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우리가 목격한 11개의 장면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을 찾은 5명의 미술 전문가들이 하루에 15km를 도보로 이동하며 힘들게 그러나 종종 벅차게 목격한 사실들을 11개의 키워드로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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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공간에서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인종차별의 순간을 형상화한 아이작 충와이의 작품 ‘Falling Reversly(거꾸로 쓰러지기)’. ©ANDREA AVEZZÙ
“본전시? 3시간이면 충분해.” 함께 숙소를 쓰고 있는 이가 모닝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그녀는 중국 상하이의 주요 미술관에서 컬렉션을 담당하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이번에는 왓츠앱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첫날은 자르디니 독일관, 호주관, 프랑스관 오픈런으로 찍고, 점심 먹고 문 닫는 시간까지 아르세날레의 본전시를 보면 될 거야.” 그녀는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미술관 큐레이터인데, 남은 이틀 동안 본전시보다 각 국가관을 더 찬찬히 보기로 했다면서 중간에 동선이 겹치는 곳에서 커피나 한잔하자며 일정을 공유했다. 보통 본전시를 보는 데 하루를 할애하곤 했는데 말이다. 슬슬 의문이 든다. “이번 본전시는 별로인가?”
베니스 비엔날레는 매회 선정된 예술감독이 직접 큐레이팅한 본전시와 각 국가관의 큐레이터가 독립적으로 기획한 국가관 두 곳으로 크게 나뉜다. 본전시는 자르디니의 센트럴 파빌리언과 아르세날레에서 열리고, 국가관 전시는 자르디니 안을 선점한 선점국들, 즉 미국, 독일, 벨기에, 영국 등 30개 국가의 파빌리언과 자르디니 바깥에 위치한 50여 개의 국가관에서 열린다. 국가관 큐레이터가 그해의 본전시 주제를 따르느냐 아니냐는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그런데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는 도보로 20여 분 이상 떨어져 있고, 각 국가관들은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 그리고 베니스 본섬 곳곳에 흩어져 있어 어지간한 동선을 짜지 않고는 중요한 전시들을 훑기가 힘들다. 심지어 이건 공식 병행 전시(예를 들면 이 페이지의 제임스 리 바이어스와 이승택의 전시가 공식 병행 전시다)는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비엔날레를 무료로 볼 수 있는 프리뷰 티켓은 4일간 쓸 수 있는데 나는 패널로 참여한 행사와 일정상 이틀을 날려서 전시를 볼 수 있는 날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략이 필요했다.
그녀들의 조언에 따라 아르세날레에서 하루 두 번 열리는 아이작 충와이(1990년생, Isaac Chong Wai)의 퍼포먼스를 보는 걸 시작으로, 본전시장인 아르세날레를 격파하는 동선을 짰다. 홍콩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아이작 충와이는 팬데믹 기간 본인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인이 공공공간에서 무차별적인 인종차별 공격의 표적이 된 사건을 ‘Falling Reversly(거꾸로 쓰러지기)’라는 퍼포먼스와 영상 작품으로 풀어냈다. 지난 2021년 팬데믹 때 미국의 한 횡단보도에서 가만히 서 있던 아시아 여성이 지나가는 백인 남성으로부터 허리가 90도로 꺾이는 무자비한 타격으로 고꾸라졌던 충격적인 영상을 우리는 기억한다. 아시아계 디아스포라 퍼포머들은 떨어지는 서로의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는, 반복적인 군무로 의식을 치르듯 폭력의 집단적 기억을 공유한다. 눕혀진 몸은 제의를 치르듯 다시 받들어 높이 올려지고, 서로의 몸은 떨어지는 몸이 기댈 곳이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지렛대가 되어준다. 여성과 남성의 몸 그 중간계의 보디라인을 가진 아이작 충와이의 아름다운 퍼포먼스와 비디오 작품으로 상큼하게 아르세날레 투어를 시작했다.
그녀들의 말대로, 아르세날레 본전시를 보는 데 딱 3시간이 걸렸다. 새로운 작가들과 좋은 작품을 알게 된 건 물론 즐거웠다. 하지만 ‘foreigner’라는 단어 자체가 생성하는 또 다른 위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최초의 첫 남미 출신 예술감독이자 퀴어임을 전면에 드러내고 활동하는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예술감독의 개인적 좌표를 생각하며 좀 더 친절한 마음으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두 여성 작가의 프로필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했거나 정신병 이력이 있음을 연달아 굳이 언급한 걸 봤을 때, 그 불편함은 극에 달했다. 이 무슨 고통 배틀인가. 한국의 한 원로 큐레이터는 또 다른 서구 남성 기관장의 전시일 뿐이라고 거칠게 결론짓기도 했다. 남미나 북미나, 뭐 우리에게 그렇게 다르냐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쌉싸름한 감정에 커피 대신 아이스크림을 들고, 두 동료를 만났다. 이번에는 아침과 다른 동선 제안이 나왔다. “독일관, 호주관 줄 더 길어졌더라. 여기 놓쳐도 이집트, 폴란드관은 꼭 봐.” “미국관, 프랑스관도 나쁘진 않았는데 난 오히려 대만관, 오스트리아관이 더 좋았어.” 결국 본전시를 3시간 만에 주파하고 남은 국가관과 병행 전시들을 훑고 나자 하나의 의문이 남았다. 비엔날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온오프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특히 큰 마이크를 지닌 강대국의 소식은 시차 없이 공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유의미한 비엔날레의 방식은 무엇일까? 마침 며칠 전 패널로 참가한 라운드 테이블의 주제는 “비엔날레는 풍화하는가?”(발제: 임수영)였다. 광주 비엔날레 30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전시의 부대 행사였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그렇지, 이 모든 것이 풍화의 한 과정이겠지.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우리가 비엔날레를 사랑하는 이유지. “아 그런데 올해, 왜 이렇게 전시 보는 게 좀 불편하지?” 하고 얘기를 하다 보니, 올해 전시장 동선과 간략한 작품 소개가 담긴 소책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지도가 필요했어! 그러다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지도 없이 보는 게 나을까, 아닐까?
조앤킴(독립 큐레이터)

자르디니 센트럴 파빌리언에서 열린 본전시 작가로 선정된 김윤신 작가는 프리뷰 기간 내 멋진 재킷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국내외 프레스를 상대하며 눈길을 끌었다. ‘전기톱의 조각가’로 불리는 작가의 터프한 매력이 관중마저 사로잡았다. ©박세회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자르디니 한국관에 전시된 <구정아-오도라마 시티>의 전시 전경. 올해 한국관은 논픽션과의 협업으로 냄새와 향기로 공간을 채웠다. ©박세회
아르세날레 본전시 끝자락쯤, 거대한 전시관 하나가 온통 회화와 조각 작품으로 차 있는 ‘Italians Everywhere’라는 제목의 방이 있었다. 이탈리아인은 어디에나 있다. 아마 영어권 사용자라면 들어본 말일 것이다. 미국인 친구가 완벽하게 똑같은 말을 하는 걸 나 역시 들어본 적이 있다. 비하적인 표현으로 쓰이곤 하는 저 문장을 고스란히 가져와 한 관의 제목으로 삼은 것은 반이민정서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이 나라의 상황에 살짝 던져보는 메시지다. ‘이민자들을 내쫓지 마세요. 우리도 한때는 이민자였어요’라는 상냥한 제스처. 더군다나 바로 그 옆에는 지중해를 건너 이주한 사람들이 유럽 국가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정착했는지를 직접 지도에 그리는 모습을 찍은 영상 작업과 이주 루트를 간략한 선으로 평면에 그려 전시한 부크라 칼릴리의 ‘Constellations’(2011)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었다. 동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밀라노로 갔다가 경찰에게 잡혀 난민캠프에 수용된 후 겨우 탈출해 마르세유에 정착한 이주민의 인터뷰 영상과, 그 루트를 파란 배경에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찍은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그냥 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다. 이 작품을 보고 난 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았던 이탈리아인 아레초 씨의 조각, 브라질의 상파울로에서 찍은 아탈리아인 예술가 리나 보 바르디 씨의 사진을 보면 논리보다 먼저 가슴이 설득당하지 않을까? 이번 비엔날레의 거의 모든 전시관이 이런 명확한 흐름으로 배치되어 일각에서는 ‘명확하게 해석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으나, 일단 메시지를 전달해 마음을 움직이려 했다면 효과적인 방식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탈리아인이 어디에나 있다는 얘기를 꺼낸 이유는 한국인도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이다. 2024년에 열린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그야말로 한국인 천지였는데, 그 이유는 한국관 역시 30주년이라는 큰 기념의 해를 맞아서다. 비엔날레 60회와 한국관 30주년이라는 그랜드크로스 같은 마법에 이끌려 수많은 한국 사람이 베니스를 찾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측에서도 특별히 대규모의 미술 기자단을 제비뽑기로 선정해 베니스 출장을 지원했다. 처음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은 사람들은 자르디니에서 세계 정치의 지정학을 읽어내며 감탄하곤 한다. 나폴레옹 2세 시대에 만들어져 ‘나폴레옹 정원(Giardini Napoleonici)’으로 불리던 현재의 ‘비엔날레 정원(Giardini della Biennale)’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 한 축이 약 200m 정도 되는 삼각형 모양의 정원이 전부다. 각국의 아트 대표를 선발해 출전시키고 이들 중 선별해 상을 수상하는 아트 올림픽 성격을 지닌 비엔날레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출전한 아트 선진국들이 자르디니 안에 있는 요지에 자신들의 파빌리언을 선점했다.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 센트럴 파빌리언 쪽으로 직진하다 보면 벨기에·네덜란드·스페인의 파빌리언들을 만날 수 있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러시아·독일·영국·프랑스·미국의 파빌리언을 볼 수 있다. 대략 센트럴 파빌리언이 생긴 후 벨기에, 독일, 영국, 프랑스, 헝가리 등의 순서로 문을 열었다. 참고로 미국이 자르디니 안에 파빌리언을 세운 건 1930년이고, 일본은 1956년이며, 우리나라는 1995년에 서른 번째 파빌리언으로 세워지며 자르디니 공원의 문을 걸어 잠갔다. 사실 지을 공간이 없었던 공원에 한국과 북한의 공동 파빌리언을 세운다는 정치적 명분을 달아 얻어낸 자리다. 지금 한국관 자리는 원래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에 화장실이 있던 자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어렵게 얻어낸 예술 선진국 자리를 성대하게 축하하지 않을 리가 없었고, 개관 첫 회 작가인 곽훈부터 최근 작가인 이완, 코디최까지 36명(팀 포함)이 30주년 특별전시인 <모든 섬은 산이다>의 오프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니 베니스에서 한국인은 정말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어디에나 있었다. 본전시관 작가로 비엔날레를 찾은 90세의 김윤신 작가는 검은색 선글라스에 흰색 재킷을 입은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1974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후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해왔는데, 50년이 지난 이런 크고 중요한 전시에 초대되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조각과 판화를 배우고 귀국해 교편을 잡은 김 작가는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이후 40년간 중남미에서 활동했다. 우리가 다른 지면에서 다룬 이강승 작가 역시 서울에서 출생했으나 칼아츠를 졸업한 후 LA를 기반으로 미국에서 먼저 강의와 전시를 주로 이어나갔다. 자르디니 바로 인근에서 전시 중인 신성희 작가는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했고, 이성자 화백 역시 전성기를 파리에서 말년은 바르 주 투레트에서 보냈다. 종종 도시의 발달을 얘기할 때 ‘다른 문화가 격돌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새로운 것들이 발생한다’는 얘기를 한다. 예를 들면 차이나타운에서, 일본인 마을에서, 코리아타운에서 낯선 것들이 선주민의 문화와 섞이고 편집되어 묘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든다. 외주인이 되어본 예술가들이 유독 빛나는 이유는 이주를 통해 이방인이 되고, 외부인이 되는 경험에서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종종 이방인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
박세회(<에스콰이어> 피처디렉터)

영상과 함께 다양한 조형물이 함께 전시된 이집트 파빌리언 와엘 샤키의 <Drama 1882>(2024) 역시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곳 중 하나였다.

파블로 델라노가 구성한 ‘옛 식민지 박물과’의 전시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스페어 셈러 갤러리, 리슨 갤러리, 갤러리아 리아 루마 제공
가만히 생각해보자.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티치아노… 르네상스 시대 그림 속에서 흑인을 본 기억이 있는가? 뚜렷한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그 시대에 유럽에?”라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랬다. 가나계 이탤리언 감독 프레드 쿠워르누(Fred Kuwornu)의 다큐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르네상스 유럽의 흑인 아프리카인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자르디니 본관을 거닐며 당도한 작은 상영관에서 마침 54분짜리 영상의 하이라이트가 나오고 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흑인 가수가 피렌체의 한 성당에서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라는 가사의 R&B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마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르네상스 의복을 입은 흑인들의 모습이 스쳤다. 다큐에는 벨라스케스가 20년 넘게 노예로 삼았던 아프리카계 히스패닉 화가인 후안 데 파레하(Juan de Pareja)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첫 번째 공작인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가 아프리카계 하인이 낳은 사생아라는 학계의 주장도 나온다. 감독은 미술사, 역사, 흑인 연구, 흑인 활동가, 미술 큐레이터 및 예술가, 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그림, 드로잉, 조각 및 인쇄된 책에 드러난 아프리카인과 그 후손의 역할을 탐구했다. 그야말로 ‘숨겨진 역사’를 조망하며 낡은 서구의 정경을 넘어 미술사의 지평이 확장되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앞서 발표한 야심 찬 성명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유로아메리카의 모더니즘 역사에 매우 익숙하지만, 남부의 모더니즘은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에 대한 지식은 기껏해야 각 개별 국가나 지역 전문가들에 한정되어 있는데, 저는 이들 작품을 함께 연결하고 전시해 드러낼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진정 동시대와 관련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시급히 배워야 합니다.” 그의 의도대로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에 익숙하지 않은 역사 속의 균열을 담은 작품들이 잔뜩 나열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페드로사라는 역사 선생님의 수업에서 확실성에 가득 찬 잘난 척하는 우등생이 아닌 불안정한 열등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과테말라 원주민 마야 카치켈(Maya Kaqchikel) 종족이었던 로사 엘레나 쿠루치치(Rosa Elena Curruchich)가 전통 관습, 종교 축제, 양초, 빵, 연 등 원주민 공동체의 모습을 기록한 그림들은 작은 미니어처 사이즈로 호기심을 자아냈는데, 이유는 폭력적인 과테말라 내전 기간 그림을 숨기고 운반하기에 용이할 수 있도록 만들게 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브라질 작가 달톤 파울라의 ‘Full-Body Portraits’ 시리즈는 흑인과 원주민의 탈출을 주도하고 브라질의 노예제도 반대 저항운동의 역사적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각 초상화는 올리브색 바탕에 윤곽선을 바틱처럼 렌더링하고 도색되지 않은 프라이밍 처리된 흰색 캔버스에 그려져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사진 스튜디오의 무대 구조를 연상케 한다. 총감독 페드로사의 의도는 마치 작은 섹션처럼 구성된 ‘옛 식민지 박물관(The Museum of the Old Colony)’에서 증폭되었다. 이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예술가 파블로 델라노(Pablo Delano)가 구성한 이 전시관은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미국의 비통합 영토가 된 푸에르토리코에 미국 정부가 가한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적 계획 등을 폭로한다. 미국의 대중문화와 소비문화를 조롱하는 설치작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역사적 보관된 이미지, 영상 및 설치 등으로 구성된 박물관적 전시였다.
이집트 국가관은 페드로사의 큐레이션은 아니지만 숨겨진 역사를 조망하는 데에 맥을 같이했다. 와엘 샤키(Wael Shawky)는 직접 감독, 안무, 작곡을 맡아 1879년 이집트가 제국의 영향에 맞서 일으킨 우라비 민족주의 혁명에 관한 뮤지컬 영화 <드라마 1882(Drama 1882)>를 만들었고 이 영상 상영과 설치를 함께 선보였다. 영화는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듯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무대 배경과 퍼포머, 배경음악 등이 구성 요소로 작용해 마치 하나의 움직이는 회화 같은 영상 구성이 돋보였다. 역사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아닌 주관적으로 서술된 일련의 기록이라는 전제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전시로 그 독창성과 참신함으로 이집트 파빌리언 앞에 수많은 대기줄을 생성시키기도 했다.
어느 소설에서 인상 깊이 읽은 대목이 떠올랐다. “우리의 영혼이 충분히 강하다면, 베일을 벗겨내고 그 적나라하고 끔찍한 아름다움을 얼굴에서 볼 수 있다.” 숨겨진 역사를 다룬 전시들은 영혼의 강인함을 요구하는 듯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되풀이되는 영상 아카이브 같은 역사 강의를 연속해 듣고 보다 보니 또 다른 강렬한 욕구가 솟아올랐다. 찐한 감동을 주는 회화, 내 머릿속의 작은 미술사를 뒤흔들어놓는 강렬한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싶다는 욕구 말이다. 내가 이곳 베니스에 역사 강습을 들으러 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강보라(미술전문기자)

제임스 리 바이어스와 이승택의 2인전 <Invisible Questions that fill the Air> (공기를 채우는 보이지 않는 질문들)의 전시 전경.

피카소가 그린 연인 도라 마르와 조르지오네가 그린 어머니로 추정되는 나이든 여성의 그림이 병치된 전시 전경. ©Gallerie dell’Accademia in Venice, Michael Werner Gallery, New York, London, Berlin
그야말로 ‘케미스트리가 폭발하는’ 전시였다. 1932년, 같은 해에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예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와 이승택의 2인전 <Invisible Questions that fill the Air>(공기를 채우는 보이지 않는 질문들) 얘기다. 돌풍을 동반한 비에 몸도 마음도 산만한 상태로 자르디니도 아르세날레도 아닌 베니스 다운타운에 있는 옛 로레단 궁전, 현 베네토 과학문학예술연구소(Istituto Veneto di Scienze, Lettere ed Arti)를 찾아 들어서자, 문밖의 기상이변이 일시에 음소거 되었다. 70점 가까이 되는 제임스 리 바이어스와 이승택의 작품이 한 작가의 것처럼 섞여 무언의 강렬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황금빛 천을 잘라 늘어뜨린 바이어스의 ‘World Flag’(1991)와 나뭇가지에 한지를 달아 늘어뜨린 이승택의 ‘바람(종이 나무)’(ca. 1980-1989)이 공명하는 전시실에서 마이클 워너 뉴욕 지점의 케빈 초이 디렉터가 말했다. “두 작가를 설명할 때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니멀리즘, 모노하, 아르테 포베라 같은 사조가 동원되지만 둘 다 특정 사조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며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이룩했어요. 이단아적 기질부터가 닮았죠.” 전시 제목은 바이어스의 예술 세계에 관한 평론가 데이브 히키의 말에서 가져온 듯하다. 그는 바이어스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질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고, 이는 ‘보이지 않는 공기를 시각화하여 존재의 상태를 표현하는’ 이승택의 ‘비-조각’론과 정확하게 포개어진다.
마이클 워너 갤러리가 갤러리 현대와의 협업으로 개최한 이번 전시는 2023년 가을 마이클 워너 런던 지점에서 처음 선보였고 비엔날레 시즌 로레단궁에서 확장된 규모의 순회전으로 이어졌다. 유서 깊은 로레단 궁전은 제3의 작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전시의 시너지를 증폭시켰는데 여기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수세기 동안 명망 높은 로레단 가문의 저택이었고 100년 전부터는 아카데미로 사용된 궁의 위상 때문에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 도서관의 모든 책장은 “접근할 수 있는, 기능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벽에 걸리는 대신 공중에 떠 있도록 설치한 작품들은 제의적인 오라를 자아내며 두 작가의 유사성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 전통과 무속에서 모티브를 끌어온 이승택과 한때 일본에서 지내며 일본 고유의 민족신앙인 신도 등을 탐구한 바이어스의 관심사는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로레단궁에서 걸어서 5분,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나오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도 앞서 소개한 2인전처럼 유사성을 살펴보는 <Elective Affinities>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생몰년이 40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작가를 매칭한다. 개보수를 위해 휴관 중인 베를린의 베르그루엔 박물관의 피카소, 자코메티, 마티스, 클레 등과 아카데미아 상설 컬렉션의 스타들인 조르조네, 티에폴로, 보스 등이 그 주인공이다. 도록에 따르면 ‘선택적 친화력’을 뜻하는 전시 제목은 “도상학의 유사성부터 주제에 이르기까지 두 컬렉션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대화를 기념하기 위해” 괴테의 소설 제목을 차용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협업한 두 기관의 큐레이터들은 풍부한 색채와 빛의 묘사가 특징인 베네치아 화파 거장의 작품 800여 점을 시기별로 소개한 아카데미아 컬렉션 곳곳에 숨은그림찾기 하듯 모더니스트 걸작을 배치해놓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각각 두 개의 패널에 지옥과 낙원을 묘사해 총 네 점으로 이뤄진 다폭 제단화 ‘Visions of the Hereafter’(ca. 1505-1515) 주변으로 의미심장한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마티스, 피카소, 세잔, 클레의 작품을 걸어둔 식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페어링은 피카소의 ‘Dora Maar with Green Fingernails’(1936)와 조르지오네의 ‘Vecchia(The Old Woman)’(c. 1502-1503)이다. 피카소는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를 그렸고, 조르지오네는 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을 그렸다. 배경색과 인물의 대비, 손을 묘사하는 방법,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기호 등 여러 유사점과 대조점이 눈에 들어와 감상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일반적인 전시회가 열렸을 때 조르지오네의 ‘Vecchia’를 빌려왔다면 피카소의 저 그림 옆에 배치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베르그루엔 큐레이터 가브리엘 몬투아의 말처럼 특별한 두 작품의 병치는 예술적 표현의 진화에 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즉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스타일 요소와 방법은 뛰어난 화가들 사이에서 보편적”이라는 걸 말이다.
안동선(미술기획자)

자르디니 본관에서 열린 프로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모습. 아티스트, 큐레이터, 미술 기자 등으로 이뤄진 약 70명의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 파빌리온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박세회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된 소병원과 성당의 복합건물에서 열린 <Nebula>의 전시 중 바젤 압바스와 루안 아부라메가 협업한 ‘우리가 불이 되고, 불이 우리가 될 때까지 (Until We Became Fire and Fire Us)’(2023)의 설치 전경. ©Lorenzo Palmier
현재 서유럽, 특히 내가 사는 독일의 미술계에서 ‘문제적 현실’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나 팔레스타인 해방 관련 발언이 금기시된다는 점이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국공립 미술계가 자부심을 가지고 지켜왔던 수많은 공론장이 검열장으로 전락해가면서, 미술시장이나 민간 상업 재단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발언대로 탈바꿈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시국에 개막한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여전히 진기한 시지각 경험의 장이자, 미술계를 둘러싼 수많은 욕망의 각축장이다. 유럽 안팎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거 초대했음에도 G7, G10 등으로 묶이는 ‘세계 최정상 국가들’의 동맹 지형을 벗어나지 못한다. 프리뷰 기간 동안 가장 자유로웠던 장소는 이스라엘 국가관의 닫힌 문 앞과 베니스 도처에서 기습적으로 열린 종전 시위, 그리고 팔레스타인 시 낭송 모임이었다. 국제적으로 독립국가로 인정되지 않기에 존재할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 파빌리언’은 베니스 곳곳에 무단 부착된 포스터와 성명문, 그리고 모였다 흩어지는 군중의 존재와 시간으로 세워졌다.
장외 전시 <네불라>는 바젤 압바스(키프로스)와 루안 아부라메(미국), 조르조 안드로타 칼로(이탈리아), 사오다트 이스마일로바(우즈베키스탄), 바시르 마흐무드(파키스탄/네덜란드), 신시아 마르셀(브라질)과 디에고 마르콘(이탈리아), 아리 벤자민 마이어스(미국), 크리스타인 냠페타(르완다/네덜란드)의 영상 신작 8편을 선보인다. 이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전시를 기획한 로마 소재의 ‘폰다치오네 인 비트윈 아트 필름’은 패션 디자이너이자 미술 후원자 베아트리체 불가리(Beatrice Bulgari)가 2019년 설립한 예술 재단이다.
<네불라>는 라틴어로 안개, 구름을 뜻한다. 전시를 기획한 재단의 예술감독 알레산드로 라보티니와 큐레이터 레오나르도 비가지는 전시 제목인 ‘안개’가 가시 영역을 뒤덮는 또 다른 입자의 층으로서, 많은 가치가 불투명해진 동시대를 은유한다고 밝혔다. 또한 안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들을 위한 표현과 논의의 장이 될 수 있다. 작가와 기획자가 향후 커리어를 걸고 목소리를 내기에 안전한 공간은 ‘안개’ 속뿐이기 때문이다.
위에 나열한 <네불라>의 참여 작가 이름 대부분에서 이주자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의 신작은 유럽 바깥의 시야를 일차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그다음 단계로서 ‘안개’를 제공한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소병원과 성당의 복합건물을 활용한 전시 설계는 수수하지만 세심하고 쾌적하다. 아래층에서 시작해 나선형 계단을 올라 위층으로 이어지는 동선에서, 옅은 회색빛 구름을 연상케 하는 커튼과 흡음재로 구획한 긴 복도가 기도실, 치료실, 입원실 등에 자리한 각 작업 사이를 잇는다.
전시는 예배당 한가운데에 놓인 바시르 마흐무드의 ‘드넓은 풍경 속 갈인의 몸은 대체로 이주 중(Brown Bodies in an Open Landscape are Often Migrating)’(2024)으로 시작한다. 3채널 LED 패널을 병풍처럼 세운 영상 속의 햇살이 주된 광원이 되어, 예배당을 풍부하게 장식한 제단화와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설핏 함께 비춘다. 모래산을 가로질러 가는 이주노동자는 감독이라는 역할을 입고 자기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영화를 연출하는 몸짓의 클로즈업이 사막 풍경과 리드미컬하게 교차한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바젤 압바스와 루안 아부라메가 협업한 ‘우리가 불이 되고, 불이 우리가 될 때까지(Until We Became Fire and Fire Us)’(2024)가 위층의 주요 공간을 차지한다. 긴 복도에 나란히 면한 여러 방을 거쳐 가는 동안 표현의 자유, 존재의 자유에 다가가는 심상과 언어가 켜켜이 쌓인다. 섬세하게 연동하며 심장을 울리는 음향 설계가 압도적이다. 마지막에 다다르면 “외치는 자는 죽지 않는다(Those who chant, do not die)”는 메시지가 색상을 반전시키고 속도를 늦춘 시위대의 모습 위로 떠오른다. 이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재앙(Nakba)으로 서술하는 팔레스타인 관점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동시에, 현재 유럽에서 금기시되는 모든 친팔레스타인 시위 구호를 암시한다.
전시 종반에 등장하는 사오다트 이스마일로바의 ‘햇볕에 녹아든(Melted into the Sun)’(2024)은 8세기 중앙아시아의 연금술사이자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가로 구소련의 프로파간다에 전용되었던 알무카나 이야기를 우즈베키스탄의 현재에 덧입힌다. 사막에서 치켜든 거울이 반사하는 뜨거운 햇살은 비밀스러운 신호처럼 깜빡거리며 제국 시대의 폐허와 동시대 태양광발전소의 미래적인 풍경을 연결한다. 다양한 제국이 점령했던 중앙아시아 역사에서 조로아스터교, 마즈다키즘, 회교, 불교 등이 공존한 사실에 주목하며, 안개처럼 사방이 뿌연 동시대의 인간 문명에서도 공존의 실마리를 찾는다.
세계사 서술과 마찬가지로, 문화라는 정치적 보루가 지나온 역사 또한 유럽 중심으로 쓰였다. 그 퇴색을 마주하면서 배척된 존재까지 끌어안은 미래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네불라> 역시 유럽에서 허용된 수위에서 탈식민 논의를 시도했고, 현실의 위급함에 비해 변화의 속도는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조차 사라진다면, ‘서구 자유민주주의 문화예술’의 퇴보는 더욱 돌이키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술이 정말로 저항과 공존을 위한 장소가 될 수 있을까? <네불라>는 지금 어떤 시도가 우리에게 유효할지를 그려보게 한다.
김실비(미술작가)

6만5000년이 넘는 원주민 가계도를 검게 칠한 벽과 천장 가득 하얀 분필로 몇 달에 걸쳐 그렸다는 아치 무어의 작품 ‘친구와 친척’의 설치 전경. ©Australia Pavilion
“나는 대표한다(representing)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호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순 없습니다.” 정식 개막식이 열림과 동시에 함께 올해의 수상자가 발표된 날, 국가관 황금사자상 수상자인 호주 원주민 출신 작가 아치 무어는 무대에 올라 매우 부드러운 톤으로 말했다. 검은색 후드 티에 모자를 눌러쓴 작가는 이렇게 그의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과 친절로 대해야 합니다. 이 영광을 나의 친구와 친척(Kith and Kin)인, 여러분께 돌립니다. ”
아치 무어는 작품 ‘친구와 친척(Kith and Kin)’을 통해 6만5000년이 넘는 원주민 가계도를 검게 칠한 벽과 천장 가득 하얀 분필로 몇 달에 걸쳐 그려갔다. 작가는 학교에 걸린 칠판에는 적힐 수 없었던, 역사의 이면 아래 존재했던 모든 이들의 이름을 담고자 했다. 여러 연유로 공백으로 남은 빈칸은 관람객이 메울 수 있도록 했다. 검은 벽으로 둘러싼 방 한가운데 놓인 하얀 테이블 위에는 1991년부터 2023년 사이에 의문사한 원주민에 대한 공식 문서가 놓여 있었다. 많은 부분이 손실되고 삭제된 이 문서들은 기록된 사실, 즉 우리가 부르는 역사가 가진 그 한계성을 담담히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은 통상적으로 기대할 원주민 작가 작품의 정반대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안팎의 전시에서 예술가들은 유독 자신이 국가와 동의어가 아님을 강조했다. 하지만 예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가진 상징성과 국가관이란 시스템은 현 시국을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관이 위치한 자르디니에 티켓을 확인하고 들어서자마자 연일 무장한 군인들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 현 유럽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뜻으로 뉴질랜드, 스코틀랜드, 모로코는 국가관 참가를 거부했다. 이스라엘의 참여에 대해 세계 예술계 종사자들이 보낸 수천 명의 항의 서한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비엔날레 조직위의 태도에 사실 많은 이들이 분노와 긴장을 한 상태로 베니스에 도착했다. “팔레스타인은 해방될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행렬이 프리뷰 오프닝 전부터 베니스 곳곳에서 이어졌다. 결국 이스라엘관 참여 작가와 큐레이터는 현 가자 지구의 분쟁이 멈출 때까지 전시장 문을 닫기로 결정한 공고문을 내걸었고, 2년 연속 불참한 러시아관은 올해 볼리비아에 국가관을 임대해준다고 했으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 닫힌 이 국가들의 존재는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았든 베니스 비엔날레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그 이면, 어쩌면 진실의 전면을 드러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는 아티스트 안나 예르몰라에바(Anna Jermolaewa)는 ‘저항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전쟁과 정권 교체 시기와 같이 국가가 혼란할 때마다 소비에트 국영 방송국에서 반복해 송출했던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음악이 주었던 그 나른하고 모호한 공기의 기억, 아름다운 예술을 보며 전쟁과 대량 학살이 끝나길 바랐던 부조리한 과거를 오스트리아관에서 재현했다. 폴란드관은 우크라이나 작가 컬렉티브인 오픈그룹(Open Group)에 장소를 내어주었는데, 우크라이나 폭탄 테러 생존자들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총탄 소리들이 흡사 가라오케 머신처럼 재현되었다. 작품 이름은 ‘나를 따라 해봐(Repeat after me)’.
비슷한 맥락으로, 올해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호한 채 또다시 그들의 최애 단어 ‘조화(Harmony)’를 주제로 삼은 중국 정부 검열 프렌들리 콘텐츠로 가득 찬 중국 국가관 전시 대신, 대만관, 홍콩관, 마카오관 전시에서, 그리고 대형 갤러리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LACMA)과의 협력으로 이뤄진 중국 작가의 대형 전시에서 더없이 중국의 실체와 현재를 더 느낄 수 있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성스러운 베니스의 오래된 교회에서 열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시니어 큐레이터인 알렉산드라 먼로가 직접 큐레이팅한 중국 작가 위홍(Yu Hong)의 황금빛 가득한 전시는 ‘또 한 사람이 쓰러진다(Another One bites the Dust)’라는 퀸의 대표곡을 전시 제목으로 택했다. 오랜만에 곡을 찾아 들으니 후렴구가 확 꽂힌다. 이면의 이야기가 전면의 이야기가 된다.
조앤킴(독립 큐레이터) →
Credit
- PHOTO La Biennale de Venezia
- 각 국가 파빌리언 제공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김동희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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