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스페인의 숨겨진 최고 등급 와인 사진 '프리오랏'에서 찾은 것들
스페인에서 단 2개밖에 없는 최고 등급(D.O.Q) 와인 산지 프리오라트. 그 프리오라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 마스 덴 질(Mas d’en Gil)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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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오라트의 특이한 기후에서 자란 올드 바인들은 키가 매우 작다.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올리브를 같이 가꾸는 것은 스페인뿐 아니라 지중해 인근 와이너리들의 특징이다.
“제발 저 구름이 이쪽으로 넘어왔으면….”
마르타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프리오라트는 지중해(정확히는 발레라레스해)에 면한 카탈루냐의 동쪽 해안가에서 불과 3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자동차를 몰고 20분만 달리면 타라고나 해안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해양성기후가 아닌 지독한 대륙성기후다.
“저 구름들은 산맥을 넘어오면서 산맥 너머에 비를 다 뿌려버리거든. 서쪽이든 동쪽이든 북쪽이든 모두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비구름이 넘어오지 못해. 지난 한 달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렸어.”
모든 걸 태워버릴 기세로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마르타가 말했다. 아마 당신은 이 이야기를 읽고 ‘산맥들이 참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혹은 ‘구름들이 힘을 더 내야’라고 생각했을 수도.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가혹한 환경이 프리오라트를 스페인에 있는 단 두 개의 DOQ 산지로 만들어준 은혜로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다. 가장 이상적인 포도 재배를 위해서는 대략 가지와 잎이 자라는 3~5월에는 비가 적당히 내리고 6~9월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야 한다. 포도가 영글고 포도의 빛깔이 변하는 베레종 시기가 지나면, 물이 모자란 환경에 처해야 번식을 위해 씨가 든 포도에 영양분을 집중시키는 까닭이다. 수분이 충분하면 이파리와 가지를 더 성장시키지만, 모자라면 미친 듯이 뿌리를 뻗어 모든 양분을 자손에게 집중한다. 위기에 처한 개체가 자손이라도 남기기 위해 벌이는 노력이다. 이 시기에 포도는 신맛이 점점 약해지고 단맛은 점점 더 강해진다. 여우, 곰, 토끼가 따 먹고 싶어지게 단 향을 풍긴다. 하필 그런 시기에 비가 오면 포도 맛이 묽어지고 만다. 묽어진 포도는 퀄리티 와인을 만들기에 그리 적합하지 않다. 여름이 되면 비가 오지 않을 것. 오더라도 아주 적게 올 것. 그것이 바로 고급 와인 양조용 포도 경작지의 조건인 셈인데, 예를 들자면 대륙성기후인 프랑스 와인 산지들이 대부분 딱 그런 날씨다.
“부르고뉴가 비가 적게 온다고 하는데, 부르고뉴의 포도 생장기 강수량이 아마 600mm 정도 될 거예요. 여기는 적을 때는 200mm밖에 안 오는 해도 있어요. 많아야 400mm이죠.”
퀄리티와 퀀티티는 늘 반비례의 관계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햇살이 따스한 온난 해양성기후 지방에서는 한 그루에서 난 포도로 와인을 너덧 병까지, 빅바인이라면 많게는 10병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종 시장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그런 와인들이 당신의 미각과 후각을 사로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리와 기후의 복합적 요인 외에 프리오라트의 포도를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시간’이다. 라몬 베렝게르 남작의 아들이자 아라곤의 왕인 알폰소 2세가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수도승들에게 지금의 스칼라 데이 수도원(현재는 그곳에 와이너리가 있다)이 있는 지역 인근의 지배권을 주면서 모든 게 시작됐다. 수도승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은둔했지만, 단 하나 좋아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와인이었다. 수도승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 포도를 길러 와인을 생산했고, 9개 마을에 있는 경사지를 관리하며 주민들과 함께 포도를 경작했다. 프리오라트는 그렇게 1000년 동안 스페인 와인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835년 스페인의 총리가 수도원의 재산을 몰수해 지역 주민들에게 분배하는 바람에 와인 생산의 중심 역할을 해왔던 수도원은 불탔다. 19세기 말 유럽 와인의 역사를 바꾼 필록세라가 프리오라트를 강타했으니, 이 병충해는 무자비하게 와인 밭들을 파괴했으며 프리오라트에서 와인 산업은 거의 사라졌다. 20세기 초반, 잠시 협동조합 형태로 와인 산업이 되살아나는 듯했으나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스페인 내전이 그 싹을 잘라버렸고, 그 뒤로는 사실상 버려진 땅으로 남았다. 프리오라트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건 198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온 선지자 르네 바르비에(René Barbier)와 리오하의 예수 알바리오 팔라시오스(Alvaro Palacios)가 프리오라트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때, 그동안 버려졌던 이 지역엔 수많은 고목, ‘올드 바인’(old vine)들이 내팽개쳐진 땅에서 혼자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마스 덴 질은 이 프리오라트 르네상스 이전부터 이 지역에 자리를 잡고 와인을 생산해왔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2개의 와이너리 중 하나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와이너리 ‘마스 덴 질’을 마르타의 가족이 인수한 것은 1998년. 그들이 인수한 것은 그냥 땅이 아니었다. 그 땅에 심겨져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었던 셈이다. 예를 들면 마르타의 마스 덴 질의 그랑 크뤼급 와인인 ‘클로 폰타’(Clos Fontà)를 기르는 포도나무들은 1931년부터 1970년 사이에 식재된 할아버지 나무들이며, 빈티지 그랑 크뤼급인 ‘그랑 부이그’(Gran Buig)의 나무들은 1931년부터 1945년 사이에 식재된 증조할아버지 뻘들이다.

포도나무를 살피고 있는 와인메이커이자 오너 집안의 막내딸인 마르타 로비라의 모습. 그녀는 부르고뉴 스타일의 와인을 추구한다.
“500를 뿌리고 나면, 아주 얇은 갈퀴로 땅을 긁어줘야 해요. 아주 살짝 공기가 땅속에 들어가게 해서 자고 있는 뿌리들을 깨우는 거죠.”
마르타가 내게 달의 흐름에 따라 어떤 기운이 강해지는지를 요약한 비오디나믹 월력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비오디나믹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할지 모른다. 나 역시 아주 조금은 그랬다. 그러나 마르타의 눈빛과 그녀가 만든 와인이 얼마나 진지한지를 알게 된 이상 내 마음 따윈 크게 상관없었다. 클로 폰타 같은 와인을 마실 수만 있다면, 사주팔자인들 못 믿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Credit
- PHOTO Rafael López-monné/Mas d’en Gil Priora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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