해질 대로 해진 디스트로이드 스키니 진과 기본적인 실루엣의 레더 재킷. 그게 입소문을 탔는지 커스텀 의뢰가 계속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다. 빈티지 재킷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옷을 만들던 아미리가 한 단계씩 성장해 벌써 이렇게 커졌다. 어느덧 파리 패션 위크에서 쇼를 하고, 넥스트 럭셔리 패션 하우스로 주목받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영화 같은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당신을 동경하는 이들이 많다. 당신에게 좋은 영향력을 얻는 사람들도 많고. 명언 제조기 아닌가.
인스타그램에 명언 같은 글귀를 올리기 시작한 건 순전히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지만, 인생을 어떻게 가치 있게 살아야 할지 늘 고민해왔다. 물론 지금도 그런 고민을 한다. 올바르고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살면 좋은 점이 참 많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스스로 동기부여하려고 올린 다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특히 아미리가 커지면서는 더더욱. 이제는 열심히,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청중’들의 뜨거운 에너지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준 걸 다시 돌려받고 있는 기분이다.
요즘은 어떤 삶의 태도가 멋있어 보이나.
진취적인 것. 실패해도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서 ‘킵 고잉’하는 자세.
당신의 성공은 언뜻 아메리칸 드림처럼도 보인다. 힘들었던 순간도 분명 있었을 텐데 어떻게 ‘킵 고잉’했는지 궁금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눈앞이 캄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세상에 없던 걸 창조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 매 순간 애써야 하는 직업이니까. 이제 막 브랜드를 시작하던 당시에는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는데,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을 땐 뭐가 됐든 몸부터 움직였다.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가장 필요한 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거기에 긍정적인 생각까지 더해지면 더 좋고. 실패라는 게 막상 경험해보면 별일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거다.


아미리의 초기작인 디스트로이드 데님 진과 레귤러핏 레더 재킷. 지금까지도 아미리의 시그니처다.
작년 6월, 2024 S/S 쇼 피날레 때 당신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가족들 손을 잡고 쇼장을 뛰쳐나가는 영상이 내 휴대폰에 아직까지 저장되어 있다. 부러운 모습이라 차마 못 지우겠더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가족이다. 아미리만큼이나. 아니, 이제는 아미리와 가족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게 무척 힘든 일이 됐다. 아미리가 결과물이라면 가족은 아미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료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인격적으로, 디렉터로, 브랜드 대표로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거든.
가족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아내와는 어떻게 만났나.
우연히 알게 된 친구였다. 밤늦도록 술 마시고 수다도 떠는 그런 친구. 지금보다 훨씬 젊고 건강하고 어릴 때의 이야기다.(웃음) 우리 둘 다 술자리는 좋아했지만, 어울리지 않게 술은 잘 마시지 못해서 서로 챙겨주면서 그렇게 가까워졌다. 좀 뻔한가?
원래 사랑은 뻔한 거 아닌가? 그것보다 갑자기 당신의 웨딩 룩이 궁금해졌다.
클래식했다. 노인이 되어 웨딩 사진을 꺼내 봤을 때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옷을 입고 싶었다.
아미리의 옷처럼?
맞다. ‘타임리스’. 아미리의 옷을 디자인할 때 항상 놓치지 않으려 신경 쓰는 부분이다.
초기 아미리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뭔가.
당연히 음악과 뮤지션들. 내게는 그들이 히어로다. 나의 본질과 뿌리는 여전히 음악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한없이 빛나는 그들을 동경하며 자랐고, 그들은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줬다. 그 덕에 나는 지금까지 그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 있다.
인생의 히어로를 한 명만 꼽자면?
엘비스 프레슬리. 스타일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도전정신과 영화적인 일생까지 전부 사랑한다.
젊은 디자이너들을 서포트하는 데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안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동안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운이 좋았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수많은 이들에게 받은 도움을 누군가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어 아미리 프라이즈를 만들었다. 불안한 시기에는 아주 사소한 조언이나 지지마저 큰 힘이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아미리 프라이즈의 파이널리스트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나.
브랜드를 론칭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젊은 디자이너들 중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디자이너를 추려낸다. 이때 색깔이라는 건 단순히 옷일 수도 있고, 브랜드일 수도 있고, 사람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거기에 상업성도 꽤 중요하게 본다. 패션은 예술의 한 종류이기도 하지만 결국 비즈니스니까. 그 둘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줄타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가는 것 같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가 있나?
한국 시장이 커지면서 재능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 또한 수면 위로 많이 올라왔다. 지용킴, 굼허, PAF… 다들 멋있는 디자이너지만, 한 명만 꼽자면 준태킴을 말하고 싶다. 그는 현대적인 복식을 아주 교묘하게 비튼다. 매스큘린한 보머 재킷에 페미닌한 요소를 더한다든지, 일반적이지 않은 커팅을 적용하는 식으로. 그런 포인트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아미리의 색채가 최근 몇 년 새 조금씩 바뀌었다. 혹시 파리 패션 위크의 영향인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랫동안 우리의 시그너처였던 핏한 스키니 진과 딱 붙는 레더 재킷이 트렌드에서 멀어진 탓도 있지만. 나는 아미리를 럭셔리 패션 하우스로 만들고 싶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더 큰 시장에 나와보니 한계가 피부로 느껴지더라. 그래서 기존의 스켈레톤 디테일이나 데님 진, 스테이트먼트 재킷은 레디 투 웨어로 유지하면서, 컬렉션으로 보여줄 수 있는 우리의 색깔을 고민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아미리다. 유럽에 정착한 캘리포니아 스케이터쯤 된다고 해두자.(웃음)

마이크 아미리는 이런 명언을 자주 업로드한다. 손글씨는 귀해서인지 유독 반응이 뜨겁다.

볼드한 비즈 장식과 윤기 흐르는 새틴, 글리터리한 트위드를 이토록 머스큘린하게 풀어낼 수 있는 건 마이크만이 가진 능력이다.
수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절대 잊지 않으려는 기조나 초심이 있나.
현대적인 럭셔리, 아미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기조. 디자이너로서의 초심은 늘 투명하고 솔직한 것.
아미리를 함께 키워나가는 훌륭한 조력자들이 곁에 많은 것 같다. 당신은 어떤 보스인가.
같은 레벨에 서 있으려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 단순히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스태프가 스스로 아미리를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그런 보스. 그래서 나는 서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공유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야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도 쉬우니까.
일을 하지 않을 때의 모습은 어떤가. 당신이 안락함을 느끼는 장소와 순간이 궁금하다.
완전한 휴식을 즐긴다. 일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가장 아끼는 장소는 아무래도 캘리포니아의 해변이다. 아미리가 시작된 곳이자 가장 커다란 영감이 되어주는 곳. 그런데 최근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파리 패션 위크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가본 곳인데, 라 포메라예라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이다. 쇼가 끝나면 가족들과 이곳에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론칭 10년, 아미리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피스 세 가지를 꼽아본다면?
클래식한 핏의 레더 재킷, 잔뜩 해진 스키니 진, 이 두 가지는 아미리의 오래된 시그너처다. 나머지 하나는 부드러운 캐시미어 니트웨어들.
그렇다면 아미리를 설명하는 키워드 세 개는?
캘리포니아, 현대성, 럭셔리.
언젠가 한국에서도 아미리 스토어를 기대할 수 있을까?
2년 안에 만날 수 있다. 장담한다.

그의 컬렉션은 21S/S를 기점으로 점점 변화하고 있다. 핏은 여유로워지고, 페미닌한 디테일도 과감하게 사용한다.
Credit
- PHOTOGRAPHER 표영민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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