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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니커즈 문화'는 이미 그 생명을 다한 건 아닐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한정판’, 매번 똑같은 컬러, 찾아보기 힘든 기발한 재미… 스니커즈 문화는 과잉 마케팅의 끝에 스스로 소진된 건 아닐까?

프로필 by 오성윤 2024.05.11
여기, 2024년의 스니커즈 애호가라면 그리 낯설게 들리지 않을 시나리오가 있다. 당신은 한 주간의 한정판 출시 일정을 샅샅이 조사한 끝에 마침내 살 만한 물건을 발견한다. 구매를 위해 아마도 예정된 발매 시각의 10분, 혹은 그보다 좀 더 미리 앱에 로그인을 한다. 카운트다운을 해나가면서, 당신의 아드레날린 수치도 서서히 상승한다. 비로소 타이머의 숫자가 ‘0’이 되지만, 안타깝게도 신발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멍청이처럼 계속 대기해본다. 그러나 2분이 지나자 곧 매진 표시가 뜬다. 당신은 운이 나빴다고 자책하며 슬픈 마음으로 로그아웃을 한다. 같은 날 몇 시간 후, 당신은 소셜미디어에서 항상 보이는 리셀러들이 당신이 사고 싶었던 바로 그 신발을 10켤레, 15켤레씩 늘어놓고 마치 귀여운 강아지들인 양 그들에 둘러싸여 즐겁게 들고 노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제 그 신발을 가지려면 당신은 원래 가격의 두 배, 어떤 때는 세 배까지도 지불해야 한다.
신상품 스니커즈를 출시하면 팬들이 경쟁적으로 구매하는 ‘드롭 앤 캅(drop-and-cop)’ 문화의 역사는 30년 넘게 발전과 개선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종종 의도적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브랜드들이 생기면서, 이 문화는 언제부턴가 문화라기보다는 AI와 봇(자동 입력 프로그램), 그리고 냉혹한 자본주의를 동력 삼아 순조롭게 굴러가는 기계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느낌이다. 업계는 이제 조금씩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진성 스니커즈 팬들은 이제 이 판에서 ‘업자’들이 휩쓸고 난 뒤에 남는 찌꺼기로만 만족해야 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리셀러들마저도 상상력이 고갈된 듯한 업계를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스니커즈 문화는 마침내 과잉 마케팅 끝에 스스로 소진된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는 쉽게 뭔가를 단정하고 믿어버리는 행태를 최대한 경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때 유용한 것은 역사를 살피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늘 현재의 위기를 역대 최악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지금 여기가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때가 좋았는데’라고 착각하는, 이른바 ‘라떼’ 효과다. 스니커즈의 경우도, 대충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스니커즈 문화가 끝났다고 터무니없이 과장했던 때가 여러 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초창기 스니커즈 문화의 중심에는 커뮤니티와 동지애가 있었다. 신발을 시판 가격으로 구매(copping)하고, 만약 재판매를 할 때에는 다른 수집가들, 혹은 가까운 가게에 직접 판매해 특별한 유대감과 지역민으로서의 동질감을 키웠다. 초창기 이런 분위기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달라졌다.
2012년, 보통의 평범한 스니커즈 수집가들이 모여 과장된 마케팅 문화가 단지 지나가는 유행에 불과하다고 토론한 일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OG 나이키 운동화를 발매한 1985년부터 이 판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당시의 변화에 분노했으나, 이런 분위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뜻이다. 당시 큰 스니커즈 커뮤니티였던 ‘나이키 토크 닷컴(niketalk.com)’의 게시판에는 ‘Sneaker Collecting is a Fad… and Dead(스니커즈 수집은 찰나의 유행이며... 이제는 끝났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그 아래 열띤 논의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소극적이나마 동의하지 않았다. 다만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거의 모두가 동조했다.
한 사용자는 “13년 동안 스니커즈를 수집해온 사람으로서 이 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니커즈 문화는 이제 형편없어졌다. 갖고 싶은 운동화를 사려면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제는 망했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인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두고 보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다른 사용자는 “당분간은 쉬엄쉬엄 할 생각”이라고 적었다. “돈을 모아두었다가 유행 따라 온 사람들이 떠나면 그때 다시 수집을 시작하겠다.”
많은 사람이 나이키 같은 대형 브랜드들이 고의적으로 생산량을 줄여 수요가 폭발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고 지적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가장 분노하는 대상은 업계가 아닌 다른 쪽이다. 또 다른 사용자의 반응이다. “유행 따라 사는 사람들과 리셀러들 때문에 죽겠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신발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걸로 돈을 벌려고 하거나 희소성 높은 신발을 신은 모습을 과시하고 싶어 할 뿐이다.”
애초에 스니커즈 문화를 죽이기 시작한 건 봇이라고 볼 수 있다. 봇은 다양한 방식으로 쓰인다. 여기서 핵심은 봇이 짧은 시간 내에 사람의 작업을 따라 하도록 리셀러들이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봇은 기존 상품이 재입고되거나 신상품이 공개되는 순간 알림을 보내, 사람들이 수동으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다 입력하기도 전에 온라인 매대를 싹쓸이할 수 있다. 이런 운동화들 대부분이 리셀 사이트에 엄청나게 부풀려진 가격으로 올라가면, 초기 스니커즈 수집가들 대다수는 가격 때문에 경쟁을 포기한다. 결국 스탁엑스(StockX) 같은 업체들이 개인 수준에서 하던 리셀을 대규모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기 시작했고, 스니커즈 문화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OG(오리지널) 스니커즈 문화를 죽인 건 봇이지만, 이 문화에 감돌게 된 전반적인 불쾌감은 브랜드들의 과잉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한정판과 새 컬래버레이션이 너무나 흔해져서, 신상을 사는 기쁨은 그게 아무리 진심이었다고 해도 몇 시간이면 사그라들었다. 예전에는 개인 스니커즈 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리셀러들도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니커즈 마니아이면서 2019년부터 유튜브에서 5만 명 이상의 구독자들에게 자기 생각을 꾸준히 말해온 ‘히갓킥즈(hegotkickz)’는 “그건 분명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지적한 문제점은 다른 데에 있었다. “지금 당장 시장에 영향을 주는 건 (그저 단순히) 컬러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계속 더 많은 컬러를 요구하지만, 업체들은 만들지 않고 있죠.”
2023년 초에 나온 <비즈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스니커즈 판매량은 감소했다. 시장이 쇠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형 브랜드들의 인기는 여전했지만, 계속 한정판을 출시하는 방식은 (사고 싶은 색상마저 없다는 사실과 맞물려) 스니커즈 마니아들의 열정을 식히는 요인이 됐다. 그 틈으로 미즈노나 호카 같은 전에 주목받지 못하던 브랜드들의 인기가 급증하기도 했다.
대형 스니커즈 브랜드들의 방법론은 분명 소비자와 크게 어긋났다. 하지만 유행으로 스니커즈를 사는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비난을 받았다. 8년 전 ‘나이키 토크’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말이다.
2020년 1월 <ESPN>의 기사에 따르면, 나이키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망 후 그와 관련된 제품을 매대에서 신속하게 철수시켰다. NBA 전설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코비가 사망한 후 24시간도 되기 전에 스니커즈를 비롯해 그와 관련한 온갖 굿즈와 기념품 가격이 리셀 사이트에서 두세 배나 뛰었다.
지금 스니커즈 문화는 의심의 여지 없이 권력의 변화를 겪고 있다. 누군가는 진화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스니커즈 문화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더 사라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점점 애정보다 이윤을 우선시하게 되는 것, 이런 진화에는 리셋이 필요하다.
히갓킥즈는 순수주의자다. “어릴 때 스니커즈에 푹 빠졌지만 돈이 없어 사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밀리터리 블루 조던 4를 사게 됐죠. 그때의 기분이 아직도 기억나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문화가 진짜로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는 바뀔 필요가 있다고 봐요. 돈이 아니라, 신발을 사랑했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죠. 이 신발들은 예술 작품이에요. 사람들이 즐겨야 하는 작품이요.”

Credit

  • EDITOR ANDREW NAGY
  • PHOTOGRAPHER EFRAIM EVIDOR
  • TRANSLATOR 박수진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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