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기자들이 뽑은 '나만의 올림픽 슈퍼 스타'
수많은 선수를 취재한 스포츠 전문 기자들에게도 마음 한구석에 품은 나만의 슈퍼 히어로가 있다. 남들 모르게 혼자 울고 웃으며 응원 중인 선수가 누구인지 6인의 스포츠 기자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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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권순우
이번 2024년 하계 올림픽(이하 ‘파리 올림픽’)에서 사실 권순우의 메달 가능성은 희박하다. 남자 단식 세계 랭킹은 300위 밖까지 밀려 있는 상황이고, 파리 올림픽 테니스 경기가 열리는 롤랑 가로스에서 프랑스 오픈 정상에 오른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 메이저 대회 역대 최다 우승에 빛나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등이 출전한다. 그렇다고 권순우의 올림픽 도전을 응원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테니스의 자존심을 지켜왔으면서도, 한때의 실수로 과도한 비난을 받은 불운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져 사라지기에는 아까운 선수인 이유도 있다. 권순우는 1년 선배 정현이 2018년 호주 오픈 4강 신화 뒤 부상의 늪에 빠졌을 때 한국 테니스를 지탱해줬다. 2021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아스타나 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둔 권순우는 지난해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전설 이형택은 물론 정현도 이루지 못한 ATP 투어 2회 우승, 프랑스 오픈 등 메이저 대회 3회전에 오르는 등 개인 최고 랭킹을 52위까지 끌어올렸다.
권순우는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했다. 남자 테니스 국가 대항전 ‘데이비스컵’에서 사상 최초 2년 연속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유럽의 복병 오스트리아, 벨기에를 상대로 단식 승리를 거두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낸 덕이다. 또 권순우는 2022년 본선 16강전에서 당시 세계 13위였던 캐나다의 펠릭스 오제 알리아심을 완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권순우는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단식 2회전에서 카시디트 삼레즈(태국)에 진 뒤 라켓을 코트에 내리쳐 부쉈다. 또 경기 후 인사를 건넨 상대를 무시하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변명이 필요 없는 행동이다. 다만 그 경기에서 상대가 1세트가 끝난 뒤 화장실에서 약 10분 동안 머물며 경기를 지연했고, 2세트가 권순우의 승리로 끝나기 직전엔 메디컬 타임을 신청하는 등의 비매너를 먼저 보였다는 점은 덜 알려졌다.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맥락이 없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병역 혜택의 마지막 기회가 사실상 사라져버린 상황이라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태극마크를 달고 저지른 행동에 권순우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이후 권순우는 삼레즈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고 그는 받아들였다. 아시안게임 남자 복식에서 속죄의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소속팀과 재계약이 무산되고 일부 후원 기업의 지원도 끊겼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과 상대적으로 불리한 체격 조건에도 그간 꿋꿋이 한국 테니스의 기수 역할을 해오던 그였다. 나는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권순우이기에 파리에서 오히려 불명예에서 벗어나길 더욱 간절히 원할 것이라고 본다. 도쿄 올림픽 당시 권순우의 1회전 경기에 한국 취재진은 통신사의 사진 기자 한 분을 제외하면 나뿐이었다. 권순우가 이룬 성취가 이런 테니스 불모지에서 얼마나 어렵게 자라난 결실인지를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해본다. - 임종률(CBS 스포츠 기자)

세 바퀴 반의 우하람
“경영보다 주목받진 못하지만, 저희도 메달이 목표입니다.”
지난 6월 18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경영 선수들 틈에서 다이빙 우하람(26, 3m 스프링보드)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수영계의 기대는 경영 ‘황금세대’에 쏠려 있지만, 다이빙에서도 이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주목받진 못했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우하람은 다이빙 대표팀의 맏형으로서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사실 다이빙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비인기 종목이다. 경영 선수가 박태환의 출현을 기점으로 꾸준히 늘어난 반면, 다이빙 선수는 모두 합쳐봐야 200명이 채 안 된다. 올림픽 등 국제 대회를 준비할 수 있는 경기장도 사실상 진천선수촌 단 한 곳에 불과하다. 낮은 인지도와 열악한 인프라 그리고 얕은 인재 풀. 다이빙은 시쳇말로 ‘뭘 해도 안 되는 집’의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이필중이 다이빙 선수 중 최초로 19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한 이래로 한국은 여태 단 하나의 올림픽 메달도 따지 못했다. 단순히 실력이 부족해서였을까.
60년 넘게 이어진 이 ‘노메달 종목’에서 우하람은 처음으로 ‘희망’을 쏘아 올렸다. 처음 출전한 2016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남자 10m 플랫폼에서 결선(11위)에 진출했고, 2020 도쿄 올림픽(2021년 개최) 다이빙 3m 스프링보드에서 4위에 올랐다. 한국 다이빙 역사상 최고 성적이었다. ‘우하람이 뛰면 대한민국 다이빙의 역사가 바뀐다’는 말도 이때 나오기 시작했다. 다이빙을 향한 우하람의 욕심은 외국 선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주종목인 3m 스프링보드 외에 1m 스프링보드, 10m 플랫폼에도 꾸준히 도전하는 그를 보며 외국 선수들은 “미친 선수”라고 했다. 하나에만 목숨을 걸어도 부족한데, 3개 종목을 준비하는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다이빙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소망이 그를 미친 듯이 물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20대 초반 나이에 아쉽게 포디엄을 놓친 뒤에는 긴 부상의 터널을 지나와야 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2022 세계선수권을 건너뛰었고, 2023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9위에 그쳤다. 스스로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끝없는 재활과 치료의 시간이 1년 넘게 이어졌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시간. 동료와 코치들의 지원으로 차츰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세 번째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세 번째 무대에 설 준비를 마친 우하람은 “부담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는 주종목인 3m 스프링보드에만 출전한다. 여러 세부 종목에 출전해 욕심을 부리기보단, 단 한 종목에 집중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실수한 공중 세 바퀴 반 기술도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제 사실 메달 딸 때가 된 것 같아요. 무조건 따야지가 아니라, 이때까지 잘 해왔으니 하늘에서 메달을 내려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호기심에 시작했던 다이빙은 이제 천직이 됐다. 한국 다이빙 역사가 우하람의 어깨에 다시 놓였다. - 장필수(<한겨레신문> 스포츠 기자)

잠룡 김우민의 역영
한국 수영은 현재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황선우(21)와 함께 성장형 캐릭터인 김우민(22)이 있기 때문이다. 황선우가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제2의 박태환’ 얘기를 들었다면, 김우민은 조금씩 기록을 줄여가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잠영을 길게 한 뒤 역영(力泳)을 펼치는 모양새랄까. 부산 출신인 그는 수영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물과 친해졌다. 중학생 시절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역시나 대기만성 부산체고 시절부터 서서히 기량이 오르더니 급기야 2020 도쿄 올림픽(2021년 개최)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다만 당시엔 황선우의 화려한 등장에 가려 ‘김우민’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을 뿐이다.
긴 잠영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2022년부터다.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때 자유형 400m 6위를 했다. 800m는 14위. 2023년 세계선수권 때는 자유형 400m 5위에 오르며 한 단계 더 도약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2023년 개최) 때는 자유형 400m, 800m, 그리고 계영 4×200m에서 1위에 오르며 대회 3관왕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김우민의 이름을 황선우의 옆에 놓기 시작했다. 슬슬 ‘한국 수영계의 쌍두마차’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는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이제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도 시상대에 서고 싶다”라는 바람을 드러내자마자 2024년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그 꿈을 일찌감치 이뤘다. 3분 42초 71의 기록으로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 이후 13년 만의 세계선수권 우승이었다. 세계적인 수영 선수들과 비교해 키(182㎝)는 작지만 윙스팬(두 팔을 벌려 양손 끝 거리, 196㎝)은 긴 타고난 체격과 시간을 들여 갈고닦은 체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
이번 2024년 하계 올림픽(이하 ‘파리 올림픽’)에서 김우민은 호주의 ‘듀오’ 일라이자 위닝턴(24), 새뮤얼 쇼트(20), 독일의 루카스 마르텐스(22)와 자유형 400m에서 경쟁할 것이다. 세계선수권에서 위닝턴이 2022년, 쇼트가 2023년에 연달아 우승했다. 그러나 2024년의 우승자는 김우민이다. 마르텐스는 올해 기록(3분 40초 33)이 가장 좋다. 그 뒤를 위닝턴(3분 41초 41), 쇼트(3분 41초 64), 김우민(3분 42초 42)이 잇는다. 3분 42초 42는 김우민의 개인 최고 기록이다. 수영 전문 매체 스윔스왬은 파리 올림픽 경영 자유형 400m를 전망하면서 쇼트, 마르텐스에 이어 김우민이 3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포디엄은 실력이지만 메달의 색은 종종 컨디션이 결정한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 얼마든지 메달 색깔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자유형 400m는 파리 올림픽 수영 경영 중 첫 메달이 나오는 종목이다. 만약 김우민이 자유형 400m에서 메달을 따내면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수영 부문에서 메달을 딴 한국 선수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수많은 흥행 요소가 걸려 있다. ‘12년 만에 최초’ ‘한국 첫 메달’. 따기만 한다면 지면을 채울 타이틀이 잔뜩이다. 김우민은 “파리에서 목표는 기록 경신이다. 그것만을 목표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유형 400m와 함께 자유형 200·800·1500m와 계영 800m 출전권도 확보한 상태다. 모두 출전할지는 미지수다. 대회 기간 몸 상태에 따라 출전 종목과 그 수가 결정된다. 그러나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그가 출전한 방송이 전파를 타는 순간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것이다. - 김양희(<한겨레신문> 스포츠 팀장)

초고속 월드클래스 반효진
젠지(Generation Z)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표현에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부담감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 분야에서는 독보다는 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야구의 김도영(KIA), 축구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대표적이다. 사격에도 당찬 젠지가 한 명 있다. 2007년생 ‘여고생 사수’ 반효진(17, 대구여고)이 그 주인공이다. 반효진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 10m 공기소총에 출전한다. 아직 최종 엔트리가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박하준(KT)과 함께 10m 공기소총 혼성 단체전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반효진을 보면 노력만큼 재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세가 무시무시해서다. 사격을 시작한 것은 대구 동원중 2학년이던 2021년 7월. 공교롭게도 당시는 전 국민이 2020 도쿄 올림픽의 열기에 빠져 있을 때다. 어릴 적 태권도를 함께했던 친구의 권유로 사격을 시작했다는 반효진은 당시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반효진은 “그 친구가 사격이 참 매력 있다고 하면서 ‘네가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설득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였다. 그런데 사격을 시작하고 2개월이 좀 안 돼서 열린 대구광역시장배에 출전했는데, 덜컥 1등을 해버렸다. 반효진은 “그때부터 진짜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는데, 그때 1등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밀어주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뒤늦게 빛을 보기 시작한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반효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반효진 스스로도 이번 파리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쟁쟁한 선배들이 워낙 많았기에, 지난 3월 열린 대표 선발전에도 경험 삼아 출전했다. 그런데 이 선발전에서도 1등을 해버렸다.
한국 사격에서 소총은 의미가 깊은 종목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갑순 현 사격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감독이 금메달을 딴 종목이 바로 여자 10m 공기소총이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신드롬’을 일으켰던 강초현이 은메달을 딴 종목도 10m 공기소총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여갑순은 서울체고 3학년이었다. 시드니 올림픽 때 강초현도 유성여고 3학년이었다. 그리고 24년 후 또 다른 고교생 사수인 반효진이 올림픽에 도전한다. 많은 사람이 이번 파리 올림픽 사격에서 금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하는 선수는 지난 5월 바쿠 월드컵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여자 25m 권총의 김예지(임실군청)다. 세계적인 강자들이 즐비한 소총에서는 금메달 가능성이 다소 낮다는 평가다. 그런데 목표를 금메달이 아닌, 포디엄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반효진에게도 가능성이 충분하다. 반효진은 6월 초 열린 뮌헨 월드컵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은메달을 땄다. 당시 1위를 한 중국의 황위팅과는 고작 0.1점 차이에 불과할 정도로 박빙의 승부였다. 충분히 ‘대형 사고’를 기대할 만하다. 그는 “메달 색깔은 되도록 상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당연히 따게 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경험이 없는 게 단점이지만, 그래서 더 부담이 없을 것 같다.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요즘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나도 사람이다.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TV에 나오는 스타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기에 있겠지’라고 믿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오랫동안 한국 사격을 지탱해왔던 진종오 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은퇴 후 처음으로 맞는 파리 올림픽이다. 반효진이라는 ‘깜짝 스타’의 등장으로 시끌벅적한 대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 윤은용(<경향신문> 스포츠 기자)

김소영-공희용은 울지 않아
꽤 많은 국제종합대회를 취재하면서, 나는 많은 선수를 울렸다. 막 경기를 끝낸 선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안에 들어가 그가 공감할 만한 질문을 던지면, 선수들은 그때까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아마 한국 스포츠 기자 중 가장 많이 선수를 울린 기자일 거다. 박태환도, 여서정도, 김서영도, 그리고 북한 역도의 오강철도 내가 던진 질문에 눈물샘을 터뜨렸다. 그런데 기자를 울린 선수들이 있다. 현장에서 인터뷰하며 울었고, 기사 쓰면서 울고, 그때 쓴 기사를 지금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때였다. 8월 2일 도쿄 무사시노모리 경기장에서 열린 배드민턴 여자 복식 동메달 결정전은 한한전이었다. 김소영-공희용 조가 이소희-신승찬 조를 2-0으로 꺾고 동메달을 땄다. 넷은 선수촌에서 방 2개짜리 숙소를 같이 썼다. 한 집에서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잤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는 잔인한 매치였다. 경기가 끝났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했다. 이긴 조는 이겨서 미안했고, 진 조는 이긴 조가 동메달을 따고도 마음껏 좋아하지 못하는 게 눈에 보여 미안했다. 승부가 갈리는 순간, 어떤 환호도 없었다. 서로 파트너를 안은 뒤 네트를 건너가 서로를 힘껏 끌어안았다. 경기를 이긴, 맏언니였던 김소영은 “원래 그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며 울먹였다. 이소희는 “동메달 따서 좋았을 텐데 저희랑 하는 바람에 좋아하지도 못하는 거 보면서 너무 미안했다”며 또 울먹였다. 그래서 거기 있던 모두가 눈물 바다가 됐다.
김소영과 공희용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짝을 이뤘다.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다. 2023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기대했지만, 김소영이 종아리를 다쳤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공희용과 애를 썼다. 풀세트 접전을 펼치며 준결승까지 올랐지만, 졌다. 이번에는 공희용이 “마음고생은 저보다 (아픈) 언니가 더 심했을 거다. 제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며 울먹였다. 나보다 짝을,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코트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시상식이 끝난 뒤 공희용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김소영을 번쩍 들어 업고 내려왔다. 공희용도, 김소영도 그때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보다 더 멋진 동메달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사실 공희용과의 인연은 더욱 오래됐다. 2013년 대성여고 2학년 때 그를 인터뷰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배드민턴 시작 3년 만에 아버지가 어깨를 다쳤고, 세 살 위 언니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열여덟 살 공희용이 말했다. “그때 운동도 힘들고 해서 많이 울기도 했다. 이제는 자랐고 울지 않는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울지 않는다’고 말한 그가 우는 모습을 8년 뒤에 한 번, 10년 뒤에 또 한 번 보게 된 셈이고, 그 눈물의 의미는 힘들어서 우는 것과 전혀 달랐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기특하고, 애잔했다. 김소영과 공희용이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에 도전한다. 이번에는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경기를 마음껏 펼치길, 마지막에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그들이야말로 지금껏 해온 것만으로도 진정한 나의 슈퍼 히어로니까. - 이용균(<경향신문> 스포츠 기자)

소년 점프 이우석
2016년 열린 리우 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 사람들은 출전권을 따낸 선수 못지않게 4위 선수들을 바라봤다. 올림픽 출전권은 3장이기 때문이다. 여자부 4위 강채영은 3위 장혜진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남자부 4위 이우석의 표정은 오히려 차분했다. 동료들은 그의 어깨를 치며 “잘했다”고 격려했다. 다시 그를 만난 건 2년 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선발전 때다. “군인 아저씨!” “거기 이등병!” 지도자들과 선수들은 까까머리 이우석을 그렇게 장난 삼아 불렀다.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이번엔 출전권을 따냈고, 이우석은 아시안게임에서 2개의 은메달(개인전, 단체전)을 따냈다. 축하보다는 위로가 더 많았다. 금메달을 따내면 병역 특례를 받아 곧바로 전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김우진이 군 전역 기회를 앞둔 후배를 스포츠맨십으로 가차 없이 꺾어버린 바로 그 경기였다. 개인전 결승에서 만난 선배 김우진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이우석을 이겼다. 이우석은 고개를 숙였고, 김우진은 미안함에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단체전 은메달을 따낸 뒤 이우석은 “우진이 형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했다. 내가 우승했으면 형이 축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석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양궁부 모집 원서에 적힌 ‘피자, 치킨, 라면 등의 간식 다(多)’를 읽자마자 활을 잡았다. 축구선수 아버지는 축구를 시키고 싶어 했고, 팔이 길어 복싱부에서도 제안이 왔지만 그의 선택은 (피자와 치킨을 준다는) 양궁이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과녁 정중앙에 맞히는 쾌감에 빠져들었다. ‘소년 신궁’ 이우석은 고등학교 2학년인 2014년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두 번의 큰 시련이 그를 찾아왔다. 2019년 전역 후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이우석은 2020년 도쿄 올림픽 선발전 때 절정의 기량으로 통과했지만,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미뤄졌다. 이에 더해 다시 나선 선발전에선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선발전 때는 당당히 통과했지만, 또 1년 미뤄졌다.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던 이우석은 “좋은 경험이다.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활을 잡았다.
연이은 불운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다시 열린 선발전을 2위로 통과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섰다. 2관왕(단체전, 혼성전)에 오르면서 자카르타의 아픔을 씻어냈다.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따낸 이우석에게 남은 건 ‘올림픽’뿐이다. 지난 4월 평가전을 여유 있게 통과했다. 이우석은 “12년이 걸린 도전이었다”라고 웃으며 “악착같이 준비했다.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솔직히 안 힘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울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 단단해진 것 같다. 함께 울고 웃었던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준비 과정은 순조롭다. 이우석은 5월 경북 예천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개인전 결승에선 선배 김우진도 이겼다. 그동안의 시련을 통해 ‘도’를 터득한 듯했다. 이우석은 “김우진 형과 대결을 재밌게 즐겼다”고 웃었다. 생애 첫 올림픽 도전에 대한 부담도 없어 보였다. 이우석은 “단체전은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겠다. 나는 처음이지만 김우진, 김제덕 선수는 경험이 많아서 잘 따라가겠다. 이번 올림픽은 도전 자체가 즐겁다”고 미소 지었다. 이우석을 보면 래퍼 마미손의 ‘소년 점프’가 생각난다. ‘주인공 초반에 고통 받고 각 잘 재고 무릎 팍 바닥 쳐 박고. 야 XXXX 사실 다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라고. 계획대로 돼가고 있어.’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이우석의 ‘영웅 서사’가 파리에서 완성되길. - 김효경(<중앙일보> 스포츠 기자)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우하람 인스타그램/국민체육진흥공단/대한사격연맹/대한배드민턴협회/대한수영연맹/대한양궁협회/황진환(CBS 노컷뉴스 기자) 제공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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