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 나는 미술사 공부는 서서히 그만두고, 덴마크로 돌아와 큐레이팅을 시작했다. 초창기에 큐레이터 프레데리케 한센과 함께 비영리 공간인 캠벨스 오케이저널리에서 연 전시부터 작은 섬 미델그룬스포르텟(Middelgrundsfortet)에서 열린 첫 실험적 프로젝트 〈레스터 출신의 남자, 스웨덴 소녀, 한 가족의 아버지, 게이 커플이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무인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동 응답 전화 프로젝트 〈아트 콜스〉, 직접 조직한 퍼블리싱 프로젝트 〈포크 샐러드 프레스〉 등을 연달아 진행했다. 대부분 저예산, 또는 예산이 아예 없는 전시들이었으나, 문화예술 공공 지원 기관인 덴마크 아트 카운슬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공 공간, 큐레이팅 방법이나 포맷의 실험, 전시 초대 작가 성비 1:1 유지 등에 관심이 갔고, 이를 위해 유럽 곳곳에서 움직였다. 파트타임 큐레이터로 일하는 한편 여러 기관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학위도, 안정적인 수입도 없었던 터라 이 프로젝트에서 저 프로젝트로 옮겨가며 일해야 했다. 힘든 시간이었으나, 이 과정을 통해 실무를 배웠다. 큐레이터 트레이닝이나 수업을 거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 만큼 문제도 제법 일으켰다. ‘큐레이터가 해서는 안 될 일들’ 목록에 있을 법한 실수란 실수는 다 저질렀던 것이다. 성공을 거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 한 실수들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멍청했다. 예를 들면 절대 파손되어서는 안 될 아트 워크를 부숴버린다거나, 오프닝 전날 전시를 설치하다 엘리베이터에서 잠들어버렸다거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실수는 초기 몇 년간 유럽 중심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맡은 건 2008년의 일이다. 그해 나는 스웨덴의 명망 있는 현대미술관 말뫼 쿤스트할의 예술감독이 되었다. 헨리크 올레센, 리바네 노이엔슈반더, 한스 페테르 펠트만, 테아 도르자제 등 여러 아티스트들과 대규모 전시를 열 수 있는 것은 물론, 리서치 출장도 늘어났다. 유럽 중심의 생각을 버리게 된 것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당시 말뫼 아트 아카데미에서 강의하던 아티스트 헤이그 양과 한국 역사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미 한국의 미디어 아트 그룹 ‘장영해 중공업’ 등과 함께 작업한 적은 있었지만, 한국에 가본 적은 없었다. 호기심이 생기자 부산, 광주, 서울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를 찾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마침내 찾은 한국에서는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 김선정을 만나 그녀의 리서치 라이브러리를 훑어보고 〈리얼 DMZ 프로젝트〉를 직접 경험했다. 아티스트 김소라와 김범도 만났다. 두 사람 모두 무척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첫 한국 방문의 결과로 나는 즉시 김소라와 김범의 전시를 덴마크에서 열 계획을 세웠다. 김소라의 단독 전시는 그로부터 1년 뒤, 내가 디렉터를 맡게 된 코펜하겐 쿤스트할 샤를로텐보르에서 열렸다. 하지만 김범의 전시를 준비하는 데에는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2019년에야 쿤스트할 오르후스에서 성사됐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나는 김희천, 김아영, 채고은, 강정석, 남화연 등 젊은 아티스트들을 쿤스트할 오르후스에서 소개했고, 나 역시 아트선재센터에서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2019), 〈미니멀리즘-맥시멀리즘-메커니즈즘〉(2022)을 큐레이팅했다.
한국의 아트 신은 아주 활기찼다. 때문에 2020 부산 비엔날레에서 내 제안이 채택되었을 때는 정말 설레었다. 부산 비엔날레 전시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감독으로서, 장르를 불문한 아티스트들과 대규모 전시를 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전시 제목은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가 친구 빅토르 하르트만의 그림 열 점을 소리로 표현한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1874)에서 땄다. 무소르그스키가 하르트만의 2차원 작품을 전혀 다른 매체인 소리로 변신시킨 것처럼, 해석과 변화라는 접근을 빌려 ‘부산’이라는 도시를 단편소설과 시, 아트워크와 사운드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아트, 문학, 음악을 합친 이 전시 덕분에 나는 한국의 젊고 실험적인 미술가뿐만 아니라 뛰어난 뮤지션들, 그리고 멋진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산 전시가 내게 특별했던 이유가 또 있다. 2020년 3월 팬데믹으로 한국에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는 먼 곳에서 리서치를 진행해야 했다.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를 포함, 전시 팀을 이끈 이설희 및 부산의 큐레이션 팀 모두에게 불리한 상황이었음에도 갑자기 닥쳐온 고난 앞에 우리는 오히려 더 끈끈해졌다. 나는 오프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아티스트와 관객들을 만나 쇼를 경험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부산과 글, 그림, 소리를 통합한 훌륭한 전시를 함께 만들었다. 모두가 힘든 시간이었으나, 나는 부산 전시를 해냈다는 게 지금도 무척 자랑스럽다.
한국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올해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나와 쿤스트할 오르후스의 큐레이터인 이설희를 2024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공동예술감독으로 선정했다. 우리는 구정아 작가를 제안했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향’을 이용한 작업을 해 온 그녀는 정말이지 흥미로운 인물이다. 다가올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우리는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 향기 여행(Korean scent journey)’을 컨셉으로 한반도 다양한 지역을 대표하는 냄새를 포함해 인상적인 한국의 향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의 모습을 그리고, 여러 사람의 기억을 소환하는 불연속적이고 고상하며 강력한 전시가 되기를 기대하며 이설희 큐레이터와 나는 한국 브랜드 ‘논픽션’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전시를 위한 향수와 향기를 만들고 있다. 구 작가와 논픽션을 비롯,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컨셉추얼한 아이디어를 지원해 주는 현대자동차, 디네센, 크바드라트 같은 기업들과의 협업은 환상적인 일이다.
보여지는 큐레이터의 삶은 굉장히 화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은 조금 다르다. 큐레이팅 과정에는 그다지 멋지지 않은 일들이 반복된다. 공간을 짓고, 파티션을 설치하고, 작품을 제작하고, 기업이나 재단과 예산을 조율하고, 작품 운송 방법 및 보험 가입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적인 부분을 체크하고, 홍보를 준비한다. 이를 위해 지루한 미팅과 책상 앞에서의 사무 작업이 이어진다. 이 밖에 아티스트, 작가, 갤러리스트들과 콘셉트를 의논하고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때도 있고, 부산 비엔날레 당시의 팬데믹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 삶에 대한 다른 접근법이나 현실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가진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을 전시장에 구현하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다.
현재 나는 아티스트들이 혁신적 실험에 나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신생 조직 ‘아트 허브’ 코펜하겐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세상에 없던 놀라운 작업을 해내는 아티스트들에게 시간과 공간, 목소리를 주는 것이 목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며, 아티스트와 세상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내 손을 거친 전시가 실현될 때마다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느낀다. 내가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아트 허브 코펜하겐의 관장이자 2024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총괄 예술감독이다. 스웨덴 말뫼 몬스트할과 덴마크 쿤스트할 샤를로텐보르의 디렉터를 역임했고 수많은 국제 전시를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