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part 1. 유태오의 호르몬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이유

유태오의 눈빛에서 우리가 늘 궁금해하던 것의 정체가 멜랑콜리였다는 걸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직접 만나, 태오 안에서 멜랑콜리가 자리 잡은 오랜 시간에 대해 물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4.22
파유 셔츠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파유 셔츠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그랑 드 뿌드르 턱시도 재킷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그랑 드 뿌드르 턱시도 재킷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레오퍼드 실크 태피터 트렌치코트, 그랑 드 뿌드르 팬츠, 페이턴트 레더 부츠, 실크 모슬린 플리츠 스카프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레오퍼드 실크 태피터 트렌치코트, 그랑 드 뿌드르 팬츠, 페이턴트 레더 부츠, 실크 모슬린 플리츠 스카프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몸이 엄청 커졌어요. 운동을 정말 많이 했나 봐요.
맞아요. 많이 커졌죠.
운동하는 사람들이 ‘빵이 크다’라고 하지요. 몸통의 두께가 엄청나게 두꺼워요.
이유가 있어요. 제가 2022년도 후반기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이라는 드라마를 찍었어요. 아직 공개는 안 됐지만, 그때 그 작품에서 연기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힘들었나 봐요. 작품이 끝나고 검사를 해보니까 남성호르몬 수치가 평균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더라고요. 이걸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6개월 동안 호르몬 치료를 받았는데, 몸이 커지더라고요. 이제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예전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덩치를 줄여야겠죠?
그런데 이렇게 두꺼운 것도 멋있어요.
좋은 점도 있어요. 제가 넷플릭스의 <더 리크루트> 시즌 2를 찍고 있는데, 몸을 좀 만들었더니 다행히 덩치 큰 외국 배우들 옆에 있어도 기가 좀 덜 죽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덩치를 키웠는데도 주인공인 노아 센티네오가 워낙 키도 크도 덩치도 커서 옆에 있으면 그냥 보통 사이즈로 보여요.(웃음)
어떤 배역이었고, 얼마나 몰입했기에 호르몬 수치가 변했는지 궁금해요.
대략 얘기하자면, 살해당하고 누명까지 쓴 아버지 때문에 정신병원까지 들락거리다 성장해서 형사가 되는 역할을 맡았어요. 어린 시절 주인공의 아버지가 한 청소년에게 살해당해요. 그런데 이 청소년의 변호사가 주인공 아버지가 청소년의 여동생을 성추행 하려 해서 정당방위로 살해했다는 논거를 들고 나오죠. 살인사건 피해자에서 죽어 마땅한 성추행 가해범이 되어버린 거예요. 주인공과 주인공의 남동생이 주요 인물인데, 둘 다 제정신일 리가 없는 캐릭터들이죠.
메소드 연기를 제대로 배웠잖아요. 그런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선 메소드 연기가 오해받는 면이 있어서 언제 시간이 되면 그 차이에 대해서도 좀 얘기하고 싶어요. 전 뉴욕에 있는 리 스트라스버그 시어터 앤 필름 인스티튜트에서 2년 반을 공부했어요. 미국 배우 출신의 디렉터인 리 스트라스버그는 웹스터 사전에 나온 메소드 연기의 정의를 내린 사람이에요. 제대로 된 사람에게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있죠. 문제는 메소드 연기를 준비하는 제 관념이 <패스트 라이브즈>를 찍으면서 좀 달라졌다는 거예요. 이 영화가 인연에 관한 영화잖아요. 서운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흘러가도록 내버려둬야 하는 이별의 마무리를 연기하기 위해 ‘인연’이라는 철학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정말 많은 공부를 했어요. 결국 그건 ‘믿음’과 관련된 거라고 결론지었죠. 정말 그 인연의 철학을 믿기 시작했고, 인연으로 이어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생을 멀티버스로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인연이라는 개념을 저와 만난 캐릭터들에게 대입시키기 시작했더니, 이번 생에 만난 역할은 곧 전생에 내가 실제로 살았던 삶이고 다른 유니버스에 실존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연기 버전이군요.
맞아요. 비슷한 사고방식이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연기라는 행위를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하는 연기를 다른 멀티버스에 살아 있는 누군가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행위로 생각하기 시작한 거예요. 어쩌면 메소드 연기보다 더한 이 ‘영매 연기’에 대한 믿음이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시작되어서 <연애대전>을 거쳐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에서 절정에 이르렀어요. 저도 역할에 그렇게 심각하게 빠져보기는 그 드라마가 처음이었어요. 하루는 니키(유태오의 배우자 니키 리)가 저한테 “체취가 변했다”라고 하더라고요.
정서에 심각한 영향을 줘서 호르몬이 균형을 잃었을 정도면 체취가 변했을 수도 있죠.
그러니까요. 제 몸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화학적 상호작용의 패턴이 엉망이 되었던 거죠. 아마 이걸 과학적으로 검증하거나 증명할 수는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을 연기할 때 그런 일이 벌어졌던 건 확실해요.
자신의 연기가 어떤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배우라는 행위를 거의 샤먼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그중에도 가짜 영매가 있지요. 그냥 점 봐주는 척하고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해주는 샤먼들이 있어요. 그런 연기가 바로 매너리즘에 빠진 연기라면 전 ‘릴리전’이 아닌 종교, 스피리추얼리즘(spiritualism)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 그냥 개똥 철학일 수도 있지요. 나중에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아요.
샤먼이라고까지 할 정도니까,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해성의 마음에 대해 묻고 싶어요. 해성이는 무슨 마음으로 뉴욕에 갔을까요? 친구들한테 거짓말까지 하고요.
그건 일종의 ‘하얀 거짓말’이었죠. 친구들은 솔직히 다 알고 있었을 거예요. 전 해성이가 ‘클로저’를 위해 뉴욕에 간다고 느꼈어요. 노라와 해성의 사이는 이렇게 정리하자, 뭐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과거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감정의 정체를 몰랐던 감정들의 이름을 서로 묻고 정리하자는 마음이요.
유수의 해외 매체들이 엄청난 찬사를 쏟아냈는데요. 혹시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이 있어요?
영화가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로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을 때 저도 이래저래 미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여기저기 얼굴을 비쳤어요. 그런 걸 ‘오스카 시즌’이라고 해요. 9~10월 사이에 연기자와 감독 들이 열심이 돌아다니면서 자신들의 영화를 알리는 기간이죠. 그런 곳에 다니면서 많은 분을 만났는데, 보통의 사람들, 영화 관계자가 아닌 정말 보통의 사람들이 저희 영화를 정말 감명 깊게 봤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예를 들면 아카데미 시상식 때는 경찰처럼 제복을 입은 보안 요원 중 한 분이 “며칠 전에 보고 엉엉 울었다”고 얘기해주시기도 했고, 시상식 리셉션장에서 만난 서버분에게선 “함께한 지 30년 된 배우자와 요즘 사이가 좀 멀어졌는데, 영화를 보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는 말도 들었고요. 전 그런 말들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우리가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에 작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한참 동안 자기 얘기를 한 사람도 있었어요. 어쩌면 이 영화가 제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우리 세대의 <중경삼림>이나 <비포 선라이즈> 같은 영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했으니까요.
방금 세대 얘기를 해서 그런데요. 저희 때(에디터 역시 1980년대생이다)의 미라맥스가 지금 세대들에게 <패스트 라이브즈>를 제작한 제작사 A24인 것도 같아요. 뭐랄까요. 밀레니얼들의 미라맥스라고나 할까요?
저 역시 미라맥스 작품들을 좋아했어요.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이나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 등의 영화들이요. 미라맥스뿐만 아니라 디멘션 필름(Dimension Film)에서 나온 작품들도 좋아했고요. 모든 종류의 영화를 다 좋아했죠. 그런데 사실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는 점에서는 A24가 미라맥스와 비슷하지만, A24가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데 좀 더 공격적인 것 같아요. 그 시절의 미라맥스는 첫 영화를 잘 만든 감독들을 골라서 차기작을 서포팅했다면, A24는 셀린 송 감독처럼 데뷔부터 밀어주기도 하니까요.
새틴 셔츠, 파유 하이웨이스트 팬츠, 페이턴트 레더 부츠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새틴 셔츠, 파유 하이웨이스트 팬츠, 페이턴트 레더 부츠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레오퍼드 실크 태피터 셔츠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레오퍼드 실크 태피터 셔츠 가격 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Credit

  • PHOTOGRAPHER 장덕화
  • STYLIST 임혜림
  • HAIR 김건형
  • MAKEUP 엄지
  • SET STYLIST 유여정
  • ASSISTANT 송정현
  • 신동주
  • ART DESIGNER 김대섭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